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37화
로지는 자신이 깨어난 이후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 야안이 자신의 감정을 다 추스르자 그때야 로뎅이 자신에게 부탁한 유물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야안은 로지가 로뎅이 쓰던 공간 주머니를 자신에게 건네자 의문을 보였고, 그의 모습에 로지는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로뎅 님께서는 알고 계셨네. 자신이 이번 전투에서 죽는다는 것을 말일세. 그리고 이것은 그대가 진리의 길을 가는데 지침서가 되었으면 해서 그분이 남기신 것이네.”
“아…… 제가, 이것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야안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겨우 정리된 감정이 다시 올라오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진리의 길을 걷는 자답게 그는 가까스로 자신의 감정을 정리했다. 그런 그를 보던 로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네. 그대는 충분히 그분의 유품을 받을 자격이 있네. 아니, 그대만이 그분의 의지를 가장 잘 따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하네.”
야안은 그의 말에 로뎅의 유품이기도 한 공간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 로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여러모로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야 로지의 속 깊은 배려를 야안은 알게 되었다. 확실히 겉으로 보이는 냉정한 모습과 달리 로지의 마음 씀씀이는 깊었다.
만약 자신이 정신을 차린 당일 날 그 유물을 받았다면, 당시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 정리하지 못한 야안은 그분의 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지는 다행히 야안이 로뎅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분의 의지를 받아들인 듯하자 기뻐하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공간의 주머니 안에는 21권의 책과 마법 물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마법 재료들이 자리했다. 과연 숲의 붉은 눈 부족의 큰 스승이며 또한 숲의 위대한 큰 스승이었던 그분답게 그가 남겨준 마법 재료들은 하나같이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상급 마정석만 해도 5개나 자리했고, 미스릴은 아주 뛰어난 상질의 것으로 5kg이나 있었다. 그 외 중급 마정석이 43개였으며 마법 시약 또한 그 종류가 21개나 되었다. 또한 그 외에도 요정의 모래라는 것이 있었는데, 야안은 예전 책에서 말로만 듣던 그것을 발견하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요정의 모래는 겨우 어른 한 주먹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볼품없는 양에 비해 이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요정의 모래는 마법 물품에 관심이 있는 현자들이 꿈에서도 바라는 물건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야안이 가지고 있는 마나석 만큼은 아니지만, 돈으로 주고 산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처럼 귀한 취급을 받는 것은 바로 어린 아이의 손가락 마디 정도의 양만 있다면 자신의 바로 위 단계인 마법물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시절 엘프의 사촌이라고도 불리던 요정족이 죽게 되면 모래로 변하게 되는 데 보통 이 모래에 요정의 살아생전의 기량이 자리해 그 같은 신비로운 일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의 지배자와의 전쟁 이후 이제 그 자취를 감춘 터라 요정의 모래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기도 했다.
아주 고운 입자를 지닌 요정의 모래를 만지작거리던 야안은 과연 그의 초감각을 통해 아주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게 되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명체를 보는 듯했다.
“하, 정말 이야기 대로군.”
야안은 작게 중얼거리다 이내 이 물욕에 욕심이 없는 자조차 크게 흔들릴 그 귀한 마법 재료들을 뒤로 한 채 로뎅님께서 남기신 책들을 살폈다.
아무런 제목이 없는 그저 날짜가 적힌 표지가 있는 11권의 책은 그분의 수련일지였다. 야안이 홀로 마법을 익힌 탓에 알게 모르게 기초적인 지식이 깊지 못했는데, 그 수련일지를 통해 야안은 자신이 걸어온 진리의 길을 다질 기회가 될 것이었다.
이것은 아직 야안이 모르고 있었으나, 그것은 앞으로 고위 현자에 도전할 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급현자 마스터의 자리까지는 그의 그 뛰어난 이방인이라는 재능과 그의 절절한 노력으로 올라설 수 있었지만, 고위 현자부터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고위 현자부터는 진리의 문을 두드리는 준비를 마친 자만이 올라설 수 있었다. 자잘한 물줄기가 결국 모여 결국 거대한 강을 이루듯이 그는 자신이 지나친 것들을 살펴보아야 했다.
그런 이유로 현자들은 어떻게 보면 돈 낭비라고까지 볼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마법 물품을 만드는데 시간을 빼앗긴다.
