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80화
24. 영지 복구
그 서신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론이 이제 대상인의 영향력을 지니게 된 호넬의 바로 밑에서 상인의 일을 배운다는 것인데 이는 그 자체만으로 놀라운 것이다.
호넬같이 크게 성공한 상인의 바로 밑에서 일을 하려면 못해도 그 밑에서 10년은 상행을 하고 그전에 5년을 그 바닥에서 굴러야 자격을 주는데, 론은 그런 과정을 뛰어넘고 지금 호넬의 일을 배우고 있다 하니 어떻게 놀라지 않겠는가?
서신에는 야안으로 인해 신경을 쓰기는 하였으나 결코 론에게 특혜를 준 것은 아니라 하였다.
론은 야안이 판단을 내린 것처럼 상인의 기질이 있었는데, 호넬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상인이 아닌 대상인의 자질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만남을 귀중하게 여기고 사람들로부터 쉽사리 믿음을 얻어내는 태도와 행동이 타고났으며 겉으로는 손해를 보는 듯하나 깊게 생각하면 큰 이익을 얻는 식의 사고방식이 놀라울 정도라 하였다.
또한 고지식한 가운데 재치가 있다 하며, 호넬은 1년 간 론을 속성으로 가르치겠다 했다.
그러며 덕분에 말년에 뛰어난 제자를 가르치게 되었다며 야안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상인에 대한 것은 잘 모르는 터라 론이 그저 자질이 있음을 짐작했지만, 그 같은 재능이 있을지 몰랐으니 야안은 그를 호넬에게 보낸 것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보석도 그것의 가치를 아는 이가 없으면 길가의 흔한 돌멩이가 되듯이 만약 야안이 도움을 얻는 호넬이 그만한 그릇이 되지 않았다면 론은 평생을 스스로 재능을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야안은 이 일을 통해 진실의 눈의 한계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재능에 뛰어난 인재가 있어도 결국 진실의 눈을 통해 얻는 정보는 자신이 어떻게 조합하여 판단을 내리느냐에 있다는 점에서 생기는 한계였다.
이는 다시 말해 그 재능이 얼마나 뛰어나든지 간에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없다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야안이 현자의 길을 가고 있어 한스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낸 것과 같았다. 또는 테리의 경우나 별동대의 인재들 다수를 찾아내어 그들의 재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던 것과도 같은 것이다.
만약 야안이 현자의 길만 걷거나 검만을 다루는 자라면 그들의 재능을 파악하지 못하였겠지만, 이미 수많은 고행을 통해 그들이 가는 길을 지나친 대가이기에 이들의 재능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검이나 현자의 재목에 대한 것만이라면, 시간이 많이 소모되겠지만 사실상 진실의 눈이 없어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은 야안에게 있는 것이다.
진실의 눈의 가치는 자신이 그 분야의 대가는 아니어도 진리의 길을 걷는 현자로서 그의 재능이 꽃피울 길을 안내할 수 있는 것에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도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누구나 하나 정도는 남들보다 월등한 재능을 타고난다.
야안이 매년 아이 중 인재를 파악하여 그중에 일부만을 뽑고 나머지는 다시 되돌려 보내는 것은 예산의 문제와 시골 영지인 탓에 다양하지 못한 직종 때문도 있지만, 그들의 재능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모르는 이유도 있다.
그 예를 들자면 진실의 눈을 통해 꽃을 유난히 사랑하며 꽃의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알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자를 보았다고 할 때, 야안으로서는 그저 ‘꽃을 좋아하는 자구나.’라고 하고 넘어갈지 모른다.
하지만 원예의 대가의 눈으로 본다면 그자는 아주 귀한 인재이다. 꽃과 같은 예민한 식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 사전 정보들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꽃의 변화를 알 수 있는 눈이다.
뿌리가 메말랐는지, 벌레로 괴로워하는지, 언제 물을 주어야 하는지 등을 볼 수 있는 눈이다. 이런 눈은 보통 타고나기보다는 오랜 경험을 통해 짐작하는 것인데, 태어날 때부터 그런 재능을 지녔다면 원예를 하는 자로서는 가히 천재라 할 수 있다.
야안은 이번 일을 통해서 자신이 간과한 점에 대해 반성하였다.
앞서 말했듯 그 가치를 파악하지 못하면 보석도 가치를 잃듯이 자신은 다른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저 약간의 추론을 통해 그가 이것에 재능이 있음을 짐작하는 것뿐이다.
