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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66화 (66/385)

야안 66화

하지만 그곳에서부터 야안의 영지까지 가는 유토 산맥은 다소 험한 지역이었다. 낮에는 오크들이 뒤를 칠 것이고 밤에는 코볼트가 기습을 할 것이다. 고작 600명이 조금 넘는 병력으로 그들을 보호해 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현재 자신의 영지에서 수련 중인 병사들과 검사 중 최저 인원만을 남기고 데려와야 했다.

올 때와 달리 보호해야 하는 물건도 없고 숫자도 적으니 잘하면 영지에서 빠른 준비를 끝내고 데려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제자인 한스에게 그들이 들어설 수 있는 장소를 모색하고 그들을 먹일 곡식들을 미리 준비해 두라 했으니 혼란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야안이 공포정치를 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정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예전의 세력들을 크게 꺾어 놓았으니 이번 일을 빌미로 삼아 반란을 일어날 확률이 낮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있을 때에 그런 것이지 지금처럼 한스에게 임시로 일을 맡긴 상황에서는 모르는 일이다. 이제 시간 싸움이었다. 얼마나 빨리 영지로 복귀하는지에 따라 그들의 세력이 벌인 일을 수습하는 수준이 달라질 것이다.

아직 정제된 구리와 철의 숫자가 맞추어지려면 7일가량이 남았고, 야안은 이제 자신이 없어도 일이 어느 정도 돌아갈 분위기가 되자 고대 거인 퀘스트를 할 준비를 했다.

천막 안에서 홀로 그동안 하지 못한 수련들을 하며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예전 자신의 목숨을 몇 번이고 살려주었던 카의 조각을 자신이 껴입고 있는 경갑주에서 떼어내 인벤토리에 있는 검은 오우거 가죽으로 만든 갑주에 붙였다.

검은 오우거 가죽은 그가 영지에서 사냥을 나갔을 때도 긴장감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아 일부러 입지 않았던 것이라 이번이 처음 출정일이었다. 이것이면 어떤 존재의 공격이라 해도 큰 부상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틀간 상태를 점검하던 야안은 현재 상급 유저 초입의 실력까지 복원한 챈들러에게 책임을 맡겼다.

챈들러는 며칠간 자리를 비운다는 야안의 말에 별다른 의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알겠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대답을 하며 그의 말을 따를 뿐이다.

야안은 그런 그의 모습이 크게 믿음직스러웠다. 연륜이 있고 지도자로서의 기질이 보이는 만큼 야안은 더 이상 이곳의 일에 한 점의 걱정도 남김없이 내려놓은 채 그곳을 떠났다.

이른 시각 구리 광산에 도착한 야안은 예전 자신이 죽였던 코볼트들이 썩어 부패한 냄새가 생각보다 나지 않음에 상황을 짐작하였다.

빛의 구를 펼친 야안은 동굴 속으로 들어섰고, 그곳에서 자신을 반기는 것은 또 다른 코볼트 부족이었다.

어둠에 약한 오크 부족이 이런 컴컴한 동굴 속에 살 수 없으니 어둠을 좋아하고, 정착하여 사는 것을 좋아하는 그들이 차지하는 것이 당연했다.

“너무 예상대로 흘러가니 허탈하군.”

야안은 고개를 저으며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코볼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코볼트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야안이 목을 베어 넘긴 족장이 아직 어렸던 탓으로 보였다. 그래도 모여 사는 것을 좋아하는 종족이라 야안은 200에 달하는 코볼트들을 베어야 했다.

야안이 파이어 핑거와 검으로 심장을 일일이 파괴했고, 다행히도 이번에는 죽은 척하는 코볼트들은 없었다.

그 일을 끝낸 뒤에야 운기행공을 하며 가볍게 몸을 풀어낸 야안은 숨을 고르며 예전 그가 했던 것처럼 벽의 한 특정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야안은 당황하지 않고 이내 그때를 회상하기 시작했고, 곧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전설의 반지. 전설의 반지가 이곳과 접촉한 것이야.’

