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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50화 (50/385)

야안 50화

세월은 빠르게 흘러 2년이 지났다.

전쟁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거세어지는 느낌이다. 수많은 이들이 부질없이 죽어나갔고, 수많은 영웅이 그 전장에서 탄생했다.

현재 이들의 전쟁터는 여섯 곳으로 그중 셋은 카리엘 제국이 왕국 연합을 밀어붙이고 있었고, 나머지 세 곳은 왕국 연합이 약간 우세한 정도였다.

임의로 그곳을 제1전장, 제2전장 하는 식으로 나누었는데, 대륙 역사에 남을 전쟁인 만큼 그 각지의 전쟁터에는 산세의 짐승도, 몬스터도 놀라 달아나버려 오직 인간과 사나운 전마 외에는 다른 생물체는 볼 수 없었다.

이 당시 마일드 왕국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바로 신흥 귀족들이 전쟁을 통해 그 세력이 강해지자 기존의 몇몇 대귀족 외의 귀족들과 대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세력들이 애초 워낙 강한지라 신흥 귀족들의 세력에도 크게 밀리는 구석이 없었지만, 시간이 더 흘러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기존의 귀족 세력들은 힘을 모아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고, 그 중심에 대귀족을 끌어들여 수장의 자리에 올라서게 했다.

신흥 귀족들도 힘을 모아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었고, 많은 예물을 바쳐 대귀족을 수장으로 삼았다.

대귀족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아니기에 이들의 수장의 역할을 맡았는데, 이렇게 되자 남은 대귀족 또한 그 힘들 사이에서는 안전한 것이 아니라 그들도 남은 잔존 귀족들을 모아 세력을 만들었다.

이렇게 나라 안팎으로 전쟁이 일어나니 나라가 어지러울 법도 한데, 기이하게도 오히려 벌어들이는 세금은 더욱 늘어나고 나라는 더 발전해 나갔다.

그 이유는 마일드 왕국의 위치 때문인데, 본래 바다와 가깝고 왕국 연합을 가로지르는 물줄기가 마일드 왕국을 지나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무역이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으로 물자 공급이 활발해졌고, 현재 네 곳의 전장과 가까이 있는 마일드 왕국으로 물자가 움직였다. 이에 여러 나라의 자금이 마일드 왕국에 들어오고 나가게 되며 거대한 자금이 나라 안에서 유통되었다.

전쟁이 쉽게 끝이 나려 하지 않자 이 자금들은 비교적 안전하고 운송이 빠른 마일드 왕국에서 군수물품을 비롯해 여러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일이 돌아가는 것이 물자 운송 면에서 이득이었던 탓이다.

더불어 앞서 말한 귀족들의 치열한 세력 다툼은 이런 시장의 형성으로 촉진되었다. 이 덕분에 상행이 몇 배나 활발해졌고,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 마일드 왕국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강성해져 갔다.

이런 상황이 되자 왕성에서는 오히려 이런 귀족들의 치열해지는 싸움을 말리지 않고 지켜보았는데, 왕국의 세력이 강성해지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로써 귀족들의 세를 꺾어 다음 대의 왕위 후계에 강력한 왕권을 주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이처럼 전쟁으로 나라가 황폐해지는 곳이 있으면 흥하는 곳이 있게 마련인데, 지금 마일드 왕국은 그 어느 때보다 강성한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더욱 지방의 영주들도 들고일어나 전장으로 향했는데 그 때문에 중앙으로 힘이 몰려 외지 영지들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멀어졌다.

야안은 현재 이런 상황이 마크 영지에 아주 좋게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예전 마크 남작에게 출사할 때 밝혔듯 이제 타 국가의 영지와 물류 교환을 시작할 시기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시장을 형성하고 유민들을 모아 군대를 형성하기까지의 시간을 벌려면 이런 무관심은 가장 바라는 바였다.

자칫 권세 높은 권력가에서 자신들이 힘을 갖추기도 전에 영지전이라도 걸면 오히려 아니한 것만도 못한 형세가 되기 때문이었다.

2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마크 영지는 많은 것이 뒤바뀌었다.

