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73화
이야기를 듣기로 아들 덕분에 이번 전쟁에서 많은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는 하는데, 자신은 이기적인 마음 때문인지 그래도 아들이 다시 전쟁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아들이 남작이 되었으니 한스 부부네의 말처럼 지금과 달리 좀 더 옷차림을 꾸미며 살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지난 아들이 가져온 희귀하고 아름다운 천들이 많이 가져왔으니 부지런히 옷을 짓는다면 아들의 얼굴에 먹칠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아들이 골라 준 이십여 명의 하녀들과 하인들을 어떻게 대할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마크 자작 성에서 경험이 많은 하녀 한 명을 장으로 삼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버거워졌는데, 이제 그런 걱정을 덜어도 될 듯했다.
저 멀리서 장원이 만들어지는 것을 구경하러 온 첫 손자이자 마크 자작 가의 후계자인 아론이 동생과 노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어젯밤에 만들어 놓은 과자들을 가져다주었다.
베론 장원은 마을 저장소를 중심으로 짓고 있었는데, 야안은 그 중심지를 개인 연무장으로 만들 것이라 주위에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드는 것 외에는 건들지 않도록 했다.
덕분에 바위와 자갈들도 그대로 보존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상당히 이색적인 장원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장원은 자체적으로 병력을 동원하여 자체적으로 지킬 수 있게 하였는데, 이들은 전쟁이 나면 영주의 요청에 따라 출병한다.
야안은 지난 전쟁에서 생사를 같이한 별동대를 불러들이고, 이 외에 새로운 인재들을 뽑아 다시 500명의 별동대를 유지했다.
새로 뽑은 인재들은 아직 십대 초중반이었지만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라 그들 중 일부는 상급 유저까지 바라볼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처음 그 실력 차이가 크게 나 훈련을 버거워하던 그들이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의 경험 덕분에 별동대의 하급 유저 대부분이 중급 유저로서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되었다.
올해 겨울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중급 유저에 들어설 수 있을 것으로 야안은 보았다.
그 외에도 중급 유저들은 저마다 검이 더욱 날카로워져 일부 힘이 좋은 이들은 쇠를 끊기도 했다.
상급 유저로의 문은 두터워 그들 중에서도 겨우 한 명만이 문을 두들기고 있었는데, 매톤이라는 이름을 지닌 그는 예전 챈들러를 따르던 용병 출신이었다.
올해로 삼십대 중반을 넘기었는데, 성격이 쾌활하고 아랫사람을 잘 챙긴 터라 별동대의 많은 이들이 야안을 따랐다.
충성심도 대단해 야안의 무리하다 싶은 명령에도 서슴없이 행동으로 옮기었는데, 덕분에 지난 전쟁에서 수차례 있었던 기습에 성공하는 데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했다.
야안은 그때의 그의 공을 인정하여 시간을 내어 그를 가르쳤는데, 다행히 가르침을 잘 따르는 터라 여름이 지나기 전에 상급 유저로 진입할 것 같았다.
지난 전쟁 덕분인지 검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 터라, 잘 가르친다면 어쩌면 익스퍼트의 문턱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오랜 시일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대단한 인재였다.
여러 상인이 원하는 터라 기존에 생각한 것보다 시장의 규모를 늘렸다. 덕분에 영지 내에 이곳 장원을 방문하는 이들의 수가 많아져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았음에도 장원의 수입이 늘어났다.
야안은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자 장원의 도로를 크게 넓히기로 했는데, 이 공사가 완성된다면 시장은 내성의 시장과의 거래가 간편해지며 규모가 늘어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은 베론 장원을 만드는 데 급한 불을 끄자, 총관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가 총관 일을 몰두하자, 그간 중급현자 비기너의 깨달음을 완전히 수습하지 못했던 한스는 그제야 야안의 가르침을 받으며 점차 그 경지를 굳혀 나갔다.
이대로라면 이번 추수 전까지 완전히 경지를 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야안이 새롭게 들인 제자인 젤로는 확실히 현자로서의 재목이기는 하지만 크게 특출난 것은 아니라 이번 초가을이 될 때쯤 현자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을 듯 보였다.
그녀 또한 야안을 본받아 복수면을 행하였는데, 야안이 내어준 상급품인 보호의 나무조각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습관을 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해도 일과 병행하며 익히는 것인 만큼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그는 예상했다.
야안은 사실 그녀의 진정한 재능은 현자의 길을 걷는 것보다는 정치를 하는 관료직이 가장 맞다 생각했다.
아직 관료 일을 배운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건만 노련한 정치인 같이 일을 다루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정치라는 것은 좋은 것에서 최상의 결과를 뽑는 것이 아닌, 최악에서 그나마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녀는 그런 선택을 기가 막힐 정도로 잘했다.
시간이 지나 살펴보면 그 누구도 그 선택이 최선책임을 부인하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녀 또한 진리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보다는 이와 같은 정치 쪽의 일에 더 흥미를 보였는데, 그렇기에 오히려 현자가 되고자 이를 악물며 습득하기 시작했다.
