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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67화 (167/385)

야안 167화

마크 자작은 옆에 있는 야안을 바라보았고, 야안은 목례를 보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쿠엔 후작 가가 움직이면 힐튼 공작 가에서도 움직이는 명분이 생깁니다. 또한, 저희가 로칸 자작을 잡는다면 카람 백작 가에서 입을 피해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후작 가의 입장에서는 로칸 자작은 아직 쓸모가 많은 사냥개이니 그들에게서 상당한 보상을 해야겠지요.”

야안의 말에 마크 자작은 미소를 보였다.

이런 날을 위해 마크 영지가 그간 힐튼 공작 가에 들인 정성은 대단했다. 힐튼 공작 가에서도 눈엣가시 같은 쿠엔 후작 가의 저력을 꺾는 것은 반기는 입장이니 야안의 말대로 될 것이다.

그는 역시 정치적인 것은 자신의 체질이 아니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로칸 자작을 어떻게 잡느냐만 생각하면 되겠군.”

예측하지 못한 대어라, 잡는다면 그 일어서는 사기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저력을 완전히 보여서도 안 되기에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

잠시 생각에 빠지던 마크 자작은 곧 준비된 지도의 지형에 맞추어 새로운 전술을 내놓았고, 천막에 자리한 다른 이들은 작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늦은 저녁.

카람 백작 군의 북쪽에서 경계를 알리는 요란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과연 강군인 듯 잠이 들던 병사들이 이내 무장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북쪽 경계와 처소가 가까운 팔론 경이 가장 먼저 그곳에 도착을 했는데, 그는 그 경계선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기만책인가?”

이미 일백의 기병들이 왔다 간 흔적이 남아 있을 뿐, 그곳의 목책은 물론 경계를 서던 병사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뒤였다.

그 기습이 얼마나 쏜살같았는지, 병사는 북을 채 치지도 못한 상태였는데 아무래도 이곳을 기습한 기병이 북을 치고 간 것 같았다.

“너무 뻔한 술책이라 어이가 없군.”

이만이 넘는 병력 앞에 일백의 기병이 할 수 있는 일은 몇 되지 않았다. 잘해봐야 지금처럼 처소를 지키는 병사 이십여 명을 죽이는 것이 다였다.

깊게 들어서면 괴물의 입에 들어가 우적우적 씹혀 가루가 되어 버릴 것이니, 정찰 이외에는 큰 쓸모도 없었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려는 모양인데, 10% 도 채 되지 않는 병력만이 움직였을 뿐이니 그 의도도 실패로 끝이 났다.

“무엇을 노리려는 것인가?”

마크 자작이 미치지 않고서야 수성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 전술의 대가라고 소문이 났던 존재이니 무엇을 노리고 이 같은 일을 하는지 팔론은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이곳은 마크 영지의 영역에도 먼 곳이라 그들이 전투를 벌이기에도 좋은 곳은 아니었다.

팔론은 잠시 병사들의 흔적을 살피다 눈에 이색을 띠었는데, 이는 병사들의 사인에서 검기에 당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 기사를 움직인 것인가?”

이 같은 일에 마크 영지 병력의 중축인 2명의 기사 중 하나를 움직였다는 사실에 팔론은 더욱더 이해되지 않았다. 순간 마크 자작이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후, 그는 병사들을 풀어 이곳을 정리하게 하고는 데론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 날 이후 이 같은 기습은 계속됐다. 유독 후미인 북쪽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그들에 이쪽을 책임지던 팔론은 짜증이 치밀었다.

기병 중에서도 최정예들만 뽑아 움직인 것인지 아주 날쌔어 번번이 준비를 하고 있음에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흘째가 되자, 이 같은 소식이 로칸의 귀에도 들리게 되었고 곧 그는 탐욕을 드러냈다.

“기사라? 그 정도는 되어야 나선 보람이 있겠지.”

