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89화 (89/385)

야안 89화

28. 마크 남작 II

마크 남작이 예상한 것처럼 그의 증언 때문에 쿠엔 후작은 꼬리를 자르게 되었고, 더 이상 세력을 넓힐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여러 첩보 활동 때문에 마크 남작이 검은 전갈을 처리하였다는 것이 사실임이 밝혀지자, 힐튼 공작은 마크 남작에게 자작의 작위와 함께 명예 만인장의 자리를 내렸다.

이 명예 만인장의 자리가 의미하는 것은 크다.

합당한 이유 없이 자작의 병력이 3,000 이상을 넘어서면 나라에서는 제재가 들어온다. 내야 하는 세금을 크게 늘리거나, 심한 경우는 영지 일부를 나라에서 단속하는 형식으로 제재가 들어오기에 영지가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아니면 병력을 3,000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명예 만인장을 지닌 자작 가문은 그 처지가 다르다.

3대에 한해서 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지녀도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마크 남작이 증언에 나서며 힐튼 공작에게 요구한 또 다른 조건이기도 했다.

천의 단위와 다른 1만의 병력이라면, 복수는 결코 꿈이 아니다.

비록 행정에는 영 소질이 없는 그였지만, 야안이 보내준 영지 실적을 본다면 상당한 병력을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최소한 나프롬 자작가만큼은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말겠다.’

창백한 그의 안색과 달리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안광을 발했다.

야안이 마크 남작의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장마철이 시작된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마크 남작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마크 남작의 외가 쪽은 물론 알지 못하는 먼 방계 쪽의 친척들까지 마크 영지를 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크 남작이 실종되기 전 힐튼 공작가에 연을 맺은 지라, 강제적으로 영지를 노리는 자들은 없었다. 이런 때 힐튼 공작가의 판단에 따라 영지의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영지민들의 입장에서는 야안이 계속 행정을 맡으면 좋을 일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크 영지를 노리는 수많은 후보자가 모습을 보이는 실정이라 야안 또한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웠는데, 마크 남작이 생환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그 누구보다 안도를 표했다.

마크 남작이 영주로 돌아온다면 야안은 그만큼 행동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진다.

최소한 군부에 관해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시장 건설이나 수많은 계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 손쉬워질 것이다. 또한, 영지민들은 더 이상 영지의 미래에 대해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니 안정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다.

현재 마크 영지는 지난 계약들이 체결된 뒤로 스무 개 정도의 작고 큰 상점들이 자리한 작은 시장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세금을 낮게 책정한 덕분에 작으나마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 다른 곳의 영지와 거래 품목들이 다양해진다면 시장은 그만큼 성장해 나갈 것이다.

대리석 채광 공사도 순조롭게 끝이 났고, 대리석의 질이 좋아 이를 거래하러 오는 상인들이 종종 영지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스의 주도 아래 건설되던 마을은 영지 내성 다음의 규모로 최근에는 그 마을 중심으로 세 개의 작은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새로 편입된 영지 외곽에 지어지던 성벽 또한 70% 정도가 완성되었으며, 지난 산을 개간하여 만든 옥수수밭과 사탕수수밭 등에서 얻는 곡물이라면 지난해의 20% 정도만 수입하면 더 이상 식량의 문제는 없을 듯 보인다.

포도밭은 그 규모가 네 배로 늘어났으나 아직 터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올해는 그곳에서 수확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개량된 비료로 잘 관리한다면 2년 뒤에 그곳에서도 상질의 포도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모든 게 시작의 단계였지만, 올해만 잘 넘긴다면 내년부터는 자금에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현재 야안은 짧은 기간 동안 상인으로서 많은 경험을 쌓고 돌아온 론에게 로니아 상단에서 구입한 실크를 내주며 라문 왕국과의 무역을 명했다.

그 자신이 움직이기에는 마크 남작의 복귀 준비와 지금 영지에 벌인 일이 많았다. 라문 왕국과의 상행은 지난 탈리아 왕국보다는 멀었지만, 그 거래 대상이 자신과 같은 시골 영지라는 점에서 거래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론을 호위하는 데 테리와 제1별동대의 1, 2백인대가 움직이기로 했다. 상당수의 호위였으나 이는 그 거래 대상이 말임을 고려한다면 크게 많은 수는 아니었다.

이번 기회로 품질이 좋은 말을 계약할 수 있다면, 마크 영지의 병력은 그 질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영지 내의 말을 짐말로 돌린다면 공사의 기간을 더 줄일 수 있으니 여러 면에서 이번 계약은 마크 영지에 큰 의미였다.

