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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68화 (68/385)

야안 68화

“후우~”

황금 주먹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막기 어려웠다. 그로서는 이제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뒤로 물러선다는 것은 몇 년의 시간밖에 벌지 못했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잘해야 그들 세력의 반을 날려버리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운이 좋아 자신이 바론을 죽인다는 가정 하의 일이다. 만약 바론을 죽이지 못한다면, 이 천 년 전쟁은 거인족의 패배를 넘어 멸종을 가져올 것이다.

‘빌어먹을.’

이토록 무능할 수가 있는가? 300년 전 그의 형 중 한 분이 계셨다면 지금의 상황까지 가지 않을 것이다.

젊고 강한, 그의 형들은 위대한 대전사의 아들답게 어린 나이에도 각자 그들의 군주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당시 그들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그로써 황금 거인족이 300년을 버텨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후 300년간 뱀파이어들의 습격에 대전사의 재목이 될 만한 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은 황금 거인족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강한 자가 되었다.

그는 미숙아였다. 본래로서는 깨어나서는 안 되었지만, 형들의 배려에 마지막에 깨어났고, 그랬기에 아버지의 남은 잔재물만을 섭취하여 자란 그는 그들의 형들만큼 강하지도 않았고, 현명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도 형들보다 뛰어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인내심이 그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미숙한 것을 알고 형들에게서 아버지가 남기신 것들을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미숙한 그가 강해질 방법은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것뿐이었다.

첫째 형에게서 마나 운용술을, 둘째 형에게서 빠른 몸놀림을, 셋째 형에게서 격투술을, 넷째 형에게서 마법 방어법을 배웠다. 그것을 배우는 데 지독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의 형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스승들이었지만, 자신은 아주 저급한 재능을 지닌 제자였기에 배우는 데 지독한 노력이 필요하였다.

200년이 지나 300년 전의 그 대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그는 전사가 되지 못하다 형들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 뒤에야 전사로서 각성하였다.

그의 각성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미숙아인 경우 300년이 지나야 전사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다는 점에서 당시 남은 황금 거인족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하였기에 그의 각성은 여타 전사 각성보다 위대하였고, 많은 이들이 그를 족장 대리로 추대하였다.

그는 이후 이전의 모습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고, 결국 50년이 채 지나지 않아 2차 각성을 거쳐 최정예 전사의 반열에 올랐고, 다시 70년이 지나 3차 각성을 통해 대전사의 자리에 앉았다.

위대한 전사들이었던 그의 아버지와 형들이 올랐던 그 경지를 미약한 잠재력을 기반으로 인내와 끈기를 내세워 올라선 것이다.

대전사의 출현에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들 뱀파이어의 수장 바론은 초기에는 초조해하며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다, 이내 그가 나이가 많은 것을 알고는 시간을 벌기 위한 습격만 하는 것으로 공세의 전략을 바꾸었다.

거인족의 수명이 평균 500년이기에 그러한 일을 벌인 것이다. 500세가 넘은 그로서는 더 이상 자신의 수명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이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이번 전쟁에서 바론의 숨을 끊어야 한다.’

그는 이 늙은 육체가 그때까지 버티기를 아리스 님께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올린 그는 내일 있을 습격에 대비해 검토를 하다, 전사 한 명이 요란한 발소리를 울리며 자신에게 다가오자 고개를 돌렸다.

그는 회색 하늘 바라보다의 셋째 자식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그의 아버지의 전투 감각을 그대로 이어받아 벌써 셋이나 뱀파이어를 찢어 죽이는 공을 세워 눈여겨보는 전사였다.

“무슨 일이냐, 회색 바람.”

그 말에 회색 바람은 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상한 존재를 발견했습니다. 생김새는 뱀파이어들과 비슷한데, 요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말에 황금 주먹이 회색 바람이 내민 뱀파이어와 비슷한 존재의 모습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기이한 존재구나. 분명 뱀파이어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본질이 다르다.”

