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43화
사실 기술자들의 대우는 몇몇 왕국과 제국을 빼고는 그렇게 좋지 못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건설 일이라는 것이 단순 노동이 많은지라 그 일 대부분이 농노와 노예가 많이 쓰여 그 인식이 자연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마일드 왕국은 그나마 그 인식이 낮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기술자라 하면 대부분 천한 일을 하는 이라 생각했다.
탈리아 왕국은 인식이 낮은 곳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숲의 부족의 물건을 진상하였다 해도 이처럼 뛰어난 인재들을 데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야안은 폴톤에게 그간 조사해 온 바젠강의 지도와 더불어 지리적 요건을 건네주었다.
이후 현재 마크 영지의 지도 또한 보여주면 그 자신이 생각한 수준의 관개수로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고, 지도를 살펴보던 그는 가능성이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본격적인 탐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과연 전문가들의 솜씨는 남달랐다.
오랫동안 일한 인부들도 찾을 수 없는 부분들을 지적하며 움직였는데, 영지에서 상당한 지원을 내 준다는 점을 들어 그들은 야안이 생각한 것 이상 수준의 관개수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구나 아직 경지는 낮지만, 후에 물의 정령사가 도와준다는 말이 있었다. 나중에 정령사와 상담을 해야겠지만 폴톤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생각 이상의 거작이 되리라는 생각에 마치 패기 넘치던 20대 때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제코는 한편으로는 검을 수련하면서 정령에 대한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유피테르에게 의견을 물어본 야안은 그가 이대로만 수련한다면 올해 겨울이 오기 전 하급 정령 익스퍼트에 올라설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은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된다면 처음부터 제코가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말한다. 야안 입장에서 아주 기꺼운 일이었다.
수확의 시기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가왔다.
이미 예상한 것처럼 대풍년이라 상당한 금액이 영지에 들어왔다. 또한, 새로 개간된 곳에서 얻은 와인이 생각한 것보다 질이 좋은 터라 내 후년쯤에는 지금 생산되는 와인과 같은 수준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안은 이맘때쯤에서야 마나 집약진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 이 덕분에 챈들러와 한스, 테리, 제코 등 상당한 진전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챈들러와 테리가 전쟁으로 밖을 많이 돌아다닌다는 것을 감안하여 그간 이 마나 집약진을 만들면서 얻게 된 약식 형태의 마타 집약진을 건네주었다.
그 효과는 2.5배가 한계였지만,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을 본다면 그것은 검을 다루는 자뿐만 아니라 현자에게도 보물과 같은 물건이었다.
뇌전의 정화의 봉인의 일부가 풀린 영향 덕분인지 야안은 하급 정령 익스퍼트에 올라서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그의 뇌전의 힘은 더욱 세세한 형태로 펼쳐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일정 이상의 범위 안에 중급 유저 이상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상대를 일시적으로 상태 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변수가 많은 전장에 들어선다 했을 때, 상당한 위력을 보일 것이다. 굳이 막아서는 방패를 치지 않아도 자신을 포진하는 상당수의 적을 약간의 힘으로 쓰러뜨릴 수 있다는 뜻이니 적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해되지 않는 괴물과 마주친 기분일 것이다.
그 외에도 능력의 증가에 맞게 검과 마법 또한 수준이 올라 이제 푸란과의 전투의 승률 또한 80%로 올라섰다.
수확철이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긴 야안은 천천히 아들인 아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재능이 뛰어난지라 야안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었다.
아론의 입장에서는 야안의 가르침은 상당히 반가운 것이다.
이제 집에서 읽은 책도 없어졌고, 영지의 총관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또래와 어울리기 어려운 아론은 공부를 하나의 놀이로 생각했다.
아버지인 야안의 가르침은 하나같이 흥미진진한 것들이었다. 수학적인 지식이나 철학, 역사 등 그것들은 알면 알수록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깨닫게 만들었다.
