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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62화 (62/385)

야안 62화

곧 접객실의 안쪽에 있던 다른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40대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로 군부의 인물처럼 그 눈빛이나 움직임에 날이 서 있었다.

그는 검을 오랫동안 단련한 자였다. 야안이 보기에 그 경지가 익스퍼트 초급의 끝에 자리한 것으로 보였다. 아마 어떤 계기만 있다면 중급 익스퍼트로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초급 익스퍼트의 경우에는 자신의 기운을 숨기는 것이 어려워 야안같이 그 이상의 경지의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한눈에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야안은 그에게 이미지 마법을 걸어 그의 호의를 산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크 남작가에서 총관직을 맡은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그의 말에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윌 로이스라 하네. 생각한 것보다 젊은 친구로군. 그토록 젊은 나이에 라덴의 입에서 찬사가 나오게 하다니 대단하군. 자, 자리에 앉게나.”

윌 로이스는 전형적인 변방 귀족의 느낌이 나는 야안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정치판을 굴러다녀서 그런지 약간 순박해 보이는 그의 인상이 호감을 일으켰다.

그런가 싶으면서도 야안의 눈과 마주쳤을 때 그는 속으로 작게 감탄사를 흘려야 했다.

‘하~ 멋지군. 도대체 이런 자를 가신으로 삼은 마크 남작이라는 자는 어떤 자란 말인가?’

만약 저 눈의 반만이라도 지혜로운 이라면 이곳 백작가의 총관직을 맡겨도 될 것이다. 아직 그의 식견을 들어보지 않았지만, 안목이 높은 그는 야안을 그렇게 평가했다.

자작이 오랜 경험을 잣대로 야안을 살폈던 것처럼 야안 또한 진실의 눈을 펼쳐 그를 살폈다.

사실 진실의 눈을 통해 얻어내는 정보들은 그저 두서없이 단어들이 나열되는 것들로 친절하지 않은 형태의 정보들이었다.

예를 들면, 한 사내가 배가 고파 쓰러져 있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에 의해 공포심에 젖어 있었다. 사실 그는 죄인으로 도망치는 중이라 갑자기 나타난 자가 자신을 잡으러 온 추살대라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내에게 진실의 눈을 펼치면 이런 조합으로 나온다.

상태 빈혈, 공포, 초조, 죄의식, 암산력 우수, 글재주 등과 같은 형태다.

그럼 그것을 가지고 야안은 상황이나 상대를 추측하여 파악하는 것이다. 야안의 지혜 정도가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 뛰어난 머리를 지닌 이라면 그것만으로 상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을 이용하여 야안은 영지에서 비리를 행한 자들을 잡아낼 수 있었고, 인재들을 걸러낼 수 있었다.

본래 뛰어난 수재라 해도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 할지라도 비리의 증거들을 잡아내는 데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이지만 현자의 지혜를 지닌 야안은 그 정보와 상대의 행적만으로도 증거들을 잡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이 진실의 눈이 만능인 것은 아니었다. 예전 호도칸급인 황금 갈기 오크에게 이 마법이 실패했던 것처럼 자신보다 강한 뇌파를 가진 자, 즉 자신보다 경지가 높은 자에게는 통하지 않는 마법이었다.

그 이유는 이 진실의 눈은 무의식을 기반으로 상대의 뇌리에서 나오는 파동을 추측하여 정보를 가져오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파동이 흘러나오는데 오래전 전설의 현자는 그것을 이용해 이 마법을 만든 것이다.

단순히 그의 뇌파에서 나오는 파동에 자신의 뇌파의 파동을 조절해 동조하는 것이기에 단순한 형태를 띨 수 있어 당시의 처음 마법을 배우는 야안으로서도 이 마법을 배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면서도 위대한 마법이었다.

그렇게 펼쳐진 진실의 눈을 통해 야안이 그에게서 얻은 정보를 조합하고 추측한 것은 이러했다.

그는 다행히도 야안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귀족치고는 드물게 신분보다는 사람을 먼저 보는 실리주의자인 터라 이번 거래를 크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야안은 이런 이는 라덴을 상대하던 것처럼 돌려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급하게 본론에 들어서는 것은 무리였고, 그는 자연히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그릇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파악하자 피난민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어제 이곳 윌 백작 성에 들어오면서 2만 명에 달하는 난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만약 다른 귀족이었다면 크게 불쾌하게 생각할 일이었지만, 그는 작게 눈썹을 꿈틀거리는 것으로 불편함을 표할 뿐 이내 긍정했다.

