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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34화 (134/385)

야안 134화

44. 파란토 II

그들의 합공 덕분에 알레한드로를 압박하던 그녀의 공격에 빈틈이 생겨났고, 덕분에 그는 겨우 몸을 빼낼 수 있었다.

“휴~ 죽을 뻔했군.”

지난번에 상대한 푸란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였다.

멍한 표정과는 달리 검의 움직임은 자신보다 더 뛰어났다. 셀 수 없이 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은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검의 묘리들을 저 괴물은 아무렇지 않게 풀어내고 있었다. 일정한 형태라도 있다면 약점을 노려볼 수 있을 텐데, 저 괴물은 그런 것이 없었다.

익히고 있는 검법이 수백 개라도 되는 듯해 종잡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야안이 만들어준 푸란의 갑주 덕분에 저 괴물 같은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의 피해가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정말, 길고 긴 전투가 되겠군.’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어느새 정령사들을 압박하는 란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 * *

동으로는 야안이, 서로는 로지가, 북으로는 로뎅이, 남으로는 타린과 오스 그리고 두 명의 큰 스승들이 자리를 잡았다.

현재 이곳 제2 전장에 있는 제국의 병력이라 해도 이 조합이라면 어찌해보기 어려울 것이나, 그들은 조금 전 로뎅의 마법에 땅바닥을 굴러야 했던 한 사내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떨어진 탑햇을 쓴 악마, 파란토는 붉은 입술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런, 숲의 부족 후손들인가? 재미있군. 주인님의 저주를 이런 식으로 막다니 말이야. 정말 유쾌한 일이 아닌가? 하하하.”

낭랑한 웃음을 터뜨리는 그를 향해 강력한 화염의 더미가 덮쳤다.

회오리치는 그 화염은 파란토를 어떻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 여파는 고급 실크로 된 탑햇과 그의 검은 망토를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그 덕분에 조금 전과는 달리 몰골이 형편없어진 파란토는 이재 재만 남은 탑햇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그를 향해 누군가 다가오며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괴물이 말이 많군.”

야안이었다.

평소와 달리 그의 맑은 눈빛에는 스산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고, 그의 입은 한일자로 굳어져 있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걸음으로 파란토를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잠시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려 심통이 난 파란토였지만 이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야안에 흥미가 생긴 듯 요사스러운 기운이 눈에 일렁거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도 야안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빨라지기 시작했고, 순간 그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그와 30미터 거리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렇게 모습을 보인 그의 검에서 육대검식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과는 차원이 다른 육대검식이었다.

뇌전의 기운이 감도는 육대검식은 지난날보다 배는 날카로워진 듯 보인다. 그러나 파란토가 장난으로 치켜드는 손가락질에 그의 검기는 비켜 흘러갔다.

과거 그가 상대한 푸란이었다 해도 상처를 입힐 그의 공격이 너무도 허망하게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문헌으로 그를 조사한 바 있던 야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왼손에서 파이어 핑거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고, 육대검식 중 가장 현란한 검식인 오식이 대기를 일렁였다.

일이 그렇게 되니 파란토라 해도 겨우 손가락 하나로 막을 수는 없게 되었다. 그는 한 손을 들어 이리저리 휘저으며 저 멀리로 공격들을 흘렸다.

파지직.

하지만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현란한 검식에 그의 옷자락 하나가 뇌전에 타들어 갔다. 그는 타들어 간 자신의 옷자락을 보며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야안을 바라보았다.

“뇌전, 뇌전이라?”

1만 년도 더 된 지난날.

그것은 빌어먹을 도마뱀들과의 전투 끝에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하던 그가 마지막에 본 기운이기도 했다. 주인님과 맞선 최초의 인간이자 초대 전설의 현자가 만든 힘이었다.

모든 사마를 제압한다는 뇌전의 힘은 매번 드래곤들과의 일전 때문에 만나보지 못한 것이었는데, 지금 그 기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수준이라는 게 그가 본 기운에 비해 너무도 조잡해 보였지만 분명 그가 본 기운과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쉬지 않고 몰아붙이는 야안을 비롯해 숲의 부족들의 공격들을 두 손을 크게 휘저어 무위로 돌린 파란토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그의 웃음에 담긴 사마의 기운은 초급 익스퍼트 기사였다면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야 했을 정도로 강력했다.

웬만한 공격 마법 이상의 위력의 웃음을 흘리던 그는 이내 뚝 그치더니 야안을 향해 정중하게 예를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고귀한 분을 몰라보았군요. 설마 이번 대의 전승자이실 줄이야.”

장난기 어린 미소를 가득 물은 그는 대기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다 다시금 신기한 존재를 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그 드래곤은 아직 봉인에서 풀려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거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그를 향해 그의 뒤에 자리하던 타린과 오스가 검기들을 퍼붓기 시작했고, 그 뒤에 자리한 큰 스승들 또한 그에 맞춰 마법을 펼쳤다.

