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56화
50. 전쟁이 끝이 나며
“음. 천 년 전 멸종하였다는 드워프들이 과연 그 작품을 완성했는지 모르겠군. 어쩌면 자네가 그 작품을 이어 만들지 모르는 일이네. 자네라면 한 마을의 드워프 족장 못지않은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유피테르가 말하는 드워프들의 그 상식을 뛰어넘는 장인의 세계에 야안은 말문을 잃어야 했다.
그 또한 스승의 작품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하였지만, 드워프와 같은 열정을 보였는가, 라고 누군가 묻느냐면 그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것이다.
고작 태어난 지 10년 만에 장인의 길에 들어선 드워프가 근 30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나의 작품을 위해 생을 바친다. 그것으로도 놀라운데, 수많은 드워프들이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몇 천 년을 이어 간다라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겪지 않아도 그 드워프의 열정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놀랍군요. 과연 왜 남겨진 문헌에 장인을 말하면 드워프가 빠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감탄을 하던 야안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인벤토리에서 공간의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는 예전 붉은 노을에게 받은 로탐이라는 금속을 꺼내 들었다.
그 로탐이라는 금속은 그가 대장인의 칭호를 단 이유 중 하나였다.
은은한 은빛이 감도는 로탐의 금속을 받았을 때만 해도 야안은 비관적이었다.
붉은 노을이 말씀하시기를 오직 드워프만이 이 로탐이라는 금속을 정제할 수 있다 하였는데, 오랜 세월 드워프는 전설 속의 종족으로 사라져 버렸음을 확신하고 있었으니 보물을 앞에 두어도 쓰지 못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던 차, 주술로 대장장이를 마스터하게 되면서 얻은 이 대장인의 칭호라면 이 로탐을 정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야안은 잠시 말없이 로탐의 금속을 손에 쥔 채 금속을 살펴보았다. 천천히 금속의 질감을 느끼며 냄새를 느끼었다. 오감을 모두 함께 사용하던 그는 미들의 단계로 넘어서면서 더욱 예리해진 초감각마저 이용하여 금속을 살폈다.
그리고 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놀랍군. 왜 그분께서 드워프만이 이것을 다룰 수 있다 말했는지 알겠어. 지금 이 경지에 올랐음에도 겨우 손을 쓸 수 있을 것 같으니.”
야안이 이룬 대장장이의 경지는 놀라운 것이었다.
검으로 치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이고, 현자의 길을 보자면 고위 현자 익스퍼트에 오른 것이다. 초인의 경지에 올랐다 해도 무방했다.
한데, 그 같은 경지에 올랐음에도 겨우 손을 쓸 수 있는 것이 이 로탐이라는 금속이었다. 그간 야안은 이 금속에 대해 여러 실험을 해본 바 있었다.
과연 로탐의 항마력은 그저 뛰어나다. 라는 말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푸란의 가죽과 비교하여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로탐이라는 이 금속은 매우 가벼웠다. 마치 금속의 안이 비워진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더구나 그 강도가 미스릴에 준하다 하니 이 금속의 특성상 초급 익스퍼트의 검기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이 금속으로 갑옷을 만든다면 그 존재의 전력은 단숨에 배 이상 뛰어넘게 될 것이다. 방어에 치중해야 할 힘이 모두 공격에 자리하게 되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야안은 이곳 동굴을 개조해 작은 대장간을 만들기로 했다. 마법처리를 한다면 라의 야안이었을 때 자신이 쓰던 대장간 정도는 만들 수 있어 보였다.
잠시 어디에 대장간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던 야안은 반나절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칭호를 바꾸고 밖을 나섰다.
동굴 밖은 컴컴한 밤이었다.
날씨는 가을이 아닌 초겨울에서나 보았던 쌀쌀한 날씨였다. 그제야 야안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음을 알고 다급히 집으로 움직였다.
