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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96화 (96/385)

야안 96화

한데, 지금 나프롬 자작은 자신의 마지막 수를 사용했다. 잠시 이해되지 않았던 그는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카람 백작 측에서 움직이기로 한 것인가?”

현재 티온 백작 측과 여러 곳에서 작은 접점을 이루고 있는 카람 백작 측이 쉽게 움직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그만큼 자신이 눈에 거슬렸는지 모르지.’

검은 전갈을 쓰러뜨린 것이 카람 백작 측의 경각심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나프롬 자작의 밀정으로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생각한 것보다 이른 시간에 지원이 왔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예전이었다면 고작 시골의 남작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아 백작이 신경을 쓸 일이 없었겠지만, 자작으로 직위가 올라가고, 명예 만인장의 칭호를 얻게 된 지금 최소 뒤통수가 간지러울 정도는 되었으니 말이다.

자식이 없고 생에 미련이 없다는 판단이 맞다면, 무모하게 군을 일으켜 자신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따져보면 카람 백작의 판단은 옳은 것이다.

하지만 카람 백작의 생각과 달리 마크 자작은 무모하게 군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야안에게서 치료를 받은 뒤 그에게는 아직도 9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무역 상행이 성공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해 나가는 영지를 본다면 멀지 않아, 카람 백작을 크게 위협하는 존재로도 발전할 수 있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프롬 자작의 병력을 보며 언제 카람 백작의 군이 지원 올 것인가를 예측했다. 수성하며 징집으로 병력을 모으는 형태를 보아 이번 봄 파종 시기가 끝이 날 때쯤 카람 백작가에서 출정할 것으로 보았다.

‘반년이라, 그 시간 안에 최소 나프롬 자작 쪽에서는 병력의 합류가 없게 만들어야겠군.’

공포정치 탓에 반발하는 영지민을 누르려면 현재 병력의 30% 정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것이고, 안정적인 형태를 띠려면 50%가 필요했다.

현재 30% 이상이 징집된 병사들이었고, 이들은 정예 병사가 아닌 숫자 맞추기에 급급한 형태의 병력이었기 때문이다.

마크 자작은 그 세가 약한 곳을 치고 빠지며, 이들의 병력을 조금씩 갉아먹기로 했다. 오히려 이런 형태는 그가 반기는 바다.

수성이라 하지만 병력은 정예가 아니고, 그로서는 수하들에게 안정적인 전투 경험을 쌓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후 뒤를 걱정할 것 없이 유리한 고지에서 지원을 온 카람 백작의 병력을 칠 수 있을 것이다.

마크 자작은 이같이 유리한 형태로 공세를 보일 수 있음은 야안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영지를 발전시켜 군에 물자를 지원한 것을 말함이 아니다.

전술을 펼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군사의 기량인데 지금 이들과 같은 기량을 보이는 기병은 제국의 검은 바람 정도였다.

그것도 아직 말을 다루는 솜씨가 미숙한 형세임에도 그런 것이고, 이후 시간이 지나 말을 다루는 솜씨가 더욱 좋아진다면 검은 바람 중에서도 정예인 1군단과 유사한 형태의 기력을 보유할 것이다.

이 같은 기병의 모습 뒤에는 야안의 인재 발굴 능력에 있었다.

1년간 그의 곁에서 지켜본 결과 인재를 보는 능력은 혀를 내두르게 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 자신도 잘 모르는 능력을 발굴해 내어 그에 맞는 형태로 일을 시키니 영지가 발전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특히 무재가 뛰어난 이들을 알아내는 눈썰미는 정말 대단했다.

무재가 없다면 유저 이상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어떤 이들은 천성적인 이유로 평생을 노력해도 유저에 들어서기 어렵다. 그러한 것을 생각한다면 그가 뽑은 이들의 대다수가 3년이 채 되지 않아 유저에 오른 것을 생각한다면 놀랄 수밖에 없다.

비록 야안이 내놓은 마나 심법과 그가 잡아놓은 체계적인 단련법이 그 일에 도움을 주었다 하나, 그것도 재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에 농노에서 뽑아낸 800명에게 기병 훈련을 시킨 결과들을 본 마크 자작은 감탄했다. 생각한 것보다 그들이 훈련을 잘 따라왔기 때문이다.

비록 야안이 그중에 일부는 리젠으로 몸을 호전시켜 준 덕분이긴 하지만, 농노였던 이들이 겨우 몇 달 되지 않아 고된 기병 훈련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는 이번 카람 백작의 병력을 물리친다면, 그다음 후속 병력과 전투를 벌일 때 이 기병이 변수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현재 이들을 가르치고 지도를 하는 검은 전갈에게서 살아남은 기병에게 더욱 훈련에 박차를 가하라 명했다.