이후 이 말을 이용해 기병을 창설한다면 윌 백작가와 거래 또한 앞으로 손쉬워질 것이다.

야안은 올해도 거래를 끝낸 늦은 봄에 인재들을 뽑기 시작했는데, 영지민들의 수보다 대상 연령대의 수는 많지 않았다.

이는 이번에 편입된 영지민 중 아이의 비율이 7%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피난민 생활에서 상당수 노약자가 죽었기 때문인데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특히나 심했다.

그나마 7%로도 야안이 치료에 힘썼기에 살아남은 것이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씨가 말랐을 것이다.

그로 오히려 이미 몇 차례 인재를 발굴했던 기존 영지민들의 아이의 숫자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

올해는 자금의 부족으로 농노들을 사들이지 못했기에, 그가 검사해야 할 이들은 1,000명 정도였고, 야안은 그중 스무 명 정도를 뽑아 대장간과 목재소로 보냈고, 관리인의 재능을 지닌 이를 세 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또한, 근골이 좋은 이들 마흔 명을 뽑아 별동대의 훈련생으로 보내는 것으로 그해의 인재 발굴을 끝냈다.

이번에 가장 눈에 띄는 재능을 지닌 이는 목재소에 보내진 이 중 한 명으로 리코라는 사내였다. 올해 열여섯 살이 된 이로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떠돌다 피난민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본래 목재소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목재를 다루는 그의 솜씨는 대단히 뛰어났다.

그는 손재주뿐만 아니라 상당히 창의력이 뛰어나 배우지 않았음에도 복잡한 형태의 물건을 뚝딱 만들어 버리곤 했다.

야안은 그 재능을 인정하여 목재소의 수장에게 그의 재능에 대해 알려주었고, 곧 목재소의 수장 또한 그의 재능을 확인하고는 한눈에 반해 그를 자신의 후계로 삼았다.

리코의 재능이라면 많은 지원에도 크게 발전하지 못한 기술을 그 규모에 맞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뛰어난 무구들을 만들어내어 주목받는 대장간에 배가 아팠는데, 이제 리코 덕분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게 되어 그는 크게 기뻐하였다.

야안은 여러 곳에 벌인 공사들을 살피며, 마크 남작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보름이 지난 후에야 그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거리가 멀어 그저 마크 남작이 생환하였다는 소식만을 들었던 야안이었으나, 어떻게 생환하였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쿠엔 후작의 사건으로 군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게 되었고, 그것이 크게 화제가 되어 먼 곳에서도 마크 남작의 사정을 알게 되었는데 야안은 그 비극적인 소식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같은 일이 생기다니.’

소문에서는 그의 아들 마크 라운이 배신 때문에 죽어나갔고, 오직 마크 남작만이 생환하였다 한다. 그리고 그 마크 남작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아, 이번에 명예 제대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하였다.

야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크 남작에게 큰 호감이 가고 있었다.

다소 오해를 살 수 있는 자신의 무리한 정책들에 대해 서신을 보내어도, 그저 묵묵히 믿고 받아들이는 마크 남작의 뛰어난 배포는 감동적이었다.

그처럼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것인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지를 관리하면서 알게 된 지금, 그는 마크 남작가에 출사표를 내민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전대의 총관 매틀 요한이 마크 영주에 대해 평하기를 그는 영지를 관리할 줄 모르는 타고난 무장이나 영주로서도 손색이 없다 하였다.

이유는 하나이다. 혼자서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며 말하기를, 누군가의 도움을 서슴없이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라 하였다. 아무리 뛰어난 자도 몸은 하나이기에 결국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 한데, 사람들은 이 도움을 받는 것을 자격지심으로 여기는지라 알고 있음에도 쉽게 행하지 못한다.

한데, 마크 남작은 그것을 천성적으로 깨달았고 그런 도움을 받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믿음을 준 자에 한해서 의심 없이 순수하게 믿고 맡기는 방법이다.

당시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야안은 그간 여러 가지 소식을 전달받은 끝에 이번 일을 나프롬 자작이 공모하였음을 알고 있었다. 이는 지난 쿠엔 후작가의 전략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카람 백작임을 알기 때문이다.

카람 백작과 나프롬 자작의 관계를 알고 있다면 세 살배기도 이 일에 나프롬 자작이 관련되었음을 알 것이다.

