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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00화 (100/385)

야안 100화

이는 단순히 따르는 처지라면 큰 상관이 없지만, 연이 닿아 기사가 된 뒤에는 여러 문제를 낳게 한다. 덕이 부족하므로 패장으로서만 군사를 다루어야 하는 탓이다. 자연히 부하들은 두려워할지언정 마음 깊이 따르는 자가 없게 된다.

이 차이는 크다.

전투 시 이기고 있을 때에는 사기가 높으나, 자신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 되면 크게 사기가 떨어져 별다른 힘도 쓰지 못하고 크게 패하게 된다.

이는 수하들을 움직이게 하는 두려움의 근원을 넘어선 죽음의 공포에 밀려서 생기는 불상사이다.

만약 덕으로 움직였다면 그 상황에서 하나로 뭉쳐 적은 피해로 전투를 끝낼 수 있었을 것이나, 이런 단순한 공포심을 이용한 군사 운용은 이 같은 피해를 낳는다.

그러하기에 귀족 자제를 위한 지도 방식은 다르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기본기를 단련한다. 약초를 구해 몸을 정화하고 매일 두 번씩 운기를 도와주며, 착실하게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어느 순간 한 기점에서 귀족 자제는 전자의 훈련을 한 훈련생을 넘어서게 되는데, 이는 워낙 어린 시절 기본기가 탄탄해 벽을 넘어서는 문턱이 낮아져서이다.

그러면서 실제로 병력을 운영하는 방식을 배우는데, 귀족의 자제는 태어났을 때부터 사람을 부리는 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하기에 앞서 불상사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체만 왕국의 수호 가문인 고른 공작가의 자제인 라진의 경우 또한 후자의 훈련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출신 성분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붉은 눈 부족의 출신이기 때문이다.

체만 왕국은 야루스 산맥의 영향을 적게 받는 왕국이었지만, 대신 저주받은 숲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 숲은 오크가 아닌, 하나같이 기이한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소형 몬스터보다는 중대형 몬스터가 있어 왕국에서는 수세만 취할 뿐 별다른 공세를 보이지 않는다.

저주받은 숲의 크기가 체만 왕국의 두 배에 달하는 이유도 있지만, 체만 왕국 이전에 자리한 카이스탄 왕국이 이곳 숲에 십만의 군세를 이끌고 공세를 보이다 도리어 사냥을 당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때의 일로 분열된 카이스탄 왕국은 오랜 세월을 난세로 떠돌다 다시 체만 왕국으로 개국하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체만 왕국은 그때의 일을 기억했기에 절대 저주받은 숲으로 공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저주받은 숲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괴이한 전통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 복장이나 문화 형식이 저급해 사람들은 그들을 미개인으로 보았다.

코른 라진의 어머니는 그들 부족 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인 대부족의 공주였다.

25년 전 체만 왕국이 스키티 왕국과 분쟁에서 밀리고 있을 때, 체만 왕국은 병력을 요청했고, 붉은 눈의 대족장은 그 조건 중 하나로 그녀의 어머니와 혼사의 관계를 내놓았다.

하지만 체만 왕족의 피가 미개인의 피에 흐려질 것을 두려워하여 당시 코른 공작이 현재의 코른 공작을 내세워 그녀와 혼사를 맺게 했다.

코른 공작가도 대를 올라가다 보면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내세운 주장이라 붉은 눈의 대족장도 이를 허락하게 되었다.

그렇게 당시의 분쟁에서 겨우 수평의 관계를 만들었던 체만 왕국이었지만, 정작 그 탓에 피해를 보게 된 이가 바로 붉은 눈의 공주와 코른 공작이 낳은 코른 공작가의 스물세 번째 자식이었다.

첩이 아니기에 그 또한 본래라면 후계 서열의 반열에 설 수 있었으나, 그가 붉은 눈을 지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귀족은 명예를 위해 사는 존재.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코른 공작가의 피가 더럽혀지는 것을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공주라도 살아 있었다면 모르지만, 그를 낳은 그녀는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자연히 그의 입지는 좁아졌고, 첩의 자식보다 못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전자의 훈련을 받는 것이 한계였다. 사실 그는 마키 경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훈련시켜 준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을 고려해서라도 자신을 지도하고 있었다.

만약 그 자신이 검에 대해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면 주위의 반대에도 후자의 지도를 하였을 것이나 그의 재능은 평균을 약간 상회했다.

그 한계가 잘해야 상급 유저임을 알기에, 마키 경은 빠른 시간에 경지에 올리기 위해 전자의 지도를 하고 있었다.

체만 왕국의 수호 가문인 고른 공작가는 제국의 귀족만큼이나 검을 중히 여기기 때문에 귀족의 자제들은 최소 상급 유저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다행히 어린 시절 붉은 눈의 전사들의 수련법을 익혀 중급 유저 이상의 검은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는 앞으로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앞으로 5년 안에 상급 유저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 사정이었기에 라진은 노기 어린 유모의 말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보이다 이내 배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 유모, 언제까지 날 세워둘 거야.”