아론은 아버지인 야안은 마치 모르는 것이 없는 존재라 생각했다. 무엇을 물어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답을 내어주니 아론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할 일이다. 그렇게 지식이 쌓여 갈수록 아론은 왜 사람들이 아버지를 존경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야안은 두 달 전 이제 4살이 된 제 아들의 재능에 감탄하였다.
진실의 눈으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재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가르치며 확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이는 자신처럼 스탯이나 레벨이 적용되지는 않지만, 그 머리는 천재의 반열에 들어섰으며 몸의 근골은 테리 이상이었다.
또한 이제야 알아본 것이지만 아이는 정령에 대한 재능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방인의 능력을 지닌 자신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았다.
아직 어리어 장난기가 있으나, 그 나이대의 아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었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신중한 성격으로 바뀔 것임을 말해준다.
나이가 어릴수록 마나 수련을 하는 것이 좋은 터라 야안은 고민 끝에 아론에게 마나 수련을 시키기로 했다.
상급 익스퍼트에 달하는 자신이 직접 운기를 도와주는 것이었고, 그가 가르치려는 마나 심법은 이방인이 처음 얻게 되는 초급 마나 심법인데 이것은 매우 안정성이 높았다.
아론은 마나 심법에 대한 것을 책에서 읽은 바가 있었던지라 얼굴에 홍조가 들 정도로 살짝 흥분해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돌아가신 큰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위인전에 나오는 그 멋진 기사들이 그 같은 힘을 휘두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아 아론은 내내 흥미로운 얼굴을 보였고, 야안은 그런 아들에게 마케를 펼쳐 진정하도록 충고했다.
“아빠가 가르치는 이 마나 심법은 비록 안정성이 높은 것이기는 하나, 이 마나 심법을 운기 할 때 평정심을 잃을 경우 기운의 인도가 제대로 흐르지 않게 되어 오히려 자신을 해치는 독이 될 수 있단다.
기틀이 잡힐 때까지는 내가 마나 심법을 도와줄 것이니 걱정은 없겠지만, 앞으로 너 혼자 이 마나 심법을 운기할 일이 많아질 것이니 너는 이 점을 유의해 두렴. 알겠니?”
머리가 좋은 아론은 야안이 하는 말을 이내 이해했다.
“네, 알겠어요. 아빠.”
그러며 아론이 숨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하자 야안은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잠시 후, 아들에게 마나 심법을 가르쳐 준다는 남편의 말에 멜리나는 자리를 피해 주었다. 막연하지만 남편이 상당히 뛰어난 검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멜리나는 아들에게 하는 교육에 자신이 옆에 있어 해방을 놓으면 안 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안이 영지에서 얼마나 존경을 받는 이인지는 듣는 귀가 있어 절로 알 수 있었다. 만인의 존경을 받는 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던 멜리나는 아들 또한 자신의 남편 같은 이가 되었으면 했다.
곧 아론에게 가부좌를 틀게 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눈을 반개한 뒤, 혀를 천장에 붙이고 들숨과 날숨을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후 기감을 느끼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약식 마나 집약진을 발동시켜 주위에 마나를 풍부하게 하였는데, 과연 아론은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의 아버지 야안의 영향 덕분에 기감이 발달한 것이다.
야안은 아들이 단번에 마나를 느끼자 기꺼워하며, 장심에 손을 올려 초급마나 심법의 운기를 가르쳤다.
뇌전신공으로 야안의 기운은 매우 순수하긴 하지만 워낙 패도적인지라 야안은 기운을 약하게 하기 위해 상당히 신경을 써야 했다.
그 덕분인지 아론은 별다른 고통 없이 초급 마나 심법의 운기를 성공할 수 있었다. 처음 운기의 도인은 사실 어렵다.
몸속의 장기가 새로 들어와 그것을 활성화하는 것과 같아 최소 한 달이나 두 달은 고생해야 했다. 그에 대한 점은 이미 수많은 이들을 가르치면서 알 수 있었는데, 아론은 놀랍게도 첫날 마나홀을 만들어 내더니 이내 어렵지 않게 운기를 시작했다.
