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52화
대부분의 이곳의 대장장이들은 자식이 없다. 자식에게 쏟을 정성과 열정을 불에 쏟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바쳐 죽기 전 스승이 남긴 유작을 넘어서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명예였기에 이들은 혼인조차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불과 가까이한다.
다행이 종족의 특성상 따로 자식을 낳지 않아도 종족의 수는 평행을 이루었기에 그들은 자신의 기술이 사장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곳 대장간에 야안이 찾아온 것은 운이 좋았다.
고향인 무의 나라에서 워낙 힘든 삶을 살았던 터라 야안은 여타의 다른 라의 사람들과 달리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스승의 유작을 넘어서는 검을 만들기 위해 제자를 구할 시기를 놓쳤던 이곳 대장간의 주인의 입장에서는 일을 얻기 위해 찾아온 야안의 등장은 매우 반가운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잘 알기에 야안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혹사하다시피 그를 몰아붙였다.
다행히도 야안의 지난 행적이 고된 일상의 연속인 터라 그의 체력은 뛰어난 편이라 그 과정을 이겨 낼 수 있다.
매우 힘들었지만, 스승이 왜 자신에게 이렇게 몰아붙이는지 잘 알기에 그는 이를 악물며 스승의 말을 따랐다.
10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혼자서도 어느 정도 쓸 만한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호흡도 깊어져 다섯 번의 호흡만으로 검의 모난 곳을 잡을 수 있었다.
또한 불을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해 그의 풀무질 솜씨는 예전 단순히 힘만을 쓰던 시기를 지나게 되어 이제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화력을 생성할 수 있게 되었다.
‘땅, 땅땅-’
리듬을 타면서 내려치는 야안의 망치 소리에 금속이 점차 모형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예전 두 손으로도 들기 어려웠던 망치는 이제, 한 손으로도 쉼 없이 두들겨도 될 정도로 힘이 불어난 상태였다.
‘치이이익-’
요란한 수증기가 일어나며 대장간 안을 가득 채운다. 작은 대장간이라 수증기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잠시 후, 수증기가 가시고 식혀진 검을 보던 그는 앞으로 몇 번 더 손을 본다면 쓸만한 검을 만들어낼 것임을 예상하였다. 야안은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을 보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응. 온몸이 다 쑤시는군.”
나라에서 요구한 무기들을 시일에 맞춰 만드느라 너무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던 탓에 관절에서 뼈가 우둑거린다.
그는 간단히 몸을 풀어주고는 주방에서 음식을 차렸다. 식사를 하기 전 대장간 외곽에 자리한 우물에서 물을 퍼내어 타는 갈증을 풀어주던 그는 그 시원한 물에 상쾌함을 느꼈다.
혼자 사는지라 음식이라고는 검은 밀빵과 밍밍한 채소 스프가 다였지만, 맛 따위에 불평하는 그가 아니었다.
야안은 식사를 하면서도, 스승님께서 마지막에 남기신 유작을 바라보았다. 텐무라의 종족들이 다루기에는 어림도 없는 참마도였다.
열 걸음이 떨어진 거리에서도 예기가 느껴질 정도였는데, 세월이 한 해 지날수록 야안은 그것의 가치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알 수록 보이는 법이라고, 이제 대장간의 일을 한지 13년이 지난 야안은 그 작품을 대할 때마다 절로 마음이 경건해졌다.
스승께서 남기신 흔적을 하나하나 따라갈 때마다 그는 소름이 돋는 듯했다.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 수가 있을까?’
스승을 넘어서는 것이 최고의 미덕임을 아는 대장장이지만 야안은 과연 자신이 그런 미덕을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스승께서는 이 참마검으로 전대의 스승께서 남기신 검을 깨뜨렸는데, 덕분에 이 하나가 나가버렸지만, 그것만으로도 보검 중의 보검이라 할 수 있다.
죽기 전, 스승은 이 참마검에 이가 나간 것에 대해 마음이 걸려 했었고 그는 야안에게 자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하지만, 야안은 자신이 없었다. 이 같은 대작을 뛰어넘으라니.
그는 부지런하고 성실했지만, 그 재능은 스승에 비해서 부족한 면이 있었기에 그는 매번 이 작품을 보면서 감탄하고 또한 자신감이 꺾였다.