이 진실의 눈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대가들의 도움이 있어야 함을 알게 되자 야안은 후에 이런 대가들을 자신의 영지에 모셔 자문을 구할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이루어져야 했고, 그 기반이라는 것은 영지의 안정적인 성장이었다.
최근 쉴 새 없는 주위의 변화 중에서 가장 기쁜 일을 꼽자면 역시 한 달 전, 한스가 드디어 고대 룬 문자에 통달하여 현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방인의 재능을 지닌 자신도 5년의 세월이 걸려서야 고대 룬 문자를 통달할 수 있었는데, 자신이 배려를 해 주었다지만 영지의 수많은 일을 하면서도 불과 3년도 채 되지 않아 끝을 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것도 자신처럼 암기나 연산 능력 등으로 재능이 고루 분포된 것이 아니라, 한스의 재능이 연산 능력에 많은 부분이 편중되었음을 생각한다면 이처럼 빠르게 통달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야안은 한스가 그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새삼 깨달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좋구나. 3년도 채 되지 않아, 고대 룬 문자를 통달하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정말 기특하다. 부디 앞으로도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한스는 야안의 칭찬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사내라고 믿기 어려운 아름다운 미소년이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은 상당한 장관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가치를 알아줄 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한스는 긴 눈썹을 파르르 떨며, 어린 소녀만큼이나 고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뛰어나셔서 그런 것인지 제가 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앞으로도 스승님의 가르침에 뒤처지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이같이 놀라운 능력을 보이면 자만할 법도 한데, 겸양을 보이는 제자의 모습에 야안은 더욱 감탄했다.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좋다. 부디 지금처럼 자만이라는 심화를 키우지 않기를 바란다. 자만은 진리의 길을 걷는 자에게 있어 가장 금기해야 할 것이니 말이야.”
한스는 스승의 말에 예쁘게 고갯짓을 하며 충고를 받아들였다. 그의 가슴은 크게 두근거려졌다.
그는 스승의 말로 인해 자신이 진리의 길을 걷는 현자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야안 또한 가슴이 벅찼다.
드디어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제자에게 진리의 길의 가르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야안은 한스에게 고대의 마법 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유용한 마케 마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마케 마법은 힐 마법보다 그 쓰이는 수식은 많으나 소모되는 마나양이 적기에 한스가 처음 배우는 마법으로 적격이었다.
한스가 지닌 연산 능력은 이미 현재 초급 마스터를 넘어 중급 비기너에 다다랐지만 마나의 양은 적었기에 마나 운영을 위한 연습용으로 이 마케 마법은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야안은 한스에게 대기의 마나의 동조를 이끌어 마법을 펼칠 수 있게 많은 충고를 하며 그의 옆에서 살펴봐 주었다.
예전 야안은 이 자신의 마나와 대기의 마나를 동조하는 방법에 수많은 실패를 한 끝에 성공할 수 있었기에, 수많은 실패에 실망을 하는 한스를 독려하며 이끌었다.
그렇게 한스는 야안의 가르침에 이끌려 나흘 만에 마케 마법을 펼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는 막상 자신이 마법을 성공하자 어안이 벙벙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예전 자신이 첫 마법에 성공하였을 때를 생각하던 야안은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그래, 바로 그렇게 하면 된다.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의 이 마나 운영 감각을 잘 유지하며 좀 더 빠르게 마나를 운영하는 것이다. 너의 연산 능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마나를 빠르게 운용하는 연습을 하여야 한다.”
스승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마법을 펼친 것에 현실감을 가진 한스는 금발 머리를 흩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야안의 지도 아래 마나 운영을 자연스럽게 조절하며 마케를 다시 펼쳤다.
한 번 물꼬가 터지자 한스는 더 이상 마케 마법을 실패하지 않았다. 어린 새가 나는 법을 배운 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것처럼 한스는 자연의 마나와 자신의 마나를 공조하는 방법이 부드러워져 갔다.
열흘이 채 되지 않아 한스는 마케 마법을 처음 펼쳤을 때보다 그 시전 속도를 반으로 줄일 수 있었고, 그제야 야안은 공격 마법 중 가장 기초적인 형식을 지닌 마나 애로를 가르쳤다.
마나 애로는 실제 화살만큼의 위력은 없지만, 좌표를 정확히 계산만 할 수 있다면 상당히 변칙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예를 들면 화살이나 단검 같은 물리적으로 펼칠 수 있는 원거리 무기에는 일정한 공격 시전의 공간이 필요하며, 그 나아가는 선이 잘해야 곡선 정도가 한계였다.