우선 밀 수확이 두 배 반가량 증가했다. 야안이 크게 지원한 비료는 예상한 것보다 더 효과가 좋아 곡식을 제대로 살찌웠던 것이다.

마크 영지 사상 그 같은 대풍년은 처음이었던 탓에 첫 수확을 하던 날, 영지는 크게 축제를 열어 즐겼다. 이같이 야안의 첫 번째 정책이 큰 성공을 거두자 이 일은 영지민들이 야안에게 큰 신뢰를 품는 계기가 되었다.

한데 이 비료의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해 밀 수확이 작년보다 20%가 더 증가한 것이다. 이는 작년에 남은 비료의 성질이 흙에 녹아들었다가 올해 뿌린 비료와 같이 곡식을 살찌웠던 탓인데, 해가 갈수록 그 수확량이 많아지니 영지에서는 야안을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처음 거름 대신 비료라는 것을 만든다면서 거름을 만들거나 병충들을 잡을 바쁜 일손들을 모았을 때는 크게 불만을 품었지만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니 영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이제 누구도 배를 곯는 이가 없었다.

야안은 밀 수확량 증가로 영지의 자금이 크게 남아돌자 농노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닌 12세에서 15세 정도의 이들로 모았는데, 전쟁의 여파로 남아도는 농노가 많아 생각한 것보다 싼 값에 2,000명에 달하는 농노를 모을 수 있었다.

그들 중에 근골이 좋은 이들 400명을 뽑아 병사로 키우기로 했고, 그 외 목재, 대장간, 농사, 행정직 등으로 인재가 될 만한 이들을 뽑고 나니 대략 1,200명가량이 남았다.

야안은 이들 1,200명과 예전의 농노들을 합쳐 2,000명에 달하는 농노들을 이용해 영지 도로를 포장하는 공사를 시행했다. 이 도로 공사는 아주 중요했다.

앞으로 그가 형성할 시장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넓은 도로가 있어야 했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전쟁이 나면 물자 준비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일이었다.

자작이 아직 이곳을 집어삼킬 궁리 중인지라 이처럼 미리 준비하는 것은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야안은 농노들을 그냥 부리지 않고 한 달에 1실버를 주고, 성과가 좋은 팀은 그 팀원들에게 1실버씩 더 주는 제도를 운용했다.

돈을 모아 스스로 자신의 값을 치르게 한 뒤 영지민으로 영입할 생각인 것이다. 야안 또한 본래 농노였던 탓에 농노의 삶이 상당히 고된 것을 알아 안타까운 마음에 생각한 정책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제도를 실시하자, 도로 공사 진행은 예상 속도보다 몇 배나 빨라졌고, 굳이 이런 이점이 아니라도 길게 보면 여러 면에서 이득인 점이 많았다.

평민들이 늘어나면 세금도 늘어나게 되는 것은 당연했고, 남자와 여자 비율이 맞지 않았던 것도 이 정책으로 비슷한 비율을 맞추게 될 것이다.

해가 바뀔수록 들어오는 세금이 늘어나지 못했다면 이 정책은 시도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더구나 이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핵심은 마크 영지가 시골 영지라는 점이다.

사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같은 시골의 평민이라 해도 농노의 삶보다 크게 나은 점이 없어, 농노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았기에 이들을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야안은 재작년부터 포도밭에도 여러 가지의 비료를 만들어 시험해 보았는데, 작년에 시도한 비료가 크게 성공적이어서 스스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포도로 만든 포도주의 맛이 고위 귀족들이나 먹는 포도주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료라는 것이 설마 이처럼 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게 될 줄 몰라 야안은 크게 놀라움을 보이며 이 비료야말로 새로운 무기라 생각했다.

식량이야말로 태초부터 인간이 전쟁을 하게 만들었던 큰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은가?

야안은 포도주를 생산하여 팔기 시작했는데 그 자신이 느꼈던 것처럼 반응이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맛에 비해 가격이 비교적 싼 고급 포도주라는 인식이 생겨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수입이 지금 밀 농사로 벌고 있는 금액의 3분의 2에 달해 야안은 포도밭 주위를 개량해 포도밭을 확장하기로 정했다.

