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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71화 (171/385)

야안 171화

하지만, 지난 마크 자작과 함께 한 몬스터 몰이를 통해 그 뛰어난 전술을 보고 배운 자신의 눈에는 그들이 코볼트 대부족보다 손쉬운 상대로 보였다.

아직 거친 전술 때문에 결국 70에 달하는 사상자만을 남겼지만 푸리는 지나간 일은 후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잠시 말없이 어지러운 전장을 바라보다 다음 카람 백작의 수송을 기다렸다.

“빌어먹을! 도대체 그는 악마인가?”

팔론은 현재 자신의 처지가 믿어지지 않아 욕지거리를 내지르며 소리쳤다.

이른 새벽. 초여름 특유의 풀내음이 흐르는 가운데 병사들은 그간의 피난으로 지쳐갔다. 반으로 줄어든 식사량에 비해 그 행동 거리가 2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저마다 울어대는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시시비비가 오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일찍 잠이 들려 했지만, 그것조차 이룰 수 없었다. 잠이 들기도 전에 북과 징을 치며 자신들의 신경을 긁는 적들의 술수에 그들은 매번 얕은 잠을 자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징과 북이 유난히 길게 울린다 생각하던 그들은 그 소리에 묻혀 다가온 그들의 병력에 큰 피해를 보아야 했다.

테리가 이끄는 철갑 기병대에 의해 진형이 끊어졌다. 일천의 기병과 1800에 달하는 보병들과 후미를 지키던 팔론이 따로 끊겨버린 것이다.

데론 자작은 서둘러 팔론을 도우려 했지만, 남은 식량을 노리는 챈들러의 기병에 움직일 수 없었다.

식량이 빼앗기면 그들은 꼼짝없이 항복해야만 한다. 더 이상의 수는 없었기에 그는 병사들을 이끌고 챈들러의 기병을 서둘러 막아서기 시작했다. 곧 테리가 이끄는 철갑 기병대 또한 챈들러의 기병에 합류하더니 그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마크 자작은 야안과 별동대를 움직여 활을 재던 궁병과 석궁병들을 막아서게 한 그는 이내 보병들과 기병을 다루며 팔론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마크 자작이 다루는 병사들은 마치 그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난 것 같았다. 기병이 빠지면 창병이 대신해 자리했고, 궁병과 석궁병이 그 뒤를 맡았으며 정신없이 얻어맞다 보면 어느새 돌아선 기병이 그들의 후미를 내리쳤다.

그런 마크 자작의 현란한 전술 운영에 팔론은 본진에 합류하려 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점차 그 생각과 달리 거리가 멀어져갔다.

팔론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자신들은 한 나절 거리가 멀어진 상태였고, 병력의 30%가 사라진 뒤였다.

마크 자작은 천천히 팔론을 옥죄다 그들의 사기가 최저로 떨어질 때쯤에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제 병사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그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인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날개 잃은 벌레처럼 느껴졌다.

팔론은 그 자신조차 그렇게 느꼈기에 그처럼 냉정한 마크 자작의 행태가 믿어지지 않았다.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진정 악마를 보는 듯했다.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죽더라도 저자의 숨통은 끊어놓고 말리라.’

팔론은 천천히 지쳐가는 병사들을 다독이며 마지막 힘을 모았다. 하지만 이미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라 그들에게 항거할 의지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정예병이라서인지 군대의 하명에 잘 따른 병사들은 곧 팔론의 의도대로 다시금 자신을 향해오는 마크 자작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일격인 만큼 그들의 힘은 매서웠지만, 마크 자작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오히려 반기는 듯 그는 물러서면서 병력을 날개처럼 퍼뜨리더니 이내 모루와 망치처럼 그들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팔론의 전술은 마크 자작만을 노린 것으로 그 힘이 앞으로 쏠린 탓에 후미와 측면이 약했다. 그에 마크 자작의 전술로 팔론의 군대는 힘없이 깎여져 갔고, 팔론이 정신을 차릴 때 이미 반 이상의 병력이 제압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래도 기사라 그런지 팔론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400여의 기병을 이끌고 마크 자작을 노리기 시작했는데, 그런 그의 모습에 마크 자작은 나선으로 진형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마크 자작의 병력은 그들을 겹겹이 포위한 상태였다.