그는 회색 바람에게 그 기이한 존재를 건네받아 평평한 대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대한 오른손을 펼쳐 그의 전신을 덮었다.

이내 그의 오른손에서 황금빛이 크게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황금빛이 강해질수록 황금 주먹의 안색이 굳어져 갔다. 그리고 종점에 있어서 그의 주위로 30미터에 달하는 빛이 크게 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천천히 그 존재를 덮은 오른손을 떼어낸 황금 주먹은 심정의 동요를 막을 수 없는 듯 두어 번 걸음을 뒤로 물렸다.

회색 바람은 족장 대리 황금 주먹의 기이한 행동에 놀라 의문을 보였다. 적잖이 놀란 것 같은 그의 모습은 지난 200년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뱀파이어의 마지막 수장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도 한 점의 흔들림이 없는, 내심을 알기 어려운 이였다. 그런 그가 이 같은 동요를 보이자 궁금증을 참지 못해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자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그러십니까?”

그의 물음에 황금 주먹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대전사들에게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언젠가 이 전쟁을 종식할 존재가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전설이다. 그 존재는 몸에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뇌전의 기운을 담았고, 그 지혜는 깊어 전설의 시대를 계승하는 현자를 추종할 것이며, 검이라는 무기를 통해 악을 베어낸다.

그가 모습을 보이면 잠드신 모든 거인족의 왕이 깨어날 것이며, 그로써 거인족은 죽음의 지배자가 내린 저주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회색 바람에게 답하는 것이었지만, 점차 스스로 되물으며 의문스럽게 말을 맺었다.

“하지만 벌써 1,0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것은 그저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만들어진 이야기라 생각했건만.”

회색 바람은 그 전설의 주인이 이 기이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고개를 기웃거리다 말없이 그 존재를 바라보는 황금 주먹에게 묵례를 하고 물러섰다. 아직 아무것도 정확한 것이 없고, 족장 대리의 명도 없었으니 달리 그가 취할 방법은 없었다.

반나절이 흐른 뒤에야 그 존재가 정신을 차린 듯했다. 황금 주먹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설레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대, 정신이 들었는가?”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거대한 목소리가 자신에게 묻자, 온몸이 바스러지는 고통에 정신이 없던 야안은 스스로 마케와 힐을 연달아 펼치며 어렵게 눈을 떴다.

눈을 뜬 그는 거대한 황금빛을 띤 금속 조각상이 눈앞에 있음을 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잘 만들어진 금속 조각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천천히 움직이더니 그의 거대한 머리에 붙은 입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마법? 정말 현자로군. 저급한 파괴만을 바라는 뱀파이어들의 마법 따위가 아니라 진리를 걷는 자의 마법이라니.”

황금 주먹은 홀로 중얼거리더니 야안에게 물었다.

“자네가 그 전설의 존재인가? 혹시 그대가 옛적 죽음의 지배자와 함께 싸웠던 인간이라는 종족인가?”

그 말에 야안은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묵례를 하며 답했다.

“제 이름은 베론 야안이라 하고, 인간 종족의 사내입니다. 전설을 추종하는 자로서 전설의 발자취를 좇다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야안의 대답에 그는 크게 기쁜 듯 입가에 호선을 길게 그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전설의 존재가 확실하구나. 운이 좋았다. 만약 우리 황금 거인족이 뱀파이어 종족과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면, 그대는 그들에게 붙잡혔을지도. 아~ 그러고 보니 고위의 몇을 제외하고는 그들도 인간이라 했던가?”

그렇게 말하던 그는 자신의 이마 부위를 두어 번 치며 예를 갖추더니 야안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황금 거인족의 족장 대리를 맡은 황금 주먹이라 하네. 그대 전설의 존재를 만나게 되어 반갑군.”

그러며 주먹을 내미는데, 야안은 직감적으로 무슨 뜻인지를 알고 자신의 몸체만한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부딪쳤다. 그러자 황금 주먹은 다시 입가에 호선을 길게 그으며 말했다.

