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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72화 (72/385)

야안 72화

야안은 황금 주먹과의 대화를 끝내며 본래 자신이 있던 한적한 곳으로 돌아가 운기조식을 취했다.

조금이라도 더 몸의 상태를 되돌리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는 한참을 생각에 잠기다 이내 눈을 뜨더니 인벤토리에서 현자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카라에 도전한다.’

‘카’의 조각의 상위 마법인 ‘카라’라면 군주급 뱀파이어의 마법 공격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비록 너덜너덜해지긴 했지만, 블랙 오우거 갑주와 건곤대나이를 합친다면 오늘 상급 뱀파이어들의 마법을 회피했던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황금 주먹은 방어를, 자신은 공격을 하기로 합을 짜놓았지만, 변화무쌍한 뱀파이어들 중에서 군주급에 달하는 그의 변칙적인 공격을 황금 주먹이 다 막아내기란 어려움이 클 것이다.

그 자신 혼자라면 모를까? 야안에게 가하는 모든 마법을 다 막아서려 한다면 오히려 혼자 싸울 때보다 더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비록 이곳의 마나 농도가 옅은 편이라지만 현자의 지팡이와 함께라면 이곳에서도 카라의 마법이 가능할지 모른다.

본래 현자의 지팡이는 영성을 띤 보물이라 수식의 절반만 풀어도 마법을 펼칠 수 있었고. 시전자와 대우주의 마나의 길을 활성화해 그 위력을 높이기도 하니 지금 그의 마나양과 지혜, 태초의 공간에서 다듬어진 마나 운영 능력이라면 ‘카라’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은 천천히 수식을 외며 중급 현자 마스터나 되어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카라’를 펼치기 시작했다.

뇌전의 정화가 머리를 맑게 하고, 그의 넘치는 마나가 부족한 마나 부분을 채우며, 그의 경지에서 있을 수 없는 행운을 기반으로 그는 ‘카라’의 마나식에 맞추어 마나 운용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수식만 300개가 필요했고, 75개의 룬 언어를 사용해야 했으며, 기본 운용되는 마나가 800에 달했다.

마나 운영에서 현자의 지팡이가 많은 부분을 도와주었지만, 아직 200개의 수식 정도만을 운영하는 게 한계인 야안으로서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캐스팅 시간 또한 실전에 쓰기 어려울 만큼 길었다. 20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야안은 ‘카라’를 펼칠 수 있었다.

몸에서 무언가 번쩍거리더니 이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 같은 변화를 겪은 야안은 직감적으로 마법이 성공하였음을 알았다.

‘어느 정도일까?’

야안은 검을 들어 스스로 팔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자 순도 높은 강철 덩어리를 치는 듯 금속음이 요란했고, 부딪힌 곳에는 손톱으로 누른 듯한 자국이 보이다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그 믿기지 않는 강도에 놀란 그는 스스로 파이어 핑거를 펼쳤고, 근거리에서 펼쳐지는 파이어 핑거는 강력한 위력을 내며 야안의 팔을 강타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손가락으로 누른 듯한 작은 자국만 생길 뿐이었다.

‘믿기지 않는군. 이것이 카라인가?’

카의 보호 마법도 대단했지만, 강철의 몸을 지닌 야안의 방어력은 전사 계급 거인들의 몸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유연성 부분은 야안이 더 뛰어난 듯 보였다.

야안은 천천히 마법의 시전 시간을 계산했고, 마법은 약 15분간 유지되다 사라졌다.

그 15분의 시간 동안 여러 가지를 시험하던 야안은 생각한 것보다 뛰어난 방어력에 감탄하며 확신이 들었다.

‘이것이라면, 바론이 펼치는 마법의 피해를 어느 정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전투를 앞두고 몸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 전투가 코앞에 다가오자 본래 자신이 쓰는 검을 인벤토리에 넣고 현자의 지팡이와 전설의 검을 꺼냈다.

그는 황금 주먹의 바로 옆에서 전투를 하게 되는 회색 바람에게 자신이 마법을 펼칠 시간 동안 자신을 보호하며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회색 바람은 야안의 부탁에 크게 긍정을 표하며 거대한 손 위에 야안을 올리고, 한 손으로 그의 몸을 감싸 흔들리지 않게 고정한 뒤 스물네 번째 전쟁을 위해 달려나갔다.