잠시 11권의 책을 살펴보던 그는 이내 남은 10권을 책을 살폈다.
그 10권의 책에는 앞으로 야안에게 필요한 조언들이 자리했다. 상세하게 풀어쓴 듯 그 책의 글에는 고심의 흔적들이 보였다.
로뎅은 책의 가장 겉장에 때가 되지 않으면 읽지 말라는 충고를 손수 적어두기도 했다.
“아, 아…….”
거기까지 로뎅 님이 남기신 유품들을 다 살피던 야안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려내렸다. 그의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
“아……. 정말이지. 나는 멍청한 놈이구나.”
야안은 자책했다. 그는 스스로 멍청함에 다시 자책하고 또 자책하였다. 정말이지 자신은 멍청한 짓을 했다.
‘끝내, 그분을 스승님이라 부르지 못했다.’
그는 이미 자신을 제자로 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그분은 같은 부족의 사람이 아님에도 자신을 부족의 다른 스승들과 차별 없이 대해 주었으며, 시간이 지나며 그분께서 은은히 보여주시던 그 마음은 자신의 두 번째 스승이신 위론 님 못지않은 것이다.
한데, 자신은 그런 것을 몰랐다. 부족한 자신은 악마 파란토와의 일전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지난날을 회상하니 그분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애정이 있음을 상기한 야안은 자신의 눈물을 채 닦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스승님. 스승님. 죄송합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머리를 흩뜨리며 세상을 떠나버린 두 번째의 스승님을 마음속에 묻기 시작했다.
‘차아악-’
야안은 잠시의 복수면을 통해 지난날 그 후회스러운 일을 상기하게 되자 쓴웃음을 지으며 욕조를 나섰다. 몸을 닦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문에 자리한 작은 유리창에 무언가가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용은 밀리 상단주가 같이 식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마침 날이 저물어가는 저녁이라 복도를 지나가는 하인에게 부탁해 이를 받아들인다는
다시 침대로 돌아온 야안은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아 뇌전신공을 운기 했다.
지난 오일 간 그의 몸 상태는 이제 90% 가까이 회복에 성공했다. 덕분에 그의 수련 또한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힘과 민첩이 상당히 늘어난 탓에 아직도 세밀하게 힘을 다루는 데 힘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 기량의 60%까지의 무위를 보일 수 있게 되었다.
뇌전신공이후 정령의 호흡을 한 그는 곧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행들을 불러 모았다. 베르뎅은 정령을 통해 이곳의 음식이 이 백작의 영지에서도 알아준다는 말을 들었기에 대단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식사는 2층에 자리한 부유층을 위해 만들어진 식당에서 하였다. 내려오니 이미 상단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단의 사람들은 야안 일행이 입구에서 만난 사내로부터 이미 말은 들었지만 그 몰골이 지난날과 심히 대조될 만큼 좋지 않자 크게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 중 특히 일행들에게 유난히 정을 내주었던 제코는 그 순박한 인상이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눈가를 붉히며 야안에게 인사를 드렸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야안은 이내 또르륵 눈물을 흘리는 제코에 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걱정하지 마라.”
그는 순박한 제코의 등을 두드리며 마케를 펼쳐 그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그리고 곧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밀리에게 작게 목례를 보이었다.
“거래가 잘 끝난 것 같아 다행이오.”
야안의 말에 밀리는 몸을 숙이며 예를 보인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행히 하시고자 했던 일은 잘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피해는 있었지만, 무사히 목적을 이룰 수 있었지요.”
그 피해라는 것이 상당했기에 대답을 하는 야안의 얼굴은 씁쓸했다. 밀리 또한 그 마음을 눈치챘기에 더 이상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 중 반 이상이 불구가 된 터라 먹기 편한 음식으로 밀리는 다시 재주문하였다. 야안은 그의 그 세심한 배려에 다시금 목례를 보이었다.
나오는 음식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그 음식들 하나하나가 충분히 베르뎅의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음식은 대단히 좋았지만 오스는 다른 때와 달리 일찍 식사를 끝내었다.
이 같은 귀하고 신기한 음식들에 먹성이 대단했던 친구가 생각나 식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남은 평생 이 같은 일들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귀족들만큼이나 소식에 능한 이들은 상인들이었기에 야안은 현재 제 2 전장의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다.
