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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66화 (166/385)

야안 166화

이번에 카람 백작 가와의 큰 전쟁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걱정이 되기는 하였지만, 예전과 달리 기사의 경지에 올랐으니 자신의 몸 하나 빠져나오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간 들었던 풍문으로 기사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때의 그 작은 아이가 기사가 되다니.’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회한에 빠져 있던 베론 가한은 식사를 마친 아들에게 물었다.

“출정 시기가 이제 한 달 반 정도가 남았지?”

“네. 그렇습니다.”

야안의 대답에 마리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이 기사가 되었다는 말에 밤잠을 자지 못한 채 기뻐하던 그의 남편과 달리 그녀는 출정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그간 총관의 자리에 있어 출정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겼는데, 이번에 아들이 출정을 하는 것을 보면 이번 전쟁은 이십여 년 전 그때의 전쟁 상황만큼이나 어려울 것으로 그녀는 짐작했다.

하기에, 그녀는 남편처럼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말이다.

그런 마리의 모습에 베론 가한은 기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해 풍문으로 들었던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지만, 그녀는 걱정을 멈추지 못했다.

전쟁으로 아들 셋을 잃어야 했던 그녀였기에 그 근심을 떨쳐내지 못했는지 모른다.

야안은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알았던 터라, 바쁜 일정에도 시간을 내어 매번 걱정하지 마시라며 그녀를 위로했다.

멜리나 또한 마리 못지않게 걱정을 하였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버지인 한스에게서 그 기사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들어 알았지만, 한이불을 덮은 지 벌써 7년이 넘어가는 지금 남편이 그런 사람이라는 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아니, 가끔 밖을 나서면 총관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크게 몸을 숙이며 다가왔지만, 그녀가 본 야안은 부모님에게는 둘도 없을 효자였고, 아이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였으며, 자신에게는 든든한 남편이었다.

일이 바쁘다 하여 가족을 소홀하게 여기는 다른 가정과는 달랐다.

언제나 그의 말과 행동은 진실했다.

잠시 후, 성으로 떠나는 야안을 배웅하던 멜리나는 그를 꼭 안으며 씩씩하게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끼니도 거르지 마요. 알았죠?”

그런 부인의 모습에 야안은 미소를 보이며 작게 끄덕였다.

“그래, 잘 다녀올게.”

그러며 돌아서 검은 야쿤을 타고 성으로 향하던 야안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멜리나에게 어느새 다가온 로뎅이 칭얼거리자 곧 아이를 안고 집안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출정의 시기가 찾아왔다.

지난겨울에 있었던 마크 자작의 몬스터 토벌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다행히 전사자는 없었지만, 부상자의 수는 꽤 되었다.

부상이라 하여도 무구가 훌륭해 경상 정도에 그쳐 큰 문제는 없었다.

현재 마크 자작 가의 무구의 질은 예전 백작 가 급이 아닌 후작 가 이상의 무구의 질을 자랑했다.

이 같은 변화는 대장인의 경지에 오른 야안이 도움을 주었던 덕분이었다.

직접적인 형태가 아닌 간접적으로 그들을 이끌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짧은 시기 이 같은 발전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그에는 야안이 뽑은 인재들의 힘이 컸다.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무엇을 가르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그들의 수준은 상당해 야안의 가르침을 따를 정도는 되었다.

몬스터 토벌이 성공적으로 끝이 나면서 구리 광산을 확보하게 되자, 야안은 우선적으로 다른 공사를 늦추고 구리 광산 개발을 시작했다.

다행히 합병한 나프롬 자작 가의 영지에 광산을 다룰 줄 아는 인재가 있어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다.

위험지대인지라 일부 병력을 이곳에 풀어놓고, 망루와 목책들을 빠르게 지어 올렸다. 다른 곳보다 더욱 견고하게 짓도록 했는데, 이후 성벽 공사 또한 한층 더 높게 짓기 위해 지반을 다지도록 명하기도 했다.

한스는 광산 공사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특별히 안전에 힘을 썼다. 상당한 자금을 풀고 그 공사시일을 길게 잡고, 한 편으로는 이번에 뽑힌 광부들에게 안전 교육을 실시했다.

출정 준비를 마친 마크 자작 가의 병사들은 지난겨울의 그 혹독한 훈련 덕분인지 그 기세가 상당히 날카로웠다.

제식훈련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고, 기병들의 말 다루는 솜씨는 물이 올라 마일드 왕궁의 푸른 기병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보병들 또한 움직임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져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 겨울 사이 가장 많이 변모한 것은 야안이 이끄는 별동대였다.

전체적으로 그 기량이 한층 올라갔으며, 야안이 그들에게 새롭게 맞춘 방패와 검을 사용하는 검진의 위용은 대단해 중급 유저와 하급 유저 넷이면 상급 유저 수준의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이들의 방패술은 개개인이었을 때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모여서 펼치기 시작하자 움직이는 벽을 연상케 하였다.

은신하는 방법도 가르쳐 기습에도 용이하게 만들었다.

마크 자작은 야안의 별동대를 보며 감탄을 하고는 이번 전쟁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을 짐작했다.

남은 며칠 간 야안은 지난 거친 전쟁을 겪어 짙어진 살기로 인해 균형이 무너진 챈들러와 테리를 다듬어주었다.

익스퍼트에 오른 이이니만큼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감당할 수 있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야안과 같은 상승의 무리를 아는 이가 다듬어주자 단 며칠의 시간만으로 그들은 빠르게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출정의 날이 찾아왔다.

그날은 어느 때보다 따스로운 봄 날씨를 자랑했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그들의 번쩍이는 무구를 빛냈다.

일 만에 달하는 대병력이 움직이자 그 소리에 대기가 요란스럽게 어지러워졌다.