“그러하네. 우리 백작가로서는 닭의 갈비뼈와 같지.”

닭의 갈비뼈.

그의 한마디가 윌 백작가의 입장을 대변했다. 버리기도 힘들고 먹을 수도 없다. 버리자니 세인들의 눈이 무섭고 그렇다고 먹자니 결국 공멸의 길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야안 또한 그 사정을 잘 알기에 어렵게 말을 꺼냈다.

“감히 제가 이것을 말씀 올린 이유는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 드리고자 해서입니다.”

그 말에 윌 로이스 자작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처음으로 큰 감정이 드러났다.

“호! 영민한 그대가 헛소리를 할 리는 없고, 좋네. 무엇을 원하는가?”

과연 현 윌 백작가의 실세라 할까? 그토록 놀라워하였음에도 그는 순식간에 실익을 얻기 위한 말을 꺼냈다.

야안은 그 모습에 잠시 감탄을 하다 이내 마음을 잡으며 말했다.

“저들을 저희 영지에 데려가고자 합니다. 한데 제가 데려온 병력은 고작 스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들이 최정예라 하지만 2만 명을 통솔하는 데 문제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백작가의 병력을 빌리기도 힘든 상황인지라 대신 백작 성에 남는 무기를 싼값에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다행히 저들 중에 치안을 유지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그 무기를 건네어 스스로 지키게 하고, 또한 백작가의 이름으로 용병대를 소개받아 모자란 병력을 채우고자 합니다. 그 외에 무사히 이들을 인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간단한 인증서를 보내주시고 그때까지 필요한 식량을 구입하는 데 도움을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윌 로이스 자작은 야안이 하고자 하는 말을 듣고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로서는 야안이 내놓을 해결책으로 피난민들을 나누어 다른 곳으로 치우게 하는 형식 같은 것을 생각하였지 설마 그 자신이 끌어안겠다는 생각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남작가에 2만 명의 피난민들을 유입시킨다니. 그것도 자신의 왕국이 아닌 타국의 피난민들을 구제하겠다는 그 배포는 자작으로 하여금 말문을 잃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자가 제정신인 건가?’

그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피난민 2만 명은 대귀족이라 해도 크게 부담이 가는 수였다. 하물며 듣도 보도 못한 시골 남작가에서 그들을 책임지는 것은 같이 죽겠다는 뜻과 같았다.

만약 이전의 대화로 야안이 크게 유능한 인물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면, 그의 뺨에 장갑을 던져버렸을 것이다.

귀족으로서 장갑을 던지는 것은 그만큼 큰 모욕을 받은 것을 책임지라는 뜻으로, 그가 아닌 다른 귀족이었다면 이미 장갑을 던지는 것에 준하는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윌 로이스 자작은 말없이 야안을 바라보았다.

처음 그저 고급 와인을 구입하여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마치겠다는 생각은 이미 그의 뇌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자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 같은 말을 한 것인가? 자신이 보았던 능력 이상을 지닌 자이던가? 그렇다면 왜 그 같은 시골 남작의 가신으로 남아 있는가?

의문의 연속이었다.

야안은 다시금 진실의 눈을 펼쳐 그가 자신의 존재에 상당히 궁금증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 잠시 고민하다 어렵게 말을 꺼내었다.

“제가 스스로 고난을 자처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아리스 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서입니다.”

“아리스 님의 계시라?”

점점 믿기 힘든 말만 하는 야안을 그가 말없이 바라보자 야안은 수하들을 내보내게 한 뒤, 소매를 걷어 다도용으로 나온 포크를 자신의 팔뚝에 찔러 그었다.

그에 순간적으로 피가 터져 나왔지만, 야안은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지독한 모습을 바라보던 자작의 눈썹이 꿈틀거렸을 뿐이다.

뚝, 뚝뚝.

스스로 만든 상처에서 피를 요란히 흘려대는 이 무모한 젊은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던 윌 로이스 자작은 그가 다른 한 손으로 그 상처 부위를 잡으며 외치는 한마디에 아찔한 충격을 받아야 했다.

