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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63화 (163/385)

야안 163화

51. 데론의 침공

마치 깨달음을 얻었을 때처럼 주위가 멈춘 것 같은 수준까지는 무리겠지만, 체내의 시간과 체외의 시간을 어긋나게 할 수 있었다.

위대한 주술사의 경지에 오른다면 자신만이 아닌 적의 인지능력을 느리게 하여 그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간을 마음대로 다루는 존재가 되는 것이니 그보다 더 무서운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당시 그 리트담의 주술을 통해 그는 행운이 5스탯이 오르는 것으로 그쳤지만, 본격적으로 주술을 펼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지난 그가 얻은 것에 못지않다 하겠다.

이 외 야안의 그간의 성과를 본다면 예전 붉은 노을이 그에게 주었던 로탐을 섞어 만든 경갑과 작은 방패였다.

[로탐의 경갑.

등급 : B+

장인 중의 장인인 대장인의 솜씨가 자리한 물건이다. 그의 숨결이 자리한지라 그 견고함은 미스릴을 넘어섰다. 마법이나 검기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 고위 현자급의 대마법이나 상급 익스퍼트 수준의 검기가 아니면 로탐의 경갑을 파괴할 수 없다.]

[로탐의 방패.

등급 : B-

장인 중의 장인인 대장인의 솜씨가 자리한다. 마법이나 검기의 충격도 완화할 수 있다.

* 고위 현자급의 대마법과 상급 익스퍼트 수준의 검기가 아니라면 받아칠 수 있다.]

야안은 이 두 가지의 물건 중 경갑은 하나만을 로탐의 방패는 3개를 만들 수 있었다.

로탐의 금속은 고대 드워프들만이 다루었다는 말이 사실인 듯 대장인의 칭호를 단 야안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장인의 범주를 넘어선 야안이었기에 이처럼 경갑과 방패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지 다른 장인들이었다면 크게 절망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

아니, 다루려는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무식하기는 하지만 초인에 달하는 자가 힘으로 통째로 깎아가며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은 매우 조잡하다.

강도 또한 떨어질 것이고, 힘의 분산도 엉망일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 이전 한 나라의 왕보다 더 귀한 초인이 그런 일을 할 일도 없을 것이다.

제국의 황제라면 그 초인에게 명을 내려 만들 수도 있겠지만, 제국에도 몇 되지 않은 귀한 존재에게 시킬 일은 아니었다.

그러하기에 로탐이라는 이 금속은 드워프가 사라진 지금의 대륙에 오직 야안 만이 다룰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야안에게는 이미 푸란의 가죽을 정련하여 그 부피를 줄이고 견고함을 늘인 푸란의 경갑주가 있기에, 그는 이 로탐의 갑주를 마크 자작에게 바쳤다.

이 갑주라면 별다른 무위가 없음에도 항상 전장의 위험에 노출된 마크 자작의 목숨을 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왜소하고 약한 마크 자작은 이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데다 검으로 세차게 내려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갑주에 놀라워하며 크게 마음에 들어 했다.

비록 무구를 보는 눈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는 보기 드문 보물급인 물건임을 알아본 것이다. 대귀족이나 되어야 얻을 수 있는 물건이라 생각했는데, 그 본래의 가치를 안다면 그는 단순히 놀라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야안은 3개의 로탐의 방패 중 2개를 챈들러와 테리에게 내 주었다. 크기가 작은 방패라 왼손에 부착하면 거치적거리지도 않았기에 앞으로 기사들과의 전투를 겨루어야 할 그들에게 있어 생사를 결정짓는 데 큰 도움을 줄 물건인 것이다.

중급 익스퍼트 급의 검기라 해도 막아설 수 있을 정도이니 수하들과 함께 합공을 한다면 적장을 잡는데 그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터였다.

확실히 초급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자리한 챈들러와 그 타고난 전투 감각이 자리한 테리가 이 방패의 힘을 빌려 함께 합공한다면 중급 익스퍼트에 오른 자라 해도 승산이 없지는 않았다.

야안은 보름간 현재 아슬아슬한 경지에 자리한 마법을 중점으로 수련을 하였고, 추수가 끝이 날 때쯤 그는 폐관수련을 마치었다.

