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23화
40. 뇌전의 정령 II
정령의 기운이 점차 강해짐에도 야안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정령의 터 또한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형태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다지지 못한 부위들을 더욱 견고히 다져갔다.
야안은 이 기이한 상태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봉인된 고대 정령이라 생각한 정령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정령 또한 야안이 자신의 언어를 알아들었음을 아는지, 반복되던 물음을 물리고, 긴 시간을 뛰어넘어 숨겨진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왜 그가 야안에게 말을 걸었는지에 대해서부터 뇌전의 정화와 그에게 왜 기이한 정령의 터가 자리하게 되었는지까지 모든 것이 이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왕께서 다시 세상에 돌아오셨도다. 1만 년의 기다림을 넘어 결국 왕께서 돌아오셨구나. 전설을 추종하는 자여, 오랫동안 그대를 기다렸소이다.
그렇게 자신을 기다렸다는 정령은 뇌전의 정화의 탄생과 더불어 그간 그가 궁금해했던 전설의 현자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야안에게 해주었다.
세상이 창조된 시절,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하늘도 땅도 구분이 없었다. 세상은 뭉개진 덩어리에 불과했고, 그 안에 무언가 살아 숨 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리스 님께서 그 세상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가볍고 밝은 것을 위로, 무겁고 어두운 것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또한 삶과 죽음을 나누었으며, 혼잡한 기운을 갈라놓으셨다. 그중 가장 강력한 기운을 잡아 생명체로 만들었고 그들을 두고 이후 태어난 생명체들은 이들을 신의 사자라 하여 드래곤이라 불렀다.
그렇게 세상이 나뉘는 중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오직 기운과 이념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이 모습을 보였다.
아리스 님은 그들을 위해 세상을 구성하는 또 다른 세상을 만들었고, 생명체들은 그들을 신령스러운 기운이라 하여 정령이라 부르며, 그들이 사는 세상을 정령계라 명했다.
그렇게 단순히 뭉개진 덩어리에 불과하던 세상이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아리스 님이 정하신 법칙 아래 반대급부적인 힘이 커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곧 수많은 죽음이 결정되는 것이었고, 세상에 수많은 희망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의 절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반대급부적인 힘이 해소되지 않고 쌓이기 시작했으며, 그로써 그 안에 새로운 존재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공포에 몰아넣은 존재인 죽음의 지배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 존재는 세상에 버림받은 종족을 자신의 휘하에 내려놓아 그들에게 저주를 내렸고, 그들은 그의 저주를 통해 거대한 파괴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죽음의 지배자는 또 하나의 신의 탄생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력한 권능을 보였다.
세상을 조율하던 드래곤들조차 그를 겨우 막을 뿐 그를 어쩌지 못했다.
수많은 생명체가 그들에 의해 죽거나 물들어갔고, 이를 지켜보던 아리스 님은 세상의 모든 생명체 중 가장 혼탁하며 역설적인 존재만이 그를 막을 수 있음을 알고 생명체들에게 힘을 나누어 하나로 모으라 명했다.
그러자 당시 남은 생명체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누리던 힘을 나누어 모았고, 아리스 님은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최초의 인간이자 최초의 전설의 현자인 라블랑카스가 나타나자 과연 아리스 님이 말씀하신 대로 죽음의 지배자의 세력이 점차 줄기 시작했다.
드래곤들이 그의 뒤에 버티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그의 옆을 지켰다. 그럼으로써 세상을 혼탁하게 물들인 오염된 종족들이 정화되거나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불행의 시발점이자 근원인 죽음의 지배자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 존재 앞에서는 전설의 현자인 라블랑카스도 번번이 물러서거나 간신히 그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는 없어 보였다.
* * *
그때였다.
정령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살아 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닌 존재였기에 중립을 유지하던 정령계 또한 이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다.
긴 전쟁으로 세계가 혼탁해지자 이 세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령계 또한 혼탁해져 결국 나서게 된 것이다.
