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01화
귀여운 아이의 모습에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이 기억나 미소를 머금던 야안은, 짐을 풀고 욕조에서 몸을 씻었다.
마지막으로 단검으로 덥수룩한 수염을 깎고 나온 야안은 어느새, 뜨끈한 음식이 방 중앙에 자리한 것을 발견했다.
음식은 추운 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는 열량이 높은 치즈가 듬뿍 들어간 빵과 마른고기, 버터를 녹여 볶은 채소였다.
한동안 전투식량과 단단한 육포로 배를 채워야 했던 야안이었기에, 이 같은 뜨거운 음식을 보게 되자 절로 식욕이 생겼다.
음식은 하나같이 짭조름하면서도 질감이 좋아 상당한 양임에도 모든 음식을 비울 수 있었다. 야안은 아이가 몰래 가져온 퍽 한 잔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했다.
이후 새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운기조식을 하며 지난 여정을 회상했다.
시간제한 퀘스트였기에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터라, 야안은 시일을 줄이기 위해 체만 왕국으로 올 수 있는 여러 길 중에서 가장 빠른 해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마크 영지에서 말로 열흘 거리에 자리한 카민 백작성의 영지는 바다를 끼고 있어 예전부터 무역 거래가 활발한 곳이었다.
야안은 그곳에서 체만 왕국과 가까이 자리한 스키티 왕국에 상행을 떠나는 배를 얻어 타고 7일간의 항해 끝에 스키티 왕국의 변경백 쪽에 내릴 수 있었다.
야안의 신분이 자작가의 준귀족이었기에 가능한 이동 속도였다.
귀족은 신분이 확실해 상행에 큰 어려움을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에 야안은 약간의 금액을 쥐여주는 것으로 배를 얻어 탈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변경백 쪽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 보룬 백작가로 오기 위해 야안은 야루스 산맥을 타고 움직였다.
야안은 이 야루스 산맥의 여정에서 오크들의 존재가 자신을 어렵게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판단이 틀렸다는 것은 야루스 산맥에 들어선 지 이틀 만에 깨닫게 되었다.
바로 폭설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야안은 겨우 찾은 동굴에서 3일을 허비해야 했고, 이후 그는 애처롭게 우는 말을 달래며 야루스 산맥을 건너야 했다.
다행히 보호의 나뭇조각으로 야안과 그의 말은 그 매서운 추위를 버티며 산을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난 폭설을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면, 그는 지금도 야루스 산맥의 한 자락에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야루스 산맥이라, 몬스터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소수의 정찰을 하던 오크 전사들과 몇 번이고 마주쳐 그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 외에도 야안은 가죽이 두껍고 추위에 강한 화이트 오우거 하나를 만나 잡을 수 있었는데, 그 힘은 여타의 오우거에 비해 대단했다.
화이트 오우거는 보통 오우거보다 머리 하나 컸으나, 움직임은 비교적 느린 편이었다. 하지만 힘이 두 배 가까이 강하고 가죽이 매우 두꺼워 느린 움직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약 야안이 아니었다면, 그 혼자서도 작은 용병단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야안은 이 오우거를 잡음으로써 두 번째 폭설을 무사히 넘을 수 있었다. 그 가죽이 상당한 크기였기에, 야안은 그것으로 임시적인 거처를 마련한 것이다.
워낙 추운 지방에서 서식하는 화이트 오우거라 가죽의 보온성이 뛰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가져온 돈이 떨어지던 참이었으니, 이 오우거 가죽을 팔아 야안은 돈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운기행공을 마친 야안은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 오는 내내 시간이 날 때마다 수련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는 현재 불안한 자신의 경지 때문이다.
무위로는 강해지긴 했으나, 정신과 몸의 경지가 달라지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을 서둘러 극복해야 했다.
예전이었다면, 완벽히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하여 자신의 경지 이상이 되지 않는 한 검을 익혔는지도 알아보기 어려웠을 것인데, 지금은 은연중에 갈무리하지 못한 기운 때문에 하수들도 자신을 상급 유저 이상의 실력자임을 알아보게 되었다.
덕분에 여관의 주인에게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지만, 상승의 길을 걷고 있는 자가 자신의 기운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책해야 마땅할 일이다.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야안은 부지런히 몸을 수련해야 했다.
“많이도 왔군.”
지난밤 내린 눈은 쉽사리 운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쌓여 있었다.