다행히 한스가 조치를 잘했던 덕분에 가족들은 야안이 오랜만에 집에 오자 걱정보다는 반기는 눈치였다.
야안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이 19일 동안 자리를 비웠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한 것보다 긴 시간을 비운 터라, 야안은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영지의 일이 줄어 한스가 감당할 정도였다.
‘못난 스승 때문에 한스가 고생이 많구나.’
다음 날, 야안은 이른 시간에 성으로 향했다.
성에는 이미 마크 자작이 몬스터 토벌로 자리를 비운 터였고, 아론은 한스에게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배움에 한참 빠지던 아론이었지만 그도 잠시 야안이 모습을 보이자 펄쩍 뛰며 야안을 반기었다. 한스에게서 중요한 일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말을 들었지만, 한참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그 또래였기에 아론의 그 같은 반응은 당연했다.
그런 아론을 달래는 야안을 바라보던 한스는 이내 야안의 더 정명해진 눈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스승께서 그 짧은 시간 동안 한 차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는 존경의 표시와 함께 인사를 보이었고, 그런 한스에 야안은 아론을 안은 채 웃음을 흘리며 다가갔다.
“수척해졌군. 고생이 많네.”
“아닙니다. 그보다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한스는 자신이 한 걸음을 다가갈 때면 어느새 열 걸음을 움직이시는 스승에 그저 감탄을 보이었다.
어린 시절 신처럼 보였던 그분께서는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 같은 감정을 가지게 한다.
야안은 한스의 어깨를 툭툭 치며, 어리광을 부리는 아론에게 미소를 지으며 아들의 어리광을 받아들였다.
어느새 창밖에는 그 해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 * *
삼 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일이라 한다면 당연히 올해 여름 제국과 연합 왕국과의 전쟁이 끝이 난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한 전쟁 끝에 제국의 승리로 끝이 난 대륙 전쟁이었지만, 제국이 전력을 기울이지 않은 덕분에 연합 왕국의 피해는 예상한 것보다 크지 않았다.
연합 왕국 중 어느 왕국도 분열되는 시점까지 가지 않았다. 애초 이 전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던 탈리아 왕국이 제국의 배상금액의 상당량을 제공하느라 크게 휘청거렸지만, 시일이 지난다면 그 정도는 극복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여러 왕국에서도 배상금액을 마련하느라 여러 잡음이 들려야 했다. 그것은 마크 영지가 속해 있는 마일드 왕국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는 전대의 왕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애초 의도했던 강력한 왕권이 흔들리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아니, 귀족들 간의 세력 다툼이 애초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갔기에 생긴 일이기도 했다. 부딪히던 귀족의 세력들이 서로 잡아먹기 시작하더니 왕권 못지않은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애초 귀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어긋나게 된 것이다.
마일드 왕국은 3강 2중의 세력이 형성되었다. 이 중 3강은 왕과 힐튼 공작, 그리고 쿠엔 후작이었다.
그들 중 왕이 가장 큰 세력을 지녔고, 다음으로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던 힐튼 공작이 뒤를 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장에서 힐튼 공작의 세력과 반목하던 귀족들이 쿠엔 후작의 밑으로 들어오며 세력을 형성했는데, 앞의 2강과 차이는 있었지만 그 세력의 구도가 미묘해 3강으로 쳐주게 되었다.
2중은 야루스 산맥을 막고 있는 라쿤 백작 가와 제국과 마주하고 있는 나즈엘 후작 가였다. 라쿤 백작 가는 이번 전장에서 많은 공을 세웠으나 무리한 출정으로 기존의 세력은 많이 깎인 상태였다.
그 점을 생각한다면 2중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했지만, 1년 전 전장에서 깨달음을 얻어 각성한 라쿤 백작이 고위 현자 비기너에 들어서면서 그 같은 세력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예전 황금갈귀오크 이후 아직 야루스 산맥에 오크들의 세력이 다시 만들어지지 않은 터라 라쿤 백작은 세력을 다시 구축하는 시간을 벌게 되었다.