그 숫자도 일백 정도에 불과해 유인책임을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중급 익스퍼트 경지에 이른 그와 그가 이끄는 철갑 기병대라면 마크 영지의 병력 전체가 기다리고 있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 같은 대군이 움직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 고작해야 일천 정도의 병력이 다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로칸 자작은 곧 데론 자작을 만나러 갔다. 데론은 마땅히 그의 청을 거절할 도리가 없기에 이내 수락했다.

자신의 천막을 나서는 로칸 자작을 바라보던 데론 자작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하아~ 마크 자작은 이것을 노린 것인가?”

제 생각을 읽은 것으로 생각하자 데론 자작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로써 로칸 자작을 통해 마크 자작의 저력을 살피려는 것이 무산되었다. 이번 일로 인해 로칸 자작의 엉덩이가 무거워질 것이다.

계속된 정찰을 통해 대군이 움직인 것을 보지 못했으니 로칸 자작이 쉽사리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탐욕에 눈이 멀었지만, 그의 실력은 진짜이니. 우선 마크 병력에 피해를 입는 것으로 만족해야겠군.’

그가 데려온 철갑 기병대가 피해를 본다면 로칸 자작의 기세도 꺾일 것이니 데론 자작은 그것으로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그 날도 늦은 저녁이 되자 여지없이 기병들이 모습을 보였다.

목책을 뛰어넘어 경비병들을 베어내던 그들은 썰물처럼 물러서기 시작했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잠복해 있던 로칸 자작이 그들을 향해 검기를 날리며 모습을 보였다.

‘이히히힝-’

검기에 실린 힘이 대단한 것인지 검기를 쳐 내던 챈들러는 그 힘에 밀린 자신의 말을 달래며 이내 보아둔 가까운 수풀을 향해 재빨리 기병들을 이끌었다.

다행히 로칸 자작이 이끄는 철갑 기병대는 무거운 몸 때문에 그들을 잡을 수 없었다. 아니, 다른 기병이었다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챈들러가 이끄는 기병들은 하나같이 말 다루는 솜씨가 대단했기에 점차 그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갔다.

로칸 자작은 수풀 너머로 사라진 그들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여기까지는 내가 예상한 대로군.’

그가 본 도피처 세 곳 중 한 곳으로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로칸 자작은 그들을 잡았다고 확신했다.

여타의 기병과 달리 이 같은 수풀에서도 철갑 기병대는 매서운 모습을 보인다. 수풀을 흩뜨리며 달려가는 철갑 기병대는 부딪히는 그 자체가 흉기이다. 거대한 무게에서 터져 나오는 돌격은 움직이는 철벽을 연상케 한다.

직사인 석궁은 수풀로 시야가 사라져 그 효율성이 낮아지고, 목표 조준을 잃은 궁병 또한 이들에게 피해를 주기란 어렵다.

창병 또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는데, 이는 여타의 철갑 기병대와 달리 쿠엔 후작 가의 푸른 기병의 숙련도도 뛰어나 위에서 내 찌르는 그들의 마상창이 상당히 위협적인 탓이다.

물론 그들이 준비했던 만큼 피해를 보겠지만, 로칸 자작은 그 피해가 자신의 예상을 넘지 않는 수준이라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로칸 자작은 이내 푸른 기병을 이끌고 수풀로 들어섰다.

곧 여기저기서 화살비가 내렸지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푸른 기병은 노련하게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아섰고, 철갑으로 둘러싼 말에 몇 개의 화살이 꼽혔을 뿐이다.

제 생각대로 많은 수는 없는 듯했다.

‘고작해야 이백 정도의 궁병이군.’

적에게 약 일천 정도의 병사가 있다 볼 때 이백 정도의 병력을 싸우기도 전에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로칸 자작의 입가에 미소가 보이며 그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이 났다.

“돌격하라.”

궁병과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그 거리는 고작 이백 보에서 삼백 보 정도에 불과했다. 말로 주파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하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들의 돌격을 알아차린 궁병들은 이내 활을 접고 준비된 말을 타고 다시 수풀 너머로 움직였다.

멀어져가는 궁병들의 모습에 로칸 자작은 손을 휘둘러 푸른 기병에게 단창을 날리게 했지만, 멀어져 가는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잽싼 쥐새끼들이로군.”