하지만 마나 애로는 앞을 바라보며 뒤의 공간에 날릴 수 있으며, 경지에 따라 달라지지만 가장 낮은 초보 현자 비기너인 경우에도 세 걸음 안의 공간에 자유롭게 마나 애로를 생성할 수 있다.
이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단히 무서운 무기로 쓰일 수 있다. 그야말로 암살자의 비수처럼 쓸 수 있는 것인데, 이 때문에 전투 경험이 많은 현자는 전장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나 애로가 화살만큼의 위력은 없으나, 비수의 위력은 지녔기에 급소에 맞는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마법의 또 다른 장점은 시전자의 능력에 따라 한 번에 다수를 생성할 수 있는 것에 있다. 비록 항마력이 있는 몬스터에게는 그저 눈을 어지럽게 하거나 작은 부상 정도에 그치지만, 항마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마법 중 하나이다.
그러하기에 마법은 인간과 몬스터를 상대할 때의 마법은 여러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고, 항마력이 있는 방어구가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야안은 자신이 상대했던 존재들이 항마력이 있는 몬스터들이 주였기에, 마나 애로를 사용할 일이 없었으나 이것이 얼마나 유용한 무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스에게 이 마법이 어떻게 운용되며 어떤 식으로 응용할 수 있는지를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삼아 가르쳤다.
한스는 스승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며 마나 애로를 펼쳐 성공했는데, 과연 한 번 이 마법을 펼친 뒤 이 마법의 가치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수식이 간단하고 룬 언어도 두 개밖에 사용되지 않아 마나 운영도 마케보다 훨씬 간단하게 펼칠 수 있었다. 또한, 사용되는 마나 양도 공격 마법치고는 적어 한스가 지닌 마나 양으로도 연속으로 스무 번 이상을 펼칠 수 있을 정도였다.
더구나 연산 능력이 뛰어난 그에게 주위의 좌표를 계산하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으니 마나 운영 시간을 지금의 반 정도로 줄일 수만 있다면 상급 유저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경지에 들어서려면 변수가 없다면 최소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 달이 지나 야안은 한스가 마나 애로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는 라이트 마법과 유사하나 더 효율적으로 쓰이는 나스를 가르쳤다.
예전 야안이 붉은 오크족의 마을에 침투할 때 유용하게 쓰던 마법으로 부여하는 마나에 따라 그 빛의 세기가 달라지기에 적은 마나를 지닌 한스에게 유용한 마법이었다.
이 나스 마법으로 상대의 시야를 현혹시켜 마나 애로로 공격을 한다면 적은 마나로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은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기에 지금 한스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익히게 하였다.
나스 마법의 사정거리 또한 경지에 따라 다르지만 비기너인 경우에도 시전자의 스무 걸음 정도나 되기에 근접에 약한 한스가 익히기에도 유용했다.
야안은 이후 회복 마법인 힐 마법과 물의 구, 불의 구를 비롯한 기초 마법 열 개를 저술하여 한스에게 내주었다.
근 한 달간 야안과 함께 마나 운용에 대한 훈련을 한 덕분에 이제 스스로 그 해답을 찾는 것이 길게 볼 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다.
한스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야안은 창가 너머로 낙엽이 져 초라한 나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가을도 그 끝을 달리고 있구나.”
낙엽이 져갈수록 떨어지는 기온에 이번에 편입된 영지민들이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 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교적 따뜻한 쪽인 탈리아 왕국과 달리 마일드 왕국은 추운 지방이었고, 특히나 마크 영지는 그중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기온이 낮았으니 그의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걱정과 상관없이 시간은 하루하루 속절없이 흘러갔고 곧 마크 영지에 겨울이 찾아왔다.
* * *
겨울의 삭풍이 정렬된 병사들을 스치고 지나쳤다. 생전 처음 느끼는 그 살벌한 추위에 제2연대 4백인장이 된 크리스는 요란하게 기침을 터뜨렸다.
“크에칫! 윽, 죽겠구먼. 마일드 왕국이 추운 지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훌쩍.”
그는 코를 훌쩍거리다, 이내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는 병사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정색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음, 오늘로 너희들을 이끌게 된 크리스라 한다. 다들 보아하니 그동안 게으름 없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군.”