회색 바람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지만, 야안은 거친 바람 속을 뚫으며 흔들리는 그의 손 위에서 ‘카라’를 펼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 성공한 일이었고, 자신감이 붙은 터라 그는 현자의 지팡이에 수식을 의지하며 마법 수식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흔들렸던 탓에, 이번에는 20분이 넘게 걸렸지만 야안은 마법에 성공할 수 있었다. 환한 빛에 싸이며 몸이 변화되는 것을 느끼던 야안은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회색 바람에게 소리쳤다.

“나를 황금 주먹이 있는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그 말에 회색 바람은 자신의 몸을 만지는 듯한 야안의 몸의 강도에 놀라다 정신을 차리고는 야안이 원하던 대로 기운을 모아 야안을 치열한 전투 중인 황금 주먹이 있는 곳으로 날려주었다.

과연 최정예 전사급 거인의 힘은 대단하였다. 밀가루 네 포대에 달하는 야안의 무게임에도 야안은 200미터를 날아갔고, 이내 정확하게 황금 주먹의 어깨에 발을 내디뎠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야안은 그 말과 동시에 박쥐 형태로 펼쳐져 있는 바론을 향해 파이어 피스트를 펼쳤고, 동시에 육대검식을 펼쳐 어느새 다른 곳에서 뭉쳐진 박쥐 사이에서 일어난 손바닥의 마법을 막아섰다.

하지만 괜히 군주급의 뱀파이어가 아닌 듯 야안의 파이어 피스트를 언제 변환했는지 박쥐들 사이에서 일어난 손에서 터져 나오는 마법의 난사로 허공에서 그 힘을 없애 약간의 피해만으로 몸을 물렸다.

바론은 크게 뒤로 물러나 숨을 돌리려 했지만, 겨우 15분 정도의 마법 방어를 가진 야안으로서는 1초의 시간도 아까웠기에 대지를 몇 번이고 박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야안은 스탯 1을 마나에 올려 ‘카라’에 소모된 마나를 어느 정도 채운 뒤 수십 개의 검기를 뿌려댔다. 그야말로 야안이 할 수 있는 한계에 가까운 마나 운영이었다.

이미 이야기가 되었던 탓에 황금 주먹도 마지막 생명의 불을 지피는 듯 크게 기운을 발산하며 물러서는 바론의 발을 묶으려 하였고, 바론은 마치 오늘만을 사는 자처럼 덤비는 그들에게 치를 떨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손 앞으로 지옥의 불이라 불리는 검은 불꽃이 채찍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옥의 불이라 불리는 채찍 형태의 마법은 거인의 금속도 녹아내리게 하는 뜨거운 열기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뛰어난 파괴력을 지닌 대신 사용자의 근본적 힘을 반이나 잡아먹는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쓰고 나면 최소 100년의 휴식기를 거쳐야 하기에 지금껏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나, 위기에 처하게 되자 결국 이 저주의 마법을 펼치고 말았다.

가장 먼저 지옥의 불에 피해를 본 것은 황금 주먹이었다. 대전사에 달하는 그의 놀라운 방어에도 지옥의 불이라는 이름처럼 그 마법은 황금 주먹의 몸을 손쉽게 부서뜨렸다.

쿠구구궁.

그 마법은 열기만이 아닌 무거운 힘을 지니어 이를 방어하는 황금 주먹의 무거운 몸조차 대지를 뒤집으며 뒤로 물러가게 하였고, 야안은 그 틈에 파이어 피스트를 바론에게 날렸다.

하지만 언제 바론에게 돌아왔는지 지옥의 불은 파이어 피스트를 몇 번 내려쳐 그 힘을 사라지게 하더니 이내 야안의 몸을 노려 내려쳤다.

순간 야안은 지옥의 불과 바론을 살피다 눈을 빛내더니 이내 몸을 틀어 던지듯이 날려 지옥의 불과 부딪쳤다.

콰가가강.

지옥의 불과 부딪치는 순간 야안의 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힘없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 화력에 블랙 오우거 갑주도 산산이 부서지며 잔재를 날렸고, 카라에 달하는 강도를 지닌 야안의 몸은 힘없이 튕겨 나가며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불이 붙었다.

그 모습에 바론이 웃음을 흘렸고, 친우를 잃은 황금 주먹은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크게 분노하며 거대한 두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바론! 반드시 네놈만은 죽여주겠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대지가 일그러지며 거대한 회색 바위가 땅에서 일어섰고, 그렇게 일어난 그것은 그에게 날아오는 지옥의 불을 막아섰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황금 주먹은 부서진 바위를 바론에게 내던지며 그의 시선을 어지럽히더니 자신에게 지옥의 불이 날아오자 크게 발을 박차 회색 바위를 일으키며 막아섰다.