생각한 것보다 많은 준비를 했다고 생각하던 로칸 자작은 이내 저 멀리서 파공음이 들리더니 석궁이 수풀을 헤치고 날아왔다.

궁병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준비된 석궁병들이 움직인 모양이었다. 생각지 못한 기습이었기에 이번 공격으로 그들 중 스물이 넘는 기병들이 무너졌다.

준비된 석궁병의 수는 일백 정도에 불과했지만, 측면을 노린 터라 그 같은 피해를 본 것이다.

상대적으로 면적이 좁은 말의 앞부분이었다면 그 같은 피해를 주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등장에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미 푸른 기병들은 단창을 준비한 상태였다. 조금 전 궁병들처럼 그들이 모습을 피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궁병들에게 다가가던 그들의 측면을 향해 단창이 날아왔다. 이백에 달한 단창들이었는데, 그 때문에 별다른 방비를 못한 푸른 기병의 진열이 흐트러졌다.

곧 가까운 거리에서 석궁병들이 활을 재고 다시 쏘았고, 이후 자리를 피한 궁병들이 어느새 다가와 그들의 머리 위로 활을 날렸다.

일순간 발이 묶인 로칸 자작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단창들을 쳐내고 검기를 날리며 푸른 기병들의 진열을 잡게 했다.

경험이 없는 장수였다면 허둥대며 큰 피해를 봤을 것이지만 그는 노련한 노장답게 서두르지 않았다.

피해를 봤다 하지만 그 정도는 미비했다. 그 같은 기습에도 사상자가 일백에도 미치지 않았으니, 귀찮을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까지겠지.’

그는 더 이상의 함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매일 진형이 이동하는 만큼 반나절 정도의 준비 시간으로는 더 이상의 함정을 파기에는 불가능했다.

곧 자신들의 공격이 별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던지 그들을 포위하던 석궁병과 궁병, 단창병들은 이들의 지열이 완성되기 전에 다시 후퇴하기 시작했다.

로칸 자작은 예리한 청각과 밤에도 보이는 그의 날카로운 눈으로 흩어지는 수풀을 살펴보며 이들의 퇴로를 살펴보았다.

“이제, 사냥 시간이로군.”

그가 본 상대 기사의 인상착의를 볼 때, 지난 라테온을 꺾은 챈들러라는 기사가 분명했다. 기사의 목을 쳐 공적을 세울 생각을 하던 로칸의 입장에서는 첫 수확치고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는 검을 뽑아 검기를 날려 수풀을 베어버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두둑, 두둑-’

점차 수풀 깊은 곳으로 들어서던 푸른 기병의 말굽 소리가 둔탁해지기 시작했다. 점차 말들의 움직이는 무거워지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던 한 백인 장이 소리쳤다.

“진흙탕이다!”

그의 소리에 적들을 추격하던 로칸 자작이 멈추었다. 과연 자신이 자랑하는 애마 또한 평소와 달리 벌써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는 마상검으로 대지를 내려치며 검에 잡힌 이물질을 살펴보았고, 이내 그 이물질의 정체를 알고 다급히 소리쳤다.

“이곳을 벗어나라. 기름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 불화살이 내렸고, 이내 그 주위는 불바다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일정한 형태로 그들을 감싸듯이 불이 붙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물 위에 기름을 일정한 형태로 부어 불을 붙이어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진흙이 짙은 탓에 불은 수풀 너머로 크게 번지지 않았다. 아니, 진흙탕에 자리한 물이 기묘하게 움직이며 불붙은 기름이 번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끄아아악!”

“사, 살려줘. 으악.”

철갑 기병의 장점이자 단점인 무게로 인해 이들은 질척한 진흙탕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조금씩 확산되는 불에 그들의 갑옷은 달구어져 산채로 익어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갔다. 말들 또한 거친 숨을 내쉬며 울음을 흘렸다.

불지옥이 펼쳐진 것이다.

로칸 자작은 육십 년이 넘는 전장을 경험하면서 이 같이 완벽하게 당한 것은 처음이라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노장의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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