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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48화 (148/385)

야안 148화

49. 농부, 대장장이, 신학자의 길

현재 마일드 왕국의 커다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힐튼 공작 가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미였다.

힐튼 공작 가 쪽에서도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진상품들에 대단히 놀라워하며, 그 보답으로 성장하는 마크 영지가 다른 대영주에게 잡음이 가지 않도록 시선을 돌려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마크 자작 가는 힐튼 공작 가를 따르는 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정식으로 아론이 마크 가의 후계자가 되자, 더 이상 마크 영지를 귀찮게 했던 귀족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괜히 이곳에서 시간을 끌다가는 이후 보복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크 영지의 불안 요소 중 하나가 지워졌다.

아론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상세히 들었기에 조금은 자각을 한 듯 예전보다 그 행동거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워낙 이해도가 뛰어난 터라 어느 정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아론이 마크 성을 잇게 되자 오히려 야안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마크 자작이 후계에 대한 모든 공부를 자신에게 일임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관개수로에 대한 공사나 마을 건설, 난민들의 이적 관련 등이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터라 일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덕분에 야안은 아론에게 귀족 수업을 시키는 한편 아들이 그간 배운 공부 수준을 살피어 본 뒤, 아이가 생각한 것보다 그 수준이 높은 것을 알자 현자 수업 또한 진행하였다.

아론은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힘들지언정 아론은 내내 즐거웠다. 처음 친부인 야안이 책에서만 보았던 현자였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워했지만 이내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과연 아버지는 알면 알수록 놀라운 분이시구나.’

아론은 그 대단한 검술을 지닌 테리 형에게서 자신의 검은 아버지에게 배웠으며, 아버지의 검은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의 경지에 있다 한 것을 들은 바 있었다.

한데 그뿐만 아니라 사실 현자이기까지 하시니 야안을 바라보는 아론의 존경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럭무럭 자랐다.

본래 그 나이대의 아이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초인과도 같았다. 가장 위대한 분이었고, 감탄을 사는 존재였다.

실제 자신의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는 존재라면 그 존경하는 마음은 끝을 모르고 올라갈 것이다.

아론은 자신이 현자 공부를 한다는 점이 너무 신기해 룬 언어를 익히는 데 푹 빠져들었다.

야안은 아직 아론의 뼈가 무르다는 점을 생각해, 본격적으로 검을 가르치기보다는 탈론 수련법 중 자신이 고안한 약식 형태를 아론에게 지도했다.

훗날을 생각하여 기초 체력 향상과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훈련인데, 이미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끝없는 아론은 별다른 투정 없이 잘 따랐다.

야안은 한 달간 아론을 가르치면서 좀 더 정확하게 아들의 재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들은 암기력도 뛰어난 편이지만 그보다 연산 능력은 더 뛰어났다.

경이적인 연산 능력을 지닌 한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현자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것이었으니 어쩌면 한스와 비슷한 수준의 연산 능력을 키울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암기력의 수준도 대단해 이대로라면 5년 안에 룬 언어를 마스터할 것으로 짐작했다.

그 외에도 타고난 신력이 있어서인지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처음부터 무리 없이 잘 따랐다. 이에는 그가 근기 또한 있어서인데 야안은 그 점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

타고난 성정 중 근기는 그가 가르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한데 성정이 그러하니 큰 짐을 내려놓는 듯했다.

그처럼 야안이 후계 수업을 하는 한편으로 마크 자작 또한 전쟁 준비를 하면서 간간이 시간을 내어 자신의 후계가 된 아론에게 전술의 기초를 잡아 주었다.

물론 단순히 딱딱한 문헌형식이 아닌 아이에게 있어 재미마저 느껴질 정도의 전쟁놀이 느낌으로 가르치었는데, 이미 몇 달간 마크 자작에게서 알게 모르게 배운 바가 많았던 아론은 그 기초를 차근차근 다져갔다.

그렇게 다가오는 따뜻한 봄날처럼 마크 영지의 후계인 아론의 앞날은 창창하였다.

* * *

6개월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 시간 동안 마크 영지에 크고 작은 일이 생겼지만, 그중 가장 큰일이라 한다면 역시 지난 카람 백작과의 전투일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부지런한 첩보 일을 통해 카람 백작 측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병력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수가 놀랍게도 칠천이나 되었다.

그야말로, 더 이상 후환을 두지 않겠다는 카람 백작 측의 강력한 의지였다. 단순히 숫자만 채운 칠천이 아니었다.

병사 하나하나가 정예였다. 그중 천오백은 카람 백작 가에서 자랑하는 기병단 중 하나인 붉은 물결이었고, 중장병이 일천이며 그 외, 병과 또한 적절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더구나 그 지휘자는 최근 상승세를 이루고 있는 붉은 검 라테온이었다.

병사도 강군이었고, 그를 지휘하는 지휘관 또한 명장의 반열에 들어선 이었다. 말 그대로 놀라운 군세인 것이다.

더구나 병사만 칠천이라는 말이지, 그 외, 잡스러운 일들을 처리하는 농노병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일만이 넘었다.

일반적으로 그 같은 병력이 일어선다면 시골에 자리한 자작 영지의 입장에서는 성을 봉쇄하여 수성을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마크 자작은 오히려 수성보다는 공세에 나섰다.

“생각한 것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그간 훈련한 사천오백의 병과를 이끌고 성을 나섰다.

그는 중 이천오백의 기병 중 오백의 기병을 푸리에게 주어 나프롬 자작 가 측에서 일어난 병력을 저지하게 하였다.