곧 마크 자작 가에서 대병력이 성벽을 나서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와 달리 전쟁물품이 상당한 탓에 줄은 끝이 없어 보였다.

저마다 영지의 사람들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든든하면서도 걱정이 되기도 해, 저마다 아리스 님을 찾으며 기도를 드리는 이들이 종종 모습을 보였다.

‘다그닥, 다그닥-’

요란한 말굽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윤기가 흐르는 백마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일천의 기병들이 모습을 보인다.

그 기병들은 여타의 기병들과 달랐다. 그들은 온몸에 얇은 연철을 휘두른 철갑마를 타고 있었다. 그들의 주인들 또한 그 무장이 대단했다.

부분 플레이트 갑옷은 물론이고, 단창 다섯 개가 오른쪽 말허리에 차 있었고, 마상검과 방패가 허리에 매달려 있었고 마상창 또한 말의 왼쪽에 자리했다.

그 육중한 무게에도 불과하고 상질의 품종인 듯 말들은 무서운 속도로 앞서 나가는 백마를 어렵지 않게 따라갔다.

백마를 탄 이는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후한 사내였다. 그는 두터운 풀메이트 메일을 몸에 지녔음에도 편한 사복을 입은 듯 그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그는 다른 기병들과 달리 마상검 하나만을 허리에 차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 기세는 일천의 기병들보다 더 사나워 보였다.

왼쪽 귀와 오른쪽 턱에 긴 검상이 아니었다면 편안한 노후를 보냈을 귀족이라 생각했을지 모를 정도로 멋진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팔론은 멀리서 다가온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가 쿠엔 후작 가가 자랑하는 오대 검 중 이 검이신가?”

전대의 쿠엔 후작 가의 직계 후손 중 아홉 번째 자식이기도 한 그는 열일곱에 형제들의 아귀다툼에서 살아남은 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현 쿠엔 후작의 세 명의 형제 중 하나이기도 한 로칸 자작은 올해 팔십에 들어선 이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기세가 매서웠다.

이십 년 전 중급 익스퍼트에 들어선 로칸 자작은 한때 오대 검 중 첫 번째 검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들어 육체의 노화로 인해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쿠엔 후작이 양자로 들인 후계자에게 일 검을 내 준 뒤로 바짝 독기가 올랐다 하는데, 팔론은 설마 이번 출정에 그가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지난 전쟁에서 제국의 기세와 힐튼 공작 가에 눌려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것을 이번 전투에서 만회하려는 듯 보였다.

“늙은 늑대가 냄새를 제대로 맡았군.”

지려야 질 수 없는 전쟁이었으니 공을 세워 다시 일어서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로칸 자작의 입장에서는 이 전쟁은 기다려 온 희소식이었을 것이다.

팔론은 자신이 공을 세울 기회가 줄어들었음을 깨달았기에 투덜거리다 데론의 눈짓에 말문을 닫았다.

곧 로칸 자작과 그가 이끄는 철갑마가 흙먼지를 휘날리며 데론이 이끄는 군대와 마주했다.

데론은 곧 그에게 다가가 그를 반겼고, 로칸 자작 또한 데론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러하오. 데론 경의 기세가 더욱 성장한 듯하니 놀랍소.”

나이가 들수록 검의 성장이 더디어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로칸 자작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데론은 그의 말에 작게 목례를 보이며 받아넘겼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후작 가에서 누군가 도움을 주시러 오신다. 들었지만, 설마 볼트 경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더구나 푸른 기병들을 이끌고 오실 줄이야. 덕분에 마음이 든든하군요.”

푸른 기병은 쿠엔 후작 가가 자랑하는 철갑 기병대였다. 후작 가에서도 오천에 불과한 철갑 기병대 중 일천이나 이끌고 왔으니 로칸 자작이 이번 전쟁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카람 백작 가의 일이 곧 쿠엔 후작 가의 일이 아니겠소? 최근 마크 자작 영지 쪽이 소란스럽다 들었으니 이 정도의 힘을 보태야겠지요.”

로칸 자작의 말에 데론은 잠시 쓴웃음을 보이다 이내 감추었다. 마치 카람 백작 가가 쿠엔 후작 가에 복속되었다는 듯한 그의 태도가 거슬렸지만,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로써 중급 익스퍼트에 달하는 기사와 일천 철갑 기병대를 얻었다. 내가 아는 마크 자작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자이니, 공을 세우는 데 안달이 난 이 늙은 늑대로 하여금 그를 실험해 보는 것도 좋겠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지휘관으로서 통솔의 경험이 있는 데론에게 있어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데론은 작은 연회장을 열어 그들을 반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팔론은 기사가 된 뒤 첫 공을 세울 자리라 불만이 자리했지만, 그나마 공에 눈이 먼 로칸 자작이 다른 기사를 데려오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음 날, 일천에 달하는 병력이 카람 백작 군에 들어섰지만, 기병인지라 군대의 진군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마크 자작은 뒤늦게 로칸 자작이 카람 백작 군에 들어섰다는 말에 검지로 자신의 손등을 치다 고개를 끄덕였다.

“데론 자작이 우리의 저력을 시험해 볼 생각인가 보군.”

더불어 쿠엔 후작 가를 끌어들일 생각인 듯했다. 현재 힐튼 공작 가와 마일드 왕가의 세력 사이를 교묘하게 틈을 벌리며 자신의 잇속을 챙기느라 바쁜 쿠엔 후작을 끌어들이려면 이 정도의 명분은 있어야 했다.

변경의 자작 가 따위에 신경을 쓰려 해도 주위 귀족들의 눈치가 보였는데, 이 정도의 재물이라면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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