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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47화 (147/385)

야안 147화

아니, 만약 챈들러 정도의 실력자가 그를 보호하는 형식의 호흡을 맞춘다면 일천의 최정예 병사들의 포위망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야안은 제자인 한스의 그 능력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이지 대단한 제자였다. 제국의 유명한 불의 탑의 현자라 할지라도 같은 수준이라면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마나가 충만하다 한다면 바로 위 단계의 현자 또한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야안은 생각했다.

그런 탓에 마나의 부재는 아쉬운 일이지만 이번에 완성한 마나 집약진에 의해 그 아쉬움도 빠른 속도로 사라질 것으로 그는 생각했다.

야안은 한스에게 그간 로뎅의 유품을 통해 얻은 자신의 깨달음을 가르쳤는데,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한스의 뛰어난 연산 능력에서 온 예리한 질문은 야안의 경지를 다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처럼 겨울의 추위가 무색하게 야안은 물론 마크 영지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간 야안의 집에서도 경사가 있었는데, 바로 멜리나가 둘째를 임신한 일이었다.

첫째인 아론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멜리나의 의사에 따라 잠자리를 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머리를 지닌 아론답게 이른 시기에 배움에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자 그제야 멜리나는 둘째를 임신하기로 한 것이다.

형제간에 나이 차가 많이 날 경우 우애가 좋기 어려움이 많았기에, 서둘러 아이를 가지기로 한 것인데 다행히 의도대로 그들은 빠른 시기에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소식에 멜리나의 장인이신 한스는 매우 들떠 했고, 그것은 베론 가한 또한 다를 바가 아니었다. 베론 가한이 오랜만에 술을 마실 정도였다. 마리와 장모님 또한 대단히 기뻐하는 눈치였다.

아론은 아직 어려 생명이 태어나는 것에 대해 이해를 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자 들뜬 마음에 여기저기에 자랑을 하며 다녔다.

덕분에 마크 자작 또한 일찍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보이었다.

아론을 후계로 들여 마크 성을 이어가게 할 생각이었던 그는 야안에게 자식이 아론밖에 없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둘째가 생기게 됨으로써 그 말을 하는데 꺼려짐이 없어진 것이다.

아론을 양자로 들인다고 하지만, 성을 마크로 바꾸는 것일 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몇 년을 살지 장담하지 못하는 그로서는 아론의 또 다른 아버지가 되는 것일 뿐이다.

자신이 죽고 난 뒤 아론에게 버틴 목이 될 친부인 야안을 굳이 주군과 가신으로 나누어 그 관계를 어렵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물론 자작 가의 후계를 잇는 만큼 후계 공부를 해야겠지만, 머리가 뛰어난 아론인 만큼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습득할 것이다. 그에 대한 것은 야안이 잘 이끌어 줄 것이니 마크 자작은 이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아론의 재능은 알수록 대단했다.

보통 머리가 뛰어나면 몸치인 경우가 많은 데, 아론은 그 경우에 벗어난 듯 테리가 만들어 주었던 작은 목검으로 장난처럼 휘두르는 모습에서 아이답지 않은 기세가 엿보였다.

지리의 특성상 이곳 마크 영지의 가주가 된다면 전장에 나서야 할 일이 많은 데, 무위 또한 뛰어나다면 전투에서 허무하게 죽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마크 자작은 아론에게 야안이 엮기 시작한 자신의 전술에 대한 정리 본을 테리와 함께 가르쳤는데 이해도가 뛰어나 같이 배우던 테리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야안은 전쟁 물자 준비를 비롯해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유민의 수가 늘어나자, 그 해야 하는 일이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예전 밤을 새우면서 일을 했던 때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크게 힘든 일도 아니었다.

소금 광산이 완공이 되면서 이 일에 대한 책임자로 타일이 지명되었다. 파머의 딸인 모니카와 결혼하게 되면서 파머의 일을 배워 가던 타일은 그 성정이 침착하여 광산의 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야안은 그 외에도 전쟁 물자 준비를 하는 등 영지 일을 같이 진행하느라 늦은 저녁에서야 집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성문을 나서기도 전에 마크 자작이 부른다는 하인의 말에 그는 걸음을 돌려야 했다.

“마크 자작께서 무슨 일이신가?”

야안의 궁금증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보통 집무실에서 뵙는데 이번에는 마크 자작이 자신의 방에서 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혹시 몸이 안 좋아진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들어 야안은 서둘러 걸음을 움직였다.

곧 마크 자작의 방에 도착한 그는 자신을 알리고 방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우려한 것과 달리 마크 자작은 아픈 기색은 없어 보였다.

인사를 하는 야안을 반기던 마크 자작은 재작년에 숙성된 와인을 따며 지난 론이 가져온 유리잔에 따라 야안에게 건네주었다.

다른 때와 다른 그의 행동에 야안은 마크 자작이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 같아 전쟁 물자에 대한 준비와 같은 자잘한 이야기로 어색함을 풀어내었다.

마크 자작은 그런 야안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며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꺼냈다.

“사실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그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기 위해서이오.”

야안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고 말씀하십시오.”

그의 모습에 마크 자작은 잠시 뜸을 들이다, 어렵게 말을 이었다.

“현재 나는 그대의 도움으로 훌륭하게 복수의 과정을 밞고 있소. 그것에 대해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오. 이 점에 대해 미리 감사의 말을 드리오.”