이제 악만 남은 나프롬 자작 가의 병력은 이천이 넘었지만, 자금줄을 막은 터라 그 훈련 수준이나 병기의 질은 형편없었다.

능히 오백의 기병만으로도 이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이미 푸리는 지난 몬스터 토벌에서 지휘관으로서 어느 정도 그 능력을 쌓았기에 단순히 숫자만 많은 나프롬 자작 가의 병력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빠른 기동력을 지닌 기병을 셋으로 나누어 밤낮으로 그들의 허리를 찔러 괴롭혔고, 그들의 피로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일시적으로 몰아쳐 수장들을 베었다. 사정을 봐주지 않고 백인장 이상 장수의 목을 쳐 버린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되자 아직 2배 이상이 넘는 적병들도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구심점이 없는 병사들은 힘이 없었다. 만약 이들이 오랜 전투를 함께 나눈 강병이라면 그처럼 어이없이 전투가 끝이 나지 않겠지만, 그들은 나프롬 자작 가가 억지로 끌어모은 병사들이었다.

영주에 대한 충성도 따위는 그들에게 없었다.

포로들의 수는 일천하고 삼백오십에 달했다.

그에 반해 푸리가 이끄는 오백 기병 중 전사자는 서른다섯 정도에 불과했다. 대신 스물에 달하는 말을 더 잃어야 했는데, 다행히 포획한 말의 수가 백 오십에 달한 터라 큰 손해는 아니었다.

나프롬 자작 가를 상대하는데 나흘이 걸린 터라 푸리는 서둘러 움직였다. 전리품을 마크 영지에 데려다 주고 움직이려면 일정이 빡빡했던 탓이다.

덕분에 포로들은 지옥 같은 강행군을 겪어야 했다. 푸리의 성격이 직선적인 면이 있어 목적을 달성하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세차게 몰아치는지라 이들은 탈출하려는 의지조차 꺾여 있었다. 오는 내내 그럴 틈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들은 잠시의 시간도 쉬기 위해 최대한 체력을 아껴야 했다.

본래라면 칠일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이틀을 당겨 오일만에 도착한 푸리는 상당량의 전리품을 야안에게 인계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다행히 영지에 말이 여유가 있어 지친 말을 새로 바꾼 터라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었다.

그렇게 푸리는 마크 자작이 예상한 것보다 나흘이 빠른 시간에 합류할 수 있었다.

전쟁은 어렵게 흘러가고 있었다.

처음 마크 자작의 기습에 병력의 10%를 고스란히 내줘야 했던 카람 백작 측이 거북이가 움직이듯이 신중에 신중을 더하면 움직이고 있었던 탓이다.

중장병을 앞세우고 석궁병과 단창병이 그 뒤를 보호했으며, 창병이 그들 사이에 위치하자 마크 자작이 자신 있어 하는 기병의 전술이 묶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마크 자작은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푸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며 중간 중간 거북이 같은 그들의 위로 활을 날리거나 북과 징을 쳐 그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처음 워낙 호되게 당한 상태에서 라테온이 마치 살얼음 위를 걷듯이 신중을 기하니 이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상당했다. 그런데 거기에 긴장감이 풀릴 듯하면 적들이 활을 쓰거나 조금의 휴식도 이루지 못하게 북과 징을 쳐 괴롭히니 그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상황은 라테온 또한 알고 있었지만, 그는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직접 부하들을 독려하며 움직였다.

단 한 차례였지만 마크 자작이 이끄는 기병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자신이 이끄는 붉은 물결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을 듯 보였다.

말을 타는 솜씨만이 아니라,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에서 개개인의 기량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조장이라 생각되는 이의 검의 수준이 중급 유저에 달했고, 그 외의 이들 또한 하급 유저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던 이제 막 스물이 된 듯한 사내의 검은 그도 모르게 감탄할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라테온은 그 모습에서 그가 몇 년 되지 않아 익스퍼트에 오를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저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그때의 그 같은 피해가 있었던 것인가?’

그는 상급 유저의 끝자락에 자리했다. 검 쓰는 움직임은 대단히 가벼웠고, 좋은 심법을 익혔는지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마나의 부족에 대한 곤란함을 보이지 않았다. 이 같은 자가 앞서 돌격형태로 나서면 기병의 특성상 강력한 힘을 보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들 기병은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한 강력한 합격진을 펼친 탓에 그가 이끌던 일천의 기마병은 마치 삼천에 달하는 기마병이 휘젓는 듯한 위력을 보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섣불리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사내와 그 밑의 중급 유저의 끝자락에 자리한 백인장들의 합공에 휘말린다면 그는 전투에서 이기는 것은 둘째 치고 그 합격진에서 빠져나오는 것만으로도 급급해할 것이 뻔했다.

지금은 기회를 노려야 했다. 때만 잘 잡는다면 정련된 기병인 붉은 물결과 함께 왜 자신이 붉은 검으로 불렸는지 이들은 알게 될 것이다.

마크 자작이 데려온 궁병은 500 정도였고, 이런 상황을 예상해 가져온 화살 수는 삼만 정이나 된 터라 그는 천천히 보름 동안 괴롭히며 이들이 지금의 상황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안전 불감증이라는 것이 있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지만, 막상 그 상황이 일어나지 않고 반복되는 과정이 생긴다면 저도 모르게 그 상황 속에서도 안전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마크 자작은 그 상황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돌격 이외에는 잠시 움직임을 멈출 정도의 화살비와 똑같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괴음 소리를 내게 하여 그 의심을 줄이면서 서서히 이들을 함정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과연 제코가 합류한 지 나흘이 지날 때쯤,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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