* * *

카람 백작 가에서 기사단장을 맡은 데론은 자신이 아들처럼 키우던 라테온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았다.

시신조차 건질 수 없어 살아생전 그의 유품들을 모아 만든 가짜 무덤에 말없이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던 데론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멋들어진 하얀 수염이 겨울의 삭풍에 흔들렸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무심한 녀석 같으니. 젊은 네 녀석이 나보다 먼저 가면 어쩌자는 것이냐?”

이십 년 전 아들 둘을 전장에서 잃고 어렵게 정이 든 녀석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손자 같기도 했고, 어린 막내아들 같기도 했다.

그런 아이를 허무하게 잃고 말았으니 그의 상실감은 대단히 컸다.

그의 나이 일흔하고 다섯.

귀족이라 해도 상당히 장수한 나이였고, 그 나이의 여타 귀족이라면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하기에 바쁠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십 대의 젊은 장수들보다 더 건장한 체격을 자랑했다.

그도 그런 것이 인간의 육체가 단련할 수 있는 절정의 경지의 두 번째에 자리한 중급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자리한 그였으니 그 정정함은 당연한 바이다.

무인으로서 최절정기에 올랐다 봐야 했다.

쿠엔 후작 가에서 보낸 지원군에 의해 지난 티온 백작 가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여 여유가 생긴 그는 카람 백작에게 지난 마크 자작 가에 복수를 하기를 건의하였다.

다행히도 카람 백작은 지난 크게 패배한 전투에 앙심이 남은 것도 그렇고, 장인이라 할 수 있는 나프롬 자작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 언짢았던 탓에 그의 건의를 반기며 받아들였다.

늦봄이 되어 군사를 일으킬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일어설 병력은 정예병만 일 만에 달했고, 갖은 일을 맡을 농노병이 일 만이 넘었다.

거의 이 만에 달하는 대군이 일어서는 것인데, 그 지휘관으로 오랜 세월 전장에서 살다시피 한 데론과 지난 전장에서 깨달음을 얻어 기사가 된 팔론 경이 움직이기로 하였다.

전력을 본다면 카람 백작 가의 30%에 달했다.

그 같은 거대 병력이라면 아무리 전술로 이름이 높은 마크 자작이라 해도 별도리가 없을 것이다.

무슨 수를 쓴다 해도 어느 정도 그 힘을 맞상대할 만해야 가능한 것인데, 이제 성장하기 시작한 자작가 정도의 병력의 수를 생각한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치열한 전장에서 갈고닦은 솜씨를 지닌 기병이었으니 신중하게 마크 자작의 기병을 상대한다면 어렵지 않게 격파할 수 있으리라 그는 생각했다.

마크 자작으로 승격한 것은 고작 5년에 불과했다.

그가 명예 만인장을 받은 덕분에 첩자나 나프롬 자작 가에서 보낸 전령을 통해 얻은 병력이 여타의 자작 가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바다.

비록 티온 백작 가를 상대하느라 신경을 쓴 탓에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지만, 그 전력을 갖춘 시간이 짧은 만큼 그들이 모은 병사들이 오합지졸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무슨 복이 있었던지, 마크 자작 가에는 지난 라테온을 꺾은 챈들러라는 걸출한 기사가 있지만, 중급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데론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의 목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조건을 보아도 질 수가 없는 전쟁이었다.

‘촤아아악-’

데론은 자신이 마시던 포도주를 그의 무덤 위에 부었다. 짙은 포도주의 향이 은은히 코를 내질렀고, 그 색은 얼어붙은 흙 아래로 물들어갔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무덤에 부어대던 데론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무겁게 몸을 돌렸다.

사나운 맹수를 보는 듯 그의 몸에서 거대한 기백이 흘러 나온다.

“이 만이라, 거기다 하얀 호랑이 데론 그가 나선다는 말인가?”

하얀 호랑이는 저 먼 융 제국이 다스리는 얼음산에 산다는 맹수였다. 몬스터를 잡아먹고 사는 맹수로 대단히 영리하여, 지는 전투에는 나서지 않는다 했다.

