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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48화 (48/385)

야안 48화

그것은 야안을 하늘의 태양처럼 대하는 한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앞으로 남작 성의 정예가 되어 이 성을 지켜야 할 60명의 아이는 야안이 검을 들게 하는 훈련을 시키지 않고 그저 잘 먹고, 즐겁게 열심히 놀고 푹 자라는 명령을 내리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처음 며칠간은 그 명령을 그대로 듣기가 어려워 어쩔 줄 몰라 했는데, 몇 번이나 야안이 그리하라 재차 말하자 그제야 그 말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2주간, 농노들은 저 멀리서 보았던 놀이를 하며 한을 풀었고, 열 명의 마을 아이들은 자신의 친지가 징병되어 근심 가득한 마음을 푸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다들 각지에서 차출되어 서로를 잘 모르던 시기라 돈독한 사이를 만들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2주 만에 아이들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어둡기만 했던 마음에 점차 긍정적인 면이 생겨나 성정이 밝아졌고, 못 먹어 비쩍 말라 있던 육체도 살이 올랐다.

그랬다.

야안이 노린 것은 바로 이런 변화였다.

농노들의 육체는 너무나 지쳐 있었다. 적은 음식으로 긴 노동을 한지라 몸무게가 너무 줄어 있었고, 에너지가 적어 장기를 비롯한 여러 곳이 약해져 있었다.

시골 영지에서 일부 부유층 아이들 빼고는 대부분 육체가 어느 정도 상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수련은 그저 육체를 혹사할 뿐이었다. 노동보다 격렬한 움직임과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한 수련을 하다가는 얼마 가지 않아 크게 골병이 날 것이 분명했다.

매일 자기 전에 이들 방을 돌며 ‘마케’를 펼쳐 그들의 지친 육신을 안정시켰기에, 2주 만에 수련할 수 있는 몸과 정신이 준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어리고 힘이 약한 이들에게 무구 사용법을 가르치기는 무리라 반 년간은 자신이 익힌 탈론 수련법으로 힘을 기르기로 했다.

물론 온전한 탈론 수련법으로는 이들이 따라가기에는 크게 벅찼기 때문에 간략하게 축소한 약식 수련법을 만들어 가르쳤다.

그러면서 야안은 저마다 이름이 적힌 작은 목패를 주었는데, 그것은 야안이 2주간 틈틈이 만들어낸 마케의 조각이었다.

빠른 시간에 다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라 등급이 E급 정도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수련에 지친 그들의 몸을 안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이 가르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하급 마나 심법 또한 가르쳐 주었는데, 이 일은 야안에게 여러모로 힘든 일이었다. 그중 직접적인 원인은 일일이 운기를 도와주어야 하는 점이었다.

그 많은 아이를 일일이 혈을 관통해 마나 심법을 자리 잡게 하는 것은 마나나, 육체적으로 힘든 점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도 크게 혹사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그에게도 도움이 된 것이 많았다. 자신의 육체만을 살피던 야안이 다수의 타인의 육체를 살피면서 자신과 타인이 다른 점을 살피고, 인체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덕이다.

또 다른 간접적으로 힘들었던 점은 사실 그는 이 하급 마나 심법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현자와 달리 검사에게 특화된 제대로 된 마나 심법은 사실 구하기 어려웠다.

대용병단이나, 어느 정도 세력이 있는 검술관 또는 귀족들이 아니고서는 효능이 뛰어난 마나 심법을 구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비록 효능이 낮은 하급 마나 심법이라지만, 마나를 익히고 그것을 다루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마나 심법을 익히는 것과 익히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크다. 검을 수련하면서 자연스럽게 마나가 쌓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얻은 마나는 운용하기가 어렵다. 훈련이 되지 않아서이다.

하급 마나 심법만으로도 야안이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이들의 재능이라도 2년 안에 하급 유저 수준은 만들어줄 것이었다.

효능이 낮아도 어느 정도 제대로 된 마나 심법이기에 파리가 꼬일 수 있었다.

그러니만큼, 나중에 자신들을 지킬 힘이나 세력을 크게 형성하기 전까지 이 마나 심법을 유출하지 말라고 단단히 명령을 내렸다.