“리젠.”

단 한마디의 말은 많은 의미를 지녔다. 귀족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마법을 접하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신성 마법이기 때문이다.

초급 수준에 불과한 신성 마법이지만 그 위력은 대단했다. 조금 전 긴 상처 부위는 어느새 봉합이 되어 딱지가 잡혔는데, 그 상태로 보아 며칠이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였다.

자작은 예전 가주의 병환에 모셔 온 신관으로부터 그 마법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보았기에 그의 정체를 부정할 수 없었다.

“아리스의 계시라. 과연 그렇소이다. 그렇다면 그대가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자작은 야안을 대하는 태도를 고쳐 젊고 낮은 급의 귀족으로서가 아닌 자신과 동등한 입장의 상대로 대하였다.

그의 변화된 모습에 잠시 고민하던 야안이 말했다.

“부디 지금은 저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야안의 말에 자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것을 원하신다면 당연히 해드려야 할 일이지요. 저희 윌 백작가는 그분의 뜻을 받드시는 분과 우호의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자작은 야안이 이번 피난민들로 계시를 받은 초급 신관이라 생각했다. 신관 중 그 누구 하나 덕이 낮은 이가 없었으니, 후에 그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만으로 백작가의 위세는 크게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윌 백작가의 입장에서는 사방이 적인 형편이니 굳이 이런 상황에서 이 같은 고급 정보를 나눌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야안이 자신과 적대적인 세력에 그 정보를 흘릴까 전전긍긍해야 할 입장이었다.

이런 이유로 야안과 자작 사이의 거래는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그는 고급 와인에 준하는 그의 와인을 아주 좋은 가격으로 책정했다. 대금의 지불은 야안이 원하던 것처럼 철과 구리로 대신했다.

현재 탈리아 왕국에서 생산되는 금속은 전쟁으로 왕국 내에서 크게 가격이 오르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그런 점은 오히려 다른 왕국의 경우가 더했다.

그러했기에 전쟁에도 광물이 넘쳐나는 국내보다 외국과 물물교환을 하는 게 큰 이득이다. 하물며 상대는 같은 적을 상대하고 있는 동맹국이 아니었던가?

이미 이런 물물교환은 예상한바, 서로가 이득이 되며, 또한 변수인 신관과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으니 그들로서는 화살 하나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격이었다.

야안은 윌 백작가의 현재 처한 상황과 여러 점을 고려하여 그들에게 자신이 신관임을 알려도 크게 상관없다 판단했다. 야안 또한 신관이 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기에 판단한 행동이었다.

다만 주목을 받는 것은 자신의 행보를 어렵게 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비밀로 해달라는 다짐을 재차 부탁하였다.

서로가 담소를 잠시 나누고 그들의 거래는 그 누구도 찡그릴 일 없이 끝이 났다. 야안은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수하들을 데리고 나가며 크게 미소 지었다.

‘아리스 님께서 도우시는구나. 비록 신관이라 착각을 하게 만든 것은 죄스러운 일이나 어쩔 도리가 없다. 이 거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영지민들도 큰 고난이 시작될 것이니.’

해야 할 일이 많다. 그저 배부르게 해주는 것으로 끝이 나겠는가? 영지에서 이들이 살 터전을 꾸려야 하고 일자리를 줘야 한다.

이르지만 그 일자리를 만들려면 아직 이른 시기이나 지금 영지에서 하는 포도밭 확장의 범위를 넓히거나, 대로 건설의 확장은 물론 관개수로나 성을 보수하는 공사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영지의 미개발 산지를 개간해 옥수수나 감자밭을 만들어 낸다면 내년 그들이 먹을 식량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몬스터를 토벌하고 목책을 쌓아야겠지만 크게 늘어난 병력과 남아도는 일손이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제대로 된 정비, 무장을 하고 훈련을 한다면 그가 생각한 범위까지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은 비록 초기에는 산지를 개간한 다듬어지지 않은 밭이라 수확이 적을지 몰라도, 비료가 있다면 어느 정도 부족한 식량을 채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던 야안은 고개를 저으며 털어댔다.

‘너무 먼 곳까지 미리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리 결정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지금 현재 해야 할 일에 충실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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