그래도 밤새 많은 사람이 눈과 전쟁을 벌인 덕분에 이 정도였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운신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영지에서 사람을 풀어 길을 만들고 있었고, 저마다 집에서는 집 앞의 눈을 치우는 데 전력을 다했다.
야안은 이런 모습을 보며, 새삼 자연의 힘이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한 번 눈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백작령 대부분의 사람이 전력을 다해야 하니, 진정 재난이다.
하지만 이도 야안이 상대해야 할 재앙에 비한다면 약소한 수준이었다.
악마는 자칫 대륙 전체의 재난으로 갈 수 있으니.
야안은 역시 자기 생각대로, 이 정도의 눈이라면 움직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눈 때문에 방향을 잡기도 어려웠다.
추위 정도라면 그의 단련된 몸과 마법이라면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눈에 의해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야안은 못해도 사흘 정도는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생각했다.
그때쯤이면 겨울이라 해도 어느 정도 길의 윤곽을 볼 수 있으리라.
‘한동안 그간 못 한 수련이라도 하면서 지내야겠군.’
다행히 방은 넓어 가구를 치우면 부족한 부분들의 수련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전에 가져온 화이트 오우거 가죽부터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야안은 운기행공을 마치고, 자신에게 식사를 가져온 어제의 그 종업원에게 말을 건넸다.
“안내 좀 부탁하마. 몬스터 가죽을 팔려 하는데 괜찮은 곳이 있느냐?”
야안의 말에 눈을 똥그랗게 뜨던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이죠. 가죽만을 전문적으로 구매하는 곳이 있습니다. 푸른색 방의 손님이시라는 것을 아시면 주인아저씨도 가격을 좋게 쳐주실 거예요.”
한 해 많은 용병이 목숨을 걸고 토벌전에 참여한다.
그것이 자신의 이득 때문이라 해도, 몬스터로부터 영지를 지켜주는 일이기에 이곳 사람들은 자연히 용병에게 후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면, 이 보룬 영지는 그 순간부터 포기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 그러면 부탁 좀 하마. 언제 시간이 되느냐.”
야안의 말에 종업원은 눈을 치우느라 밀린 일들이 쌓여 있었기에 잠시 손을 꼽다, 정오 이후에 시간이 난다고 말했다.
약속을 잡고 서둘러 내려가는 것이 이래저래 할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야안은 그 모습에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 종업원이 가져온 식사로 배를 채운 뒤 이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가 세운 수련의 마지막 목적은 육대검식을 아무런 기세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펼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능하게 되면, 자신의 몸 또한 그때부터 상급 익스퍼트에 들어섰다 해도 무방할 일이다.
기세를 없앤다는 말은 언뜻 생각한다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검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가 휘두르는 검마저도 기세가 담긴다. 아이의 힘 때문이 아니라 검의 무게에 실려 능히 사람을 살상하게 하는 위력을 보일 수 있다.
그러하듯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는 그 자체만으로 기세를 가지는데, 이것을 인위적으로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라지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 검을 아는 자라면 미친 소리라 치부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한 국가에 한두 명만이 상급 익스퍼트가 되는 이유기도 했다.
기세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은 검을 온전히 자신의 지배 아래 내려놓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무기 자체를 손발같이 쓰는 것이 아니라 검에서 일어나는 예기마저 자신의 지배 아래 놓는 것이다.
이는 무서운 일이다.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서면 구의 발현이 가능해진다. 구의 발현의 영역 아래 놓인 것은 자신의 또 다른 감각처럼 여기기에 무수히 많은 적군에 싸여 있어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구의 발현, 자신을 중심으로 그가 펼칠 수 있는 검기의 영역에 놓이는 거대한 구의 형태를 확장하는 것이 중급 익스퍼트가 펼칠 수 있는 검의 경지라면, 상급 익스퍼트는 이 구를 자신의 마음대로 형태를 변형할 수 있다.
이 말은 대단히 무서운 일이다. 이는 상대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자기 마음대로 조절한다는 말이 된다.
또한, 그런 이 구의 발현이 발전된 형태를 띠면, 그는 구의 발현을 하나의 선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 형태의 공격은 야안의 육대검식처럼 검기 여러 개를 겹쳐 하나의 형태로 만드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보인다.
야안이 매번 황금 갈기 오크에게 고전을 한 이유는 바로 이 같은 공격 형태 때문이다.