제국의 새로 떠오르던 괴테 자작의 의문스러운 실종과 더욱 강화된 왕국 연합 측의 전력으로 현재 전장은 지난번과 달리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 전투에서 워낙 큰 피해를 본 터라 여전히 수세에 처한 실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일방적이지 않았다.
듣기로 베르뎅이 자신들의 전투의 흔적을 어느 정도 소각한 터라 제국은 그 같은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아직 모르는 듯 보였다.
당시 살아남은 수색대의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그 일이 알려졌을 수도 있다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정신적인 피해가 생각한 것보다 대단하였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곁에서 지켜보던 나조차 경악할 일들이었으니.’
당시 악마에게 신경을 쓰느라 그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들은 오랜 시간을 그 정신적 피해에 시달려야 할지 모른다.
그날의 식사는 처음 기대한 것에 비해 조촐하게 끝이 났다.
지난 헤어지기 전과 달리 큰 상처들의 흔적이 자리한, 몇몇은 불구가 되기까지 한 숲의 부족들에게 함부로 위로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이들이 상인이었고, 그 외의 이들도 굴곡이 많은 인생을 살아온 이들이었기에 자신의 말을 아꼈다.
어설프게 위로의 말보다 침묵이 더 도움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사를 끝마친 야안은 자신의 제자의 그간 성취를 살펴주었다. 헤어진 지 열흘도 안 되는 시기이었지만, 제코는 그 하루가 발전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가파른 곡선을 타고 있었다.
제코는 벌써 십사수검법이 손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야안은 헤어지기 전 그에게 지적한 단점들이 상당히 보완된 것을 보고 감탄하였다.
영지의 수많은 검사를 지도해주었던 그였기에 그처럼 단점을 보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그의 타고난 재능도 재능이겠지만, 그간 그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확실히 흡수력이 좋군.’
이 외에도 정령에 대한 부분도 그는 큰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워낙 물과 친화력이 좋고, 또한 머리도 수재에 달할 정도로 뛰어난 편이라 이론 부분도 베르뎅으로부터 이미 숙달된 상태였다.
이대로 간다면 2달 안에 정령과 계약을 할 수 있을 듯 보였다.
야안은 제코가 베르뎅에게서 받은 정령석이 상급의 것으로 그의 상성과 잘 맞는 물의 정령과의 계약은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제코의 검을 다 봐준 뒤 시간을 보니 이미 창밖의 하늘은 달이 중천에 떠 있음을 야안은 보았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지만, 과연 대도시라서일까?
다른 영지와 달리 창 밖에서 보는 밖의 풍경은 하늘의 별이 떨어져 내린 듯 반짝 반짝이며 대낮 못지않게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소라면 이 정도의 모습은 아닐 테지만 역시 상인들이 늘다 보니 자연 그런 장관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야안은 그 모습을 잠시 말없이 보다 집에서 자신을 기다릴 가족들이 생각이 났다. 사랑스러운 제 아들과 착하고 귀여운 아내, 그리고 자신에게 기적과 같은 삶을 선사해 주셨던 부모님. 그 이외에도 장인·장모님과 그의 주군이신 마크 자작, 자신의 제자들과 충실한 수하인 챈들러 또한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선물도 사지 않았군.’
그에게는 이미 상당한 여유자금이 있었던 터라 그는 선물을 사러 나가기로 했다.
밖을 나가니, 방에서 보았던 것보다 그 이상으로 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문제가 일어나기 쉬운데, 그것 또한 전쟁 물자 준비로 치안이 어느 때보다 강화된 터라 물건을 구경하러 나온 야안은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이 전쟁 상인들이라 하지만, 전장에 나간 이들 중 귀족들이 상당히 많았기에 사치품의 종류나 그 수도 적지 않았다.
야안은 그것 중, 멜리나에게는 은을 체인으로 만들어 꼬아놓은 것 사이로 보석과 진주들이 달린 팔찌를 샀다. 솜씨가 좋은 장인이 만든 것으로 그 가격은 비싼 편이었지만, 상당히 그녀에게 어울려 보였기에 이내 값을 치렀다.
