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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20화 (120/385)

야안 120화

그가 그처럼 시간을 끄는 사이 로뎅은 예전 라쿤 백작이 황금 갈기 오크를 상대로 펼친 속박 마법진과는 차원이 다른 형태의 마법을 준비 중이었다.

상위 현자 익스퍼트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속박 마법으로 대상자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형태의 마법은 아니나, 일정 시간 동안 일정한 범위 밖을 나서지 못하게 하는 대마법이었다.

몸놀림이 워낙 빠르고 경계가 심한 몬스터이기에 그 같은 속박 마법부터 준비한 것이다. 곧 마법이 준비가 된 듯 그가 신호를 보냈다.

이 푸란이라는 몬스터와의 일전을 준비하던 야안은 곧 자신의 눈을 어지럽히며 떠오른 퀘스트를 받게 되었다.

[초대형 몬스터 푸란 척살

등급 : B-

도칸급 몬스터 푸란을 척살하라. 조심성이 많은 몬스터이며 몸이 상급 익스퍼트만큼이나 날렵하다. 방어와 힘이 매우 뛰어나며 현란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전투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의 발톱의 강도는 미스릴에 준한다.

*성공 시 그 공에 따라 경험치가 차등 지급된다.]

야안은 퀘스트를 수락하고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마나의 유동이 느꼈고 곧 대마법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긴 유성이 떨어지듯이 푸른 빛을 일렁이며 날아가던 그것은 그 몬스터가 있는 곳을 기점으로 크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놀랍군. 이것이 초인의 힘인가?’

로뎅이 상위 현자 익스퍼트 수준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의 대마법을 보지 못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 그가 펼친 대마법을 곁에서 지켜본 그는 소름이 돋았다.

직접적으로 마법에 당하지 않은 자신조차 마치 절대적인 존재의 손아귀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만약 이것을 공격 마법으로 펼친다면 예전 뱀파이어의 군주 바론이 펼친 지옥의 불보다 강한 힘을 보일 것이라 그는 예상했다.

그가 느낀 것을 푸란 또한 느낀 듯 이곳 저주받은 숲의 지배자 중 하나인 푸란이 울부짖었다.

“크아아앙!”

상급 유저의 수준이었다면 푸란의 굉음에 담긴 강렬한 살기에 기량이 반 이하로 떨어졌을 것이다. 아니, 초급 익스퍼트 정도만 되었어도 몸이 굳어 본래의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괴물의 상대는 그의 굉음 따위에 관심조차 주지 않는 강자들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그 울음소리로 현재 위치를 파악한 듯 알레한드로를 필두로 하여 타린과 오스가 그 양옆을 맡아 푸란에게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고, 로지 또한 얼음의 정령을 불러들였다.

뒤를 이어 불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이 모습을 보이며 앞으로 나아갔고, 로뎅을 보필하던 두 명의 중급 현자 마스터도 그 뒤를 이었다.

야안은 그들의 가장 후미에 자리하다 이내 ‘카라’와 ‘토네’ 마법을 펼쳐 순식간에 처음 괴물과 접점을 맞은 알레한드로의 옆에 섰다.

푸란이라 불리는 이 괴물의 모습은 과연 그 모습부터가 섬뜩했다. 녹갈색의 피부에 팔이 네 개였는데 그 팔 하나에 자라난 세 개의 손톱은 그 하나하나가 타린이 쓰는 도만큼이나 거대했다. 그의 거대한 상체만큼이나 하체는 대단히 굵고 단단했다.

실제로 그 거구와 맞지 않을 만큼 움직임이 대단히 빨라,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팔이 네 개라 동시에 열두 개의 대검이 날아들었고, 그 움직임도 알레한드로에 못지않았기에 가장 먼저 그들과 전투를 벌이던 알레한드로와 그의 제자들은 처음부터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얼굴이라 추정되는 곳의 눈은 모두 여섯이라 그에게 사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동체 시력이 대단히 뛰어나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움직임을 모두 꿰뚫고 있었다.

반응 속도도 대단히 빨라 알레한드로가 기습적으로 펼치는 붉은 실도 푸란의 손톱에 막혀 제대로 된 피해를 주기가 어려움이 컸다.

무엇보다 초대형 몬스터답게 푸란의 힘은 그들이 예상한 것 이상인지라, 살짝 손가락으로 흔들어 내려친 것조차 풍압이 일어날 정도였다. 힘이 뛰어난 타린조차 그의 손톱에 땅을 끌며 몸을 뒤로 물려야 했다.

로지가 얼음의 정령이 일으킨 눈보라 사이로 수십 개의 얼음송곳으로 푸란의 눈을 공격했지만, 눈꺼풀을 뚫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로지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분산하기 위해 한 수였다. 곧 그의 뒤를 이어 베르뎅과 라콘의 정령들이 연계를 펼쳐 거대한 불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를 집어삼켰다.

