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57화
현재 마크 자작 가는 대영지로 성장하는 그 중간의 과정에 자리했다. 그렇기에 눈치가 빠른 상인들은 마크 자작 가의 시장에 몰려들었는데, 이는 지난 카람 백작 가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이야기도 한몫했다.
세력에 가장 민감한 이들이 상인이었다. 만약 마크 영지에 승산이 있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시장에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마크 자작 가 군의 현재 규모는 오천 오백의 기병과 사천 오백의 보병, 그리고 삼백에 달하는 경비병을 이루고 있었다.
명예 만인장이라는 신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 수가 일만이 되자 마크 자작은 이들을 갈고 닦기 시작했는데, 기병들의 반 이상이 하급 유저의 끝자락에 자리했고, 이 중 20%가 중급 유저에 들어섰다.
상급 유저에 들어선 이들은 실전을 통한 경험 덕분인지 예상한 수보다 많았다. 열다섯이나 상급 유저에 들어선 것이다.
마크 자작은 이들 중 실력이 뛰어난 자를 천인장으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이들을 수석 백인장으로 임명하였다.
놀라운 성장력을 보이고 있던 테리는 올해 겨울 초 야안의 도움으로 초급 익스퍼트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로써 마크 영지에는 2명의 기사가 자리하게 된 것이다. 한 영지에 2명의 기사가 있으려면 대영주 규모의 세력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마크 자작은 특전대의 활용도가 크게 늘어났다. 초급 익스퍼트에 이르는 무위를 지닌 이가 앞장서게 되면서 철갑기마대의 힘은 공성병기의 힘에 못지않은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야안은 테리에 이어 큰 성장을 보이던 푸리 또한 올해나 내년 초쯤에 초급 익스퍼트에 들어설 수 있으리라 보았다.
챈들러는 나이가 있었던 탓에 그들 같은 큰 성장력은 보이지 못했지만,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야안의 지도가 훌륭했고,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떠돌며 얻은 경험은 헛되지 않았다.
더구나 마나 집약진으로 인해 얻은 마나의 양이 풍부한 터라 야안은 이대로 삼 년의 시간이 흐른다면 중급 익스퍼트를 한 번 노려볼 만하다 여겼다.
이제 유명한 인사인 영지의 정령사 제코는 하급 정령 마스터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놀라운 일이다. 겨우 3년 만에 그 같은 성장을 한다는 것은 듣지도 못한 비사이다.
아무리 그가 타고나기를 물의 속성과 잘 맞고,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해도 이는 말이 되지 않았다.
확실히 그랬다. 사실 제코의 그 같은 성장은 야안의 성장과 더불어 각성하게 된 유피테르의 힘 덕분이었다.
정령의 왕답게 유피테르는 정령에 한해서 절대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비록 기억이 봉인되고 그 경지가 낮아 발휘하는 힘이 제한적이라 하지만, 그 정도의 능력은 지금의 유피테르에게도 가능한 일이었다.
유피테르가 한 일은 정령의 성장 시간을 앞당기고 대기에 자리한 물의 정령력을 유도한 것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제코는 못해도 오 년의 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제코가 불러들인 물의 정령은 제코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그 성정이 밝았다. 특히 아이들을 좋아한지라 제코는 일이 없을 때면 일부러 그를 불러 아이들과 놀게 해 주었다.
제코는 물의 정령에게 마놀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예전 어머니가 가르쳐 준 위대한 신관의 이름이었는데, 주인이시자 신관이신 야안의 그 뒤를 따르고 싶다는 의지가 그 이름에 자리했다.
하급 정령이라 그런지, 마놀은 유피테르 앞에만 가면 평소의 밝은 성정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숨죽이며 눈치를 살폈는데 그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었다.
제코는 정령사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검 또한 성장하여 이제 상급 유저로서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검과 정령을 함께 운용한다면 테리와도 격전을 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들의 대련은 언제나 테리의 승리로 돌아갔다.