팔론은 그 과정에서 200의 기병을 잃은 채 꼼짝없이 포위되고 말았다. 얄밉게 웃음을 흘리며 병사들 뒤로 사라진 마크 자작에 그는 분노에 젖어 눈이 충혈되었다.

“으아아악!”

크게 분노의 함성을 흘리던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과 그 사이에 상당수의 병력이 있다지만 삼백 보 정도의 거리에 불과했다. 모든 기량을 보인다면 잡을 수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하지만, 그는 오십 보를 채 움직이기도 전에 두 개의 검상을 입어야 했고, 백 보에서 화살 다섯 개가 그의 몸을 관통했다.

그리고 다시 삼십 보를 채 가기도 전에 그는 지난 몬스터 토벌에서 새롭게 상급 유저가 된 천인 장에 의해 목을 잃고 말았다.

마크 자작은 제 죽음을 믿지 못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그의 목을 효수하여 수하에게 맡기더니 저 멀리 자리한 데론 자작에게 말하듯이 중얼거렸다.

“카람 백작에게 줄 선물 준비가 끝이 보이는군.”

잠시 후, 그는 전장을 정리하고 전리품을 챙긴 수하들과 함께 수풀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데론 자작은 황폐화가 된 전장을 정리하던 중, 돌아온 정찰병에게서 최악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멸이라 말인가? 팔론 경 그가 그처럼 가다니.”

늦은 나이에 기사에 올랐지만 많은 전쟁 경험으로 그 실력은 라데온 못지않았다. 또한, 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지라 치열한 전장 한복판에서도 스스로 챙기고 살아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데 마크 자작은 한 번 자신에 손에 잡힌 그를 끝내 놓지 않고 베어버렸다.

이로써 카람 백작 가는 4명밖에 없는 기사 중 마크 자작 가에 의해 두 명이나 잃게 된 것이다.

지난 전투로 인해 7,000 밖에 남지 않은 이 병력을 고스란히 데리고 복귀한다 해도 티온 백작 가와의 전쟁은 어려움이 컸다.

지난 번에는 쿠엔 후작 가의 도움으로 상당한 피해를 줬지만, 이제 그 사정이 바뀌어져 버렸으니 한동안 수성에만 집중해야 할 터였다.

‘그것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때의 이야기이니.’

이렇게 전쟁의 끝을 달리기 시작하자 그는 그간의 전쟁을 돌아보았다.

사실 이 전쟁은 시작하기 전부터 자신의 패배였다.

적은 자신을 알고 있었고, 자신은 적을 몰랐다. 가장 기초적인 정보에서 자신은 밀린 것이다.

로칸 자작이라는 얄팍한 수를 내어 보았지만, 그때에도 놀라운 전술로 상대의 병력 규모를 알아낼 수 없었다.

지휘관으로서의 기량부터 자신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또한 그는 그간의 격렬한 전투에서 마크 자작의 군대가 왕성의 군사들보다 그 기량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개 병사조차 그 하나하나의 무위가 대단했고, 엄격한 규율이 자리한 듯 그들의 움직임은 매우 부드러웠다.

장수들은 어떠한가?

고작 자작 가에 세 명의 초급 익스퍼트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들이 펼치는 삼방 검진의 위력은 놀라웠다.

자신이 모든 기량을 보였어도 그들의 포위를 뚫을 수 없었다.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들 중 하나를 베어내고, 단 한 번의 전투에서 30%에 달하는 병력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되는 패전 소식과 허기를 달래기도 힘든 식량 보급에 사기는 바닥이었다.