“어머, 내 정신 좀 보게. 도련님이 배고픈 것도 모르고.”

투정 부리는 라진의 말에 유모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서둘러 라진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곧 새롭게 음식을 데우는 등 바쁘게 움직이는 유모의 모습에 라진은 미소를 머금다 음식이 준비되자, 그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며 곤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영지를 나선 지 한 달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야안은 체만 왕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체만 왕국에 가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정보 창에서 말한 대로 그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고대 엘프의 피를 이은 라타샤 마을을 찾기 위해서이다.

자신이 지난번 주술 덕분에 기연을 얻어 상당한 진전을 볼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그 악마를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다.

비록 힘을 얻기 전이라 하지만, 대현자 테무드조차 곤란해 하였던 존재였으니 구존에 달하는 힘을 지닌 자가 아니라면 맞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보 창의 충고는 언제나 중요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없었으나 그곳 라타샤 마을에서 그 악마를 상대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라타샤 마을은 현재 대륙에서 악명 높은 저주받은 숲에 자리하였는데, 이 숲은 한때 강력한 군사 왕국인 카이스탄 왕국 전력의 반을 아무렇지 않게 삼켜버린 곳이었다.

이곳은 기이하게도 저주받은 존재 몬스터의 힘을 두 배로 강화하는데, 단순히 육체만 아닌 머리도 영악하게 만들어 그들은 대단한 사냥꾼이자 포식자의 모습을 보인다.

그런 이유로 기이한 비술로 살아가는 부족이 아니고서는 감히 어떤 인간도 이곳에 들어서는 것을 꺼렸다.

현 체만 왕국의 야루스 산맥을 방어하고 있는 보룬 백작의 영지에 들어서기 위해 경비병에게서 간단한 절차를 밟은 야안은 다시 말에 올라 성문 안을 들어섰다.

비록 그 영향이 다른 왕국에 비해 작다고 하지만 그래도 야루스 산맥이다. 이곳 역시도 오크 전사 1만을 이끄는 대족장 호도칸급의 오크를 상대해야 했고, 호후도칸급의 족장들 역시 열이 넘었다.

보룬 백작은 체만 왕국의 또 다른 상급 익스퍼트의 기사로 비록 고른 공작에 비해 실력이 미숙한 편이나 이곳 대족장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제5전장에 크게 밀리고 있어 이곳에서도 병력을 차출해 보낸 바가 있어, 저번 몬스터 토벌은 상당히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 탓인지 보룬 영지는 어느 때보다 침체한 분위기를 보였다.

이곳 체만 왕국은 마일드 왕국보다 추운 지방 쪽이라 눈이 자주 내렸는데, 성문을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야안은 자신의 머리 위로 휘날리는 눈을 보아야 했다.

눈이 내리자, 사람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 번 눈이 내리면 상당한 규모로 오기 때문에 자신의 집이 눈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지지 않게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폭설 때문에 매해 상당한 피해를 보아야 했던 체만 왕국이었으나, 또한 이 폭설 덕분에 보통 1년에 두 차례 해야 하는 몬스터 토벌을 한 번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인간보다 두꺼운 가죽을 가진 오크라 해도, 추위에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어 겨우내 부족한 식량을 대신하여 동족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100의 하급층 오크는 오크 전사 한 마리의 값어치보다 싼 목숨이었다. 오크들은 그런 식으로 종족의 우수한 혈통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대신 이 방법으로는 번식이 강한 그들도 수를 늘리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올해 전쟁에서 오크들이 승기를 가져갔으니 내년의 토벌전은 상당한 곤란할 것이 분명했다.

야안은 이곳에 오는 중에 두 차례 폭설을 맞이하며 여러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기에, 서둘러 걸음을 놀렸다.

끼이익.

요란한 문소리와 함께, 야안은 이곳 보룬 영지에서 유명한 한 여관에 들어섰다.

그가 들어선 여관은 매해 있는 몬스터 토벌을 위한 용병 전용 여관으로, 토벌이 끝난 지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50명가량의 용병이 자리를 잡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야안은 입구에서 가볍게 눈을 털며 들어서다 자신을 맞이하는 어린 종업원에게 자신이 타고 온 말을 부탁하였다.

이곳 여관의 주인은 예전 용병 일을 한 것인지 일반인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대머리에 한쪽 눈을 잃은 애꾸눈이라 상당히 보기 사나웠지만, 마음 씀씀이는 좋은 듯 주위의 여러 용병과 구김 없이 시끌시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곧 야안이 주인장에 다가가자, 그는 이내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용병에게 손을 들어 물렸다. 그리고 야안에게 다가와 잠시 바라보다 이내 눈에 이색을 보이며 물었다.

“흠, 당신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군? 대단한 실력을 지닌 것 같은데. 혹시 이번 일에 참여하려는 이던가?”

