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79화
비록 나이가 20대 중반에 달했지만, 워낙 재질이 좋고 용병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기초를 탄탄하게 잡아주었던 터라 크게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야안은 그에게 하급 마나 심법을 알려준 뒤 일단 경비대에서 일을 하며 실력을 쌓도록 하였고, 이후 그의 의사에 따라 경비대를 맡기거나 별동대에 들어오게 하도록 했다.
론은 여러 가지로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야안의 인자함에 이제야 한스가 왜 그토록 그를 따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다급히 뛰어온 터라 복장을 다시 검사하던 론은 노크를 한 뒤 자신을 알린 후 허락이 떨어지자 야안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야안의 책상에는 수많은 서류들이 분류된 채 쌓여 있었다. 론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그 많은 서류 중 절반 이상이 끝이 났음을 알고 있었는데, 매번 보지만 야안이나 한스나 정말 믿기지 않는 능력이라 생각했다.
야안은 그에게 서신과 하나의 흑색 옥을 건네며 말했다.
“이것을 들고 현재 왕성 쪽에 있는 호넬 상단에 가게. 그 흑색 옥을 보여주면 어렵지 않게 호넬 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야. 호위로 제1군단의 3조와 별동대 2조와 함께하면 될 것이네.”
론은 야안의 일을 도우면서 앞으로 영지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짐작하기에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을 내릴 수 없기에 야안에게 되물었다.
“그럼, 호넬 상단을 통해 금속을 거래하실 생각이십니까?”
잠시 시험해 본 야안은 과연 제 뜻을 제대로 알아차린 론을 기특하게 여기며 긍정했다.
“그러하네. 일단 한 수레 정도만 가져가 그들의 의향을 알아보는 게 좋을 것이네. 이후 호넬 님께 부탁하여 여러 상인이 우리 영지로 오게 하여 교류를 쌓고자 하네. 그러면서 이번에 새롭게 생산 중인 와인도 교류하면 좋겠지.”
론은 야안의 말에 생각보다 이번 일이 중요한 것임을 알았다. 이 일은 시장 형성의 기초를 닦는 일이다. 그는 이토록 자신을 믿는 야안에게 크게 감사하며 예의를 표했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이 거래를 완수하고 오겠습니다.”
“좋네. 물건은 지금 준비 중이니, 나흘 뒤에 출발하면 될 것이네.”
“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자신이 없는 시간 동안에도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하고, 상행에 대한 정보와 상인 거래에 대한 준비도 있기에 그는 서둘러 야안의 집무실을 나섰다.
야안은 서신을 통해 호넬에게 론에게 상재가 있으니 여러 가지로 지도를 부탁한다고 했으니 이번 거래를 통해 경험을 쌓게 되면 전격적으로 그에게 상행을 맡길 생각이었다.
물론 영지 간에 새롭게 거래를 틀 때는 얕잡아 보이면 안 되기에 자신이 나서야 하겠지만, 이후에 론이 잘 성장한다면 외국과 거래도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론에게 이 일을 맡긴 야안은 이번에 새롭게 확장을 하고 덩굴장미와 함께 키우거나 새로운 조합의 비료를 개발하는 포도밭으로 시찰을 나섰다.
그곳에서는 영지민들과 이번에 새로 편입되어 온 피난민 출신 영지민들로 인해 포도밭 확장 공사에 인원이 크게 늘어 예정보다 더 빠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찰을 나온 야안을 알아본 영지민들은 크게 예를 표하였는데, 기존 영지민들과 피난민 출신 영지민들의 반응에는 차이가 있었다.
다시 공포정치를 시작하자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영지민들의 인사에는 두려움이 있을 뿐이지만, 이번에 편입된 피난민 출신 영지민들의 인사에는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야안은 그런 변화된 모습에 씁쓸함을 애써 감추며 2년 전 자신 때문에 이곳의 담당자가 된 관리인을 만났다.
자이라는 이름을 가진 관리인은 올해로 마흔이 된 중년으로 그는 포도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야안은 그런 그의 의욕을 진실의 눈을 통해 알았던 터라 이제 영지의 큰 자금력이 된 포도밭의 중책을 맡겼다.
그는 마치 야안의 시찰을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반겼는데, 이번에 수확된 포도와 한 달 전부터 숙성시키고 있는 포도주를 가져왔다.
야안은 먼저 짙은 빛깔이 아름다운 포도를 먹었는데, 이내 작게 감탄을 보였다.
“대단하군. 작년보다 당도가 상당히 높아. 이 정도로 향상되었다니. 벌써부내년이 기다려지는군.”
자이는 야안의 감탄에 싱글거리며 웃음을 흘리더니 이번에 만들어낸 포도주의 마개를 따 잔에 따라 야안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직 숙성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도 그 맛이 나쁘지 않으실 겁니다.”