이번에 수확된 와인은 지난해에 만들어진 것보다 그 뒷맛이 풍부했다.

오랫동안 향이 입가에 잔류했는데, 그것이 상당히 독특해 현재 이 와인을 거래하러 온 상단만 다섯 곳에 달했다.

그들은 저마다 찬사를 늘어놓으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양을 차지하기 위해 견제를 하였던 덕분에 지난해 와인보다 15% 더 높게 가격을 책정받았다.

재판과 검은 전갈 등의 일로 마크 자작의 이름이 귀족 사이에 떠돌면서, 와인의 이름도 덩달아 상승세를 보였던 것도 가격이 높아진 이유도 있었다.

야안은 론과 의견을 나누어 무역하는 데 어떤 상품을 더 중히 여길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론은 담배와 향수 같은 기호품을 추천했다.

영지와 가장 먼 곳에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무역이 가능한 조이스 왕국에서 생산되는 담배와 향수는 제국에서 생산하는 것만큼이나 유명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풀어 영지 직위는 자작의 범위까지로 잡고, 담배와 향수를 특산물로 삼는 영지를 알아보라 하였다.

조이스 왕국과의 거래 물품은 마크 영지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생각했다. 지금 마크 와인의 품질은 여러 전문가에게 검증받을 만큼 질이 좋기에, 조이스 왕국에서도 반응이 나쁘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야안은 낮에는 일하고 가족 간의 유대 관계를 쌓았고, 그 외의 모든 시간은 수련에 투자했다. 평소에도 수련에 전념하였으나, 최근 들어서는 수련에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집념을 보였다.

그 이유는 그가 보름 전부터 정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정체기에 들어섰다.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수련하던 도중, 크게 갑갑함을 느끼던 그는 그때 그와 같은 짧은 정보를 보게 되었다.

최근 들어 황금 갈기 오크와의 승률은 한 번 이기고 두 번 지는 정도로 예전보다 승률이 60%나 높아질 정도로 실력이 늘어나다 갑자기 멈추어 섰다.

뛰어난 성취를 보이던 그였기에 야안은 스스로 날개 꺾인 새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이런 시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설의 반지 퀘스트가 나타났다.

[고대의 악마 파란토를 멸하라

등급 : B

고대 죽음의 지배자가 낳은 악마 파란토를 멸하라. 인간들의 전쟁 속에서 봉인되었던 악마 파란토가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부활하였다. 아직 완전한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이 기회이다.

*현재 그대의 능력만으로 파란토를 멸할 수 없다. 고대 엘프의 피를 이은 라타샤 마을에서 도움을 청하라.

*빛의 구슬에 악마 파란토를 멸하는 방법이 있다.

*1년이 넘어선 순간 그를 저지할 방법은 사라진다.

*성공 시 그에 상응하는 경험치를 얻고 뇌전의 정화 봉인의 일부분을 풀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시간제한이 있는 퀘스트였다.

1년이라는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기에, 그는 고민에 빠져야 했다.

현재, 영지는 중요한 시기였다. 남작은 출정하여 영지에 없는 상태였기에 자신이 영지를 수성해야 했다.

또한, 올해부터는 작년보다 두 배에 달하는 수입이 들어오기에,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 확장된 성벽 공사를 끝내고 관개수로 기초공사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영지로 조금씩 몰려드는 주민들을 관리해야 한다.

그런 상황이기에 자신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대단히 컸다.

그는 여러 차례 고민하였지만, 결국 떠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것은 결정이 난 퀘스트였다.

상대는 악마다.

악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야안은 믿을 수 없었다. 악마, 그것은 뱀파이어와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태어났고, 죽음의 지배자의 보호 아래 힘을 키운 존재이다.

그들은 전설의 시대에 모습을 보였다는 드래곤과 비등한 힘을 보였기에, 대현자 테무드조차 상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고대에 나타난 악마는 한 마리뿐이었다. 죽음의 지배자의 부활은 완전하지 않았기에 겨우 한 마리의 악마만이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마리의 악마 때문에 당시 강력한 힘을 지닌 한 왕국이 망국 직전까지 가야 했다. 그것도 대현자 테무드가 나서지 않았다면 왕국 하나로 끝났을 일이 아닐 것이다.

그 악마가 벌인 일이 재앙 이상의 일들이었고 그에 사람들은 기록에 그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혹시나 사이함에 물든 현자가 그의 이름을 통해 불러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야안은 이에 관한 내용을 대현자의 서에서 읽은 적이 있기에, 누군가 그의 이름을 알아내어 부활시켰음을 알았다.