불에 바람을 일으켜 공기의 유입이 들어서 강철도 녹을 거대한 화력을 보였으나, 그도 푸란이 몸을 부풀며 입에서 울음을 터뜨리자 이내 그의 몸을 휘감던 불은 힘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정말 괴물이로군.’

알레한드로는 과연 도칸급의 몬스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도칸급의 몬스터였다면 조금 전의 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적어도 화상 때문에 몸의 일부분이 불편해졌으리라 판단했는데, 그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푸란의 몸은 살짝 그을린 것 이외에는 별다른 피해는 없어 보였다.

그 뒤를 이어 두 명의 큰 스승들이 마법을 펼쳤다. 바로 라쿤 백작이 펼친 것과 같이 몸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마법이었다.

그들은 스승이신 로뎅의 도움으로 그를 만나기 전부터 이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 정령사들 덕분에 잠시 틈이 보이자 이내 펼쳐 적중시켰으나, 막강한 항마력을 가진 푸란의 움직임을 저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황금 갈기 오크도 한 번의 마법에 몸에 이상이 왔지만, 푸란은 동시에 두 번의 구속 마법이 걸렸음에도 약간 주춤거리는 정도가 다였다.

그 움직임을 5%로도 제한하지 못한 듯했다.

로지는 큰 스승들의 마법이 적중되는 것을 확인하고, 준비한 만년설로 푸란의 손과 발을 묶어 그 현란한 움직임을 봉쇄했다. 무게만으로도 몇 톤이나 나가는 만년설이었고, 그 구속력은 강철 덩어리와 같았다.

그렇게 되자 푸란조차 몸이 급격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은 알레한드로와 그의 제자들은 가장 강맹한 초식으로 그를 공격했지만, 아쉽게도 워낙 단단한 피부를 가진 터라 큰 피해는 주지 못했다.

오히려 푸란의 화를 돋우기만 했을 뿐이다.

몸이 봉쇄당한 푸란은 길게 호흡을 들이켜면서 몸을 두 배 가까이 일으켰고, 이내 그의 몸을 봉쇄하던 만년설도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해 자잘하게 부서져 터져 나갔다.

단순히 몸에 힘을 준 것만으로도 상급 정령 비기너의 힘을 물리친 것이다.

카가가강!

수백 개의 화살이 퍼붓는 듯했다.

아니, 그 강도와 힘만을 따진다면 수백 개의 단창이 푸란을 상대하는 그들에게 날아간 듯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에게 돌아온 얼음의 파정들을 검과 정령, 마법으로 방어하기 시작했다.

과연 초대형 몬스터답게 상상을 뛰어넘는 크고 강하고 뛰어난 힘을 지닌 존재였다.

그 존재 푸란은 자신의 움직임을 번번이 붙잡는 로지를 먼저 잡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느새 그의 몸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일으킨 정령이 만들어낸 방어막을 쳐부수며 열두 개의 요기스러운 손톱을 그들을 향해 내리쳤다.

카강, 캉!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아닌, 요란한 금속의 비음이 울려 퍼졌다.

그 열두 개의 무겁고 날카로운 손톱을 막은 것은 단 하나의 검이었다. 알레한드로의 검기조차 그 손톱 앞에서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는데, 단 하나의 검이 그 열두 개의 손톱의 힘을 흘리며 막아낸 것이다.

그 검의 주인은 야안이었고, 야안이 쥔 검은 평소 그가 사용하는 준명검이 아닌 전설의 검이었다.

아직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인벤토리에 잠재웠던 전설의 검이었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그는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절대 파괴되지 않는다는 검답게 푸란의 손톱에도 작은 흠 하나 나지 않았다. 아니, 상급 익스퍼트의 검기를 머금은 전설의 검은 푸란의 그 믿기지 않는 단단한 가죽조차 갈라버렸다.

야안은 왼손으로 파이어 피스트를 푸란의 눈을 향해 펼쳤고, 이내 그의 눈이 감기며 생긴 사각으로 몸을 날려 붉은 실을 펼쳤다.

과연 전설의 검이라 할까?

그가 펼친 붉은 실은 지금껏 그가 보였던 붉은 실의 위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능히 알레한드로에 준할 만한 위력을 보인 것이다.

덕분에 푸란의 어깨에 긴 상처를 만들어낸 야안은 한 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육대검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 야안을 중급 익스퍼트 정도라 판단해 크게 신경 쓰지 않은 푸란은 의외의 존재에게 피해를 보게 되자 격한 분노를 느껴 다른 존재들은 무시한 채 그를 중점으로 공격을 펼쳤다.

열두 개에 달하는 푸란의 손톱은 비록 정교한 면이 떨어져 투박했지만, 오히려 그의 무시무시한 힘과 믿기지 않는 속도가 가미되면서 그 손톱 하나하나에서 절정의 검법이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알레한드로조차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연합 공격이었지만, 야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 정령사들을 구해냈을 때처럼 그의 검에서 믿기지 않는 힘의 묘용이 드러났다.