이를 놓치지 않은 전설의 현자는 신화시대에 탄생한 드래곤의 보물이기도 한 뇌전의 돌을 매개로 정령들의 왕과 정령의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로써 뇌전의 돌은 뇌전의 정화로 진화하게 되었다.
사마를 제압하는 힘을 가진 뇌전의 돌을 매개로 계약한 정령의 왕은 뇌전의 정령으로서 그 모습을 키워갔다.
과연 정령의 왕이라 할까?
정령의 왕의 영향을 받은 뇌전의 정화는 죽음의 지배자를 따르는 수장들을 멸할 힘을 가지고 있었고, 뇌전의 정령과 같이한 뇌전의 정화는 능히 죽음의 지배자를 봉인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몇백 년의 시간 끝에 승리를 하게 되었으나, 전설의 현자 라블랑카스는 순순히 기뻐할 수 없었다. 머지않아 죽음의 지배자가 부활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봉인할 뿐 죽음의 지배자는 멸할 수 없는 존재임을 라블랑카스는 알고 있었다.
차라리 그뿐이라면 좋으련만, 죽음의 지배자가 다시 부활할 때는 지금 자신들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힘과 권능을 보일 것이다.
그것은 죽음의 지배자가 봉인 이전 자신에게 내린 저주였고, 그 저주를 옆에서 본 라블랑카스는 절망하였다.
하지만 마법으로는 드래곤을, 정령으로는 하이 엘프를 넘어선 라블랑카스답게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전설의 현자에게 새로운 힘을 주기 위해 연구하는 중 검술을 창안했고, 이를 이제 번성의 단계에 오른 인간들에게 전해주었다.
세월이 흘러 라블랑카스가 전해준 검술은 무사한 이들의 손에 의해 발전해 마법 못지않게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최절정기에 다다랐을 때쯤, 죽음의 지배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치 그의 등장을 기다렸다는 듯이 당시 한 명의 검의 천재가 모습을 보였다.
로불랑이라 불리는 자로 그는 대륙의 남쪽 끝에 자리한 시골 마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타고난 재능으로 홀로 검을 익힌 이였다.
그는 열다섯의 나이로 절정의 경지에 들어서는 유례없는 일을 보이더니, 3년 만에 홀로 마을을 침공한 몬스터들의 씨를 말려버렸다.
이후 마을의 번성을 돕던 그는 우연히 자신의 마을로 온 용병으로부터 세상이 혼란에 빠졌음을 알게 되었고 곧 세상을 구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을 떠났다.
그의 등장은 돌풍과도 같았다.
아니, 세상이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비친 하나의 빛과도 같았다. 만약 죽음의 지배자가 모습을 보이기 이전 그가 나타났다면 그를 환영하기보다는 멸시하고 견제하려 할 것이나, 한 명의 영웅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몹시도 반겼다.
그를 위해 수많은 명사가 아낌없이 자신의 비기를 가르쳤고, 로불랑은 그들의 가르침을 흡수하고 또한 죽음의 지배자가 보낸 세력들과 싸워나가며 무서운 성장을 이루어내기 시작했다.
결국 검의 종주에 오른 로불랑은 타 종족의 영웅들과 함께 죽음의 세력들과 싸워나가다, 뒤늦게 그를 발견한 드래곤들에게 뇌전의 정화와 라블랑카스가 남긴 유물을 건네받았다.