주군의 그 말에 야안은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저 또한 마크 가의 가신이 아닙니까? 주군의 적이면 저의 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야안의 말에 마크 자작은 작게 눈웃음을 지으며 목례를 보였다.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대 덕분에 나의 두 개의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죽기 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소. 하나 그대도 알다시피 나의 고민이기도 하며, 마크 영지의 고민이기도 한 후계의 문제가 있소.”

그 점은 야안도 깊게 고민하는 것으로 야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마크 자작은 잠시 주저하다 말을 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의 사후를 대신하여 이곳을 이끌만한 인재는 외가와 더불어 육촌 이상을 통틀어 보아도 없소. 만약 이전 마크 영지의 사정이었다면 그들 중 한 명에게 맡기어도 될 법도 할 것이지만, 지금은 그러기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 것이오.

하여 내 그대에게 부탁하오. 아론에게 마크의 성을 잇게 하고 싶소. 물론 그것은 대외적인 일이니 지금 당장은 그 생활이 많이 바뀌지 않을 것이오. 그의 후계의 공부를 그대에게 맡길 생각이니 말이오.”

“…….”

예상하지 못한 탓에 야안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무엇 때문에 아론을 후계로 잇게 할 생각을 하셨습니까?”

“아론의 재능을 보았소. 그대와 닮았더구려. 첫 만남부터 나는 확신했소. 그 아이라면, 그 아이가 이곳의 영지의 주인이 된다면 마크 가는 정적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옛날의 영광 또한 되찾을 것임을 말이오. 생각해 보시오. 멍청하고 욕심 많은 이가 가주로 선다면 과연 이곳 마크 영지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소?”

그의 말에 야안은 섣부르게 대답하지 못했지만 공감하고 있었다. 차라리 마크 자작처럼 전권을 일임할 정도의 배포가 된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자신과 영지의 가신들이 어떻게든 영지를 확장하고 정적으로부터 지킬 수 있을 것이니.

한데, 사실 마크 자작 같은 배포를 지닌 이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 마크 자작이 이 문제를 꺼냈을 때 야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 것이다.

야안은 그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영지를 위해서라도 아니, 아들의 미래를 보아서라도 가장 좋은 선택임을 말이다.

마크 자작이 말한 것처럼 그가 본 아들의 재능은 단순히 마크 영지를 대영주로 만들 재능이 있었다. 예전 마크 가의 영광을 뛰어넘을 재능을 가진 것이다. 검이나 마법, 정령 등 그 어떤 재능도 최상급의 재질을 지니었으니 왕국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후작 가를 넘어 공작 가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

유리잔에 든 와인의 색이 은은히 흔들리며 여러 빛깔을 자아낸다. 말없이 와인 잔을 바라보던 야안은 곧 고개를 들어 마크 자작을 바라보더니 대답하였다.

“자작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다만 며칠의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마크 자작은 야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가족의 정이 많은 총관이었으니 이 일에 대해 가족들을 다독거리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단순히 호적을 옮기는 것이지만, 대외적으로 대하는 위치가 달라질 것이니 말이다.

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는지라 마크 자작은 선선히 허락했다. 그리고 야안에게 작게 몸을 숙여 감사의 뜻을 보였다.

“고맙소. 양부로서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이가 되겠소.”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크의 감사 표시에 야안 또한 몸을 숙여 인사를 올리었다. 그들은 잠시 이 후계에 관한 문제에 대한 자잘한 의견들을 나누다 짙은 어둠이 찾아온 뒤에야 그 자리를 파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야안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흘이 지나, 마크 영지는 새로운 공고문에 크게 소란스러웠다.

그 공고문의 내용이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마크 자작의 후계에 대한 것인데, 마크 영지의 총관인 야안의 아들을 마크 자작이 후계로 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크게 반기었다. 지각이 있는 이들일수록 그에 대한 반기는 마음은 더욱 컸다.

더 이상 영지의 미래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야안의 아들이라면 성내의 관료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마치 총관의 어린 시절이 이러지 않았을까 싶었을 정도로 영특하면서도 그 나이 때의 아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어 섣불리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또한 단순히 그 아이의 재능만 보아서가 아니라, 영지 내부에 잠적으로 자리한 현재 마크 영지의 체제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있다는 점을 보아서라도 이번 마크 자작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다.

여타의 다른 친척 중 하나를 후계로 삼는다면 그가 가주가 될 시 불만을 지닌 이들이 들고일어나 현재 영지의 체제를 무너뜨리게 될 것임은 뻔한 일이다.

한데, 야안의 아들이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을 알기에 생각이 깊은 이들일수록 이처럼 반기는 것이다.

마크 자작은 단순히 영지에만 이렇게 공고를 알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줄을 잡고 있는 힐튼 공작 가에도 그 사실을 알리고, 왕성에도 파벌을 보내어 정식으로 아이를 마크의 성을 잇도록 공표했다.

힐튼 공작 가 쪽에서는 지난 카람 백작 가와의 일을 들은 터라 마크 자작의 상세가 상당히 호전되었음을 짐작했다.

그것은 그들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마크 자작의 재능이라면 자신과 척을 지고 있는 카람 백작 가가 귀찮을 정도로 견제를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들은 마크 자작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로 이번 일에 대해 흔쾌히 도와주었다. 과연 힐튼 공작가가 나서기 시작하자, 여러 잡음이 들렸던 이번 마크 후계자 건은 큰 어려움 없이 정식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마크 자작 가는 그런 힐튼 공작 가에게 감사의 의미로 야안이 지난 부족에게서 얻었던 희귀한 진상품들을 바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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