이내 현자의 반지를 그 부분에 가져다 대자 이내 그때처럼 동굴 속이 강렬한 빛으로 가득 찼다. 예상한 야안은 미리 눈을 감은 채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고, 곧 빛이 은은히 연해졌다.

그때야 눈을 뜬 야안은 그때 보았던 록의 공간을 눈앞에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터무니없는 곳을 바라보던 야안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다 그곳에 손을 가져갔다. 손이 그곳과 닿기 무섭게 그의 종적이 사라졌고, 이내 촛불이 꺼지듯 일그러진 괴이한 공간도 사라졌다.

쿵.

거대한 충격에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것 같았다. 마치 오우거의 주먹에 맞기라도 한 것 같은 충격에 야안은 혀를 내둘렀다.

‘하~ 오우거 갑주가 아니었다면 어디 한 곳은 부서졌겠군.’

특히 갈비뼈가 다 부러져 장기를 찌를 뻔했다. 오우거 갑주와 그의 무섭게 단련된 육체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죽어나갔을지 모른다.

야안은 충격에 잠시 정신을 못 차리다 이내 어지러운 머리를 수습하고 주위를 살피다 혀를 내쳤다.

‘도대체 이곳은…….’

순간 그는 백색의 지옥에라도 온 줄 알았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세상이었다. 저 지평선 너머까지 돌 부스러기, 먼지 하나 없는 하얀 세상이었다.

땅바닥은 재질을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만들어졌는데, 그마저도 새하얗다. 바람도 불지 않았고, 하늘에는 태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야안은 하얀 세상의 이질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다. 혹시나 다른 정보가 뜨지 않았나 살펴보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이곳에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으니 어디서 자신이 이곳에 들어섰는지 알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혹시나 해 검기를 생성해 땅을 내려쳤지만, 요란한 소리만 울릴 뿐 티끌 정도의 흠도 만들지 못했다.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절정의 검사가 검기를 생성해 내리쳤음에도 흠도 나지 않자 그는 저도 모르게 절레절레 고개를 저어댔다.

상상하기 힘든 강도의 금속이다. 강철보다 상위의 강도를 지닌 미스릴이라 해도 이런 강도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이곳은 이해되지 않는 점투성이였다.

물이라면 자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지만, 식량은 겨우 두 달 치 정도가 전부였기에 아무리 아껴 먹는다 해도 넉 달 안에는 이곳에서 퀘스트를 해결해야 했다.

밖의 일이 걱정되었지만, 지금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애써 마음을 비우며, 이곳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야안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방향을 상실하여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알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이곳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이곳에 생명체가 없는지, 정말 바람 한 점 기후 변화가 없는 곳인지, 어디에서 빛이 흘러오는지 알아야 했다.

야안은 내심 뇌전의 정화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잠시 호흡을 다듬던 그는 무언가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기이하다 생각하던 그는 이내 그 정체를 알고 눈썹을 꿈틀거리다 천천히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불의 구.”

불 속성의 마법 중 가장 기초적인 형태였고, 그 사용되는 마나양에 따르지만, 그 크기는 보통 성인 주먹 정도에서 성인 남성 얼굴 정도의 크기가 일반적이었다.

또한 화력도 모닥불 정도에서 구리를 녹일 정도의 화력까지였는데, 이번에 나타난 불의 구는 지금까지 그가 본 불의 구와 달랐다.

그 크기는 다섯 배에 달했고 그 화력은 철도 녹일 만한 것이었다. 그 화력만으로 불의 구의 상위 마법인 불의 벽과 맞먹는 형태였다.

이 놀라운 결과에 야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곳의 마나 밀도는 상상치 못할 만큼 짙군.”