나즈엘 후작 가는 2중으로 구분이 되었으나 실상 왕권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분열의 조짐을 보이는 마일드 왕국이었기에 반드시 나즈엘 후작 가가 끝까지 왕권을 지지할지는 미지수였다.
어쩌면 이들의 행보에 따라 현재 3강 2중의 세력의 앞날이 바뀔지 모른다.
마크 자작 가는 그 세력 중 3강의 하나인 힐튼 공작 가의 아래 있었고, 이번 전쟁에서 여러 전공을 세운 카람 백작 가는 쿠엔 후작 가 쪽에 있었다.
카람 백작 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티온 백작 가는 왕권의 세력 밑에 있었는데, 현재 세력 자체는 카람 백작 가에 밀리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전쟁 중 무섭게 세력을 형성한 마크 자작 가가 카람 백작 가를 노리고 있어, 카람 백작 측에서도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두두둑, 두둑-’
요란한 말굽 소리에 지진이 일어난 듯 대지가 요동을 쳤다. 다섯으로 갈리던 기병들은 어느새 합쳐져 회오리치듯이 중앙을 휘감았고, 이내 다시 펼치기를 반복했는데 그 모습이 태풍과 같아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릴 듯했다.
마크 자작의 지시에 기병들의 전법이 바뀌었다. 기병 중에서 특별히 관리한 특전대가 화살처럼 튀어 나간 것이다.
말 중에서도 힘이 대단히 좋은 말들을 선별하여 철판을 씌운 철갑마였는데, 단 오백에 불과했지만 부딪히는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그간의 지옥 훈련이 성과를 보였던지 기병들의 말 다루는 솜씨는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 수준은 예전 마크 자작이 그토록 원했던 수준이라 이제 상상으로만 꿈꾸었던 모든 전술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훈련을 끝마치라는 마크 자작의 지시에 챈들러가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고, 이내 오천이 넘던 기병은 말을 달래며 진형을 구축했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쪽에 자리한 테리가 이끄는 특전대 또한 구축된 진형에 들어섰다.
순식간에 진열을 맞춘 군대에 마크 자작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훌륭하군. 쉬게.”
이로써 모레 출정을 앞두기 위한 준비가 끝이 났다. 사천이 넘은 보병들은 이틀 전 훈련을 마치고 출정을 준비 중이었다.
영지에서 큰 전쟁을 준비 중이었음에도 영지민들의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영지 중앙에 완성된 넓은 도로에는 수많은 마차가 오가고 있었고, 시장은 중앙 영지의 시장과 비교하여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거래하던 일부의 영지에서 상단을 꾸려 찾아올 정도였으면 현재 론이 이끄는 마크 상단이 거래하는 영지의 수만 하더라도 스무 군데가 넘어섰다.
3년간 부지런히 몬스터 토벌을 하며 영지를 성장한 결과 영지는 기존 자작 가의 두 배에 달하는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는 날이 갈수록 병사들의 수가 늘고 그들이 정예가 되어가면서 생긴 일이었다.
단순히 영역의 크기만을 본다면 백작 가의 60%에 달했는데, 영지 민들의 수 또한 그 못지않았다.
영지가 커지는 것과 동시에 지난 여러 곳에서 난민들을 비롯해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을 받아들이게 되어 그 수가 십만이 약간 못 미칠 정도였다.
여전히 성을 확장 공사하고 있었고, 관개수로도 완성을 보이려면 3년은 더 기다려야 했으며 얻은 땅을 개간하는 등의 일들이 많이 남은 터라 그 같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영지민들의 일자리는 부족하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그 같은 인구의 성장에 영지가 휘청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확장과 마크 와인이 인정을 받게 되어 여타의 어느 고급 와인 만큼의 이득을 얻게 되었다. 또한 비료들이 곡식에 맞게 개조되면서 자체적인 식량 보급도 가능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