그로부터 2주일의 시간이 지나자 그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진실의 눈을 통해서 특출한 재능이 있다고 감별한 이들인지라 그는 이 진실의 눈에 대해 한층 깊은 신뢰를 하게 되었다.

그들 중 다섯을 뽑아 조장으로 임명하여 조원들의 훈련을 돕고 감시하게 했고, 농노 출신인 테리에게는 대장직을 맡겼다.

테리는 이들 중 그가 가장 눈여겨보는 이였는데, 근골이 훌륭해 처음 봤을 때도 농노이면서도 또래 아이보다 머리 하나 컸다.

더구나 끈기가 있어, 무슨 일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농노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준 야안에게 충성심이 높았다.

또한 머리가 좋았던 터라 야안이 행정직으로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 인물이기도 했다.

야안이 그에게 대장직을 맡기자 마치 천성인 듯 아이들을 잘 이끌었는데, 아이들도 자신보다 힘도 좋고 머리가 좋은 테리에게 점차 신뢰를 쌓아갔다.

그렇게 정예병을 만드는 한편 행정직의 다섯 아이에게도 글을 가르치고 셈을 가르쳤다. 그들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타파하게 해준 야안을 잘 따라 빠른 시일에 글을 떼었는데, 역시 이들 중 가장 먼저 글을 뗀 이는 한스였다.

글을 떼는 속도가 어린 시절의 야안보다 훨씬 더 앞섰다. 닷새도 채 되지 않아 웬만한 책들도 어렵지 않게 읽는 수준이 되자 야안은 그에게 더 많은 책을 읽게 하며 천천히 고차원적인 지식을 접하게 했다.

한스는 글을 배우고 책을 통해 고차원적인 지식을 접하자 스스로 능력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외우는 능력도 뛰어났지만, 특히 계산하는 능력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했다.

저도 어떻게 해서 답이 나왔는지를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그쪽 능력에 뛰어났는데, 어느 정도냐면 수재가 몇 달을 고민하고 풀 문제도 그는 옆에 놓인 답지를 보듯이 풀 정도였다.

일이 그렇게 되니 한스는 예전 왜 스승님이 자신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지 알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신보다 더 자신을 잘 아는 존재라니. 그것은 어떻게 보면 놀랍고 두려운 일이지만, 이미 신과 같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기에 그저 스승에 대한 존경심만이 높아질 뿐이었다.

한스는 전력을 다했다. 자신의 성과가 높아질수록 스승님이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스승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는 스승님께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그의 행동거지를 따라 했는데, 복수면을 한다는 것을 알고 그도 복수면을 하기 시작했다.

야안처럼 마법의 도움을 받으면서 하는 것이 아니기에 몇 배는 고됐지만 결국에 그는 습관을 들이고야 말았다.

잠도 거의 자지 않은 채 공부에만 몰두하다 보니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어린 시절 야안이 반년간 공부한 것을 따라잡게 되었다.

남작 성에는 그보다 더 많은 책과 고위 지식이 있었지만, 지금의 기세를 보아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끝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열성적인 한스의 모습에 야안은 크게 만족했다. 또한 자신을 아버지 이상으로 따르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늦은 밤, 무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던 야안은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그를 불러들였다.

하인에게서 스승님이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듣고 그는 흥미 깊게 읽던 책도 내팽개치고 달려갔다. 단 음식이 머리 쓰는 데 좋다며 내준 간식을 입에 묻힌 채인지라 야안은 그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입을 닦아주었다.

“하하, 내가 어디 도망이라도 가느냐.”

그는 그렇게 웃으며 탁자에 그를 앉히고, 미리 준비한 허브차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주 열성적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막히는 바가 없느냐.”

야안의 말에 한스는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께서 잘 가르쳐 주셔서 크게 어려운 바는 없습니다.”

그 말에 야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알 만한 수식 스무 가지를 꼬아 만든 문제 다섯 개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한 번 풀어보아라.”

그 말에 한스는 눈을 번쩍 빛내며 한 번 쓱 스쳐보더니 이내 답을 말했다. 그 모습에 야안은 깜짝 놀랐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낸 문제가 초급 현자의 비기너에 달하는 문제들이기 때문이었다.