이때의 여타 대장장이들처럼 그는 고뇌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다시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날 때쯤의 야안의 모습은 마치 야차와도 같았다. 그는 깨달았다. 재능이 부족한 자신이 이 검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미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것을 바쳐야 했다. 해가 뜨면 망치를 들었고, 해가 져야 망치를 놓았다.
음식은 훈제한 고기들을 준비하여 담금질할 때 난 시간에 먹어 식사시간조차 줄인 채 불과 함께하였다. 불 앞에서 떠나지를 않아서 그런지 그의 몸은 짙은 색으로 거슬러져 있었다. 덕분에 우람해진 그의 근육들은 그 굴곡이 확연하게 들어났다.
두꺼비 등껍질처럼 변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야안은 이제야 쓸만한 손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처럼 노력하였음에도 이제야 장인을 노려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스스로 비웃은 것이다.
말없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그 손으로 망치를 들었을 때 그는 인기척을 느껴야 했다. 나라에서 관료가 찾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은 탓에 혹시 손님인가 싶어 밖을 나서던 그는 이내 어리숙한 모습을 한 세 명의 사내들을 발견했다.
라의 야안은 그 모습에 단번에 이들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무의 야안의 자식들이었다. 그의 자식이라면 자신의 자식이기도 했다.
그들은 또 다른 아버지의 야인 같은 모습에 크게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을 잃은 그는 손수 음식을 차려 주며 말했다.
“오느라 고생하였다. 일에 미쳐 사느라 내줄 음식이 이런 것밖에 없구나.”
생각보다 따뜻한 말에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감사하게 음식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의 야안이 넉넉한 여비를 주었지만, 중간에 사기를 당해 적은 돈으로 수많은 고생 끝에 온 것이라 라의 야안이 먹는 거친 음식도 그들에게 어떤 귀한 음식보다 맛이 났다.
우려한 것과 달리 음식을 잘 먹는 그들의 모습에 라의 야안은 웃음을 흘리었다.
그는 그들의 일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 고생을 해야 했다. 나라에서 찾아온 관료의 도움으로 둘째와 셋째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야안은 자신의 스승만큼이나 재능이 있는 첫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다행히 첫째 또한 이곳에 오면서 큰 고생을 하였던 탓인지 무기를 만드는데 큰 거부감은 없었다.
아니, 처음에는 종족의 성정 때문에 꺼리는 점이 있었지만, 라의 야안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꺼려하던 점도 내려놓았다. 영혼마저 불태울 듯한 그의 일하는 모습에서 크게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뛰어난 재능에 스승인 라의 야안의 노력을 본받았던 첫째는 어느 순간 그를 따라잡게 되었다.
라의 야안은 제자가 자신을 따라잡게 되자 스스로에 대해 자책의 시간을 가졌다. 아직도 장인의 솜씨를 지니지 못한 자신이 너무 어리석어 보였다.
제자는 그런 자신을 배려하려 자신의 실력을 숨겼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욱 괴로움에 젖었다.
그처럼 노력 하였건만 이 같은 결과라니 그는 처음으로 세상을 저주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망치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굳세게 망치를 지고 불에 들어갈 듯 화로와 가까이하였다.
하지만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어 장인이 된 뒤에도 그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밟고 있었다. 제자는 스승이 자신과 같이 있어하는 것을 힘겨워한다는 걸 눈치챘기에, 멀지 않은 곳에 새로 대장간을 차렸다.
야안은 그런 제자의 배려에 미안하고 고마워했다.
시간이 더 흘러 결국 장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 죽을 날을 기다리던 야안은 어느 날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버릇처럼 내려치던, 이제 무거워 들기 버거워하던 망치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고, 뜨거웠던 불길이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했다.
호흡은 한없이 길어져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날 하루 야안의 망치 소리는 끊이지를 않았다. 만약 장인이 그 망치 소리를 들었다면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자리에 멈춰 무릎을 꿇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대오각성한 자만이 낼 수 있는 망치 소리였다. 야안은 점차 만들어져가는 검을 보면서 조금씩 스스로 자각하였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작품이구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죽기 전 이 같은 작품을 만들다니 말이다. 어느 순간 호흡도 하지 않았고, 불길은 그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일어서고 앉기를 반복했다.