이후 라블랑카스의 유물이 바탕이 되고 드래곤들이 그를 도움으로써 전설의 현자로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가장 전쟁이 치열할 시기에 로불랑은 전설의 현자로서 각성하게 되었는데, 과연 라블랑카스가 예상한 대로 정령과 마법에 더하여 검을 익힌 전설의 현자는 더 강력한 권능과 힘으로 돌아온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여러 고난의 끝에 결국 다시 한번 죽음의 지배자를 봉인할 수 있었던 로블랑은 라블랑카스가 고민하였던 것처럼 새로운 힘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 힘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주술이었다. 로불랑은 라블랑카스가 그러했듯이 자신이 만들어낸 주술을 인간에게 전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들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주술은 검과 달리 발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기존에 있는 정령과 마법 그리고 검만으로도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 해도 주술의 기묘한 힘은 그들 사이에 자리 잡을 수 있었지만, 기존의 세력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주술은 천시되었고, 주술은 이리저리 떠돌다 죽음의 지배자에 의해 갈라진 작은 대륙의 소수 유랑 민족들이 쓰는 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로불랑이 만든 이 주술은 라블랑카스가 탄생시킨 검만큼이나 뛰어난 잠재력이 담긴 것이었고 그들 사이에서만이라도 주술은 조금씩 발전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후 세월이 지나 죽음의 지배자가 자신을 봉인한 로불랑의 힘을 넘어서며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그리고 신의 축복인지 로불랑 때처럼 이들 소수 민족 사이에 희대의 주술의 천재가 모습을 보였다.
자이웅이라는 자로 다행히 그는 대족장의 후계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수많이 갈라진 주술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조잡한 형태의 주술들 안에서 마법이나 검에 못지않은 뛰어난 잠재력이 있음을 한눈에 깨달았다. 그리고 그 주술을 재정립하여 자신만의 주술을 만들었는데 마흔이 채 넘지 않아 그는 최초로 위대한 주술사라는 경지에 도달했다.
이후, 그는 변방에 자리한 자신들의 세력까지 쳐들어온 죽음의 지배자의 세력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는데, 과연 마법도 검도 정령도 아닌 그의 주술에 수많은 죽음의 세력은 당황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천재라 하나 세월에 의해 다듬어지지 않은 주술로는 그들과 맞서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소수 부족에 대한 편견이 심해 로불랑 때처럼 다른 왕국이나 제국의 힘을 얻거나 같이 싸우는 것도 어려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술은 너무도 이색적인, 어떻게 보면 괴기스러워 보이는 형태의 힘이라, 다른 종족들에게도 거북함을 준 터라 로불랑과 달리 자이웅은 고독한 길을 가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 모든 소수 부족을 통일하여 부족의 왕이 된 자이웅은 뒤늦게 그의 소식을 들은 드래곤들에게 뇌전의 정화를 비롯해 전설의 현자의 유품들을 얻게 되었다.
늦은 나이였다.
너무도 늦은 나이였기에 드래곤들조차 그가 새로운 전설의 현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때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뇌전의 정화의 봉인이 풀리면서 정체되었던, 아니, 그 스스로 완성되었다 생각한 주술이 새로운 묘용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주술로 검과 마법, 정령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갈 수 있었고, 그는 그렇게 너무도 늦은 나이임에도 전설의 현자로서 각성하게 되었다.
그 탄생에 죽음의 지배자에 의해 멸망의 직전까지 갔던 모든 생명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과연 이번 전설의 현자는 전대와 다른 주술의 힘을 더함으로써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의 주술은 죽음의 지배자에게 통했고, 드래곤들과 남은 모든 생명체가 같이함으로써 점차 그들의 세력을 몰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에 핍박받았던 주술이라 검과 마법에 비해 부족함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드래곤들과 자이웅의 고결한 희생으로 죽음의 지배자를 봉인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미비한 형태의 봉인에 불과했다.
비극은 그것만이라면 좋으련만 자이웅이 죽음으로써 역대 전설의 현자가 그랬듯이 다른 형태의 힘을 인간들에게 남겨주지 못했다.
아니, 사실 남겨주었다 해도 인간들은 주술 때처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드래곤들은 그 사실에 아쉬움을 감추며 전대보다 너무도 많이 소모된 힘을 회복하기 위해 깊은 잠에 빠졌다.
세월이 지나,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미비한 형태의 봉인 탓에 죽음의 지배자가 이른 시기에 부활하게 되었다.