아니, 어쩌면,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테무드의 봉인의 힘이 약화되어 생긴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 그것을 생각하던 야안이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부활 과정이 어떤가는 중요한 일이 아니지.’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가 부활하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저주스러운 파란토라는 이름을 지닌 악마가 부활한 지금은 고대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많아, 그를 막는 과정에서 몇 개의 나라가 무너질지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대현자 테무드가 있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같은 존재가 없으니 최소 구존의 반 정도가 투입되어야 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보아 막을 수 있는 것이고, 그를 죽이는 일은 물론이고 봉인을 하기 위해서는 제국이 숨겨진 힘들을 꺼내놓아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사정이기에 야안이 그 둘 사이를 고민한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야안은 자신의 제자 한스에게 행정 부분의 일들을 맡기기 위해 준비했다.

한스는 그간의 영지 사업 상당 부분에 손을 댔으니, 야안만큼은 아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영지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영지 내외의 일들에 대해 준비를 끝낸 야안은 자신의 사정을 알고 있는, 현재 기병을 조련하고 성의 수비를 맡은 챈들러와 한스를 불러 자신이 떠나야 하는 사정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챈들러는 악마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였을 뿐이었지만, 한스는 예전 영주성의 책에서 악마에 대한 기록을 읽었기에 사색이 되었다.

그는 큰 걱정 어린 목소리로 야안에게 되물었다.

“그, 그것이 사실입니까? 악마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말입니다.”

믿기 어려워하는 한스의 모습에서 챈들러는 악마라는 존재가 자신이 그저 야안을 믿고 안일하게 넘길 존재가 아님을 알았다.

그는 안색을 굳히며 한스에게 물었다.

“악마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챈들러의 말에 한스는 자신이 아는 바에 대해 설명했다.

“죽음의 지배자가 낳은 최악의 생명체입니다. 드래곤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이지요. 고대에 단 한 마리의 악마가 모습을 보였을 뿐인데, 현 제국의 반 정도의 힘을 가진 왕국이 망국 직전까지 갔습니다.

당시 대현자 테무드 님께서 발 빠르게 나서지 않으셨다면 인류는 죽음의 지배자와 싸울 힘을 잃었을지 모릅니다.”

한스는 그렇게 말하며 챈들러에게 말려보라는 눈빛을 주었으나, 잠시 눈을 질끈 감던 챈들러는 크게 예를 보이며 야안에게 말했다.

“저는 주인님을 믿습니다. 이것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 신께서는 그 일을 하실 분으로 주인님을 선택했습니다. 주인님께서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영지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영혼을 내놓더라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 가슴 절절한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한스는 그런 챈들러의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의 마음을 왜 모를 것인가? 자신도 스승님을 믿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힘이 미약해 스승님에게 같이 가겠다는 말조차 감히 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 야안은 한스의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고, 챈들러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이것은 아리스 님께서 주신 기회이다. 지금 그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전쟁보다 더 큰 손실이 있을 것이다.”

야안은 걱정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챈들러와 한스의 어깨를 도닥이며 말했다.

“하니, 부디 성공하여 돌아온 나를 기쁘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챈들러, 한스, 그대들을 믿겠다.”

진정성 어린 야안의 말에 챈들러와 한스는 잠시 말문을 잃다 이내 예를 보인다.

“그저, 믿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스승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들의 말에 미소를 머금은 야안은 그날 늦은 저녁까지 와인을 따 서로의 잔을 채워주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다음 날, 한스에게 인수인계를 끝낸 야안은 마크 자작에게 전령을 보냈다.

이 믿기지 않는 일을 마크 자작에게 설명할 수 없었기에, 전령에게 보낸 서신에는 많은 내용은 적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없을 때를 대비해 영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 보고와, 아리스 님의 계시를 받아 영지를 떠나야 한다는 내용만 담았다.

정보 창에서 나타나는 퀘스트를 아리스 님의 뜻이라 생각하는 야안이기에 그에게 있어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전령을 받은 마크 자작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겪은 터라 잠시 말문을 잃어야 했지만, 이내 ‘그렇게 하시오’, 라는 답변을 써 전령에게 건넸다.

야안이 준 서신에는 다행히 자신이 영지를 비운 이후의 대책들이 있기에 별다른 우려를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아니, 그것이 아니어도 아리스 님의 계시를 받은 신관을 개인의 욕심으로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오죽 급한 일이었으면, 자신이 영지에 복귀하기도 전에 길을 떠나야 할까? 생각하였기에 그는 수하이자 은인이기도 한 그가 그저 무사히 일이 마치고 돌아오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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