어머니에게도 몸에 좋은 기운을 가진 사파이어만큼이나 비싼 갈색 수정구로 만든 목걸이를 샀고, 아버지에게도 몸에도 좋은 연초와 더불어 그 손잡이의 질감이 좋은 지팡이를 하나 구입하였다.
자신의 부모님보다 많이 어리신 장인·장모님에게는 화려한 보석 반지 세트를 맞춰 드렸고, 그의 검소한 제자들 또한 약간의 사치가 자리한 장식품들을 골라 주었다.
몸이 좋지 않음에도 오랫동안 말을 타야 하는 자신의 주군을 위해서 그는 저 멀리 융 제국에서 수입해 왔다는 그 충격의 반동을 확연히 줄인 말안장을 골랐다.
마법 물품인 만큼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야안은 어려움 없이 돈을 꺼내었다. 이후 자신의 경지에 맞지 않은 검을 쓰고 있는 챈들러에게 검을 살피던 중 야안은 그의 체격에도 잘 맞는 명검을 찾아낼 수 있었다.
상인에게 듣기로 본래 이 검은 현재 2전장에 나가 있는 기사에게 갈 물건이었지만, 지난 전쟁에서 크게 패하면서 갈 길을 잃은 검이라 했다.
야안이 살펴보았을 때 이 검은 등급이 C+ 에 들어설 정도의 명검이었다. 이것이라면 충분히 챈들러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 줄 것으로 보였다.
상인이 양심적이었던지 가격 또한 크게 비싸지 않았다. 잠시 기운을 밀어 넣어 검기를 생성해 본 야안은 약간의 미스릴이 섞여 있었는지 자신이 예전에 쓴 검보다 기운을 받아들이는 게 더 좋은 것을 깨닫고 만족스러운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기뻐했으면 좋겠군.”
충동적으로 움직인 것치고는 마음에 든 선물들을 구입한 터라 야안은 만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처소로 돌아가는 길은 시장의 분위기만큼이나 가벼웠다.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체만 왕국에 도착한 그들은 상단과 헤어지었고, 야안 또한 숲의 부족들과의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과 같이 있은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야안은 마치 십 년을 같이 한 동료로서의 정이 싹 튼 뒤라 그 헤어짐이 아쉬웠다.
그는 그런 그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마법물품이었다.
재료는 그의 스승께서 남겨주신 마법 재료들이 상당했기에 그들에게 적당한 마법 물품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야안은 이들에게 보호 마법인 ‘카’와 그간 자신이 손을 본 ‘토네’ 의 약식 형태의 혼합 마법 물품을 만들어 주었다.
청동의 강도를 자랑하는 ‘카’는 물론이고, 자신의 초감각이 필요할 정도의 ‘토네’ 의 십의 일 정도인 이 약식 마법은 몸의 무게가 지금의 30% 정도로 느껴질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이 두 마법이 섞인 마법물품은 저주받은 숲에서 생길 여러 전투에 상당한 도움을 가질 것이다.
더구나 중급 현자 마스터에 오르게 되면서 사용되는 마나의 양은 줄고, 마법의 지속 시간은 길어졌기에 야안이 로뎅에게 알려 준 뒤 앞으로 숲에서 만들어질 ‘카’의 방어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마법 물품이었다.
헤어지는 날, 그들에게 이것을 선물한 야안은 다행히 그들이 크게 기뻐하는 것을 보고 만족함을 보였다.
특히 검을 쓰는 알렌한드로와 오스인 경우는 이 가치를 단번에 알았다. 갑옷을 입은 효과와 몸의 무게를 삼 분의 일로 줄인다니. 그것만으로도 지금보다 2배 가까운 몸놀림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 이건 정말 너무 귀한 선물은 받은 셈이군. 자네의 선물 덕분에 여분의 목숨을 가지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
오스의 말에 야안은 볼을 긁적이며 손을 저었다.
“별것 아닙니다. 좋아해 주시니 기쁠 따름입니다.”
그런 야안의 말에 알렌한드로는 미소를 지으며 부정했다.
“하하. 결코 그렇지 않네. 울창한 나무나 바위와 같은 지형이 불균형한 숲의 전투에서 이것의 가치는 대단하네. 고맙네.”