비록 본래의 힘에 비해 아주 미약했으나, 드래곤이 잠들어버린 지금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이 당시에 드래곤들을 대신하여 아리스 님께서 이방인이라는 축복을 내렸고, 또한 희대의 현자로 주목받은 젊은 영웅이었던 테무드가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였던지 이방인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테무드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던 중 우연히 전설의 현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다행히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라블랑카스가 남긴 유물 중 현자의 지팡이를 얻게 되었고, 그는 그것을 바탕으로 여러 유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유물들을 바탕으로 대현자의 경지에 오른 테무드였지만, 가장 중요한 뇌전의 정령과 연결된 뇌전의 구슬은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찾는다 하더라도 그는 너무나 늦은 나이였고, 정령에 대한 재능이 없어 드래곤의 도움 없이는 정령과 계약할 수 없었다.
뒤늦게 전설의 반지를 찾게 된 그는 그것과 함께 전설의 현자를 위한 유물들을 숨겨둔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죽음의 지배자를 다시 봉인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이 닿아 죽음의 지배자를 봉인해 낸 그가 죽은 지 1,000년이 지났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야안의 스승인 마론 현자가 그 유물들을 모아 야안에게 건네진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고대 비밀을 알려준 봉인된 고대의 정령은 자신이 봉인되던 시기가 마지막 전설의 현자였던 자이웅의 시대였다 하였다.
그는 드래곤의 부탁으로 드래곤을 대신하여 후대의 전설의 현자를 좇는 이에게 그들의 왕인 뇌전의 정령과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다 하였다.
살아남은 드래곤들도 알았던 것이다.
마지막 봉인이 미흡하였다는 것을. 중간에 봉인이 풀렸을지 모른다 생각했고, 죽음의 지배자와의 결전을 위해 힘을 회복 중인 그들인지라 그 중간에 나서기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본래 이 정령이 봉인된 이 남작성이었던 곳은 예전 마지막 전설의 현자였던 자이웅의 무덤이 있었던 곳이었기에 틀림없이 전설의 현자의 뒤를 쫓는 전설의 추종자라면 이곳을 지날 것으로 생각하여 이곳에 봉인되었다.
하지만, 고대 시절 죽음의 지배자에 의해 이곳이 짓밟혀 그 가능성이 사라졌다.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우연히 정령술에 재능이 있는 칼벨라그 후작에 의해 무역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일이 기이하게 흘러 야안과 만난 것이다.
하지만 야안은 우연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아! 아리스 님께서는 여기까지 예지하신 것인가?’
그랬다.
그분의 말씀이 아니셨다면 어떻게 라타샤 마을을 찾기 위해 갔을 것이고, 로지 님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곳에 봉인된 고대 정령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애초 이곳의 배를 타고 갈 일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 야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대의 정령의 기운은 점차 강해져 가더니 이내 야안의 숨결에 거세게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마친 고대의 정령은 야안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대와 나를 이어준 저 인간이 재밌는 일을 할 생각이더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그대들이 말하는 대현자 정도의 인물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돕는다면 그 또한 어렵지 않다. 이것을 저 인물에게 전하라. 모든 준비가 되었을 때 오래된 약속이 이루어지리라.
그렇게 말한 정령은 야안에게 전설의 시대 정령과 하이 엘프 사이에 있었던 비법을 야안에게 보게 해주었다.
그의 말이 끝이 남과 동시에 야안의 시선은 어느 깊은 숲 속의 한 곳에 자리했고 그곳에서 귀 끝이 뾰족하고 호리호리한 한 인종을 볼 수 있었다. 대단히 아름다운 존재였다.
예전에 보았던 뱀파이어들의 외모도 우수했지만, 이 존재 앞에서는 천박한 외모에 불과했다.
외모에 현혹되지 않은 야안조차 쉽사리 눈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다른 존재가 보았다면 절로 고개를 숙이고 찬양의 대상으로 모실 것이다.
다행히도 뇌전의 정화 덕분에 야안은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어둠 속에도 은빛이 감도는 현실적이지 않은 외모를 지닌 하이 엘프는 특급 정령석을 가루로 만들더니 그것을 가지고 하나의 진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 진은 마법진의 형태를 무시한 새로운 형태의 진이었다. 자신이 그려낼 수 있는 마법진의 형태에 비하면 단순한 면이 있어 야안은 어렵지 않게 그 진을 기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