그는 자신의 패착을 하나하나씩 따져가며 마크 자작 가를 인정했다.

카람 백작 가에서 모든 기량을 일으키지 않는 한 마크 자작 가를 응징하기 어려움을 말이다.

짙은 어둠과 함께 까마귀 울음이 요란스럽게 울려 퍼진다.

야안은 오늘 상대한 데론 자작의 실력에 작게 감탄했다.

과연 연륜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삼방 검진을 처음 접하면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야안이 감탄한 것은 연륜이 아니었다.

그의 검에 대한 집착이었다.

만약 데론 자작에게 제대로 된 스승이 있었다면 그는 십 년 전에 상급 익스퍼트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야, 주술과 더불어 이방인의 축복에 의해 홀로 올라설 수 있었다지만 챈들러를 비롯해 여러 수하를 가르치면서 다른 이들이 그 같은 경지에 오르려면 상상을 넘는 고련 이외에도 하늘의 안배가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그 점을 본다면 데론 자작은 고독한 검귀 중의 검귀였다.

그는 현재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기 헤아릴 수 없는 고찰을 행했다. 그러다 찾아낸 고위 익스퍼트 경지에 오르기 위한 길을 찾다 그는 어설프게나마 검의 기세를 줄이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한데, 아쉽게도 중요한 시기에 수많은 전투를 겪게 되면서 검의 기세를 줄이는 바른길에서 벗어나 어긋난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반대로 검의 기세가 극에 달하게 된다면 검의 기세가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길을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데론 자작의 비극이었다.

데론 자작이 깨달은 그것은 검의 기세를 완전히 지워버려 구의 발현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상급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자리한 이가 수련해야 할 방법이었다.

고치에서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비를 손으로 건드리다 나비가 비정상적이게 되는 것과도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 수련 덕분에 현재 존재하는 중급 익스퍼트들 중에 그와 비견될 실력자는 없다는 것이 위안일 것이다.

만약 데론 자작과 같은 검사가 하나 더 있다면 웬만한 고위 익스퍼트에 오른 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합격을 막기란 어려움이 클 것이다.

야안은 데론 자작을 통해 현재 자신이 새로운 수련의 길에서 유의해야 할 점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야안에게 농축된 시간을 선사한 것과 같았다.

‘적이지만 그의 검에서 배운 바가 많았다.’

야안은 같은 검의 길을 걷는 이로써 이 같은 자를 베어내야만 하는 지금의 현실이 아쉬웠다.

나흘의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마크 자작은 야금야금 카람 백작 측의 병력을 집어삼켰다. 데론 자작이 갖은 노력을 가했지만 30%의 병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카람 백작 가의 마지막 수송물자를 끊은 푸리는 870의 기병과 함께 600에 달하는 포로들을 비롯한 여러 전리품을 이끌고 복귀하였다.

전리품 중에는 말 437두도 있었는데 짐마에 쓰이는 것이 아닌 기병을 위해 사육된 것으로 그 품질이 뛰어났다.

병력이 모두 모이자, 마크 자작은 실제 운용 가능한 병력이라고는 3,000 밖에 되지 않은 카람 백작의 군대를 끝내기로 했다.

‘총관이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전쟁의 기간은 2배로 늘어날 것이고 그 피해는 3배를 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의 피해를 봤을지 모른다.

데론 자작은 그 무위도 대단했지만, 전략과 전술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직접 겪고 깨달은 이었다.

이런 자는 자신 같은 전술가도 힘든 상대였다.

직감력이 뛰어나 빠르게 상대의 전술을 눈치를 챘고, 결단을 내리면 흔들리지 않고 서슴없이 행동으로 이끌었다.

전술 운용도 현란한 편은 아니지만, 단단하여 쉽사리 피해를 주기 어려운 자이기도 했다.

아리스 님을 따르는 신관이기도 한 총관이 과연 이 전쟁의 현실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는 노련한 장수처럼 전장의 괴물에 휩쓸리지 낳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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