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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68화 (168/385)

야안 168화

그는 아쉬운 일이지만 냉정하게 일부의 병력을 버리고 백인장을 다독여 수하들을 이끌게 했다. 서둘러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순식간에 이백에 달하는 병력을 잃고 그곳을 벗어나려던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마크 자작의 보병들은 약식 목책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뚫고 지나치려 했으나 여기저기서 몰아치는 단창과 석궁병에 그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더구나 그들의 말들은 크게 지쳐 약식 목책을 뛰어넘는 체력을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숙련된 푸른 기병이라 그 과정에서도 고작 칠십에 달하는 병력만을 잃었을 뿐 진로를 벗어나려는 그들의 움직임은 놀라웠다.

‘생각보다 진흙탕의 범위가 넓다. 하루, 이틀의 준비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로칸 자작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겪고 있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알지 못하는 미지의 괴물을 정면으로 본 듯했다.

그가 그처럼 경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대는 처음 자신들을 기습하였을 때부터 이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마 그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이곳에 있는 병력은 많을 것이다.

이는 지휘관으로서는 미친 짓을 한 셈이다.

전략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가 있다면 이것은 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자신들이 오늘 쫓아올 것을 어떻게 알고 이 같은 일들을 벌인다는 말인가?

마치 앞날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움직이니 그 점이 로칸 자작은 놀라웠다. 만약 당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의 예상대로 자신은 정확하게 함정에 걸리고 말았다.

바로 이런 점이 마크 자작의 무서운 점이었다.

그의 뛰어난 전술은 이처럼 전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오직 마크 자작만이 할 수 있는 형태의 전략인 것이다.

로칸 자작과 푸른 기병들이 불길을 거의 벗어날 때쯤 다시금 불화살이 날아와 그들의 진형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요란한 활시위 소리는 이제 겨우 불지옥에서 벗어났다 생각한 그들의 희망을 끊어 놓았다. 심리적으로 그들의 허를 찌른 것인데, 그것이 절묘하게 먹혀들어갔다.

노련한 로칸 자작 또한 허탈함을 느꼈을 정도였으니 푸른 기병들의 상실감은 대단히 큰 것이다.

일자로 갈라지는 불길에 이제 육백이 되지 않는 그들이 반으로 나뉘었고, 이내 그들을 향해 두 배에 달하는 병력이 그들에게 들이닥쳤다.

오백의 기병들이 둘로 나뉜 삼백의 기병들을 삼키기 시작했는데, 철갑 기병으로서 이점을 잃은 푸른 기병은 자신들보다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이들에게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반대편에 자리한 로칸 자작은 일백의 기병과 오백의 보병들을 맞이했는데, 그 기병에는 그가 잡으려 했던 챈들러가 자리했다.

다른 때였다면 오백이 아니라 몇 배에 달하는 보병들 따위는 어렵지 않게 잡았을 것이지만, 발이 묶인 것은 둘째 치고 이들의 보병은 여타의 보병과 그 질이 달랐다.

이들은 바로 야안이 지난겨울 훈련시킨 별동대로 방패를 해일처럼 밀어붙이며 오방 검진을 펼치었는데, 그 기량은 오백이 아닌 이천에 달하는 보병들 속에 있다는 착각을 들 정도로 매서웠다.

내려치는 방패에 말들의 갈비뼈가 부러져 낙마하는 기병들이 속출했고, 휘두르는 마상창이 상대의 검에 부러지는 일들이 속출했다.

그들 가운데 이번 불길을 조정하던 제코도 함께 있어 적들의 기세를 꺾는데 한몫했다.

별동대를 이끌던 야안은 잠시 그들을 살펴보다 이내 험난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챈들러를 향해 다가갔다.

챈들러는 야안이 준 로탐의 방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이 로탐의 방패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미 로칸 자작의 공세를 이기지 못해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화살처럼 날아드는 검기조차 막을 수 있는 로탐의 방패였기에 챈들러는 로칸 자작의 구의 발현 안에서도 지금처럼 저항할 수 있었다.

로칸 자작은 검기를 막는 챈들러의 방패가 대단한 보물임을 알고 탐욕이 불타올랐다. 저것만 얻는다면 이번 푸른 기병들을 다 잃은 것을 메우고도 남는 충분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검기를 막아서는 방패라니.’

그것을 자신의 손에 넣는다면 자신은 다시 후작 가의 일 검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건방진 후계자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전성기를 보낼 수 있을 터였다.

비록 챈들러가 로탐의 방패로 버티고 있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점차 로칸의 공격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하자 이내 챈들러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야안이 그 둘의 전투에 끼어든 것은. 대외적인 눈이 있어 초급 익스퍼트 정도의 기량을 노출할 뿐인 야안이었지만, 상급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자리한 그의 검이 어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검에서 보이는 기운은 초급 익스퍼트 정도에 불과했지만, 로칸 자작의 몰아치는 공세를 여유롭게 받아치고 있었다.

툭툭 장난치듯이 검을 휘두르는 야안에 마치 짠 듯이 로칸 자작의 공격은 힘의 중심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허깨비를 상대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지라 이미 로칸 자작의 눈에는 경악만이 자리했다.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녀석이.’

그의 후미를 노리는 챈들러 정도의 기사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이다. 오랜 세월 수많은 기사를 만났지만, 야안 같은 자는 처음이었다.

그는 모든 기량을 뽑아 야안을 몰아쳤지만, 자신의 바라보는 야안의 호흡은 처음과 똑같이 안정적이었다.

마크 자작이 전술에서 자신을 경악시키게 했다면, 이자는 순수한 무위에서 그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상급 익스퍼트에 오른 자라 해도 이처럼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초급 익스퍼트 정도의 구의 발현으로도 중급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자리한 자신의 구의 발현을 어린아이 손목 꺾듯이 들어서니 그의 입장에서는 야안은 미지의 생명체였다.