제멋대로 변형이 되어 종잡을 수 없는 거리감을 파이어 핑거와 파이어 피스트로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는 있을지는 모르나 이 같은 절대적인 파괴력을 지닌 힘 아래는 그의 어떤 공격도 무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이 짙고 굵은 단 한 번의 선에 그 자취를 감추듯이 이 같은 공격의 형태는 같은 형태의 힘이 아니고는 막기가 대단히 어렵다.
다행히도 야안에게는 건곤대나이라는 믿기지 않는 힘의 묘용이 있기에, 검기의 밀도가 짙어지면서 육대검식으로도 상대가 가능했기에 황금 갈기 오크를 이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하기에 건곤대나이를 만약 대성하게 된다면, 그가 아는 심혼의 일격조차도 어쩌면 그 묘용 앞에서 빛을 바랄 것이라 야안은 생각했다.
야안이 정신적으로 깨달은 것은 그 같은 힘의 묘용이었다. 하지만 육체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야안은 그 기세를 지워내기 위해 부단히 검식을 펼쳤다.
그는 매우 느리게 검식을 펼쳤다. 스스로 수정하고 어디가 부족한지를 이 과정을 통해 알아가기 위해서이다.
단 한 번 육대검식을 펼치는 것만으로 약속한 정오의 시간이 지났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오는 종업원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고, 이내 검을 넣고 옆에 놓인 천으로 땀을 닦았다.
이후 어제 말을 관리하던 아이에게서 받은 상당한 부피를 지닌 짐을 챙겼다. 곧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그 종업원이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요즘 주인아저씨가 무슨 일을 중재하고 있어서 일이 많아지는 바람에.”
일을 빨리 처리하고 오려는 듯 상당히 지친 기색이 가득했기에 야안은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마케를 걸어주었다.
“아니, 괜찮다. 나도 다른 일을 하느라 바빴으니.”
종업원은 갑자기 녹초가 된 몸에서 힘이 나자 의아해하다가 이내 야안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앞장서 나갔다.
종업원이 안내한 상점은 규모가 상당했다.
예전에 본 마법 상점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그 규모를 보아 영지에서 잡은 몬스터 가죽 대부분이 이곳에서 거래되는 것 같았다. 아마 영지의 일을 대신 봐주는 곳이라 판단했다.
주인은 종업원을 잘 아는 듯 보자마자 농지거리를 던졌다.
“껄껄, 미래의 용병단장이 왔구나. 웬일이냐. 한창 바쁜 시간인데?”
그 말에 종업원은 평소라면 욱하고 무어라 한마디 했을 것이지만 옆에 야안이 있어 표현하지 못했다.
“아저씨도 참, 이분은 푸른색 방의 손님이세요. 이분께서 가죽을 거래하자고 오셨어요.”
그 말에 주인은 이내 눈에 이채를 띠며 야안을 살폈는데, 과연 그 젊은 외모와 달리 기세가 대단한지라 놀라움을 표했다.
“하~ 그대 같은 이가 가져온 가죽이라면 흥미가 동하는군. 보여 주시겠소.”
주인의 말에 야안은 가져온 상당한 크기의 짐을 풀어 내놓았고, 주인은 잠시 믿어지지 않는 듯 말문을 잃다 크게 감탄을 흘렸다.
“하! 화이트 오우거 가죽이라니, 믿어지지 않는군.”
화이트 오우거는 겨울에만 나타나는 몬스터였다. 보통 때는 생명력이 질긴 오크들도 가기 어려운 추운 곳에 서식하는데, 겨울이 되면 산에서 내려와 정찰 중인 오크들을 잡아먹거나, 상단의 행렬을 덮치기도 했다.
화이트 오우거 가죽은 항마력도 일반 오우거 가죽에 비해 뛰어난 편이었다. 비록 두꺼운 것이 흠이나, 보온성이 뛰어나고 창칼도 쉽사리 박히지 않아 시장에 나오기 무섭게 팔리는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보게 되었으니 상당한 규모의 상점을 운영하는 주인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깔끔한 솜씨라니. 가죽에 흠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군.”
이 오우거는 단 여덟 번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목과 팔, 다리, 허리, 심장, 머리에 검을 찔렸는데 상급 유저 중에서도 그 끝자락에 있는 자임이 분명했다.
주인은 이것을 잡은 이가 야안이라는 것을 알기에, 젊은 나이에 조만간 기사에 올라설 이 천재 검사에게 경의를 표하며 가격을 책정했다.
“희소성을 고려한다면 7,500골드를 쳐드릴 수 있겠습니다.”
야안은 자신이 예상한 가격보다 훨씬 후한 가격이라 따로 말을 꺼내지 않고 그 거래를 성립했다.