허공에서 불 바람이 떨어지고, 날카로운 검기들이 대기를 찢으며 그를 난자할 듯했으나, 파란토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 모든 공격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악몽 같은 일에 타린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지껄이는 말만큼이나 짜증스러운 놈이군.”

이도 위대한 큰 스승이신 로뎅 님의 마법에 적중되어 움직임이 제한된 것으로 생각하니 오한이 들 정도이다.

대마법과 폭풍 같은 검기들을 장난스럽게 처리한 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파란토를 향해 야안이 물었다. 어느새 살기를 가다듬은 듯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드래곤이 봉인되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그의 질문에 파란토는 검지를 까닥였다.

“맨입으로는 안 되지. 그쪽부터 말해 보시게. 어떻게 얻은 것이지.”

야안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어차피 이자를 죽여야 하니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이방인이다.”

“이방인?”

야안의 대답에 파란토는 여전히 자신의 의문을 풀지 못한 듯했다. 하기야 고대 당시 그의 활동 시기는 짧았다.

대현자 테무드가 나선 덕분에 1년을 채 활동하지 못했으니, 당시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가 잊히던 시기에 그가 이방인에 대한 정보를 알 리가 없었다.

“뭐~ 좋아. 나도 딱 그 정도만 알려주지. 네 녀석이 말하는 야루스 산맥 말이야. 본래 이름이 무엇이라 생각하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던 그는 거대한 얼음의 괴물이 자신에게 퍼붓는 얼음의 정화들을 되받아치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너무 많은 것을 말했군. 이봐, 죽기 전에 내 궁금증은 풀어주는 게 어떤가?”

“쓸데없는 소리.”

단호한 말로 파란토의 말을 끊어버린 야안의 신형이 흔들리더니 이내 파란토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전력을 다하는 듯 그의 공격은 좀 전보다 더욱 현란하고 날카로웠다.

그와 동시에 타린과 오스의 검기 또한 사방에서 그를 압박했고, 두 큰 스승은 악마 파란토의 움직임을 제압하는 마법을 펼쳤다.

동시에, 로뎅의 손길에서 고위 현자 비기너 수준의 마법 10여 가지가 펼쳐졌다. 잠시의 틈 사이에 준비한 대마법들이었다.

그 하나하나가 땅이 무너지고 대기가 찢어지는 것이었는지라, 파란토조차 경시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 공격들 사이로 로지의 얼음의 정화들이 뱀처럼 그를 노리자 그의 몸에 하얀 서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벌레들도 모이니 짜증스럽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젓던 그는 더 이상 방어로는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지라 공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담배 파이프가 들려 있었는데, 평소와 달리 뱀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10미터의 살아 있는 채찍으로 성장하여 공격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방어를 물리고 공격으로 바꾸자 수세에 몰려 있던 상황이 단번에 뒤집혔다.

천지를 어지럽히던 로뎅의 대마법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두 큰 스승들은 자신들이 펼친 속박 마법이 깨졌음을 느꼈다.

과연 대현자 테무드조차 어려워한 존재다운 신위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이 같은 상황에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들은 더욱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 공격 속에 야안의 모습은 없었다.

파란토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를 향해 무언가 번쩍이더니 그를 덮쳤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치는 뇌전과 같았다.

그 힘의 여파에 대기가 요란히 떨어대었고, 일순간 그곳은 낮으로 환해지다 다시 본래의 어둠에 잠겨 들었다. 하지만 쉽사리 본래의 어둠에 잠기지는 않았다. 어둠 속 여기저기에서 그 뇌전의 힘에 하얀 불빛이 번쩍여댔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의 뇌전을 일으켰던 탓에 야안은 그 힘의 반동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뇌전의 정화를 쥐고 있던 그의 손이 요란히 떨리고 있었다.

아직도 그의 손 주위에는 요란한 스파크가 터졌다.

만약 그간 야안이 뇌전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였다면, 그 반동의 기운을 이기지 못해 그 자신조차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 분명했다.

무거운 정적이 일순간 흘렀다.

“아하하하.”

그 정적을 깬 것은 낮게 웃음을 터뜨리는 파란토였다.

하지만 그의 웃음과 달리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야안의 뇌전을 정통으로 맞은 그의 몸의 왼쪽은 거대한 무언가에 통째로 뜯겨 나가 있었다.

그의 무기이기도 한 담배 파이프가 그 순간 막아주지 않았다면 그보다 더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인간이었다면, 아니, 기괴한 힘을 지닌 몬스터였다 해도 그 같은 상처를 입었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 분명한 상태였지만, 파란토는 이제 반쪽밖에 남지 않은 입술로 뱀의 머리 한쪽이 부서져버린 담배 파이프를 물며 고개를 저었다.