거친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로칸 자작이 소리쳤다.

“하아, 하아. 도대체가 너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의 말에 잠시 정리되어가는 전장을 바라보던 야안의 시선이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 그 위풍당당한 모습과 달리 로칸 자작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곱게 정리된 머리는 불에 타 거슬렸고, 그가 자랑하는 갑옷 또한 검기에 파손된 상태였다. 품종이 뛰어난 그의 애마는 아직 버티고 있었지만, 그도 얼마 가지 못할 듯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야안은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로칸 자작에 대꾸하지 않은 채, 검기들을 흘려 넘기며 거리를 좁히더니 이내 신형을 날려 말 위에 자리한 그의 목을 쳤다.

‘쿠궁-’

요란하게 쓰러지는 로칸 자작의 죽음에 말이 요란한 울음을 흘렸다. 야안은 발버둥을 치는 말의 머리에 주먹을 쳐 기절을 시키고는 이내 챈들러에게 로칸 자작의 머리를 건네었다.

“정리하게.”

챈들러는 제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로칸 자작의 머리를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과연 주인님이시구나. 중급 익스퍼트에 달한 기사를 이처럼 처리하다니.’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챈들러는 자신의 기량으로는 이제 주인의 실력을 짐작할 수조차 없다 생각했다. 예전 처음 중급 익스퍼트에 달했던 주인의 실력은 단 6년 만에 자신으로서는 감히 바라볼 수 없는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야, 지난 대륙의 재앙이 될 정도인 악마를 잡으셨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피부로 와 닿게 되었다.

그는 야안이 건네준 로칸 자작의 머리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로칸 자작의 목이 여기 있다. 모두 항복하라!”

그의 소리에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푸른 기병들의 의지가 꺾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150에 달하는 포로들을 잡아낸 병사들은 그들을 무장을 해체하고 사지를 결박했다.

이후 챈들러는 살아남은 말들과 푸른 기병들의 무구들 같은 전리품을 간략하게 정리한 뒤 병사들과 함께 서둘러 진형을 빠져나갔다.

제코는 정령을 움직여 수풀에 불이 잘 붙도록 확산시켰고, 이내 수풀에 붙은 불은 놀라울 정도로 번져 불바다로 변했다.

“휴~ 확실히 기름은 다루기가 어렵군.”

그 열기가 먼 곳에 자리한 자신의 피부를 자극하는 것을 느끼던 제코는 지친 기색이 완연한 표정으로 머리를 저어댔다.

야안은 제코가 첫 전투를 훌륭하게 끝내자 대견하다는 듯 그의 등을 툭툭 치고는 곧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그의 격려에 제코는 이내 미소를 보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매캐한 연기가 검은 하늘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야안은 지난 전투에서 로칸 자작과 더불어 수십의 푸른 기병을 베어낸 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머리가 복잡한 탓이다.

‘레벨이 올랐다. 이로써 몬스터들만이 그 레벨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중급 익스퍼트에 달하는 강자를 베어냈기 때문인지 그는 당시의 전투에서 2레벨을 더 올릴 수 있었다.

이 의미는 중요하다. 자신에게 적용되는 이 레벨이라는 제도는 그 대상이 자신이 적으로 간주되는 자를 베어냈을 때 경험치로 정산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 말은 달리 말하면 조금 전까지 한편으로 싸운 아군에게도 자신이 적으로 간주하여 그를 척살한다면 경험치로 정산된다는 것인데, 야안은 조금씩 이 문제에 대해 고찰하며 정리했다.

‘결국 전투에서 레벨을 올린다는 말은 상대를 척살한 경우 당시 전투 경험을 레벨이라는 경험치로 바꾸어준다는 말이 되는 것이군.’

완전히 확신하다 말할 수 없지만 이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야안은 그제야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마크 자작의 밑에서 지휘관으로서 제대로 성장한 챈들러는 물 흐르듯이 병력을 잘 다스리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그들이 수확한 전리품은 상당했다.

철갑마 323두를 얻었으며, 그 밖에 공작 가 수준으로 정련된 무구들을 얻었다. 마상에 이용되는 이 무구들은 현재 마크 자작 측의 기병들것보다 수준이 높아 여러모로 쓸모가 많아 보였다.

오일이 지난 뒤에야 마크 자작 측에 도착한 야안은 테리가 이천의 기병을 데리고 전장에 나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싸우기 위해 그들을 흔들어주려는 것인데, 마크 자작의 휘하에서 전장의 경험을 상당히 쌓은 테리라면 무리 없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마크 자작은 소금에 절어 놓은 로칸 자작의 목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대단하군. 로칸 자작까지 처리할 줄은 몰랐건만. 정말 수고했네.”

그들의 공을 치하한 마크 자작의 입가에는 만족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로써 데론 자작은 자신의 전략에 큰 오점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한 채 로칸 자작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전쟁을 떠나 카람 백작 측 입장은 난감하게 되었다. 설마 노련한 로칸 자작이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게 될 줄은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일로 인해 그들은 세력 전쟁에 참가하라는 쿠엔 후작 측의 요구를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야안은 데려온 철갑마들을 말 사육사에게 보내어 다루도록 했다.

하나같이 품종이 뛰어난 말인 만큼 주인을 섣불리 바꾸지 않으려 하겠지만, 노련한 그들의 손과 이제 말을 다루는 솜씨가 경지에 오른 기병들이 함께한다면 이 말들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은 포획한 로칸 자작의 백마에게 이미지 마법과 더불어 파케를 펼쳐 적개심을 줄이도록 다루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블랙 라이징 못지않은 품종이라 예상했는데, 확실히 이 말은 범상치 않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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