좋은 와인은 그 원재료인 포도도 중요하지만, 숙성 또한 중요하다. 숙성 보관 장소에는 오크통이 가장 좋고, 서늘한 곳에서 보관되어야 하는데 적정 온도가 넘어가면 맛이 상하기에 여러 가지로 주의해야 했다.
야안은 자이가 건네준 포도주를 받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이라 할까? 작년에 숙성되었던 와인보다 그 향이 더 풍성했다.
기대를 하고 와인을 마신 야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숙성이 덜 된 탓에 부족한 풍미가 있으나, 지금까지 먹어본 와인 중 가장 괜찮다 생각했다.
벌써 숙성된 이후의 와인이 기대가 되는 터라 자이가 자신의 방문을 이토록 기다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주 좋네. 이번 와인은 걸작이로군.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서류로 작성하여 내게 보내게. 검토해 보고 가능한 일들은 들어주겠네.”
야안의 그 말에 자이는 과연 여러 가지로 생각해 둔 것이 있었던지라 크게 반겼다.
“감사합니다, 총관님.”
곧 그의 안내에 따라 야안은 공사 진행 사항과 와인 공장을 시찰하였다. 이후 다른 공사들 또한 시찰을 한 뒤 석양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언제 또 퀘스트가 일어나 집을 오랫동안 떠날지 모르기에, 야안은 일이 바쁘더라도 최소한 저녁은 집에서 먹으려 노력하였다. 집에 들어서니 아직 음식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가족들은 자신을 크게 반겼다.
그는 그 모습에 언제나처럼 가슴이 뭉클해져 미소를 띠며 아들을 돌보는 등의 일을 도왔다.
많은 짐이 있는 그에게 이처럼 화목한 가정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언제나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시달려 지친 자신의 영혼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해 야안은 아리스 님이 자신에게 준 최고의 축복이라 여겼다.
한 달이 지났다.
어느새 산에는 곱게 물들었던 단풍이 지기 시작하였다. 추수가 끝난 지금 여타의 시골 영지라면 한가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 테지만, 마크 영지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현재 야안의 영지에서 벌이고 있는 공사는 총 네 곳으로 도로 개간과 주택 공사, 포도밭 확장과 성 보수 공사였다.
이 중 현재 가장 큰 성과를 보이는 곳은 가장 큰돈과 인력을 쓰고 있는 주택 공사였다. 스물세 군데의 지역 중에 네 곳은 이미 공사가 끝이 났고, 열일곱 곳은 70% 정도의 집이 완성되었으며, 남은 두 군데는 외지 쪽이라 이제야 기초공사를 끝낸 참이다.
야안은 공사 진행을 시찰하며 한 달 정도라면 모든 공사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나마 혹한기가 시작되기 전에 끝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야안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번에 생산된 밀은 생각한 것보다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었는데, 이는 점차 고조되어 가는 중앙 귀족들의 암전 덕분이었다.
서로의 세력 아래의 상행을 방해하는 일로 인해 밀과 같은 기호 식품이 중앙까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던 탓인데, 그 덕분에 한동안 밀을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맞춰져 좋은 값에 밀을 넘길 수 있었다.
평소보다 20% 이상의 가격을 더 받아낸 야안은 그 돈으로 주위 영지에서 값싼 옥수수나 감자, 사탕수수 같은 곡식을 사들였다.
또한 값싼 천은 물론 솜이나 동물의 털들을 대량으로 구매하였는데, 이것들을 피난민 출신 영지민들에게 보수로 줘 그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야안은 이후 그동안 오방 검진을 수정하여 더욱 효과적인 육합 검진을 제1별동대에게 가르치고 오방 검진을 축소하여 간단하게 만들어낸 삼방 검진을 제2별동대에게 가르쳤다.
또한 제1군단에 활을 쏜 경험이 있는 이들 100명을 모아 궁병을 만들었고, 창기병과 방패병을 각 200명씩 나누어 효과적인 전투를 이루게 했다.
제2군단에 속한 1,000명 중 힘이 좋은 이들을 모아 단창병을 따로 창설하였는데, 이는 예전 몬스터 토벌전에서 단순하면서도 파괴력이 뛰어났던 것이 기억에 남아서다.
그렇게 모인 이가 100명으로 이들은 단창 여섯 개를 지니고 다니며 전투 개시 때 기세를 꺾거나 아군이 위험할 때를 도울 수 있는 훈련을 시켰다.
야안은 이들의 훈련을 약간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밀어붙였는데, 겨울에 몬스터 토벌을 나간다는 말을 들은 그들은 그 고된 훈련을 아무런 군말 없이 따랐다.
이는 이곳에 오는 긴 여정에서 만난 몬스터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지를 확인케 했던 실전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확실히 몇 년간 훈련보다 피 터지는 실전의 경험이 더 우위에 있음을 야안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남은 900명의 병사에게는 셋을 한 팀으로 하여 한 명은 방패를 두 명은 장창을 쥐여주어 찌르는 훈련을 시켰다.