“이로써 우리 두 종족은 1,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친구가 되었네.”

야안은 방금 그 행위가 친구로서의 의식임을 눈치채고 그 또한 말하였다.

“저 베론 야안은 황금 거인족을 친구로 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던 야안은 모든 것이 회색인 세상임을 눈치채어 말하였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그 말에 황금 주먹은 의문을 보이다 이내 답해 주었다.

“알고 찾아온 것이 아닌가? 이곳은 1,000년 전 대현자 테무드의 숨겨진 첫 번째 제자 리차드 소여가 당시 거인족의 왕이신 붉은 대지 님과 힘을 합쳐 만든 세상이네.”

그렇게 말을 시작한 그는 뱀파이어라는 종족과 함께 이곳에 자리 잡게 된 배경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1,000년 전 죽음의 지배자가 모습을 보이던 당시 거인족의 왕 붉은 대지가 이종족 중 가장 먼저 일어서 그들과 싸웠다.

평소에 다툼을 싫어하여 바보 같을 정도로 마음이 넓은 종족이라는 평을 듣지만, 전투에 나서자 그런 허술해 보이는 모습은 사라졌다.

그들은 아무리 어린 존재도 하나하나가 막강한 전력이었고, 각성을 한 자들일수록 그 전투력이 크게 상승하는 존재들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100만에 달하는 거인들을 이끌며 전장에 모습을 보이자 거세게 대륙을 짓밟던 죽음의 군대들의 행보가 멈췄다.

거대한 해일처럼 부딪치는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고, 어둠의 마법을 부리는 자들도 그들의 힘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대륙의 살아 있는 것 중에서 첫 승리를 거두려 하자, 죽음의 지배자가 모습을 보였다.

과연 모든 죽은 것의 지배자답게 그 존재는 전에도 후에도 없는 거대한 저주를 그들에게 내렸다.

그 저주는 그가 또 다른 신이라 해도 믿어질 만큼 무서운 저주였다.

저주의 정체는 세상을 지배하는 교환 법칙을 교묘하게 꼬아 만든 것으로, 그는 거인 종족과 앞서 그를 따르는 죽음의 종족 중 하나인 뱀파이어 종족을 상충시켜 지워버리는 것으로 그들을 멸종시켰다.

단순히 죽음 따위가 아닌, 그 종 자체가 함께한 역사를 지워버린 것이다. 영혼조차 남기지 않는, 아니, 태어나게 하지 못한 거대한 죽음의 저주였다.

고대 거인족에 비해 손색이 있는 뱀파이어 종족이었기에, 죽음의 군단으로서는 아쉬울 일이 없었다. 더구나 뱀파이어는 자아가 강해 평소 말을 듣지 않아 통솔에 문제가 있어 이 두 종족을 교환 법칙을 통해 교묘하게 꼬아 둘 다 지우는 게 죽음의 지배자에게 이득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현명한 거인족의 왕은 미리 이 사실을 깨달아, 죽음의 지배자가 저주를 내리기 이전 다음 대의 왕과 그를 따르는 다섯 일족을 어둠에 오염되게 하여 거인족이되 거인족이 아닌 이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 또한 어둠에 종속되는 것이라는 리차드 소여의 말에 그 결정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스승에게서 전설의 현자의 유지를 잇게 하는 임무를 받은 리차드 소여는 생각했다.

거인족의 왕에게는 신화시대부터 내려온 정령의 마석이 있었고, 그는 태초의 공간에 들어설 수 있는 대마법을 알고 있었다.

그의 스승인 대현자 테무드조차 긴 의식과 많은 상급 마정석을 이용해야 들어설 수 있는 곳이 태초의 공간이었다.

태초의 공간은 주신 아리스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기본이 되었던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끝없는 이 태초의 공간을 통해 전설의 현자는 현자의 탑을 소환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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