‘생각한 것보다 놀라운 재능을 지녔구나.’
무재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기감조차 이 정도로 뛰어날지 몰랐던 야안은 크게 놀라며 기뻐했다. 기감이 좋다는 것은 앞으로 아론이 걸어야 할 길에 상당한 이득을 가져올 수 있었다.
야안은 아들에게 진리의 길 또한 걷게 할 생각이었는데, 확실히 기감이 좋다는 것은 대외적인 몸 밖의 기운을 다스리는 현자로서도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야안은 아직은 아론을 진리의 길을 걷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 공부도 어렵거니와, 그 이전 기초적인 공부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 정도로 습득률이 진행된다면 내년에는 그 기틀을 마련해도 될 듯 보였다.
첫날에 완전히 초급 마나 심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아론은 무언가 배꼽 밑에 무언가 들어섰다는 것에 대해 신기해하였다.
그 기운이 지날 칠 때마다 느껴지는 시원함 때문인지 아론은 처음 익숙하기 전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운기를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래도 야안은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아론에게 기운을 도인해 주었다.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버릇을 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덕분에 아론은 이른 아침과 저녁에 두 번의 운기를 하는데 어느 정도 버릇을 들이게 되었다. 야안은 이후 가끔 아론을 데리고 성으로 데려가, 성에 자리한 책을 읽게 하였는데 아론은 아빠와 성에 갈 때면 소풍을 가는 것처럼 들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이 세상의 전부 같았던 생각의 틀이 깨어지며 거대한 성과 수많은 사람을 보니 이제 주위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아론의 입장으로서는 너무나도 즐거웠다.
아론은 멜리나의 영향 덕분인지 그 외모도 준수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이내 아론이 야안의 아들임을 알고 다투듯이 잘해 주었던 덕분에 성에 가는 일이 더욱 즐거웠을지 모른다.
야안은 자신이 수련할 때면 한스나 제코에게 아들을 맡기곤 했는데, 존경하는 이의 아들이라 그런지 그들은 아론을 상당히 살갑게 대해 주었다.
아론은 제코가 책에서만 보던 정령사라는 사실을 알고는 동경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령사 익스퍼트에 올라선 뒤 정령의 재능을 지녔는지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제코는 아론이 대단한 정령사의 재능을 지닌 것을 알고는 야안에게 허락을 받은 뒤 정령사에 대한 기초를 닦는 공부를 가르쳐 주곤 했다.
야안은 아직 상질의 정령석을 구하지 못한 터라 후에 정령의 길에 대해 가르침을 내릴 생각이었지만, 지금 조금씩 준비를 한다 해서 나빠질 것은 없어 허락한 것이다.
아론은 제코에게서 정령의 언어를 배웠는데, 원래 성정이 밝은 제코라 그런지 물의 정령력을 다루어 허공에 물로 글자로 새기는 등 상당히 흥미롭게 가르쳐 아론은 금세 빠져 들었다.
제코가 정령사에 대해 그 재질을 닦게 했다면, 한스는 아론이 책을 읽게 한 뒤 그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생각하는지 또한 그 내용을 어떤 식으로 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 주었다.
또한 수식에 대한 것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다른 이 같으면 한스의 그 말도 되지 않는 연산 능력에 그 가르침을 미처 따르지 못했을 것이지만 다행히도 아론의 경우 오히려 그런 수업 방식이 더 편해 보였다.
확실히 범인에게는 범인의 수업 방식이 있는 것처럼 천재에게는 천재 나름의 수업 방식이 있는 것이다.
흥미로우면서도 자신이 잘하는 분야라 그런지 아론은 금세 빠져들었다. 하루에 열권을 넘게 읽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서재를 볼 때면 아론은 괜히 가슴이 뿌듯해지곤 했다.
야안의 수련을 마치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갈 때면 아론은 종일 배운 것을 아빠에게 자랑하곤 했는데, 야안은 그 재잘거림이 좋아 내내 미소를 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