30미터, 20미터, 10미터 마지막 불꽃을 피우며 다가오는 황금 주먹의 모습에 바론은 비웃음을 흘렸다.

“쯧쯧, 이래서 야만스러운 거인족과 싸우기 싫다니깐. 잘 가게나.”

그렇게 말을 하던 바론은 지옥의 불을 모아 거대한 화염구로 만들어 내더니 황금 주먹을 향해 내던지려 하였다. 적중한다면 황금 주먹조차 한 점의 티끌조차 남기지 못한 채 지워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 절망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의 손 위에 거대하게 피어올랐던 지옥의 불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바론을 향해 달려오던 황금 주먹도 3미터를 남겨둔 채 멈춰 서 있었다.

바론의 고개가 천천히 내려오더니 이내 마치 재처럼 검게 탄 모습으로 자신의 심장을 꿰뚫은 야안을 바라보았다.

“비, 빌어먹…….”

욕지거리조차 끝내지 못한 채 이내 바론은 재로 화해 자취를 감추었고, 야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황금 주먹에게 미소를 보이다 이내 쓰러졌다.

황금 주먹은 가까스로 쓰러지는 그의 몸을 받아내었다. 이제 ‘카라’도 풀려 따스하고 말랑한 육체를 지닌 야안을 바라보던 그는 잠시 말문을 잃고 그를 바라보다 뜨겁게 달아오른 가슴으로 말을 토해 냈다.

“그대는 나로 하여금 그저 감탄만을 일으키게 하는구려. 누가 알았겠는가? 이 전쟁의 마지막을 끝낸 자가 거인족이 아닌 인간임을.”

그는 이 뛰어난 친우의 기지에 흠뻑 반하다, 이내 다가온 회색 바람에게 야안을 건네며 말했다.

“천 년 전쟁을 종결시킨 용사이시다. 편히 모셔라.”

그의 말에 회색 바람은 뜨거운 눈으로 야안을 바라보다 이곳 전장에 왔을 때처럼 그를 두 손에 감싼 채 전장을 벗어났다.

멀어지는 회색 바람을 바라보던 황금 주먹은 두 손을 하늘에 올리며 소리쳤다.

“뱀파이어의 마지막 군주 바론은 죽었다. 전사들이여, 이제 이 전쟁의 마지막을 끝내도록 하자.”

오오오오.

황금 주먹의 말에 뱀파이어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거인족들은 크게 굉음을 흘리며 치열한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고, 황금 주먹 또한 앞장서 자신의 앞길을 막는 뱀파이어들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1,000년 전 죽음의 군대를 상대로 일어났던 백만 대군의 거인들처럼 황금 주먹을 앞세우고 나아가는 그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거대한 해일처럼 부딪치는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고, 어둠의 마법을 부리는 뱀파이어들도 그들의 힘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 마지막 남은 뱀파이어의 목을 쳐 날린 거인족들은 괴성을 울리며 승리를 축하했다.

야안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난 뒤였다.

그의 몸은 지옥의 불에 타올라 살이 녹아 붙어 있었고, 몸의 털은 잔털마저 제대로 남지 않았다.

불개미가 자신의 몸을 뜯어 먹는 듯 지독한 고통이 정신이 깨어난 것과 함께 계속되었다. 야안은 그 숨 막히는 고통 속에 한줄기 정신을 간신히 잡은 채 중얼거렸다.

“리젠.”

과연 신성 마법이라 할까? 야안의 상태가 급속도록 호전되어 갔다. 마치 검은 재에 묻힌 듯 검게 탄 피부가 떨어지며 그의 몸에서 새살이 돋아났고, 없어진 털도 조금씩 모습을 보였다.

살이 돋아나며 녹아 말라붙은 살들은 굳은살이 되더니 떨어져 나갔고, 깨어진 치아 또한 재생되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심각했기에 이제야 인간의 형태를 보였을 뿐이다. 야안은 가물가물한 눈을 떠 상태 창을 불렀다.

[이름 : 야안

레벨 : 72

직업 : 전설의 추종자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생명력 : 960(-600)

마나양 : 1,940

힘 : 33(+15)(-30)

민첩성 : 32(+15)

행운 : 30(+15)

지혜 : 54(+15)

마나 : 81(+15)

분배되지 않은 스탯 : 7]

다행히 뱀파이어 토벌이 성공적으로 끝이 난 듯 7레벨이 올라가 있었다. 야안은 여유 스탯을 각 1스탯을 분배한 뒤 다시 힘에 2을 더 추가하였다.

