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87화 (87/385)

야안 87화

그 기동력을 살린다면 지금보다 최소 두 배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기마병만큼이나 비싼 인재들인 석궁병으로 인해 보병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던 중갑병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곡사가 아닌 직사로 쏘아지는 석궁의 관통력은 거리만 잘 잡는다면 중갑병을 잡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당한 돈을 들여 만들어낸 복합 석궁으로 무장한 석궁병들이기에 그 사거리가 500미터에 달했고, 명중률은 80%에 달했다.

그 외에는 궁병 300명과 단창병 200명을 더 뽑은 뒤 나머지 병력으로는 창병으로 그 수를 채웠다.

그렇게 3,000의 병력을 채운 마크 남작의 기세는 사나웠다.

힐튼 공작가와 끈을 이은 마크 남작인지라 만인장이 크게 간섭을 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긴 했으나, 주된 이유는 귀신같은 솜씨로 적을 유린하는 마크 남작의 전술과 그의 아들 마크 라운이 이끄는 기마병의 활약 때문이었다.

마크 라운이 성정이 급하긴 하나 그간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전장을 바라보는 눈이 확대된 상태로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더구나 그의 불같은 성정은 일순간에 치고 들어가 피해를 주는 기마병과 잘 어울려 몇 달 되지 않아 전장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공이 쌓이게 되자 붉은 장미 기사 단장은 마크 라운에게도 천인장의 자리를 내주었다.

이에는 아직 스물네 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완숙한 상급 유저의 단계에 들어선 그의 무위가 한몫하였다.

이대로 10년의 세월이 지난다면 능히 익스퍼트 경지에 들어설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마크 라운은 천인장이 되었지만, 힐튼 공작의 영향으로 여전히 자신의 아버지 마크 벨로치 세력 밑에서 움직였다.

전쟁을 겪을수록 그 아버지의 전술 능력을 알아보았기 때문인데, 사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단시일에 그만한 공을 세우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크 남작은 아들이 천인장이 되는 것을 제 일보다 더 기뻐하며, 그에게 기마병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궁병과 창병을 내주어 함께 운용하는 법을 가르쳤다.

마크 남작의 승승장구에 나프롬 자작은 초조해져 갔다.

이제 평화 협정 기간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그의 그 같은 비상은 불안한 일이다. 자신 때문에 전대의 마크 남작이 죽은 뒤 자신의 뼈를 바르고 싶어 하던 마크 남작의 눈빛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넓은 평야에 강을 끼고 있어 상당량의 수확량을 보장하고 있는 부유한 나프롬 자작가였지만, 오래전부터 수입의 상당 부분을 군사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어 자작가의 재정은 빈약한 편이었다.

더구나 중앙에 끈을 놓기 위해 나프롬 자작가의 보물들을 팔아치우고 있는 실정이라, 시간이 갈수록 재정은 악화하여 갔다.

나프롬 자작가가 신경 쓰는 것은 마크 남작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영지를 관리하고 있는 야안이라는 어린 총관의 능력은 마크 남작만큼이나 신경 쓰이게 하였다.

밀의 생산력을 올리고,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며 돈을 벌더니 이번에는 2만 명의 난민들을 데려와 크게 군사력을 늘리는 모습은 상당히 꺼리게 하는 점이 있다.

하지만 2만 명이나 되는 난민을 데려왔을 때 나프롬 자작은 크게 비웃었다. 스스로 살을 깎아 먹는 짓임을 알기 때문이다. 제정신이 아니라며 크게 비웃음을 흘리던 나프롬 자작이었으나 시간이 지나 더 이상 비웃음을 흘릴 수 없게 되었다.

군사력을 보충하여 몬스터 토벌에 성공해 본래의 영지를 회복하고, 소문을 통해 윌 백작가의 거래에서 성공해 금속의 수량이 많은 것을 안 뒤부터는 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밀정을 크게 풀어 정보를 모으던 중 현재 군의 수장 격인 챈들러의 능력을 알게 된 나프롬 자작은 고개를 저어야 했다.

그의 전례를 보아, 나프롬 자작가의 2,500의 병력과 자신이 비밀리에 숨기며 키우고 있는 500의 기마병을 상대로도 수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크 남작만이 자신의 길을 막는 자라 생각했던 나프롬 자작으로서는 큰 곤란에 빠졌다.

지금 마크 영지를 먹어치우지 않는다면, 전쟁에서 돌아온 마크 남작에게 자신의 영지가 유린당할 것은 불 보듯이 뻔했다.

일이 그렇게 흘러가게 놔둘 수 없기에, 그는 사돈의 관계를 맺은 카람 백작가에 도움을 청했다.

대를 이어 내려오던 나프롬 자작가가 모은 보물과 함께 현재 힐튼 공작가와 대치 중인 쿠엔 후작에게 부탁하자는 것이다.

