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64화
마크 영지의 성은 그간 많은 개축을 하였지만, 뛰어난 편은 아니었기에 마크 자작은 수성보다는 공세를 취하기로 했다.
“결정을 내렸으니, 한동안 바빠지겠군.”
적이 자신들보다 강세하니 자신은 지리의 이점을 잡아야 한다. 그로서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형태로 싸워야 했다.
마크 자작은 근 몇 년간 만들어 둔 지도들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그의 전략의 흐름은 다른 이었다면 불가능할 정도였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숨 쉬는 것만큼 편한 형태였다.
챈들러와 테리에게 병사들의 기량을 측정하게 하여 보고를 받은 뒤 여러 부가적인 상황을 고려해 그들의 80% 기량에 맞추어 움직이도록 했다. 그 80%라는 것이 최대의 전투 기량을 기준으로 잡은 만큼 실제로 그 같은 기량을 계속 유지하려면 이번 겨울을 잘 활용해야 했다.
그는 이번 해 안에 구리 광산까지 영지를 확대하기로 했다. 몬스터 토벌을 토대로 지옥 훈련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피가 나고 이가 갈리는 지옥 훈련이 되겠지만, 이 몬스터 토벌을 끝내었을 때 지금의 기량보다 훨씬 상승해 있을 것이다.
카람 백작 가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마크 자작의 전략이 전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경우이다.
그의 전술이 워낙 대단하기에 그는 전략을 전술처럼 꼼꼼하게 짜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의 전략에는 차선은 없었다.
오직 단 한 가지의 전략만을 밀어붙였다. 그렇기에 허술한 면이 있어 보였지만 매번 그의 전략이 성공적으로 끝이 나는 이유는 그의 전술이 매번 큰 성과를 거두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마크 영지의 군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최소한 자신이 죽은 뒤의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체계를 이룬 야안의 복지 정책에 죽은 병사들의 가족들은 영지의 보호 아래 살아가기 때문이다.
야안은 고대 왕국의 예를 따라 죽은 병사들에게 훈장을 내려 명예를 주었고, 새로 일구어진 땅 일부를 무보수로 일정 기간을 임대하게 해주었다.
그들의 자식이 성인이 되어 일자리를 찾을 때, 같은 조건이면 그들을 먼저 뽑도록 유도했다.
그러니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로서는 최소한 가족의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미 지난 7년의 기간 동안 그 복지 정책이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았기에, 그들은 영지의 일에 강한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영지민들은 저마다 이가 갈리는 고된 훈련을 하는 군사에 뽑히기를 희망했다.
야안은 마크 자작이 수성을 포기하고 공세를 치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과연 그분답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는 것보다 필요 물자가 많지 않군.”
물론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전투를 해야 하는 만큼 지원 물자의 수준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전투 양산을 생각한다면 그 물자는 많지 않았다.
야안은 그 물자를 준비하면서 한편으로 관개수로가 70%의 완성을 보이며 여유가 생기게 되어 이번 전투에 나서기로 한 제코를 가르치었다.
제코는 유피테르로부터 물의 하급 정령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고, 야안에게서는 검을 배웠다.
야안이 제코에게 가르친 것은 다름 아닌 방패술이다.
마지막 남은 로탐의 방패를 그에게 내어주며 그 방패를 쓰는 방법에 대해 가르쳤는데, 정령술에 의해 힘과 민첩이 매우 늘어난 그가 방패를 쓰기 시작하자 상대가 초급 익스퍼트에 오른 자라 해도 그 승산이 40%에 달하는 기량을 보이게 되었다.
제코의 입장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것이 기사의 검기였다. 검의 구에 침습하기 위해서는 이 검기를 받아쳐야 하는데 그것은 아무리 정령에 의해 신체 능력이 올라간 그라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로탐의 방패를 가지게 되어 받아치게 되었으니 승산이 있는 싸움이 된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검과 방패만을 싸웠을 때의 이야기였고, 현재 유피테르로부터 바짝 긴장을 하던 제코와 물의 정령 마놀은 이번 겨울이 다 지나기 전에 하급 물의 정령 마스터가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익힐 수 있어 보였다.
체외 밖으로 나오게 된 유피테르가 찾은 왕의 권능에는 정령사를 이끄는 능력도 있기에 그 같은 성장이 가능했다.
“헉헉. 수고하셨습니다.”
하얗고 투명한 작은 인영에게 인사를 건넨 제코를 따라 물의 정령 또한 깊게 몸을 숙이더니 곧 모습을 감추었다.
제코의 정령력이 바닥을 찬 탓이다.
유피테르는 그런 제코에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야 어느 세월에 상급 정령 마스터가 되어 야안을 보필하겠는가?”
그 말에 제코는 비 맞은 강아지 마냥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유피테르의 말이 틀리지 않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설의 현자의 뒤를 잇게 될 야안을 보필하려면 상급 정령 마스터가 되어야 한다. 그 경지를 목표로 하는 제코의 입장에서는 유피테르의 말이 틀린 것이 없다 판단했다.
누군가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면 어이가 없어 할 것이다.
상급 정령 익스퍼트에 오르기만 해도 그 적수를 찾기 힘들다. 그것만으로 대륙을 휘어잡는 초인의 반열이건만, 그것을 넘어 상급 정령 마스터를 노린다는 그의 생각은 과한 면이 있다.