비록 제코가 검으로는 상급 유저 셋, 넷 정도는 무리 없이 상대할 정도지만 검기를 일으키어 검의 구의 간격을 만드는 익스퍼트의 경지를 상대하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장소가 물과 가까운 곳이라면 테리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하급 정령과 이름을 주어 계약을 이루게 된 뒤 본래 물에 강했던 제코는 중급 정령 마스터 못지않을 정도로 물속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게 되었던 탓이다.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올해 8살이 된 아론은 여타 그 나이 또래의 아이보다 세네 살이 많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
외모는 날이 갈수록 야안보다 어머니 쪽을 많이 닮아갔는데 덕분에 사내치고는 고운 편이었다. 씩씩한 걸음을 보이던 아론은 아버지와 함께 온 자신의 동생 로뎅을 크게 반기며 안아 들었다.
세 살이라지만 우량아로 태어난만큼 그보다 두어 살 많은 덩치였는데, 이년 전부터 검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힘이 불어난 아론은 마치 솜털처럼 로뎅을 안아 들었다.
이제 8살에 불과한 아이치고는 믿어지지 않는 힘이었는데 처음 야안이 이방인의 능력을 얻었을 때의 힘과 비슷할 정도였다.
“형님. 보고 싶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탓에 얼굴이 상기된 로뎅이 옹알거리는 것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었다.
로뎅은 아론보다 외모가 더 고운 편이라 아론이 느끼는 감정은 더욱 컸다. 야안은 우애 깊은 자식들의 모습에 미소를 보였다.
“동생이 아직 어리니 뛰는 것 같은 과한 움직임은 자제하거라.”
“네, 걱정하지 마세요.”
아론은 싱글벙글하며 로뎅을 안다시피 데리고 움직였다.
로뎅에게 보여주고 싶은 일이 많았다. 이번에 계약하게 된 바람의 정령을 동생에게 자랑하고 싶어 아론은 마음이 매우 들뜬 상태였다.
생각한 것보다 아론의 정령 계약은 늦었는데, 이는 질 좋은 정령석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래 정령석이라는 것이 미스릴 만큼이나 희귀한 것이었고 정령사 또한 워낙 적어 찾는 이가 없어 구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론이 여러 곳을 찾아 얻은 정령석은 그 질이 매우 낮은 것에 불과했다. 질이 낮은 정령석은 정령과 계약을 맺는 데 좋은 영향을 주기 어려웠다. 잘못하면 상성이 맞지 않은 정령과도 계약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에 미뤄두고 있었다.
야안은 아무래도 구하지 못할 것 같아 작년 겨울 초 저주받은 숲에 사람을 보내었고, 다행히 연락이 닿아 예전 야안이 얻은 정령석 만큼은 아니지만 상급의 정령석 네 개를 가져오게 되었다.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적게 들었는데, 이는 이른 시기에 숲의 가장 바깥에 자리한 하얀 까마귀 전사와 연락이 닿았기 때문이다.
서신과 함께 예전 하얀 까마귀 부족이 명예 스승으로 인정하면서 준 패를 건네준 덕분에 올해 봄이 지나지 않아 물건을 구해 올 수 있었다.
유피테르가 말해준 바가 있어, 아론의 속성이 바람의 정령과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짐작한 것보다 아론은 바람과 속성이 잘 맞는 듯했다.
계약을 한지 아직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아론은 정령의 힘을 제대로 다루고 있었다.
물론 이에는 유피테르가 바람의 정령력을 유도한 덕분에 그 같은 성장을 보일 수 있었지만, 그 이전에 아론의 정령사의 재능이 뒤떨어졌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야안은 잠시 들뜬 모습으로 멀어져 가는 아들들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모레 출정식을 앞둔 그가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이제 마크 자작 가에도 관료들이 많이 늘어나 예전처럼 일일이 자신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약 일 만에 달하는 대군이 움직이는 만큼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결재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확인해야 할 작업들이 많았다.