이것으로 영지의 특산품을 만들어 다른 나라의 영지와 교류를 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은 포도주를 전부 팔지 않고 그중 20%를 전쟁에 나가 있는 남작에게 보냈는데, 포도주 병에 붙은 라벨을 통해 영지의 이름을 알릴 겸 여러 귀족과 교류를 활발히 하기 위해서 행한 조치였다.

마크 남작은 생각보다 거대한 규모로 전쟁이 일어나자 몸을 사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자신 같은 생각으로 온 귀족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웬만한 큰 공이 아니면 제대로 된 포상을 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몸을 사린다고 해도 그것은 남작의 입장에서 사린다는 것이지, 워낙 전장을 바라보는 눈이 좋고 유격대 같은 습격에 능숙해 자잘한 공을 꾸준히 세우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천인장 중에서도 그 위세가 독보적으로 뛰어났고, 병사들도 그의 부대에 오기 위한 지원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의 흐름이 이러하자 마크 벨로치 남작은 이제 유학을 끝낸 아들을 영지로 보내지 않고 전장으로 오도록 했다.

자신처럼 행정에 적성이 맞지 않아 전쟁 관련 분야를 공부시킨 아들도 앞으로 많은 전쟁을 겪을 것이라 예상하기에 지금부터 그에게 살아 있는 지식을 가르치려는 조치였다.

그가 보았을 때 이 전쟁은 최소 4, 5년은 더 지나야 끝이 날 것이고, 지금 자신이 있는 제3전장은 왕국 연합이 우세한 실정이었으니, 이보다 전쟁을 잘 가르칠 기회는 없었다.

위험성이야 있지만, 그동안 수많은 전선을 넘어서 더욱 뛰어난 전술을 구사하는 자신이라면 아들 하나 정도는 확실히 보호할 수 있다 생각했다.

다행이라면 그의 아들 마크 라운은 아버지를 닮아 전술에 관해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는데 그뿐 아니라 무재 또한 뛰어났다.

지금은 그를 낳고 죽은 부인 외가 쪽의 뛰어난 무재를 이어받아서 그런 것인데, 이제 스물두 살의 나이에 상급 유저에 들어섰다.

다만 마크 라운은 성격이 급한 것이 흠이었는데, 이 단점은 마크 벨로치가 아들을 옆에 있게 한 큰 이유이기도 했다.

위대한 장군 라이징 호크가 전술에 대해 말하기를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묵직하게’ 하라 했다.

병법에서 상황에 따라 군사를 적절하게 운용해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인데 마크 라운은 불길처럼 맹렬하고 바람처럼 빠르게 하는 데에는 아주 유능하지만 숲처럼 고요하고 산처럼 묵직한 형식의 전술에는 크게 약했다.

어린 시절 마크 남작의 체계적인 가르침과 지원으로 이른 나이에 뛰어난 실력과 관록을 지녔던 탓에 생긴 자신감 때문인데, 자신감이 지나치면 자만이라는 독을 키우게 된다고 마크 벨로치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그에게 조심하라 경고했다.

그 기질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최소한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그는 그 기질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마크 벨로치는 이곳의 귀족들과 친교를 쌓고 싶었으나 마땅히 선물로 줄 만한 것이 없어 곤란하던 차에 야안이 영지에서 생산한 질 좋은 포도주를 보내오자 크게 기뻐했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것이다. 그는 마치 입속의 혀와 같구나.”

그가 포도주를 따 시음을 하니 예전 귀족가에서 먹던 고급 포도주와 별다른 차이가 없음에 감탄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매틀 요한이 10년을 넘게 가꾸어도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않았던 포도밭을 그처럼 만들었는지 도무지 짐작도 하지 못할 지경이라 그저 감탄에 감탄을 할 뿐이었다.

그의 아들 마크 라운도 자신의 영지에서 이런 포도주가 나오자 총관이 어리다는 말만을 듣고 무시하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남작은 능숙하게 그 포도주를 이용해 여러 귀족과 교류를 했는데, 워낙 야안이 보내준 포도주가 많아 제3전장에서 천인장 이상이라면 한 번쯤 맛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에 마크 영지의 포도주가 명성을 높일 수 있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해내 한 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형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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