달구어진 검은 야안의 망치가 닿을 때마다 청아한 소리를 흘리며 생명이 들어섰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스승이 남기신 참마검만큼이나 예리한 예기가 검에서 흘러나왔다.
아니, 그의 망치가 두드려질수록 그 예기는 참마검의 예기를 넘어섰다. 더 이상 예기가 강해질 수 없다고 생각이 들 때, 망치소리가 더욱 크고 청명해지더니 이내 그 예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 번의 망치 소리에 마치 얇은 나뭇가지가 바스라 지듯이 예기가 꺾이는 것이다. 새벽이 시작될 때부터 시작된 그 일은 아침이 오기 전에 끝이 났다.
완성한 검은 여타의 검보다 손 하나 작은 형태의 검이었다.
하지만 그 무게는 스승의 참마검보다 2배는 더 무거웠다. 이는 검이 망치의 힘을 이기지 못해 압축되면서 생긴 변화였다.
야안은 검은 아주 날카로운 절단을 했음에도 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예기만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휘이익, 팍-’
그 검을 든 야안이 자신의 손을 내려쳤음에도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다. 다만 붉은 실선이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도 있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임을 이내 야안의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스으윽-’
야안이 그 검으로 옆에 놓인 두텁게 쌓인 철괴들을 향해 천천히 내려치자 철괴들은 아무런 비음도 흘리지 않은 채 잘려 나갔다.
날카로운 면도날로 얇은 종이를 자른다 해도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을 것이다. 철괴들을 쪼개버린 신기를 보이는 검이었지만, 조금 전 야안의 손을 내려쳤을 때처럼 검에서는 아무런 예기도 보이지 않았다.
신검의 탄생이었다.
만약 이 검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능히 홀로의 힘으로도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 능력을 가질 것이다.
그는 스승이 남긴 참마도를 신검으로 파하지 않았다. 그런 확인 과정을 넘어설 정도로 수준의 차이가 난 그의 검이었기에, 젊은 시절 자신의 투지를 불태우게 했던 추억이 담긴 스승님의 유작을 그런 식으로 파기하고 싶지 않았다.
야안은 자신이 만들어낸 신검에 눈을 마주하며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아하하.”
낭랑하게 웃음을 흘리던 그의 몸이 불로 산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거대한 불길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대장간을 차려 자리를 잡았던 제자는 스승이 있던 곳에 거대한 불이 모습을 보이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에 목이 메인 듯 그는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오각성 하셨습니까?”
이제 뛰어난 장인이기도 한 제자는 단번에 스승이 남긴 저 불의 의미를 깨달았다. 불길은 마치 하늘을 뚫고 가듯이 크게 산화한지라 그 모습을 본 대장장이들은 저마다 제 일을 멈추고 무릎을 꿇었다.
라의 야안이 산화되어 생긴 불꽃의 열기는 저 멀리 본래 자신이 태어난 무의 나라로 향했다. 그는 무의 나라로 가는 도중 텐의 나라에서 온 또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되었고, 그는 대단히 반가워하였다.
마침내 하나로 모인 야안은 자연스레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는 라의 야안이 대오각성한 것을 축하해 주며 그에게 물었다.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느낌은 어떠했던가?”
그의 말에 라의 야안은 매우 허탈해하는 감정을 보이며 답해 주었다.
“헛물을 캐는 느낌이었네.”
“그럴 리가? 이해되지 않는군.”
무의 야안의 말에 라의 야안이 덧붙여 말했다.
“그것은 마치 무척 애를 먹다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 사다리를 오르고 굴뚝을 넘어 작은 나무창을 뜯어내어 간신히 집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말이네. 그렇게 잘 들어가기는 했는데…….”
허탈하다는 말이 사실인 듯 야안은 잠시 말문을 멈추다 말을 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의 현관문은 본래 열려 있었다는 말이지.”
“……!”
그랬다. 진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다만 그 어떤 존재도 사다리를 타고 굴뚝을 넘어 나무창을 뜯어내는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뿐이었다.
그것은 오직 집 안에만 들어선 자만이 깨달을 수 있었고, 그랬기에 깨달은 자가 아무리 가르쳐도 어떤 이도 쉽사리 깨닫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