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53화
텐의 나라는 다른 두 나라보다 살 길이 막막한 곳이었다.
이는 텐무라의 나라가 지닌 위치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는데 바로 텐무라의 옆에 자리한 국가의 매년 있는 침략 때문이었다.
그들은 텐무라의 종족과 달리 그 성정이 포악한 자들이었다. 싸우는 것을 즐기었는데, 텐은 그 나라를 막아야 했기에 세 나라 중 가장 전쟁경험이 풍부한 나라이기도 했다.
타고난 성정이 다투는 것을 싫어하기에 그들은 진정 괴로워하며 전쟁에 나섰다. 종족의 여건상 다른 무와 라의 나라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구들과 식량을 내주는 것뿐이었다.
덕분에 텐의 나라는 매해 고아들이 즐비했고, 나라에서는 한도를 넘어선 고아들을 그저 바라만 보았을 뿐이었다.
다른 두 나라에서는 이런 사정을 알아 곡식을 비롯해 물자들을 지원해 주었지만, 오래된 전쟁으로 관료들이 부패하게 되면서 이 같은 물자의 대부분이 그들의 비자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덕분에 텐의 야안이 이 나라에 들어서면서 보고 느낀 것은 가난과 부패의 연속이었다.
멋모르고 상경한 야안은 텐의 나라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성문에서 병사로 차출되었다.
그해, 전쟁이 일어난 지 보름만의 일이었다.
별다른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야안은 한 자루의 창 하나를 든 채 최전방으로 보내어졌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최전방에서 그들을 지휘할 장군이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라는 것이다.
그는 벌써 15년 째 성공적으로 수성에 성공한 이였는데, 이곳에서만큼은 부패가 일어나지 않았다.
관료들도 이곳이 무너지면 끝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행하는 일이었다. 나라가 좁아 도망칠 곳이 없었고, 저 포악한 자들은 신분을 봐가며 패악질을 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재산이 많은 이들을 위주로 터는 것을 즐기었기에,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일수록 이곳에 지원을 더 보태곤 했다.
다른 나라였다면 그런 지원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록 욕심에 의해 부패한 관료들이 되었지만, 종족의 특징인 다투는 것을 싫어하는 이들이라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장군은 과연 수성에 한해서는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만약 야안이 그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차출되어 빠졌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을지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장군은 야안과 같은 신출내기들을 제대로 훈련하고, 숙지해야 할 것에 대해 강압적으로 행하였는데 덕분에 야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명의 병사로서 자신의 몫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본래 고된 농사일로 단련된 몸이라 그는 한 자루의 창을 긴 시간 동안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찌르고 빠지며, 목숨을 빼앗는 일이 시간이 지날수록 덤덤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워낙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침략하는 이들이라, 상념에 빠질 시간도 없었다.
밥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해 그 전쟁으로 죽은 이들은 20%에 달했다. 이것은 단순히 죽은 이들만을 말하는 것이었고, 그 외, 거동이 불편해진 병신이 된 이들과 합친다면 40%가 넘었다.
그야말로 둘 중 하나가 죽은 것이다.
야안은 이곳에서 삼년을 버티면 제대를 할 수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삼 년을 버티어 제대를 하는 자는 몇 되지 않았다.
백에 셋, 넷 정도의 확률이었다. 그야말로 포기하는 것이 더 빠른 일이었다.
그 같은 암담한 현실에서도 본래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던 야안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주위의 동료들과 달리 살아남을 수 있음을 믿고 또 믿었다.
강력한 믿음이 있어서일까? 덕분에 그는 두 번째 전쟁에서도 살아남게 되었다. 그는 속해 있던 부대는 대다수가 죽음을 맞이했기에, 그는 다른 부대로 차출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준 계기는 새로 들어온 신병에 의해서였다.
로토노라는 이름을 지닌 그는 본래 신학자의 집에서 태어난 이로 그 또한 신학자의 일을 하는 이였다.
신관들의 이야기를 모아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가르침을 내려 주었는데, 야안은 본래 시골 촌구석에 올라왔던 촌놈이라 그 같은 일을 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이 로토노라는 이 덕분에 막연하게 존재할 것임을 인식하던 신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힘들고 고된 전쟁으로 그의 육체도 피폐해졌지만, 그보다 그의 마음은 더욱 피폐해진 터라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낼 때였다.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찾던 시기라 그는 로토노를 통해 신학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었다.
신학자는 따로 나라에서 정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가 아닌 스스로 정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더욱 힘든 길이었다. 신학자라는 가면을 쓰고 번번이 사기를 치는 이들이 많았기에 제대로 된 지식이 없다면 비난을 받기 일 수인 것이 바로 이 신학자들이었다.
고독한 길이기도 했는데, 그 같은 고독한 길을 이겨낸 신학자들은 대부분 그 인격을 완성한 자들이라 후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
신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로토노는 아주 전문적인 신학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매번 자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야안에게 고마움을 느낀 터라 쉬는 시간 종종 신학에 대해 가르침을 내렸고, 야안은 벌이 꿀을 찾듯이 그의 가르침에 목말라 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들의 관계는 미묘했다. 전투에서는 상사와 수하의 관계이기도 했지만, 전투가 끝이 난 뒤에는 신학자와 신도의 관계를 보였다.
