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54화
예전 야안은 신관이 어리석다 여겼다. 그 자신이었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애초 자신의 역량 이상의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시작한 이상 소수의 몇몇만을 모아 살렸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단순히 소녀 한 명만을 살렸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이의 생명을 구했을 것이고 더불어 그 자신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랬었다.
하지만, 이처럼 기적적으로 생환을 하게 되자 예전 어리석다 여겼던 그 이야기가 그 어떤 이야기보다 아름답게 여겨졌고, 자신의 비난이 얼마나 못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그로서 희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며 머리로 알던 지식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거대하고 아름다운 보물을 얻게 된 것이다.
그 해, 그는 마지막 3년을 무사히 마치고 전역하였다.
올해 전역한 자는 그 많은 병사 중에서도 다섯을 넘지 못했다. 지난 마지막 전투에서 상당수가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장군은 이들에게 성대한 전역식을 치르게 했다. 이는 그들 병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이다.
나는 약속을 지킨다. 너희들에게도 이런 날이 올 것이다. 나를 믿고 용감히 나서 싸워 살아남아라.
매해 전쟁이 끝이 나고 바닥을 치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하는 일이었지만, 그 효과가 나쁘지는 않았다. 적은 돈으로 그 정도의 사기를 올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것으로도 장군의 유능함을 알 수 있다.
야안이 떠나기 전 군에서 상당 금액이 지원되었다.
올해 많은 이들이 죽은 탓인지 주머니에는 적지 않은 돈이 자리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야안에게 있어 그것은 하나의 축복과도 같았다.
이 정도 돈이면 변방이라면 집과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을 사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넉넉한 수준의 땅을 살 수 있기에 그는 앞날이 걱정되지 않았다.
제대를 한 그는 기후가 좋은 시골을 찾았다. 수소문 끝에 그는 자신이 생각한 조건과 맞는 변방의 오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곳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그는 그곳으로 가는 도중 3년 전보다 더 열악해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리에는 굶주리고 헐벗은 아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병약한 아이들이 끼니를 해결하지 못해 이곳저곳에 쓰러져 있었고, 젓도 채 때지 못한 아기는 울부짖을 힘도 없어 보였다. 저마다 먹고살기 힘든 터라 어른들은 아이들을 외면했다.
예전이었다면 야안은 그저 이 상황에 대해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인 어른들에게 화가 날 것이고, 수탈을 하는 관료들을 내버려 둔 국가에 화가 날 것이며, 결국에는 이 모습을 외면한 신에게 화가 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화가 나지 않았다. 신께서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신께서는 지금의 자신을 만드셨다.
‘그래, 이 길이 바로 나의 길이구나.’
그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돈을 풀어, 먹을 것을 사 죽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가 마을을 거쳐 갈 때마다 아이들의 수는 점차 늘어만 갔고, 본래 그가 목적하던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인원이 자리했다.
그 수가 상당했기에 땅은 고사하고 비바람을 피할 집을 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신께서 보살펴 주셨던 것인지 다행히도 지난 전쟁으로 버려진 집들이 많아 아주 싼 값으로 건물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상당한 크기의 황무지도 구할 수 있었는데, 잘하면 이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듯 보였다.
야안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을 수선하고 황무지를 개간했다. 한편으로 군에서 배운 의료 방법을 이용해 아픈 아이들을 돌보았고, 산에서 먹을 것을 찾아 끼니를 때웠다.
황무지를 개간하는 일은 힘이 들었지만, 이것으로 아이들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절로 힘이 났다.
지쳐 중간 중간 쪽잠을 자는 야안에 그중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저마다 어설프게나마 일을 돕기 시작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힘이 없었지만, 작은 돌을 옮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야안은 그들의 모습에 만류했지만, 그들의 의지가 워낙 확고한 탓에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돕기 시작하자, 황무지를 개간하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얼추 이 속도라면 씨를 뿌릴 기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안이 뿌리를 내린 지방은 외지라 지형이 험하기는 했어도 기후가 좋은 덕분에 그 해는 평작을 할 수 있었다.
1년을 부지런히 움직여 얻은 곡식이었다. 식량은 넉넉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들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겨울이 되어 어느 정도 시간이 나자 야안은 아이들에게 신학을 가르쳤다. 외롭고 힘든 삶을 사는 아이들에게 결코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처음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야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은 조금씩 그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나갔다.
야안은 아이들에게 신학자의 길을 권유하지는 않았다. 다만, 신이 있음을 믿고 자신에게 닥친 역경에는 이유가 있으며 그것을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음을 가르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큰 아이들이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야안은 그간 조금씩 곡식을 팔아 모았던 돈으로 그들에게 작게나마 여비를 내 주었다.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아이들의 손에 억지로 여비를 쥐여주던 그는 아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성인이 되어 저마다 살길을 찾아 떠난 아이들 덕분에 야안이 만든 쉼터는 한동안 널러졌지만, 이내 야안이 새로 데려온 고아들로 다시 쉼터는 예전처럼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 야안이 만든 그 작은 쉼터는 어느새 작은 마을을 이룰 만큼 번성해 져갔다.