현자인 타이카 또한 이 물품으로 전투 시 자신이 움직일 범위가 넓어지게 되었기에 고마움을 보였다.
그렇게 헤어지는 그날의 그들은 라콘 못지않게 대단히 많은 술을 마시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제코 또한 두 달 간 그들과 함께하면서 정을 쌓은 터라 그들 못지않게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이른 아침,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떠날 여정을 준비했다.
본래 주인이었던 케빈의 검은 야쿤은 그간 정이 든 제코에게 선물을 해 준 상태였다.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그들은 지난밤 아쉬움에 대해 많이 풀은 터라 헤어짐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부디 다음에 볼 때도 이처럼 건강하기를 바라네.”
알렌한드로의 말에 야안은 웃음을 보이며 목례를 하였다.
“하하하. 네. 알렌한드로 님도 그때까지 건강하십시오.”
그렇게 말을 보인 그는 다른 부족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로지에게 부탁하였다.
“부디 스승님과 친우에게도 안부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지. 아마 사제는 자네의 지금과 같은 성장에 크게 기뻐할 걸세.”
자신과 달리 인간에 대한 정이 넘치는 그가 자신의 제자의 그 놀라운 정령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제 일보다 더 크게 기뻐할 것이다.
‘드르륵-’
마치 그들과의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인사가 끝날 때쯤 성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이후 성문을 나선 그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갈림길에서 나뉘었다. 야안은 그날의 태양이 유난히도 눈이 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말한 정책들을 정리한 것이니 이대로 일을 진행하시게.”
약간은 마른 체형을 지녔던 탓인지 웬만한 귀족의 영애들보다 아름다운 사내가 내준 한 권의 책자만큼이나 두꺼운 정책에 관리는 그 괴물 같은 능력에 잠시 질린 듯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올해로 관리 일을 한 지 2년이 된 그는 이분의 능력에 매번 혀를 내둘렀다. 예전에도 그 능력이 대단하다 느꼈지만, 총관님에게 발탁된 제자와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그의 능력은 날개를 단 듯했다.
덕분에 다른 여타의 자작 영지 못지않게 발전해 가고 있게 되면서 점차 늘어가는 행정 일이 무리 없이 소화되고 있었다.
아니, 단지 그의 능력은 그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영지에 필요하다 생각되는 정책이나 공사 등을 서슴없이 추가하여 일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로 보아 짐작하건데 지금 이 두꺼운 책자 또한 자신들이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일거리만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하급 관료를 비롯해 인력이 지금의 2~3배 늘어난다 해도 그는 무리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는 상념을 지워내며 한스가 건네준 두꺼운 책자를 들고 집무실을 나섰다.
“휴~ 이제 하나 끝났군. 보자, 다음은 물자운송이긴 한데. 아직 시기가 많이 남긴 했지만, 좀 일찍 한다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최근 들어 시장이 확장되고, 그 물자를 거래하는 영지도 올해는 2개가 더 늘어나게 되면서 영지에 제법 많은 여유 자금이 쌓이고 있었다.
그는 이 돈으로 기존에 스승님이 생각하신 큰 정책 중 하나인 복지 쪽에 그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도시의 치료사 정도는 아니나 그래도 응급치료나 간단한 병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진료를 할 수 있는 진료사의 수를 늘리고, 전쟁에서 일어난 사상자들에 대한 보상을 확실하게 만든 것이다.
영지가 커지면서 지난 야안이 보여준 보상과 비슷한 수준의 복지가 형성되자, 소문을 듣고 다른 곳에서 온 영지민 중 상당수가 군에 입대하기를 원했다.
아는 이도 없고 또한 아무런 입지도 없는 상태에서 군의 입대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최선이었다.
야안이 있었다면 직접 그들 중 인재들을 뽑았을 것이지만 이를 보는 안목이 없는 한스는 마크 자작에게 부탁하여 눈썰미가 좋은 이들에게 사람을 가려주기를 원했다.
그에 최소 삼 년 안에 지금의 2배의 병력을 만들어낼 생각을 하고 있던 마크 자작은 크게 반기며 스물에 달하는 인재들을 빼내었다.
덕분에 무리 없이 700에 달하던 지원자 중 200 명의 근골이 좋은 이들을 뽑아낼 수 있었는데, 이들은 지금 군사훈련 시설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