룬 문자를 익히며 머리가 더욱 비상해진 그들도 처음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문제인데 마치 답을 알고 온 이처럼 풀어내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안은 그가 알고 있는 수준의 문제 중 고난도에 달하는 문제를 꺼냈는데, 아직 마법 수식을 모르는 한스로서는 이번 문제만큼은 다른 때보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분도 되지 않아 답을 말하자, 야안은 확신이 들었다.

‘이 녀석이야말로 진정한 천재다.’

천재. 그것도 마법을 익히는 데 아주 뛰어난 천재 중의 천재였다.

능히 지금의 그 수식을 푸는 능력만큼은 중급 현자급에 달하는지라, 야안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좋다, 아주 좋아. 고민조차 너의 뛰어난 머리 앞에 사라지는구나.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듣도록 하여라.”

한스는 스승님이 아주 기뻐하자 얼굴을 붉혔는데, 이내 스승님이 진중한 목소리로 중요한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자 들뜬 마음을 잡으며 경청의 자세를 갖추었다.

야안은 이런 한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예전 아버지가 자신에게 느낀 감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미소를 보였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이내 고개를 젓고 한스 앞으로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러자 야안의 손바닥 주위에서 대기가 일렁이더니 이내 한스의 머리통만 한 물 덩어리가 그 모습을 보인다.

쿵. 털썩.

한스는 갑자기 스승님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손바닥을 내밀자 궁금증을 보이다 생전 처음으로 겪어본 마법에 크게 놀라 앉은 채로 뒤로 물러서다 의자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요란스럽게 넘어지는 제자의 모습에 물의 구를 허공에 지으며 서둘러 다가온 야안은 그를 일으켜 자리에 앉힌 후에야 말을 이었다.

“보면 알겠지만, 이 스승은 현자다. 그것도 고대의 의지를 이은 현자지. 이 스승에게 마법의 유지를 잇게 한 최초의 인물은 리암이란 분이시다. 이분은 1,000년 전 대현자 테무드의 숨겨진 5제자 중 한 분으로 나는 그분의 유물을 통해 마법을 익혔다. 고대의 마법은 지금의 마법에 비해 매우 뛰어난 구성을 가지고 있다.”

한스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도 명석한 머리로 야안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먼저 지금의 룬의 숫자는 25만 개나 되지만 고대의 룬 문자는 7만 개밖에 되지 않는다. 본래 룬 문자는 50만 개에 달했으니 현재에 와서는 많은 룬 문자들이 소실되었거나 변형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에 반해 고대 룬 문자인 이 7만 개 룬 문자 안에는 50만 개의 룬 문자의 뜻이 함축되어 있으니 세상에 고귀한 보물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수식은 3,500가지 정도 되는데, 이것만으로 세상의 모든 마법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야안은 쉬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나의 스승님은 마론이라 하시는 분으로 마법에 대한 재능은 부족한 분이셨으나 그 의지는 불굴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위대한 분이었다. 그분 덕분에 나는 리암이라는 분의 유물을 얻을 수 있었고, 그분이 남긴 불굴의 의지를 잇고 유지를 이루기 위해 나는 나의 정체를 되도록 알리지 않고 있으니 이 점을 유의하여라. 똑똑한 너라면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면 너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스승님의 놀라운 정체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던 한스는 마지막 스승님의 말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이야기를 통해 스승님이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자신에게만 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곧 자신을 그만큼 믿고 아낀다는 뜻이니 그에게 그보다 더한 축복은 없었다.

그는 책에서 본바 스승님께 가장 큰 존경의 의미를 담는 구배를 정성스럽게 한 뒤 사방에 다시 절을 하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는 제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보였다.

그의 그 같은 태도에 야안은 크게 기뻐하며 한스를 덥석 안았다. 한스도 스승님을 꼭 안았다. 이제 진정한 의미로 사제가 된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정을 흠뻑 나누었다.

깊은 밤, 저 멀리 떠 있는 달도 그들을 축복하는지 그날은 유난히 밝고 고운 빛으로 창 너머 그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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