더 이상 야안 혼자서 쉼터를 꾸리지 않았다.
예전 자신이 데려온 고아들이 성인이 된 이들의 일부가 남아 그의 일을 도왔기 때문이다. 조금씩 돈을 모아 땅을 넓히고 집을 짓기 시작한 그곳은 이제 희망의 터가 되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부모를 만났고, 형제를 잃은 이들은 형제를 만났다. 누이를 만나고 언니를 만났다. 외로운 이들이 모여 서로 위하였고, 절망에 빠진 이들은 희망을 찾아갔다.
작은 기적을 이룬 야안은 매번 이 기적을 이루게 해준 신에게 감사하며 기도를 드리었다.
그로부터 다시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 나라의 관료들이 야안이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바로 군복무에 대한 문제였다.
그들은 이 쉼터에 지원을 해주는 대신 매년 군복무자들을 보내주기를 원했다. 전쟁의 고통을 겪었던 야안은 그 사실에 괴로워했으나 결국 그들의 요구를 도와줄 수밖에 알고 있었다.
고민하던 야안은 쉼터를 이끄는 이들을 제외해주는 대신 자신이 다시 군에 복무하여 아이들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지금 시점에서 자신 혼자서 이 덩치가 커진 쉼터를 운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정성스럽게 키운 아이들이 화살받이로 죽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기에 그는 중년의 몸으로 군에 재입대하기로 한 것이다.
관료들의 입장에서는 쾌히 승낙할 조건이었다. 최전방에서 살아남아 제대하였다는 점을 본다면 그의 능력은 입증되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아이들은 야안의 그 결정을 알고 매우 슬퍼하며 괴로워했다. 이야기 속의 신관님 못지않은 인품을 지니신 신학자께서 자신들 때문에 그 같은 지옥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았다.
야안은 모질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조금씩 돌아왔다. 야안의 마음을 알았기에 아이들 또한 야안의 훈련을 따라가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 무기를 쓰는 방법과 전장을 살피는 방법을 가르치던 야안은 다음 해 성인이 된 큰 아이들과 함께 군에 들어섰다.
최전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야안은 본래 군복무를 마친 것을 인정받아 작은 지휘관의 대우를 받았다.
예전의 장군은 은퇴를 한 뒤, 그의 아들이 장군을 이었는데 전대의 장군에 비해 안목은 모자랐지만, 그 또한 수성에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전쟁은 참혹했다.
피의 안개에 하늘이 붉어졌고, 끈적끈적한 피의 강은 병사들의 발을 붙잡았다. 돌을 던지고 창을 찌르며, 성이 무너지면 모래주머니를 던져 새로 성을 쌓았다.
야안은 최선을 다했고, 그가 이끄는 병사들도 최선을 다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고,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야안은 처음 들어오는 신병에게도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전투가 끝날 때마다 죽은 이들이 나왔지만, 기존의 전사자에 비해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정을 주었던 만큼 죽어버린 전사자들에 대한 감정은 깊었지만, 그 묵념은 짧았다.
다시 전쟁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씩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능동적인 태도를 갖추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금 제대를 하게 된 야안은 예전과 달리 자신을 찾는 여러 병사와 지휘관들 그리고 장군의 찬사까지 받았다.
그들의 찬사는 당연했다. 야안 덕분에 군은 변모했다. 단 한사람이었지만, 조금씩 절망적인 전쟁에서도 희망을 전도하던 야안에 살아남은 이들은 다른 이들을 함께 전도하게 되면서 그 수는 점차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기적이었다. 군사들이 희망을 찾아 전투에서 살아나게 되자 그들 덕분에 병사들의 질이 향상되었고, 흐트러지던 군의 규율이 바로 섰다. 규율이라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전투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십 년의 세월이 지나자 더 이상 텐의 나라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군사들은 강군이 되어 나라 밖의 전쟁을 막아설 기량을 넘어, 나라 안까지 들어서 부패한 관료들을 처단했다.
부패한 관료들의 재산을 모아 나라의 재정을 일으켰고, 그 재정으로 고아들을 돌보고 새로 성을 개축하였다.
조금씩이지만 차츰 텐의 나라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그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되었던 야안은 나라의 영웅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그는 어는 한 시골의 쉼터로 들어가 고아들을 보살폈다.
노구를 이끌어 땅을 일구었다. 고아들에게 신학을 가르치었으며 군에서 복무한 경험을 통해 아픈 아이들의 병을 치료하였다.
어떤 이들도 야안이 텐의 나라의 영웅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재산이라고는 낡은 신학책 한 권이 전부인, 시골의 작은 쉼터에서 일을 하는 한 늙은 신학자가 예전 나라를 구했다는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나라가 점차 바로 서는 것을 크게 즐기던 야안은 점차 한 점의 바람으로 모습을 변모했다.
그의 바람은 거대하고 또한 청아했다. 그 바람은 마치 나라의 구석구석을 다 살필 정도로 크게 휘감았는데, 그제야 작은 쉼터의 사람들은 야안이 다시 보기 힘들 고매한 인품을 지닌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대한 장군이라도 위대한 사상가라도 그 같은 바람을 남기고 죽기란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