로토노는 열성적으로 신학을 공부하는 야안에게 자신이 가져온 책 한 권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양피지를 만든 것으로 오래 된 듯 손때가 반질거렸는데, 이는 로토노가 어린 시절 그의 부모님이 직접 준비해준 것이기도 했다.
야안 또한 그 사정을 알기에 거절하였지만, 로토노가 웃으며 부디 이 전쟁에서 살아남아 훌륭한 신학자가 되는 밑거름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에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야안은 로토노가 건네준 책을 품속에 넣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 읽고 했는데, 로토노는 그런 야안의 모습에 건네주기를 잘했다 생각했다.
전쟁에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쯤, 다른 때라면 물러설 적들이 더욱 기세를 부리며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후에야 알았지만, 성문이 균열이 생긴 것을 보고 적들이 무리한 공격을 가세한 것이다. 곧 죽음을 각오한 적들의 공격에 성문의 일부가 부서지게 되었고, 그와 가까이 있던 야안의 조가 그곳으로 투입되었다.
야안은 그간 전쟁에서 갈고닦은 솜씨로 그들과 싸워나갔지만, 워낙 들이 닫히는 적병의 수가 많은지라 야안의 조는 다른 쪽의 지원군들이 오기도 전에 대부분이 전사하게 되었다.
전사자 중에는 그의 스승이기도 했던 로토노도 있었다.
고매한 인품을 지닌 로토노의 비참한 죽음을 본 야안은 이성을 잃었고, 그 격렬한 전투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다 결국 적의 창에 일격을 맞이하고 말았다.
고통과 함께 일순간 눈앞이 캄캄해져 갔다.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시체들 속에 있었다. 피가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그곳에서 야안은 가슴 부위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컥…… 커컥.”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대신 피가 입에서 터져 나온다. 말라붙은 피 때문에 숨 쉬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는 배에 힘을 모아 크게 숨을 몰아쉬어 내뱉었고, 코와 입에서 요란하게 피가 터져 나오더니 숨 쉬는 게 편해졌다.
“살았…… 구나.”
기절을 한 모양이다.
막 전투가 끝이 나고 전장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자신 쪽으로 오기에는 시간이 남은 지라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고개를 내려 살피니 자신의 가슴에 부러진 창대가 있음을 확인했다.
“어, 어떻게.”
창이 정확하기 심장부위에 꽂혀져 있음에도 살아남은 것을 믿기 어려워 한 그는 이내 가슴에 묵직한 무언가에 의해 자신이 살았음을 알았다.
“책, 책 덕분이구나.”
그랬다. 지난 로토노가 자신에게 주었던 책이 자신의 목숨을 살렸다. 손에 힘을 주어 부러진 창대를 빼낸 그는 품에서 책을 꺼내었다.
이 책이 싸구려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자신은 죽었으리라 예상했다. 질긴 양피지를 겹쳐 만든 책이었기에 그 같은 정확한 일격에도 살아남은 것이다.
실제로 책의 마지막 양피지를 남기고 창은 멈추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살린 마지막 장의 양피지를 펼쳤고, 그 책에 자리한 내용에 그는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러내렸다.
그 장의 이야기는 평소 그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신관이 역병에 걸린 도시에 들어섰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신관은 그들을 뿌리쳤다. 그곳에는 아직 살아남은 생명이 있었고, 자신이 희생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가 있을 것으로 그는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신께서 내린 축복을 그들에게 부여했고, 그들의 오물로 자신의 손을 더럽혔으며 쓰러진 목책을 세워 살아남은 이들을 모았다.
하지만, 역병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강세해져 갔다. 애초 일개 신관이던 그가 이 재앙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혹사하며 그들을 구원하고자 했으나, 안타깝게도 죽어가는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다른 이였다면 이 절망적인 현실에 주저앉고 말았겠지만, 신관은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 죽어간 이들을 묻어주고 살아남은 이들을 보살폈다.
하지만, 날이 더워지며 열병에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고통에 신음하던 이들은 결국 병을 이겨내지 못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백도 되지 않았던 도시의 생존자들은 오십이 되며 스물이 채 되지 않더니 결국 한 소녀만이 겨우 숨을 붙이게 되었다.
긴 시간을 몸을 혹사하던 신관 또한 결국 전염병에 걸렸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축복을 부여하지 않았다. 만약 축복이 자신에게 향한다면 가는 숨을 몰아쉬는 소녀는 죽음을 맞이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전염병에 머리가 멍해지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서지 않았지만, 그는 쉴 수 없었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기력을 잃어버린 소녀의 상태는 악화하고 말리라.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전염병에 걸린 그에게 더위는 지옥의 불에 떨어진 듯한 고통을 주었지만, 그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소녀를 돌보았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일임을 말하듯 그의 영혼은 저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뜨거웠다.
그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쯤 더위가 꺾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선한 날씨가 시작될 때쯤 소녀가 조금씩 기력을 찾았다. 여전히 의식도 없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조금씩 호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신관은 그 사실에 매우 기뻐하며 시들어가는 풀 같은 자신의 몸을 일으켜 더욱더 소녀를 보살폈다.
시간이 지나 소녀는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어리둥절하다, 이내 자신의 옆에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곳에는 미소를 지은 채 죽음을 맞이한 신관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