야안은 영지에 남는 자금을 풀어 라문 왕국에서도 상급 품종인 엘로우 라이트라는 말들을 수입하였다.
챈들러의 애마인 블랙라이징에 비한다면 격이 떨어지기는 엘로우 라이트는 100km를 하루 만에 주파하는 놀라운 체력을 지니고 있었다.
영리한데다 한 번 주인을 정하면 바꾸지 않는 충성심도 있었는데, 야안은 이 말을 수입하여 특전대에 쓸 생각이었다.
특전대의 말들이 여타의 말들에서 고르고 고른 만큼 뛰어난 체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철갑마의 역할을 온전히 행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다행히 새로 거래를 튼 라문 왕국의 자인 백작 가에서 엘로우 라이트를 거래하기로 하였는데, 예상한 것보다 가격이 상당했다.
하지만 애초 엘로우 라이트의 품종을 그대로 쓸 생각은 없었다.
본래 엘로우 라이트를 종마로 쓰기로 한 것이라, 다쳐 그 가치가 떨어진 엘로우 라이트 또한 수입한 것이다.
작년에 실시한 이 기획은 올해 조금씩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엘로우 라이트 말들을 수입이 늘어나면서 2년 뒤라면 어느 정도 쓸 만한 종자를 얻을 수 있을 듯했다.
이후 조금씩 교배를 통해 전투마의 질을 높여 다른 기병들에게도 상질의 품종의 말들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야안은 여전히 말이 많은 전투 식량의 맛을 개량하였다. 보관 기간 또한 기름 먹은 종이를 이용하여 기간을 늘리는 등 여러 면에서 개선한 결과 그 양이 전보다 늘어나게 되었지만 시전에 팔아도 될 정도였다.
몬스터 토벌을 통해 영지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운 좋게도 구리 광산을 발견하게 되었다. 매장량도 나쁘지 않아 금속을 수입에 의존하던 마크 영지의 입장에서는 여러 면에서 이득을 보게 된 일이었다.
하지만 구리 광산을 개발하지는 못했다. 아직 구리 광산이 마크 영지 영역에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구리 광산을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이유는 구리 광산의 위치는 현재 마크 영지의 저력이라 할지라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곳에 자리한 탓이다.
야루스 산맥의 산자락을 잇는 산맥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산맥은 오크들 때문에 자신들의 영역에서 밀려난 기괴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그런 몬스터들의 영역이 거미줄처럼 꼬여 있어 섣불리 들어섰다가는 큰 피해를 볼지 모른다. 구리 광산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힘들게 키운 군사들만큼은 아니었기에 이 같은 과정을 보이고 있었다.
마크 자작은 정찰병을 보내어 이곳의 지리를 조금씩 조사를 하며 자료를 모으고 있었는데, 늦어도 내년 안에 이곳을 토벌할 준비를 마칠 수 있을 듯 보였다.
한스는 최근 들어 안색이 좋지 못했는데, 이는 그가 중급 현자의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초급 현자 마스터를 이룬지 삼 년 만에 중급 현자 비기너의 문을 두드렸다는 것은 확실히 그의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복수면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를 하는 것이나 야안에 의해 농도 짙은 마나로 그 기감이 예리해진 것도 한몫했지만, 그도 재능이 있어야 따르는 행운이었다.
“초조하지 마라. 시간이 헛되게 보내고 있다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너는 확실히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으니 말이다.”
스승인 야안의 그 충고를 받아들인 한스는 조금씩 지쳐가는 심력을 보존했다. 야안은 그 충고와 더불어 자신의 경험담과 스승이시던 로뎅의 경험 또한 한스에게 알려주었는데, 야안이 보기에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중급 현자 비기너에 들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야안은 로뎅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낮에 형인 아론과 신 나게 놀았던 탓인지 어느새 꾸벅꾸벅 잠이 든 로뎅의 모습에 야안은 웃음을 흘리며 안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