마일드 왕국이 여타의 왕국보다 여자의 권한이 높은 편이라 하지만, 그래도 권력층의 대부분이 남자인지라 그 권한이 남자보다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이런 것을 고려할 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곳에도 밑지지 않는 힘을 가져야 한다 생각하였고, 다행히도 그녀에게는 현자로서의 재능이 있었다. 하기에 그녀는 정치에 흥미를 느낄수록 더욱 이 진리의 길을 걷고자 한 것이다.
그녀의 노력은 예전 뛰어난 성취를 보였던 한스도 감탄할 만했다.
만약 야안이 준 선물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나가떨어졌을지 모른다.
야안은 젤로에게 진리의 길을 잡게 하는 것을 한스에게 일임했다. 이는 사형과 사제 간의 정을 쌓으라는 의미였다.
영지의 사정상 바쁜 일정에 서로 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행한 일이었다.
사실 젤로는 한스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못했다.
여자인 자신도 질투가 날 만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에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였던 만큼 보통 외모가 화려한 이일수록 그 속이 비어 있거나 그 외모로 그 자신도 모르게 알게 모르게 업신여기는 이들을 보았기에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스승으로부터 한스가 중급 비기너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힘든 옛 시절과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인정받은 그의 인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제야 그녀는 한스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에게 직접 사과하였다.
그간 영지의 일을 맡게 되어 많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사람을 파악하는 방법을 깨달은 한스는 이미 그녀가 자신을 오해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선선히 그녀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젤로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편견 어린 시선조차 넉넉히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고, 언제나 냉정했던 심장은 급히 뛰더니 이내 호흡이 가빠졌다.
그런 그녀를 걱정하듯이 쳐다보며 다가오는 한스에 그녀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젓더니 이내 콩닥콩닥 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평소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하던 그녀였지만, 정작 이 낯설기만 한 설레는 그 이상의 감정에 그녀는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벙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한스를 생각하며 붉은 낯빛을 하며 얼굴을 숙였다.
‘아 사형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후 그녀는 한스만 생각해도 설레는 마음에 그를 피했는데, 그것도 잠시 추수가 끝날 무렵 야안이 그에게서 현자의 공부를 하게 하자 그녀의 비오는 날의 미친년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야안은 그런 그녀를 진실의 눈으로 살피었고, 이내 아직 어린 나이에도 사람에 정에 인색한 그녀가 사랑을 하게 되었음을 알자 작게 미소를 띄웠다.
‘하~ 이 아이에게는 좋은 일이구나.’
이 사랑의 결말이 좋든 아니든 그녀를 성숙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야안은 아직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그녀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추수가 끝이 나자 다시 장원을 짓는 공사에 인부들을 고용해 그 기간을 줄였다. 인부들 대부분이 현재 마크 영지의 실세인 야안에 대해 두려움과 감사함을 느끼는 터라 그들 중 게으름을 부리거나 대충 넘기려는 모습은 없어 예상보다 멋진 장원이 탄생할 것 같았다.
지난 전쟁으로 농노들이 늘어나고, 영지민 또한 늘어난 덕분에 장원의 도로 공사는 다지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베론 가문의 거처가 될 장원은 이제 한 달 만 있으면 완성이 될 것으로 보였는데, 하인들과 시녀들의 거처를 위해 미리 완공된 거처에 짐을 푼 상태였다.
공사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베론 가한이나 마리는 그런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의 부인 멜리나와 그의 둘째 아들인 로뎅 또한 거대한 집이 생긴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였다.
그간 밀린 총관 업무를 끝낸 야안은 한스가 복귀하자 폐관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중급정령 비기너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서이다.
하급정령 마스터와는 질이 다른 깨달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는데, 그는 지난봄에 예감하였듯이 이번에 그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마크 자작에게 올해도 시작된 몬스터 토벌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임을 미리 말한 상태였다.
마크 자작 또한 야안이 비록 자신의 신하이지만, 아리스 님의 종인 그를 전장에 데려가 부리는 것이 꺼림칙한지라 그의 부탁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폐관수련은 이미 공사가 끝 난 연무장 밑의 폐쇄된 던전에서 행하기로 했다.
폐관 수련은 못해도 2달 정도를 잡고 있었기에 급한 일인 경우를 대비해 여러 가지 권한을 한스에게 일임한 상태였다.
늦은 가을. 이른 새벽 눈을 비비며 마중 나온 부인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그녀를 꼭 껴안아주던 그는 이내 연무실로 움직였다.
그간 여러 차례 폐관 수련을 한 터라 면역이 생긴 그녀는 잠시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잠자리가 달라져 들썩거리는 로뎅에게 다가갔다.
폐쇄된 던전은 야안의 여러 실험과 물품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현자의 던전.
등급 : C+
진리의 길을 걷는 현자에 의해 변한 던전이다. 이곳의 마나의 밀도는 세 배에 달하기에 마나를 다스리는 현자에게 있어 축복과도 같은 곳이다. 또한, 수많은 마법 물품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고, 실험 도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명칭을 얻은 것에는 마법 물품과 실험 도구의 도움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마나 밀집 진법을 펼친 것이 컸다.
야안은 그곳에 중앙에 이동해 인벤토리에서 현자의 지팡이를 꺼내었다. 그리고 지난 수차례 연습한 신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신마법은 이제 초급현자 비기너 수준의 마법들은 대부분 어렵지 않게 펼칠 수 있게 이제 초급현자 익스퍼트 수준의 마법을 펼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