종업원은 설마 야안이 가져온 가죽이 화이트 오우거 가죽일 줄 몰랐기에 입을 떡 벌렸다. 용병들 사이에서 얘기로만 듣던 화이트 오우거 가죽을 실제로 보니 믿어지지 않았다.
주인은 그런 그의 심정을 이해하는지, 그의 벌린 턱을 손수 닫아주며 말했다.
“네 말대로 푸른색 방의 손님다운 모습이구나.”
그는 주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자에게 조언을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야안은 소개비로 1실버를 그에게 건네주었고, 그는 몇 번 사양하다 조심스럽게 돈을 받았다. 안 받으려 했지만, 그가 사려고 하는 검이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포기하기 어려웠다.
야안이 여관에 돌아와 보니 나갔을 때보다 더 많은 용병이 있었다. 그곳에 모인 용병들은 최소 중급 이상의 실력자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모두 같은 일 때문에 모인 듯 보였다.
그 거래의 주체는 붉은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20대 후반의 사내로 그 또한 상급 유저로 보였다.
용병들은 그와 여러 차례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화가 난 듯 저마다 몸을 돌렸다. 그 거래를 주도하던 여관의 주인은 생각한 것보다 일이 잘 안 풀리자 눈살을 찌푸렸다.
붉은색 머리카락의 사내는 앞머리 때문에 표정을 알기 어려웠으나, 한숨을 흘리는 것이 그 또한 답답한 듯 보였다.
야안은 그들의 행태에 흥미가 생겨, 음식을 가져온 종업원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지 알고 있느냐?”
그 말에 종업원은 고개를 저으며 잠시 기다려달라 말하더니, 동료에게 이것저것 묻다 고개를 끄덕이며 야안에게 돌아왔다.
“알아냈습니다. 저분은 저주받은 숲에서 영향력이 높은 대부족 붉은 눈 부족의 혼혈아라 하더군요. 이번에 그가 부족에 가야 할 일이 있어 생겨 호위할 사람이 필요하답니다. 그런데 이 저주받은 숲의 특성상 다수보다 실력이 뛰어난 소수가 필요한데 아무래도 그런 용병들은 다들 용병단을 가지고 있으니 거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가 원하는 실력자는 상급 유저 이상인데 그런 이는 다들 용병단장을 맡고 있으니 문제가 생긴 거죠. 이번에 걸린 금액이 워낙 큰 탓에 여러 용병단에서 모습을 보였지만, 아무래도 이 같은 이유로 문제가 틀어질 것 같아요.”
종업원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야안이 다시 물었다.
“붉은 눈 부족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느냐?”
그 말에 종업원은 야안이 이곳 왕국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답해 주었다.
“저도 잘 아는 것은 없지만, 저주받은 숲에서 붉은 눈 대족장은 왕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그것으로 유추한다면 아무래도 절대적인 힘을 가진 부족이라 할 수 있겠죠. 특히 그 전사들 중 대전사들은 기사들과 같은 힘을 보인다 하니 사실 그들만으로도 웬만한 왕국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야안은 종업원의 말을 듣고 내심 미소를 짓는다.
‘저주받은 숲에 들어가서 그들 라타샤 마을에 어떻게 도움을 청할지가 막막했는데, 잘하면 방법이 있겠구나.’
곧 야안은 한숨을 내쉬는 붉은 머리 사내에게 다가갔다.
라진은 생각한 것보다 일이 풀리지 않자 앞이 막막했다.
그는 이름뿐인 공작가의 아들이었고 서열도 스물세 번째라 가문의 실력 있는 검사들을 데려갈 수 없었다.
실력이 있는 자들은 벌써 제각각 자신의 위 서열의 형제들에게 줄을 선 탓이다.
제국과 연합 왕국의 전쟁이 생각한 것보다 길어질 것 같자, 가문의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성에서 그나마 자신의 편이 되어주었던 마키 경이 전쟁에 나선 뒤부터 그 정도가 점차 심해졌다.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는지라 라진은 더는 성안에서 버티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1년 전 자신을 두고 세상을 떠난 유모에게서 받은 어머니의 유품을 믿고 고른 공작가를 나섰다.
어머니의 유품은 세 가지였다.
정령석과, 정령에 관한 내용이 담긴 책, 그리고 눈동자 모양의 푸른 보석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남기신 서신을 통해 자신이 정령에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붉은 눈에 붉은 머리를 한 자는 붉은 눈 부족에서 희귀한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