지난 천 년간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상급 정령 마스터였으니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령의 왕인 유피테르가 있었고 그의 권능에 정령의 친화력은 자연스럽게 향상되었고 험하나 보옥 같은 그의 가르침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니, 그것을 생각한다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지금 제코의 정령의 친화력을 본다면 야안의 친구이자 숲의 부족의 왕자인 라진만큼은 아니지만, 여타의 정령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능히 상급 정령 익스퍼트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뛰어난 친화력을 지녔지만, 전설의 현자들이나 전설의 시대에 자리한 수많은 이종족의 용사들을 보았던 유피테르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당장 멀리 볼 것도 없이 그와 계약을 맺은 야안만 보더라도 그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의 야안의 정령 친화력은 라진만큼 높았고 또한 앞으로 더 성장할 여지가 있었다.
야안은 유피테르의 그런 생각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헛웃음을 흘리며 다가와 손을 저었다. 이내 신마법 마케가 제코의 몸에 펼쳐졌다.
제코는 몸이 급속도로 회복되어가자 감사하게 여기며 서둘러 옷을 정리하며 인사를 하였고, 야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수고했다. 이만 쉬도록 해라.”
“네.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몸이 상당 부분이 회복되었지만, 정신적인 피로까지 회복된 것은 아닌지라 여전히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자리했다.
멀어져가는 제코를 바라보던 야안은 그가 이번 전쟁에서 많은 것을 깨닫기를 바랐다. 그 숫자가 일만이 넘어가는 대단위 전장에서의 전투는 일대일이나 백 단위의 산적이나 몬스터들과 전투와 그 질이 다르다.
이 전장에는 괴물이 산다.
그 괴물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공포를 일으켜 그들을 잡아먹는다. 처음 그 같은 규모의 전쟁에 나선 신병들의 반은 그 전장의 괴물에 먹힌다.
뛰어난 지휘자일수록 그런 신병들로 인해 진열이 흩어지지 않게 엄격한 제식훈련을 시키며 군기를 잡는다. 모질다 싶을 정도로 굴리며 악을 쓰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제식훈련을 마쳐도 진열이 흩어지지 않게 만들어질 뿐 그 공포를 이겨내게 할 수는 없다.
야안은 그 점에 대해 제코가 무사히 이겨내기를 원했다. 이번 전쟁은 확실히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또한 크게 성숙하게 될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잠시 그에 대해 생각을 하던 야안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이런 전쟁은 두 번째인가?’
지난 라쿤 백작 가에서 몬스터 토벌을 하기 위해 참여한 적이 있으니 이번으로 두 번째였다.
야안은 지금까지 수성을 해야 한다는 면목으로 영지를 지켰지만, 한스를 비롯해 영지에 많은 인재가 자리하게 되자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더구나 마크 영지에 일격을 가할 거리에 있는 나프롬 자작은 사라져 하나로 통합되었으니 그 만약의 위험도 떨어졌다.
예전 몬스터 토벌 때 이후 마크 가의 이름 아래 나서는 첫 출전이었다.
이번 카람 백작이 일으킨 군대의 규모나 질은 마크 영지가 모두 받아치기에는 위험성이 컸기에 그는 고심 끝에 이번 전쟁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 결심을 서게 하는데 가장 큰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주술을 사용하게 되면서였다. 외모를 바꿀 수 있는 이 주술로 야안은 자신의 능력을 필요 이상 숨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게 될 때, 주술로 모습을 바꾸어 움직이면 사람들로부터 이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실력을 다 발휘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야안 그를 담기에 마크 영지의 규모가 너무도 작았던 탓이다. 현재 마일드 왕국은 전국시대가 열리기 직전의 시기이다.
이러할 때 야안과 같은 실력자가 갑자기 등장한다면 왕국의 모든 세력의 시선은 마크 영지로 향할 것이다.
고된 견제가 시작될 것이다. 지금 마일드 왕국은 포화상태였다. 더 이상의 새로운 강자는 어느 세력도 원하지를 않는다.
마크 자작 가기 도움을 받고 있는 힐튼 공작 가 또한 돌아설 것이 분명했다. 이전과 달리 삼킬 수 없는 크기였다.
아니, 그 이전 만약 야안의 나이가 너무나 젊었다. 이십 대에 그 본래의 무위를 보이게 된다면 더 이상 왕국 수준의 문제가 아닌 대륙 수준의 문제가 된다.
이십 대에 그 같은 경지에 오른 이의 앞날은 뻔했다.
고대 인류의 영웅이며 대륙의 구세주이기도한 대현자 테무드와 같은 강자가 모습을 보일 것이 분명한 일이다.
젊은 시절부터 크게 두각을 보인 대현자 테무드는 만약 죽음의 지배자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채 인간들의 견제에 휘말려 채 성장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강력한 적이 있기에 그는 별다른 견제 없이 그 같은 수준에 올라설 수 있었다.
야안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힘을 보이지 않았다.
하기에 이번 전투에서도 야안은 초급 익스퍼트 기사 수준에 맞추어 나서기로 했다. 이미 그는 예전 테리에게 검을 가르치는데 의문을 보이는 마크 자작에게 그 자신이 초급 익스퍼트에 올랐음을 말한 적이 있었다.
마크 자작은 그 사실을 알기에 그간 마음을 놓고 뒤에서 나프롬 자작이 노리고 있음에도 영지의 병력 대부분을 이끌고 전쟁을 나섰다.
기사가 지키고 있는 이상 나프롬 자작이 아무리 약은 수를 낸다 해도 그것을 뚫지 못한다. 단 몇백의 병력과 함께할 뿐임에도 기사의 그 무력의 특성상 천 단위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크 자작은 그런 야안의 참전을 반겼다.
신관이기도 한 그가 전장에 모습을 보인다면 많은 수하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야안이 군대와 호흡을 맞추지 않았기에 마크 자작은 군대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야안을 위한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