그가 지닌 힘 중 가장 신묘한 힘의 묘용을 지닌 건곤대나이가 펼쳐진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건곤대나이를 펼쳐도 그 강력한 힘에 밀려 흘리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기간 동안 끝없는 노력 끝에 상급 익스퍼트에 근접한 검기를 펼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전설의 검이 그 검기와 만나게 되면서 알레한드로가 펼치는 검기에 준할 만큼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빠르고 강하나 단순한 면이 있는 푸란의 공격은 그의 건곤대나이 앞에서 힘을 잃고 말았다.

‘토네’로 기존의 그의 움직임보다 배 이상 빨라진 야안의 움직임은 푸란의 여섯 개의 눈으로도 종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상태에서 건곤대나이가 펼쳐졌으니 푸란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존재와 전투를 하는 듯 공격은 번번이 엉뚱한 대지를 갈라놓거나, 허공을 가르기도 했고 또는 자신의 다른 손톱과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건곤대나이라 해도 푸란의 힘이 워낙 강력했기에, 야안의 몸은 충격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알레한드로는 야안이 보이는 그 믿기지 않는 힘의 묘용에 혀를 내두르다 이내 야안을 돕기 시작했다.

그의 검기가 뻗어 나가며 푸란의 옆구리를 비롯해 수 십 개의 상처를 내기 시작했고, 다시 자신을 향해 내려치는 푸란의 손톱은 타린과 오스가 대신 막았다.

로지 또한 수많은 얼음 조각들로 푸란의 얼굴을 가격하여 시야를 어지럽혔으며, 라콘은 푸란의 상처를 벌리고 베르뎅이 그 상처가 난 곳에 화염을 끼얹었다.

일부 내장이 타오르고 상처가 찢어졌지만, 푸란의 덩치에 비해 그 상처들은 미약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그 강한 체력을 보유한 푸란조차 지치기 시작했다. 덕분에 마법사들이 다시금 푸란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이 쉬워졌다.

푸란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자,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야안은 붉은 실을 육대검식 중 가장 강맹한 초식인 6초식과 함께 펼쳤다.

둘 다 습득률이 낮아 준비 시간이 긴 탓에 펼치지 못하다 지금 잠깐의 틈이 생기자 그때를 놓치지 않고 펼친 것이다.

스팟, 쿠웅!

그렇게 펼쳐진 위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했다.

단번에 푸란의 네 개의 팔 중 하나가 갈라져 땅에 떨어진 것이다. 태어나 느껴보지 못한 강한 고통에 푸란이 울부짖었다.

덕분에 틈이 많아지자 알레한드로와 그의 제자들 또한 벌어진 상처를 향해 검기를 펼쳤고 덕분에 푸란의 네 개의 어깨 중 하나는 전투 불능의 상태로 빠졌다.

뒤에서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로뎅은 준비된 대마법을 펼쳤다.

그 마법은 죽음의 강이라 불리는 석화 마법이었다. 단순히 피부를 돌로 뒤덮는 것이 아니라, 피가 이동하는 혈관을 석화하는 것이었다.

인간이었다면 초인이 아닌 이상 마법에 적중된 순간 즉사였을 것이고, 호도칸급의 몬스터라 해도 숨 몇 번 쉬는 시간에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상을 입었다 해도 도칸급의 몬스터인지라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항마력에 의해 석화 과정에 들어간 오른쪽 두 번째 팔을 뜯어내어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로지에게 내 던졌고, 로지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강철 덩어리 같은 그의 팔을 막기 위해 정령을 불러 눈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크오오오.”

주위의 대기를 뜨겁게 달구는 그의 울부짖음에 주위의 인간들은 옷을 휘날리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이는 마지막 힘을 끌어내기라도 하는 듯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힘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탓이다.

하지만 그와 가장 가까이 자리했던 야안은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듯 그의 그런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란 또한 야안의 그 상태를 놓치지 않았고, 이제 두 개밖에 남지 않은 그의 두 팔이 야안의 몸을 갈라내려 했다.

이 상황만을 본다면 그의 공격에 몸이 수십 조각으로 갈라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예상과 달리 그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마치 바람 앞에 나풀거리는 낙엽을 보는 듯했다.

손톱이 날아오면 딱 그만큼 스르륵 물러났고, 내려치면 딱 필요한 형태만 몸이 움직이며 푸란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푸란은 전보다 두 배는 빠르고 강한 힘으로 그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껏해야 그의 옷자락만을 갈라놓을 뿐 야안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마치 그 짧은 순간 건곤대나이가 진화한 듯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야안의 무위 전체가 상승된 듯 보였다.

말없이 방어만 하던 야안은 그 멍해진 눈이 다시 본래의 현기 어린 눈으로 돌아온 순간 그의 검은 내려치는 푸란의 팔을 거슬러 올라가더니 어느새 푸란의 목을 베고 지나쳤다.

쿠우웅!!

거대한 바위가 떨어진 듯한 진동이 울렸다.

그의 두터운 목이 떨어진 소리였다. 이어 우람한 푸란의 하체가 꺾이었고, 그의 육체는 한동안 꿈틀거림을 반복하다 이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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