또한 열 개에 달하는 간단한 명령들을 신속하게 펼칠 수 있게 적응 훈련을 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경우든 다섯 팀을 모아 한 조를 이루어 전투를 하는 방식을 고수하게 했다.
이는 몬스터들에 둘러싸이거나, 갑작스러운 기습을 당했을 때 빠른 대처를 할 수 있게 만든 방식으로 모의 전투를 한 결과 여러 점에서 뛰어난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안은 또한 각 조장에게는 간단한 해열이나 마취를 할 수 있는 약초들을 섭취하는 방법과 지혈제와 붕대 감는 법을 가르쳐 부상 시 빠른 대처를 할 수 있게 훈련 시켰다.
오랫동안 몬스터 토벌을 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간편한 식량 보급을 위해 전투식량을 따로 만들었는데, 옥수수 가루와 곡식을 구하는 과정에서 사들인 파래에 옥수수 가루와 소금 따위로 간을 한 것으로 준비하였다.
그것은 여전히 맛은 없었지만, 전투에 쓰일 에너지를 얻는 데는 충분한 것이었다.
시식을 위해 맛을 본 병사들은 그래도 순수한 파래보다는 먹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먹을 만하다는 것이었지 괜찮다는 것은 아니기에 야안은 따로 허기를 달랠 상당량의 육포를 생산하게 하여 병사들을 달래기로 하였다.
또한 여인들을 모아 그간 사들인 천과 솜, 동물의 털로 겨울 군복을 만들기로 했는데, 동질감과 숲 속에서의 은폐 기능을 위해 모두 초록색으로 물들여 2,000벌에 달하는 옷을 짓도록 했다.
몬스터 토벌 준비로 대장간과 목재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망치 두들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나마도 예전 야안이 많은 인재를 보내주고 이후 대장간과 목재소를 확장 공사를 시켰던 덕에 시일 내에 물량을 맞출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1년이 걸려도 그 물량을 맞추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대장간은 몸은 크게 고되어도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는데, 이는 평생에 만져보기 힘든 질 좋은 금속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몸은 고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기술 축적을 이룰 수 있었고, 좋은 재료 덕분에 나오는 물건마다 상질의 무구들이니 흥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3년 차가 다 되어가는 야안이 보낸 아이들은 그 지닌 재능으로 숙련된 대장장이로 변모하였다.
그들은 2년 차와 올해 들어온 이들과 함께 대량의 무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실험하며 틀을 깨어내는 새로운 형식의 제련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야안은 생각한 것보다 대장간이나 목재소에서 나오는 무구들이 하나같이 상질의 제품들이자 크게 기뻐하였다. 좋은 무구를 지니게 될수록 흘리는 피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건의 질이 좋아지는 것을 본 야안은 금속을 더 풀어 이번에 금속을 거래하러 올 상인들에게 제련된 검을 팔기로 했다. 이 같은 상질의 물건이라면 무기로 만들어 파는 것이 더 큰 이득이기 때문이다.
나라 안팎으로 전쟁 중인 현 상황이라면 이 같은 무구를 구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토벌 준비를 하던 야안은 한편으로는 보름 전에 자신의 도움을 받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한 끝에 익스퍼트에 다시 오른 챈들러를 지도하였다.
챈들러가 익히고 있는 검법은 그의 가문에서 내려오던 검법으로 수준이 나쁘지 않았지만, 익스퍼트가 쓸 검법으로 보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잘해야 상급 유저가 쓸 법한 검법인 것이다.
야안은 그 점을 알았기에 석 달 전 영지에 도착한 당시 그에게 이십사수검법을 전수하였다. 오랜 용병 생활과 익스퍼트에 올라선 뒤 검법을 보는 눈이 높아진 그로서도 이 검법이 매우 뛰어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초급이라 하나 뛰어난 효율성을 지닌 익스퍼트의 마나 운용을 빠짐없이 운영한다 해도 이 검법이 지닌 묘용을 반의반도 발휘하지 못할 것임을 안 것이다.
그야말로 평생을 함께해도 대성하기 어려운 검법이었다.
야안은 낮에는 시찰과 더불어 토벌 준비를 하는 등의 벌어진 일들을 수습해야 했기에 챈들러에게 지도를 해주는 시간은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 이외는 없었다.
그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챈들러는 야안의 지도를 따르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하지만 챈들러는 야안으로부터 주어진 많은 고된 일들을 하고 있음에도 복수면만으로도 크게 불편함이 없어질 만큼 익숙해진 상태였기에 야안의 가르침을 큰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이 배경에는 야안이 막중한 임무를 맡은 그에게 D-급에 달하는 마케의 나무 조각을 만들어 주었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 더 주된 이유는 주인으로 삼는 야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그의 절실한 노력이라 할 수 있겠다.