그러자 한순간에 생명력이 80% 이상이 차올랐고, 외모 또한 상당 부분이 복원되었다.

다만, 짧아진 털 위에 죽은 몸의 검은 살이 남아 있어 지저분해 보였다. 야안은 물의 구를 소환해 몸을 씻은 뒤, 자신의 옆에 자리한 전설의 검과 뇌전의 정화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보물이로구나. 흠집 하나 없군.”

블랙 오우거 갑주와 자신이 만든 파의 주머니도 조금의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는데, 이 두 개의 보물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야안은 주위에 나뒹구는 나무토막을 파 뇌전의 정화를 그 안에 집어넣고 나무줄기로 나무토막을 꿰어내어 목에 걸었다. 이후 전설의 검은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본래 자신의 검을 꺼냈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뇌전의 정화를 바라보던 야안은 이내 몸 상태를 정비할 겸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가 운기조식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수백 명의 거인이 주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경이롭다는 눈빛으로 야안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야안은 그런 그들의 시선에 볼을 긁적이다 주먹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유쾌한 듯 거인들은 저마다 야안이 내민 주먹을 툭 치며 친분을 나누다 황금 주먹이 모습을 보이자 그제야 야안에게서 물러났다.

황금 주먹은 놀라울 정도로 멀쩡해진 야안의 모습에 크게 반기며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참으로 다행일세.”

그러며 이마를 툭툭 치며 경의를 표하는지라 야안 또한 가슴을 두어 번 치며 물었다.

“전쟁은 끝났습니까?”

“물론이네. 그대 덕분에 이 길고 긴 천 년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네.”

그 말에 야안은 미소를 머금으며 인벤토리에서 붉은 노을의 심장 조각을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분을 깨울 시간이군요.”

황금 주먹은 설마 이것을 다시 자신이 받게 될지 몰랐기에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잠시 말문을 잃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네. 드디어 1,000년 만에 우리는 왕을 뵙게 되겠군.”

그는 격정에 눈을 질끈 감았고, 야안은 크게 부상당한 황금 주먹에게 리젠과 힐을 펼쳐주었다.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안정된 황금 주먹은 그제야 눈앞 친우의 마음을 읽고 끄덕였다.

“고맙네. 가세나. 좋은 일을 미뤄 무엇하겠는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던 그는 주위에 자리한 거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왕을 깨우러 간다. 모두 그분을 뵈러 가자. 축제는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열 것이다.”

우오오오.

그 선언을 기다렸다는 듯 거인들은 크게 기뻐하며 함성을 질렀다.

황금 주먹은 야안을 자신의 어깨에 올려 태우며 가장 앞에 나섰고, 그 뒤를 이어 이제 800명밖에 남지 않은 거인 전사들이 따랐다. 한나절이 지나, 숨어 있던 어린 거인들 또한 소식을 듣고 모습을 보였다.

어린 거인들이라 하지만 다들 100년은 넘은 거인들이었고, 그 몸도 3미터에 달했다. 그들과 모두 합친 행렬이 이어지니 그 수가 4,000에 달했고, 그 울리는 진동은 저 회색 하늘 너머까지 닿을 듯했다.

그 행렬의 끝은 이곳 세상의 가장 높은 철광산 꼭대기에서 멈췄는데, 황금 거인은 야안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으며 거대한 바위의 한 곳에 그 심장의 일부분을 올렸다.

잠시 후 마치 진흙 아래 삼켜지듯이 그것은 바위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고, 이내 하늘의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바위에서 일어나며 금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거대한 위압감과 함께 바위가 터져 나가더니 그 속에서 키가 7미터에 이르고, 무게가 2톤에 달하는 붉은빛이 은은히 감도는 거인이 모습을 보였다.

1,000년 만에 눈을 뜨는 왕의 귀환에 모두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무릎을 꿇었고, 야안 또한 가슴에 손을 올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붉은 노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백성들을 슬프게 바라보다 이내 야안을 발견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대가 리차드 소여가 말하던 인연자인가?”

그 말에 야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목에 걸린 뇌전의 정화를 꺼내 그에게 바치며 말했다.

“전설의 현자를 추종하는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왕이시여, 이것은 그분이 말씀하신 뇌전의 정화입니다.”