야안은 주인장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방이 있습니까?”

지저분한 수염 때문에 서른쯤으로 보았던 주인장은 생각보다 젊은 목소리로 말하는 야안에 흥미가 도는 듯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그대는 용병 일을 하는 이는 아닌 것 같지만, 내 용병의 대우로 그대를 맞이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한차례 눈을 치우고 들어온 종업원 한 명을 불러 야안에게 푸른색 방을 안내하게 했다.

그는 코를 훌쩍거리다 푸른색 방이라는 말에 눈에 이색을 보였다. 그는 반색하며 서둘러 야안에게 공손히 예를 보이더니 그를 안내했다.

푸른색 방은 용병단장급이 쓰는 방으로 유저로 치면 상급 유저 이상의 실력을 지닌 자를 위해 만들어놓은 방이었다.

5층으로 이루어진 여관의 맨 위층을 차지하는 방인데, 다른 층의 방보다 다섯 배나 넓었고, 가구도 하나같이 고급이었다.

야안이 상당히 고급스러운 방에 놀라워하는 모습에 종업원은 그 사정을 알고 설명했다.

“상급 유저 이상의 실력을 지닌 분들을 위해 만든 방입니다. 아무래도, 간부들이 용병 일원과 섞이면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대우를 해드리는 것이지요. 방값은 여타의 다른 방과 같습니다. 영지에서 지원금이 나오거든요.”

그는 오랜만에 상급 유저 이상 되는 간부를 모시는 게 즐거운지 종알거렸다. 야안은 종업원이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눈에 이색을 보였는데, 이는 돈 따위를 바라는 눈빛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겨우 열너덧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종업원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궁금해 진실의 눈으로 살펴본 야안은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검을 들어보아라. 조언해 주지.”

야안의 그 말에 종업원은 크게 반기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는 이내 허리에 꽂아놓은 단검을 꺼내어 검식을 펼쳐 보였다.

기초 검술 중 가장 많이 알려진 팔방검식을 펼쳐 보였는데, 오랫동안 수련을 한 듯 그 검식 하나하나가 정확하고 기세가 대단했다.

다만, 몸을 수련하는 방식에서 여러 명의 조언을 들은 것이 독이 되어 조잡한 것이 아쉬웠다. 재능은 중상에 달해 이대로도 10년 안에 중급 유저까지 무난히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이상은 어려울 듯했다.

야안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이내 헉헉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종업원에게 말했다.

“검은 이제 기세가 올랐다. 앞으로 5년 정도 지난다면 하급 유저에 들어설 수는 있을 것 같구나. 나는 너에게 묻고자 한다. 너는 빠르지만 한계가 있는 검을 가지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성장 속도는 느리나 너의 한계 이상의 검을 지니고 싶으냐.”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준 자는 없었기에, 종업원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끙끙거리며 고민하다 물었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까?”

야안은 아이의 신중한 대답이 마음에 들어 선뜻 대답했다.

“전자는 잘해야 중급 유저가 고작이겠지만, 후자는 상급 유저까지 노려볼 수 있다.”

그 말에 아이는 매우 놀랐다.

상급 유저가 어떤 위치인가? 대용병단에서도 간부급이고, 못해도 수석 조장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위치이다.

그런 대단한 경지에 자신이 오를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서둘러 대답했다.

“후, 후자를 원합니다. 부탁합니다.”

아이의 그 말에, 야안은 그의 잘못된 수련법으로 기울어진 몸을 맞출 수 있는 새로운 몸 수련법 몇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검을 쥐는 방법부터 시작해 검을 찌르고 치는 방법들 몇 가지를 교정했다.

아이는 야안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따라 하려 했으나, 이미 조잡한 수련법에 균형이 깨어진 몸으로는 쉽사리 하기 어려웠다.

동작 하나하나 펼칠 때마다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인지라, 아이는 이를 꽉 물면서도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야안은 생각보다 아이가 잘 따라오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균형이 깨어진 몸으로 완전히 따라 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마 넉넉잡아 2년은 걸릴 것이야. 지금 가르쳐준 검식과 수련법이 몸에 익는다면 상급 유저에 들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물론 그만큼의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아이는 야안이 얼마나 대단한 것을 가르쳐준 것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별것이 아니지만, 이처럼 시기적절할 때 가르치면 검술관에서도 직전 제자가 아니면 알려주지 않는 일종의 비법으로서도 부족하지 않았다.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크게 예를 표했다.

“가, 감사합니다.”

야안은 그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아니다. 한동안 여기에서 머물 생각이니 잘 부탁한다.”

“네? 네, 물론이지요.”

아이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야안의 손길을 부끄러워하다 이내, 씻을 물이 담긴 욕조나 간단한 마른 음식들이 자리한 진열대를 보여주었다.

야안은 만족하며, 아이에게 음식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고 아이는 금방이라도 가져올 것처럼 후다닥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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