아닌 게 아니라 반년 전에 탈리아 왕국에서 창설되어 이곳 마크 영지에 오기까지 많은 실전을 겪은 그들은 정말 개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듯이 훈련을 하였다.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고, 저마다 건장한 체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고난으로 정신을 무장해 저마다 눈빛이 살아 있었다.
크리스는 ‘눈에서 불이라도 나오겠군.’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감탄하다, 훈련을 실시했다.
이제 토벌을 20일 앞둔 지금 야안은 제1군단에서 경험이 많고 실력이 뛰어난 조장 중 전체를 보는 눈이 좋은 이들 열 명을 선정하여 제2군단의 백인장을 맡겨 이끌게 하였다.
단순히 단결력을 볼 때 그들 중 실력이 뛰어난 자를 뽑는 것이 좋지만, 이들은 겨우 반년 전에 창을 잡았던 이들이다. 실전을 경험하였다 하여도 그건 시키는 대로만 한 것일 뿐이라 전장을 바라보는 눈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야안은 어느 정도 기본 실력이 형성되자 이들을 백인대로 나누어 그들의 지도를 받게 하였다.
제2군단 또한 이번에 자신의 상관으로 온 백인장들을 환영하였는데, 이는 예전 자신과 같이 험한 전투를 같이 한 사이라는 유대감 때문이었다.
과연 경험이 많은 백인장이 지도를 하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전체적인 움직임이 예전보다 훨씬 조직적이며 민첩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안은 그들의 모의 전투를 살펴보다, 부족한 점들을 적어 백인장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제 시일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기에 자신이 지적한 부분들을 고치려면 상당히 고된 훈련을 시도해야 하겠지만, 그로써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큰 가치를 가질 것이다.
야안은 이후 챈들러가 이끄는 제1군단을 살피고, 테리가 이끌고 있는 제1별동대와 1, 2조장이 이끄는 제2별동대를 시찰한 뒤 새롭게 시작할 성벽 확장 공사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미 주택 공사는 끝이 난 뒤라 영지에는 상당수의 인구수가 자리했기에, 야안은 그들로 하여금 목재들을 준비하게 했다.
성벽 공사 이전 몬스터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목책을 건설하기 위해서인데, 다행히 주택 공사 이후 자재가 남아, 큰 무리 없이 필요한 목책들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안은 최근 들어 영지 밖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횟수가 빈번해졌다. 이는 먼저 그곳의 지리를 파악하여 간단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위험성이 많은 대형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지난 몇 달간 야안의 검에 쓰러진 대형 몬스터들의 수는 그 수만 여든네 마리에 달해, 덕분에 야안의 인벤토리는 몬스터들의 부산물로 넘쳐났다.
그것도 공간 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인벤토리는 기존의 물건들마저 빼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대형 몬스터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본래 그들의 영역이 주인 없이 비었고, 그에 그 영역과 가까운 중소형 몬스터들끼리의 영역 싸움이 벌어졌다.
이는 야안도 생각하지 못한 행운이었는데, 야안은 중간 중간 그들의 전투에 몰래 끼어들어 세력을 비슷하게 유지하게 하여 전투가 쉽게 끝이 나지 않게 유도하였다.
대장간과 목재소에 주문한 무구가 이제 90% 이상의 물량을 완성해 놓은 터라, 야안은 자신과 눈이 좋고 몸이 날랜 이들과 함께 지도를 만드는 것으로 토벌전이 시작될 날을 기다렸다.
야안은 그렇게 한편으로 전쟁을 준비하면서, 내년 봄, 상인들이 올 시기에 맞춰 그들이 터를 잡을 수 있는 복지 정책과 그들이 필요로 할 도로를 위주로 공사를 실시하였다.
다행히 그 범위가 좁고, 이미 60% 가까이 완성한 것이라 무리 없이 내년 봄이 되기 전까지 완성할 수 있을 듯했다.
그제야 어느 정도 시간이 남게 된 야안은 전쟁을 앞두고, 그동안 상당한 심력을 소모할 것이라 미뤄두었던 물건을 만들기로 했다.
바로 예전 블랙 오우거 갑주와 함께 부서져 버린 ‘카’의 조각을 대신할 물건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 얻은 상급 마정석과 충분한 양의 미스릴을 이용해 ‘카’의 상위 마법인 ‘카라’의 조각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상급 마정석 덕분에 마나가 부족하지 않기는 했으나, 무려 300개에 달하는 마법 수식과 75개의 룬 문자가 쓰이기에 저번보다 더욱 고차원적인 마법진을 형성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