야안은 그의 그런 마음을 기특히 여겼기에 자신의 수련 시간을 줄이고 초급 익스퍼트에서 할 수 있는 힘의 묘용들을 가르치거나, 이십사수검법의 각 초식을 하나하나 풀어 가르쳐 주었다.
진실의 눈으로 그의 상태를 그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하여 적절한 수준에 맞추어 가르침을 내리니 챈들러는 야안의 뛰어난 지도에 감탄하며 누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챈들러의 간절한 노력과 야안의 지도가 합쳐지자 그 효과는 대단하여, 챈들러는 못해도 1년은 잡아야 했던 초급 익스퍼트의 안정기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챈들러의 검기는 더 이상 흔들림이 없어졌고, 구의 발현이 이루어져 피부로 느껴지는 것보다 더 예리한 기감을 지닐 수 있었다.
그제야 더 이상 자신이 가르치는 것으로는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았던 야안은 챈들러에게 맞게 앞으로의 수련 방법들을 쓴 책자를 건네주었다.
“검의 수련에 있어 왕도란 없네. 오직 노력만이 종이 한 장의 거리를 지배할 수 있지. 익스퍼트의 경지는 그대가 구사하게 된 구의 발현을 얼마나 더 넓히며 얼마나 더 조밀하게 펼치느냐에 있으니 그 점을 유의하기 바라네.”
야안은 챈들러가 자신보다 더 고된 노력을 하였음을 알지만, 익스퍼트의 그 강대한 힘에 취할까 싶어 충고를 하였다.
챈들러 또한 경험을 통해 얻어진 주인의 귀한 충고를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다시 시간이 지나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쯤에야 마크 영지에 전령이 왔다. 전령은 다름 아닌 론을 따라나섰던 별동대의 검사로 그는 전령이 왔다는 말에 시찰을 중단하고 돌아온 야안에게 작은 상자를 건네었다.
“론 님께서 이를 전해주시면 아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전령에게서 그간의 사정을 물어보려 하던 야안은 고개를 돌려 작은 상자를 열었고, 그곳에는 두 장의 서신과 양피지로 만든 계약서, 그리고 그에게 쥐여준 검은 옥이 자리하였다.
야안은 검은 옥은 자신의 품속에 넣고 이내 양피지에 적힌 계약서를 살폈는데, 다행히도 호넬이 자신과의 인연을 잊지 않았는지 좋은 계약 조건으로 성사되어 있었다.
그가 보낸 금속의 구매는 물론, 시장을 형성할 수 있게 여러 상인을 자신의 영지에 보내어 금속 구매를 중매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앞으로도 윌 백작성에서 거래되는 금속의 판매 또한 도와준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계약 조건들에서 호넬의 큰 배려를 알 수 있었다.
‘그를 도와준 것이 이처럼 큰 복으로 돌아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득을 좇는 상인들치고 후안무치이지 않은 이가 드문데 호넬 같은 대인의 마음을 지닌 이를 만나니 과연 새로운 대상인으로 떠오를 만하다 생각했다.
이 같이 작은 은혜도 큰 은혜로 갚는 심성을 지녔으니, 어떻게 사람이 모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잠시 그의 배려에 대해 감사를 하던 야안은 다음으로 서신 중 가장 위에 자리한 것부터 펼쳤다.
그 서신에는 론이 그동안 겪은 일들이 적혀 있었는데, 초행길이라 여러 가지로 고생한 듯했다. 운송 과정에서 자신들의 물건이 품질이 좋은 금속임을 알게 되자, 여러 집단에서 압박을 하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도둑으로 가장한 귀족의 사병들을 만나 그들을 상대하느라 별동대 세 명이 큰 중상을 입어야 했고, 제1중대의 세 명이 죽고 열한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하였다.
이후 도망을 다니다, 우연히 호넬의 밑에 있던 사람을 만나 그에게 흑옥을 보여주어 도움을 얻었다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야안은 크게 고생을 한 그들에 대해 슬퍼하며, 자신의 안일한 대처에 자책했다. 요즘 같은 전쟁 시기에 금속은 웬만한 사치품만큼이나 귀한 것이었다.
그런 금속이 마차 한 대 분량에 달하였으니 여기저기서 크게 꼬여들 것이 틀림없건만, 토벌에 대한 준비로 많은 병력을 보낼 수 없다 판단 내린 것이 실책이었다.
야안은 잠시 침음하다, 이내 다음 서신을 펼쳤다.
그리고 그는 그 서신을 펼친 순간 그 서신을 쓴 이가 론이 아닌 호넬임에 깜짝 놀랐다. 호넬은 작은 안부 인사로 글을 시작하였는데 야안은 그 서신을 읽어 내려가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