카람 백작가 입장에서도 자신과 반대 세력인 힐튼 공작가의 줄을 탄 마크 남작의 행보는 껄끄러운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나프롬 자작의 배경 뒤에 자신이 있었음을 알고 있으니, 후에 자신에게 복수하려 들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싹을 밟아두어야 했다.

쿠엔 후작은 힐튼 공작이 3전장을 맡은 뒤부터 자신의 세가 크게 위축되어 큰 불만을 지니고 있던 터라 그들의 청을 받아들였다.

‘날씨가 좋군.’

마크 남작은 이른 봄임에도 자신의 왕국과 달리 벌써 아지랑이가 피는 탈리아 왕국의 기후 환경에 만족했다.

겨울 전쟁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혹독하다. 한밤중에 지쳐 관리하지 않으면, 땀에 젖은 발은 동상에 걸리게 마련이고, 굳은 몸으로 무리하게 움직이다 인대가 찢어지게 된다. 겨울 전쟁은 단순히 적과의 싸움이 다가 아니었다.

병력의 10%에 달하는 이들이 추위를 이기지 못해 사상자가 생겨난다. 그것도 보급이 활발해졌을 때의 일이고 그마저 되지 않는다면 최소 20%에서 30%까지 의미 없는 희생이 생겨난다.

그는 올해로 전쟁에서 세 번째 겨울을 나게 되었던 터라 겨울의 무서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 포근한 날씨를 크게 반겼다.

잠시 따사로운 날씨를 반기며 영지에서 가져온 와인을 즐기던 그는 천막을 걷고 들어서는 아들의 모습에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래, 왔느냐. 앉아라.”

아버지의 미소에 마크 라운은 저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그 말에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에게 와인을 따라주며 말했다.

“그래,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지. 이번 일만 잘한다면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술기운 때문인지 약간 들뜬 그는 이번에 받게 된 명령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지난달 자신이 속해 있던 만인장이 죽은 뒤, 임시로 13만인대를 이끌게 된 마크 남작에게 만인장의 직위를 내리기로 한 것이다.

만인장부터는 일군을 이끄는 장군이라 할 수 있는 직위이기에 천인장과의 가치는 확연히 달랐다. 최소 자작 이상의 직위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었기에 마크 남작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번 총사령부에서 이 건이 통과되었다 한다.

힐튼 공작의 등장으로 세가 축소되어 사사건건 그들의 의사를 방해하던 쿠엔 후작이 이번 일을 허락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한쪽에서는 그 일로 인해 쿠엔 후작이 힐튼 공작과 화해를 하자는 것이 아닐까 말이 있기도 했다.

다만 쿠엔 후작은 마크 남작의 직위가 만인장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번에 새로 짠 전략에서 그가 공을 세운다는 조건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마크 남작은 늦은 밤에 그 전략과 관련된 문서들을 살펴보기 시작해 오늘 아침까지 여러 측면에서 고민한 끝에 자신이 실수하지 않는 이상 공을 세울 확률이 높음을 알 수 있었다.

만인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이후의 행보에 따라 자작으로 직위가 상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세력을 모은다면 그 간교한 나프롬 자작가를 지워버리는 것은 물론, 교활한 카람 백작에게도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마크 남작은 자신의 바람이 점점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에 기뻐하며 아들에게 이번 마일드 왕국에서 구사할 전략의 흐름을 설명해 주었다.

이번 전략에서 마크 남작이 할 역할은 중요했다. 그의 기습에 따라, 연계될 전술들이 어떤 행보를 할지 달라지는 것이다.

그는 기습의 용이성을 살리기 위해 보병을 버리고 이천의 기마병을 자신의 휘하에 두었다. 이후 아들과 자신에게 1,000의 병력을 나누어 지휘하도록 나누었다. 기마술에 한해서라면 아들이 자신보다 크게 떨어지는 면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척후병에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전술을 펼칠지 아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열흘이 흘렀다.

피 터지는 전장의 상황 속에서 이번에 짠 전략대로 군대는 비밀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크 남작 또한 그간 기마병들을 전술만큼 숙달시킨 뒤, 전령들을 보내어 자신을 지지할 중장병과 궁병, 창병이 있는 곳에 준비가 끝났는지 확인하였다.

자신이 지휘하던 13만인대와 15만인대의 병력의 반이 약속된 장소에서 전투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마크 남작은 그곳에서 반나절의 거리에 자리한 수풀이 무성한 숲 속에 은신하였다.

본래는 몬스터들 따위가 살던 곳이었으나, 인간들의 전장이 크게 일어난 뒤로 대다수의 몬스터들이 영역을 떠난 뒤라 신변의 위험은 없었다.

마크 남작은 전장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시점을 재고 있다가 후미 쪽에서 요란스럽게 일어나는 소란에 고개를 돌렸다.