몸 반쪽만이 남은 채 연기를 내뿜는 그의 모습에서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 괴기한 모습도 위화감을 일으키는 데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내내 그의 얼굴에 자리했던 장난기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쪽팔리는군.”

낮은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가장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야안에게까지 들리기 충분했다. 그리고 야안은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그가 입은 피해가 크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는 아직도 힘의 여파에 떨어대는 자신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 스스로 리젠을 펼쳐 회복하고는 이내 붉은 실을 비롯해, 육대검식을 그에게 펼치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이자에게 더 이상 피해를 주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서이다.

그의 초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야안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야안은 끝내 그것을 무시했다.

대신 그는 ‘카라’와 ‘토네’를 펼치고 이제 30%밖에 남지 않은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마나에 1스탯을 올렸다.

덕분에 순식간에 그의 마나는 80%를 채웠고 그의 무위는 조금 전 그가 보였던 것만큼이나 날카롭고 위력적이었다.

야안이 행동하자, 그 뒤를 이어 로뎅과 로지가 파란토를 공격했고, 두 큰 스승도 현재 그들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여 펼쳤다. 뒤를 이어 조금 전처럼 타린과 오스 또한 파란토의 측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쪽 다리로 위태하게 서 있는, 머리의 절반이 날아갔음에도 어떻게 살아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존재에게 펼치는 공격이라기에 과함이 있어 보였으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큭큭.”

요란한 공격의 파동 속에서 파란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내 웃음소리가 끊겼고, 그와 동시에 요란한 공격들을 한 몸으로 받은 파란토의 몸에서 무언가 번쩍이더니 그것은 큰 스승인 케빈을 향해 날아갔다. 예상을 뛰어넘는 공격이었기에 그들을 보호하며 공격하던 타린과 오스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크으윽!”

단 한 번의 공격이었으나, 그것으로 케빈의 몸의 3분의 1이 날아갔다. 단명의 비명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한 채 중급 현자 마스터에 달하는 강자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만약 푸란의 갑주를 입지 않았다면 그는 형체조차 알 수 없게 사라져 버렸을지 모른다.

동료가 죽었지만, 그들은 그의 죽음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 여유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전 케빈을 공격하던 그 번쩍이는 회색빛 수십 개가 그들을 몰아치기 시작한 탓이다.

그 빛은 파란토를 향하던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타린과 오스, 그리고 남은 큰 스승인 타이카가 힘을 모아 그 공격을 막았고, 얼음의 정령과 일체화된 로지는 거대한 얼음의 장벽으로 그 공격을 약화해 지워냈다.

그 갑작스러운 공격에 모두가 위험에 처하게 되자 로뎅은 재빨리 대마법들을 펼쳤고 덕분에 그의 공격의 반 이상을 막아낼 수 있었다.

덕분에 극성에 달하는 건곤대나이를 펼쳐 뒤로 재빨리 물러서며 회색빛 공격을 흘리던 야안은 잠시 틈이 생기자 파란토를 향해 다시 신형을 날렸다.

그는 보았던 것이다.

파란토의 상태가 점차 호전되고 있음을 말이다. 담배를 길게 빨아들일수록 그의 반밖에 남지 않은 몸이 회복되고 있었다.

검은 재가 떨어져 나가더니 회색빛을 내는 일렁이는 무언가가 그의 몸을 덮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타버려 몰골이 흉악했던 푸른색 머리카락이 재생하며 풍성해지기 시작했고, 그 밑에 자리한 두개골이 복구되었으며 이내 눈이 만들어지고 코와 입과 더불어 얼굴에 윤곽이 일어나더니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뒤를 이어 목이 생기고 가슴이 만들어졌으며 왼팔과, 다리가 만들어졌다.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파이어 피스트를 비롯해 강력한 검기들을 퍼붓는 야안을 향해 왼손을 뻗어 크게 휘저었고, 곧 거대한 암흑의 마기가 야안을 덮쳤다.

그것은 야안이 펼친 마법과 검기들과 부딪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분적으로 틈이 생겨났지만 모든 것을 지워내지 못했다.

결국, 야안은 ‘토네’로 인해 더욱 빨라진 몸으로 건곤대나이를 펼쳐 그 힘을 흘리기 위해 다가온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야안의 그 모습을 보던 파란토는 그제야 담배 연기를 내뿜었고, 연기는 대기에 사라지지 않은 채 그의 몸을 휘감더니 처음 보았을 때의 복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런, 케빈 자네가 이렇게 가버리다니.”

뒤늦게 동료의 죽음을 안 타이카의 원통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그제야 큰 스승 중 한 분이 돌아가셨음을 알고 야안은 입가를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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