한 번 몸을 날리면 십 미터는 거뜬히 뛰어오르며 앞발로 내려치면 오우거라 해도 쓰러질 정도이다.

턱이 매우 강하고 송곳니가 매우 날카롭고 단단해, 도약을 하며 대형 몬스터의 멱을 따 버리고 내려서는 능력이 있었다.

중급 익스퍼트 기사라 해도 그 승률이 50%를 넘지 않는 괴물이라 할 수 있다.

데론은 그런 하얀 호랑이와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있다. 그는 지는 전투를 만들지 않았다. 또한, 한 번 목표를 잡으면 놓치지를 않고 끈질기게 따라붙어 숨통을 끊었다.

지난 전쟁에서 카람 백작이 올린 공적 중 대부분이 그가 나서 만든 성과였다. 그런 그의 신분도 대단했다. 카람 백작의 외삼촌이기도 한 그는 자작의 직위에 있었고, 현재 마일드 왕국에 자리한 기사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이기도 했다.

마일드 왕국의 상급 익스퍼트의 수가 3명뿐임을 상기한다면 그는 중급 익스퍼트들 중에서 최강자의 실력을 지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기야 중급 익스퍼트에 오른 지 이십 년이 지났으니 그 같은 실력을 지닌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외에도 이번에 기사가 된 팔론이라는 자가 이 전장에 모습을 보인다 하니 단순히 전력만을 비교한다면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 어렵게 되었군.”

잠시 중얼 거리던 마크 자작이었지만, 그 말과 달리 그의 가슴은 어린 시절 처음 말을 탔을 때만큼이나 두근거렸다. 다른 지휘관이었다면 난처함을 보이며 피하고 싶은 상황이겠지만, 그는 지금의 상황을 반기었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기량을 힘껏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마크 영지의 군사들은 꿈속에서나 그렸던 전력을 완성한 상태였다. 핵심인 기병들은 이제 자신의 전술을 따를 정도로 자유자재로 말을 다루었고, 그 무위는 제국의 유명 기병대와 마주해도 밀리지 않았다.

애초 고르고 고른 뛰어난 근골들을 모아 훈련했기에, 어느 누구도 훈련에 뒤처져 진열을 흩뜨리는 존재는 없었다.

또한 보병들은 어떠한가? 석궁병과 궁병, 중장병, 창병, 검병 다섯 병과로 나뉜 그들은 이미 하급 유저를 넘어선 존재들이다.

그 실력도 뛰어나며 오방 검진을 변형한 진식을 익히었다. 그렇기에 각 병과를 모아 다섯이 한 조로 만들어졌는데, 그 상대가 최정예로 구성된 적이라 해도 세 배의 숫자까지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었다.

모이면 각 병과의 힘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며 흩어져도 각개전투에서 최강의 능력을 지닌다.

그런 병력이 일 만에 달했다.

그리고 적은 그 병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이길 수 있는 존재였다. 전술가인 그로서는 더 없이 바라는 상황인 것이다.

“자 어떻게 할까? 상식적으로 수성을 해야 하겠지만…….”

그는 잠시 말꼬리를 늘리었다.

수성은 버티는 싸움이다. 성을 끼고 싸우는 것이기에 공격보다는 수비에 중심을 둘 수밖에 없다.

시간을 끌면 이길 확률이 높아지며 적과 아군의 숫자를 어느 비율로 맞바꾸는 전쟁이다. 전술보다는 전략을 잘 짜야 하는데 마크 자작의 재능은 전략보다 전술에 그 비중이 높다.

다른 존재였다면 수성을 선택하는 것이 이득이지만, 마크 자작은 어느 경우를 선택해도 상관이 없다.

수성을 하면 적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그의 귀신같은 전술에 발이 묶이게 된다. 그 힘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곳 대륙은 수많은 현자의 등장으로 건축술보다 공성무기가 많이 발전되었다. 천 년간 성을 짓는 방법은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지만, 공성무기나 전투 방법은 끝없이 발전해왔다.

그 때문에 아무리 천혜의 요지를 잡고 있는 성이라 해도 3배 이상의 병력을 막지 못하였으며, 기본적으로 성은 1.5~2배의 병력을 막는 것이 한계라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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