못해도 다섯 배의 마나 밀도를 지닌 듯했다. 조금 전 마법을 펼칠 당시 너무도 거센 마나의 흐름에 일순간 당황할 정도였다.

지금으로서는 이 마나를 감당하기 어려워 기초적인 마법 이외에 수식이 복잡한 마법은 운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이내 야안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를 했는데, 과연 모이는 기운이 대단했다. 전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강물이 흐르는 듯했다.

그 같은 기운을 정화하는 뇌전의 정화가 새삼 대단하다 생각하던 그는 몇 차례 운기행공 끝에 눈을 떴다.

한 시간가량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상은 처음 본 모습과 변함이 없었다.

이 믿기지 않는 세상의 중심에 자리한 야안은 인벤토리에서 식량을 꺼냈다.

파래였다. 피난민들조차 그저 먹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섭취하는 것이지 진흙을 먹는 듯한 질감과 맛에 기피하는 것이라 어느 정도 남겨두었던 게 다행이었다.

물의 구를 펼쳐 가죽 주머니에 담아 섭취한 그는 쓰게 미소를 지었다. 예전 야루스 산맥의 도피 생활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나은 것인가?’

자신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이 보이지 않으니 그런 점에서 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때는 목표가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금의 상황은 최악이다. 그래도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식사를 마친 야안은 검을 수련하거나 마법을 수련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정확히 하루가 지날 무렵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루가 지났음에도 이곳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기후 변화가 없었다.

낮도 없고 밤도 없고 그저 아무것도 없는 하얀 세상이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야안은 망토를 벗어 가늘게 찢었다. 그리고 찢은 형태를 기억한 후 사방으로 그 형태를 내려놓았다.

그는 그중 한 방향으로 똑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30분에 한 번씩 망토를 가늘게 찢어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확인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곳이기에, 뒤를 돌아 바라보면 저 멀리 자신이 찢은 천 조각이 희미하게 보였다. 반나절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를 찾을 수 없자 야안은 속도를 올렸다.

그의 움직임은 빨랐다. 한걸음에 5미터를 뛰어넘은 터라, 건장한 장정이 필사적으로 달린 속도만큼 유지하였다. 야안은 가는 내내 움직이면서 식사를 하였고, 중간 중간 복수면을 하고 운기행공을 하며 지친 육체를 달랬다.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할지 모르기에 체력의 분배는 필수였다.

그렇게 열흘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공간 속에서 목적 없이 어느 한 곳을 향해 움직인다는 것은 육체적인 것을 떠나 정신적으로 큰 압박이었다.

수많은 걱정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백색의 지옥을 이곳을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을까? 식량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피난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등등 수많은 고민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챈들러라면, 그라면 피난민들을 잘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노련한 그라면 자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이다. 그것만이 밖의 세상에 대한 근심을 어느 정도 덮어주었다.

그런 생각에 젖어들다가도 지금 처한 자신의 상황에 그는 그저 희미하게 웃음만을 흘렸다.

그가 본 용변 따위도 기후에 변화가 없으니 먼 곳까지 냄새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야안은 차라리 그런 오물 냄새조차 그리웠다.

자신을 괴롭히는 여러 상념을 뒤로한 채 야안은 다시 걷고 또 걸었다.

한 달이 다시 흘렀다.

하얀 세상 속에서 야안은 누워 있었다. 복수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곧 15분이 지나자 야안은 일어났다.

그의 모습은 한 달 전과는 많이 변해 있었다.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지고 수염은 더부룩하게 자랐으며, 씻지 않은 몸에서는 냄새가 났다.

인벤토리에서 파래를 꺼내어 묵묵히 음식을 섭취하던 그는 전보다 많이 줄어든 음식에 걱정을 하다 이내 가부좌를 틀고 운기행공을 했다.

이곳에서 그나마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마나양의 증가였다. 이곳에 온 지 40일 만에 밖에서 1년간 모아야 할 마나양이 증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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