이에 큰 분노를 느낀 터라, 평화 협정서가 끝이 난 뒤부터 그들을 공략하기로 했다. 현재 나라 밖으로 큰 전쟁 중이라 내부 영지 쟁탈은 불가능한 일이나 분쟁은 가능했다.

현 왕국의 정책은 귀족들의 분쟁을 내버려 두어 그들의 힘을 소모하여 왕권을 강화시키는 것에 있으니 시골 영지 사이의 분쟁 따위에 간섭할 이유는 없다.

당시 그는 최소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의 시간이 있기에 어떻게 분쟁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중, 마크 남작의 생환 소식을 들었고 이로써 복수는 그의 몫이 아니게 되었다.

야안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그가 복수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 한 달이 지났다.

* * *

다그닥, 다그닥.

두 필의 말이 이끄는 마차는 기병 50명의 호위를 받으며 요란스럽게 굴러가고 있었다. 그중 가장 선두와 후미에 자리한 열여섯 명의 기병은 대단한 일들을 겪은 듯 옷 밖으로 보이는 상처만큼이나 살기가 짙었다.

여름이라지만 산속이라 낮은 길지 않았다. 곧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마차 안쪽에서 소리가 울렸다.

“이만, 여기서 노숙을 하도록 하지.”

낮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가 마차에서 울려 퍼졌고, 그 명령을 들은 기병들은 서둘러 노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갑작스러운 기습을 막기 위해 주위에 엄폐물을 만들던 그들은 불을 지펴 주위를 밝혔다.

열여섯 명의 기병 중 한 명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을 마차 안에 있는 이에게 바쳤다.

“고맙네.”

그가 건넨 음식은 소화가 쉬운 말린 채소와 버섯 따위를 끓인 것이었다.

마크 자작은 그 음식도 버거운 듯 조금씩 입으로 가져다 오랫동안 씹은 뒤에야 목구멍으로 넘겼다.

성수와 라쿤 백작의 도움으로 장기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으나, 제대로 된 기능을 한다는 것은 큰 욕심이다.

그 탓에 많은 음식을 흡수하지 못하기에 다쳤을 때처럼 여전히 그의 몸은 메말라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눈빛은 빛났고, 그 특유의 위압감은 배는 더 커져 그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말없이 작은 수프 그릇 하나를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천천히 섭취한 그는 자신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린 수하에게 그릇을 내어주었다.

여름에도 오한이 들 정도로 몸 상태는 좋지 않아 여러 벌을 껴입은 그는 몰려오는 수마를 물리며, 어떤 형식으로 군을 정비할 것인가에 대해 궁리하였다.

그의 보고를 따르면, 현재 마크 영지가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은 2,000에 달했다. 이 병력은 이미 지난 영지 회복을 통해 실전을 겪은 병사들이라 정예병이라 하여도 부족함이 없었다.

기병이 없다는 것이 흠이지만, 이는 차차 키워나가면 된다. 야안의 보고에 따르면 올해까지는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정도이나, 내년부터는 흑자로 들어서게 되니 그때부터 영지는 안정권에 들어설 것이다.

2만이 아닌 4만에 달하는 영지민의 성장과 그 성장력에서 오는 이득은 단순히 숫자 놀음인 두 배가 아닌 최소 세 배 이상은 가능할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되면 그의 전술 능력을 크게 살릴 수 있는 많은 수의 기병을 확보할 수 있다. 그때부터 병력을 차차 늘린다면 자신의 숨이 끊기기 전 통쾌한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고서를 받은 것이 초봄 때의 일이었는지라 최근의 영지 사정을 알지 못하지만 크게 달라진 바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야안의 보고서를 받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챈들러의 존재였다. 탈리아 왕국에서 2만 명의 난민들과 함께 온 자라 했는데, 그가 지난 몬스터 토벌에서 얻은 성과를 보자면 대단히 뛰어난 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뛰어난 지휘관의 자질이 보이는 이였다.

본래 귀족의 사생아로 어린 시절 용병 일에 뛰어들었다는데, 어린 시절의 지식을 기반으로 삼아 오랫동안 용병 일을 해서 그런지 전장을 보는 눈이 대단히 뛰어났다.

자신이 옆에서 가르친다면 능히 뛰어난 장수로서 능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말없이 앞날을 그리다 어느 순간 눈이 감기며 호흡이 길어져 갔다.

마크 영지에서 7일 거리를 남긴 어느 늦은 밤 마크 자작의 얼굴에는 짙은 고단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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