야안은 그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절대자의 기도에 눌려 어렵게 말을 꺼냈고, 붉은 노을은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는 야안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그대에게 친우의 맹세를 하도다. 긴 시간이 지나 뇌전의 정화를 가져오게 된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한다.”

야안은 거인족의 왕이자 절대자가 자신과 친우의 관계를 맺고 싶다는 말에 크게 떨며 내민 그의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가져다 대었다.

그때 그가 잠들어 있던 산 밑에서 꿈속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요기가 은은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야안과 황금 주먹이 상대했던 바론의 요기 따위는 아주 하찮게 만들어버리는, 그 괴기스러운 요기의 근원 같은 존재의 힘이었다.

마치 오래전 무기 상점에서 본 드래곤의 심장에서 느낀 공포가 다시 일어나는 듯했고, 제6감각에 그 존재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야안의 손이 잘게 떨렸다.

그런 야안의 상태를 알았을까?

친우의 관계를 맺은 붉은 노을이 손을 휘젓자 더 이상 요기는 야안을 비롯해 거인들을 괴롭히지 않았고, 다시 손을 휘젓자 자연스럽게 야안의 손에 자리한 뇌전의 정화가 그의 손 위로 올라섰다.

땅이 갈라지며 뱀파이어의 왕 라켄이 부활하는 징조를 보임에도, 붉은 노을은 이 상황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저 뇌전의 정화만을 살필 뿐이다.

한참을 살피던 그는 손 위에 올린 뇌전의 정화에 강렬한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낮게 신음을 흘렸다.

“이것은, 나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물건이로다. 왜 리차드 소여가 이것이면 뱀파이어의 왕 라켄을 죽일 수 있다 말했는지 알겠느니라.”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뇌전의 구슬을 쥔 채 주먹을 꽉 쥐었다. 곧 강력한 힘이 그의 손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산 전체를 붉은빛으로 감쌌다.

마치 노을이 지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야안은 물론이고, 그 주위에 자리한 4,000에 달하는 거인들은 그 모습에 눈을 빼앗길 겨를이 없었다.

거대하고 거대한, 세상을 찢을 듯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세상을 양분할 것 같은 그 힘은 하늘은 물론 대지를 두려움에 차 울게 하더니 이내 그 힘이 담긴 주먹으로 부활의 끝을 달리고 있는 라켄이 묻힌 바위 밑 부분을 내려치자 산의 3분의 1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강대한 힘 앞에서는 소리조차 없었다. 또한, 그 힘에 밀린 작은 여파조차 없었다. 마치 본래 그런 모습이었다는 듯이 그 거대한 산의 한 자락 대신 날이 선 듯한 절벽이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요기를 거의 회복하던 뱀파이어의 왕조차 봉인이 깨어진 뇌전의 정화에서 일어난 기운을 이기지 못해 비명조차 흘리지 못하고 사라졌다.

비록 뇌전의 정화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야안은 그 같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한 붉은 노을은 더욱 대단해 보였다.

붉은 노을은 절벽의 끝에 서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한 녀석이었도다. 하지만 결국 내가 이겼군.”

그는 그렇게 읊조리더니 이내 두 손에서 붉은 기운이 은은히 일으켜 뇌전의 정화를 봉인하고는 이내 그것을 야안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최소한 나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네. 흐음~ 그럼 어디 1,000년의 시간을 넘어 축제를 열어볼까 하도다.”

그의 말에 황금 주먹은 물론이고 남은 거인들조차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 준비를 시작했고, 붉은 노을은 자신의 거대한 입속에서 네모난 철 상자를 꺼내어 야안에게 건네었다.

야안은 그 철 상자를 받으며 그 안에 무언가 들어 있음을 알고 물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 말에 붉은 노을이 과거의 친우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것은 나의 친우였던 리차드 소여가 그대에게 맡긴 물건이네. 듣기로 태초의 공간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두루마리와 한 번에 한해 본래의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마법진이 들었다더군. 그 외에도 그가 살아생전 유용하게 쓰던 물건이 있다 하였네.”

붉은 노을은 그렇게 말하며 야안을 자신의 어깨에 태우며 축제를 열고 있는 백성들에게 다가갔다.

야안은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이 산을 내려서는 붉은 노을의 배려에 미소를 보이다 이내 철 상자를 열었다.

과연 그 안에는 붉은 노을이 말한 대로 검은색의 두루마리와 작게 축소하여 만들어낸 고차원의 대마법진이 있었고, 또한 하나의 허름한 주머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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