“레인저다. 제국의 검은 전갈이 나타났다.”

“크윽…… 으아악.”

요란스러운 비명과 말의 울음소리가 뒤섞이며 순식간에 공포가 전염되어 갔다.

레인저는 그림자에 은신하며, 어둠 속이나 지형지물이 있는 곳에서 무적이라 불리는 제국의 특수병이었다. 일명 검은 전갈로 부르는 그들 때문에 마일드 왕국의 병력은 자신의 진형과 가까이 있는 은신하기 좋은 숲 속을 전략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호되게 당한 뒤라 마일드 왕국에서는 더는 숲 속을 이용하지 않았고, 제국 또한 검은 전갈을 암살이나, 기습 따위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런 사정이기에, 이번 전략은 그런 심리의 허점을 찌르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마크 벨로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러다 이내 그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어떤 그림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낮게 소리쳤다.

“배신, 배신이구나. 쿠엔 후작 세력 쪽에서 우리 측의 정보를 내주었다.”

이번 전략은 전장의 판도를 자신 쪽으로 기울게 할 수 있기에, 수뇌부만이 아는 것이었다. 저들 레인저의 수나 움직임을 보건대 그들은 이미 자신의 전술을 알고 있음은 짐작할 수 있다.

마크 벨로치는 가슴은 분노로 뜨겁게 타올랐지만, 이내 차갑게 머릿속을 식히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생각했다.

‘적들이 우리의 정보를 안다면, 오히려 지금 숲에서 나서는 것이 더 위험하다.’

쿠엔 후작 쪽에서 정보를 어디까지 제공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제국의 참모들이 멍청한 놈들이 아닌 이상 적어도 자신들을 일거에 타진할 병력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자신들에게 준 정보를 기반으로 삼는다면 어디에 자신들의 뒤를 봐줄 또 다른 병력이 있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쪽으로는 틀렸다. 하면, 방법은 하나뿐이군. 서북쪽으로 올라가다 직각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후미에 자리한 5, 7, 9만인대에 합류할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전쟁 덕분에 몬스터가 없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그는 이내 후미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아들에게 신호를 주어 서북쪽으로 병력을 빠지도록 명령하였다.

곧 마크 라운 또한 뒤늦게 전령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이제 80% 정도만 남은 수하들을 이끌고 서북쪽으로 달려나갔다.

검은 전갈이라 불리던 레인저 부대의 수장은 그들의 퇴로에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

“일리언 백작님의 예측은 무섭군. 당시 수많은 참모가 말이 되지 않는다 했지만, 저 결과를 보아라. 확실히 그들은 백작님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가? 역시 주군의 숨은 검다운 모습이시다.”

그는 제국의 비법이 담긴 마법 무구를 이용하여 곧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마법 무구의 영향으로 더욱 가벼워진 몸놀림을 가진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그들을 따라잡았다.

마크 남작은 숲 속으로 들어선 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또 다른 암습을 받게 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검은 전갈이 준비한 함정에 당하고 만 것이다.

시위에 걸어둔 석궁을 날리며 혼잡하게 만들었던 그들은 이내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다가와 공포에 빠진 기마병들의 목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마크 남작은 이를 악물었다.

‘일리언 백작이 나의 수를 예측한 것인가?’

아무래도 정보에 자신이 책임자임을 알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간 일리언 백작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였던 것을 기반으로 삼는다면 그 정도의 기량을 지닌 자가 자신의 전술을 예측하지 못할 리 없으니.

다른 자였다면 그곳에서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큰 피해를 보았겠지만, 마크 남작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그는 백인장들에게 손짓을 보내어 수하들을 진정시켜 전열을 가다듬은 뒤 준비한 전술들을 한둘씩 펼쳐 검은 전갈과 맞서 싸웠다.

숲 속이라는 점이 기마병의 기동력에 제한을 주었으나, 마크 남작은 이내 조장의 단위로 나누어 전술을 펼친 덕분에 자신들을 짓밟던 150에 달하던 검은 전갈을 처리할 수 있었다.

비록 처리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일을 진행한 탓에 300에 달하는 기병을 잃어야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전략을 예측하였다면, 이번의 습격은 그저 시간을 벌기 위한 용도일 것이다.

그는 힘에 겨워하는 기병들을 다독이고 움직였다. 그가 기병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곳은 애초에 생각했던 방향이 아니었다.

일리언 백작이 자신의 행보를 예측했음을 가정한다면 그는 이제 무리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바로 몬스터 소굴이 남아 있는 산속으로 들어서 우회하여 가는 것이었다.

최소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려야 했고, 몬스터와 검은 전갈의 암습으로부터 살아남을 이들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지만 더 이상의 좋은 수는 없었다.

결정을 내렸다면 바로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마크 남작은 자신의 생에 다시없을 지옥 같은 일들을 겪어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