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74화
유피테르의 조언과 더불어 현자의 지팡이를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르는데 2~3년의 시간을 더 허비해야 할 것이다.
그는 낮에는 신마법의 연계를 부드럽게 펼치는 데 노력을 하면서 마나와 정령력을 다스리는 것을 연습하였고, 밤에는 그의 스승이기도 한 유피테르의 가르침을 배우며 그의 머리를 간질거리는 깨달음의 끈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물줄기가 모여 강물을 이루듯이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자신이 깨달은 것을 하나로 합쳐야 했는데, 이미 그 과정은 98% 이상을 이룬 상태였다.
다만 아쉽게도 2%가 부족하여 여전히 이루지 못했는데, 그는 그 자신이 조금씩 나아가고 있음을 초감각에 의해 짐작한 지라 초조해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날 때쯤 야안은 수련을 달리하여 더 이상 유피테르의 가르침을 쫓기보다는 자신이 이룬 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씩 앞선 나간 덕분에 이제 1%도 채 되지 않은 진리의 문을 남겨둔 상태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높고 두꺼운 것인지 야안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암담했다.
어떻게 이런 거대한 벽을 둔 채 자신이 이 벽을 넘을 수 있다고 장담하였는지 그는 스스로 부끄러웠다.
만약 야안이 계약을 맺은 정령이 여타의 다른 정령이었다면 그는 이미 이 벽을 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계약한 정령은 정령의 왕이자 뇌전의 정령인 유피테르였으니 그의 벽은 그가 느낀 것처럼 대단히 벅찬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는 다름 아닌 아리스의 축복인 스탯의 그 위대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간 모아둔 스탯은 지난 전쟁과 그간의 몬스터 사냥으로 인해 42스탯이나 있었기에, 그는 벽을 넘을 실마리를 찾는다면 이 스탯을 통해 그 높은 벽을 뛰어넘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기약도 없는 명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열흘이 지난 어느 이른 오후 야안은 느닷없이 찾아온 그 진리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서둘러 스탯의 30을 지혜에 투자하였고, 남은 12스탯은 행운에 올렸다. 처음 이 모든 스탯을 지혜에 투자할 생각이었지만 후에 그의 초감각의 직감에 따라 일정 부분을 행운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과연 그의 그 결정이 틀리지 않았던지, 야안의 눈앞이 환해졌다.
또한 그의 몸속에 자리한 유피테르 또한 미소를 짓더니 야안의 그 놀라운 성장력에 그는 감탄을 터뜨렸다.
“드래곤의 도움 없이 벌써 이 나를 중급 정령의 문턱에 올리다니, 정말 아리스 님의 축복도 놀라우며 그대의 그 심력에도 찬사를 보낸다.”
그렇게 말하던 그는 이낸 눈을 감으며 야안의 깨달음과 동조 되어 성장하기 시작했다. 대기가 일렁이더니 스파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본래 코로만 흡입이 되었던 뇌전의 정령 호흡법이 온몸으로 행해지면서 생긴 형상이었다. 그 모여드는 뇌전의 정령력의 양은 야안이 지금까지 모았던 것 이상에 달했는데, 덕분에 그 넓고 튼튼한 던전이 흔들림을 보이었다.
야안은 중급 정령사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정령력을 다루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린 것과 같았다.
하루가 꼬박 지난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야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에서 강력한 스파크가 일어나더니 이내 몸속으로 사라지었다. 야안은 놀라울 정도로 변한 자신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정보창을 불렀다.
[레벨 : 163
직업 : 전설의 추종자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용사(대장인 : 미착용)
생명력 : 2,200
마나량 : 4,060
명성 : 1,800
힘 : 114(+20)
민첩 : 109(+20)
행운 : 120 (+20)
지혜 : 145(+20)
신력 : 13 (+20)
마나 : 454(+20)
정령력 : 176 (+20)
분배되지 않은 스탯 : 0]
그리고 확인된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번 성장으로 정령력은 86이 늘어났고 행운은 6이 늘어났으며 지혜는 10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다른 정령사였다면 그 같은 놀라운 성장력을 보이지 못했겠지만 고된 노력 끝에 얻은 과실이 달콤한 것처럼 지난 그의 힘겨운 고난에 합당한 대가라 할 수 있다.
유피테르는 이번에 얻은 기억의 파편을 정리하는 듯 다시 깊은 수면에 잠이 든 상태였다. 물론 예전의 그 깊었던 수면이 아닌 야안이 원한다면 깨어날 수 있을 정도의 얕은 수면이었다.
야안은 중급 정령사로 올라서게 되자 예전 유피테르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마치 눈이 있음에도 보지 못한 것을 이제야 본 듯한 느낌이라 머쓱함을 느꼈다.
높아진 지혜와 더불어 정령력을 다루는 데 한 단계 더 올라서게 된 덕분에 나중에 유피테르가 깨어난다면 이제 신마법을 초급 익스퍼트 급까지는 무리 없이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려면 못해도 3~5년은 더 수련해야 가능하리라 생각했기에 그 놀라운 자신의 발전에 야안은 자신을 추스르며 경계했다.
상위 현자에 오르면서 빠른 발전으로 말미암은 폐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았던 탓이다.
야안은 잠시 스스로 살피다 이내 자신의 눈을 어지럽히는 창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설의 반지 퀘스트에 대한 것이었다.
[금빛 진주를 탈환하라.
등급 : B+
금빛 진주는 현재 카리엘 제국의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인 레필 공작 가의 보물로 자리하고 있다.
* 레필 공작 가의 가주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신검 제로미스에 부착되어 있기에 그것을 탈환한다는 것은 검의 마스터인 레필 공작을 쓰러뜨리는 것과도 같다.
* 금빛 진주는 마지막 전설의 현자 자이웅이 죽기 전 깨달음을 얻어 만들어낸 보물이다.
* 금빛 진주는 그대의 주술의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 이 퀘스트를 성공하려면 융 제국에 자리한 자이웅의 마지막 후손을 만나라.]
야안은 그 퀘스트를 본 순간 말문을 잃었다. 이 퀘스트는 어떤 의미에서는 지난 악마인 파란토를 멸하는 것보다 훨씬 고난도의 퀘스트였다.
제국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레필 공작 가의 힘은 그 단일 세력만으로도 마일드 왕국과 대등했다. 단순히 한 가문의 힘만으로 그런 위세를 보인다는 것인데, 제국에서의 그들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본격적으로 나선다 할 때 2,3개의 왕국과 맞먹는 군세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제국의 몇몇 수뇌부만이 제국의 힘을 알 뿐이라 할 정도로 제국은 넓었다. 그곳은 이미 그 일개 나라 자체만으로도 완전히 이루어진 세상이었다.
야안은 그런 곳에서 레필 공작 가의 신물에 자리한 금빛 진주를 탈환해야 했다. 수많은 괴물 같은 인재들과 희귀한 마법들이 자리 한 곳이니만큼 레필 공작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일 것이다.
더구나 퀘스트에 나온 이야기처럼 그를 만나 그의 검을 빼앗으려면 그를 꺾지 않는 이상은 어림없는 일이다.
비록 야안이 검이나 마법, 정령, 주술 신력을 통해서 강해지고 있지만, 그것으로도 마스터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야안의 실력은 그와의 전투에서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정도에 불과했다. 그 말은 대등하다는 것이 아닌 그의 공세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검의 마스터가 일으키는 검강이란 것은 그것만으로도 절대적인 힘이었다. 검기가 인간이 갈 수 있는 육체의 진화에서 얻는 무형의 산물이라 한다면 검강은 인간의 육체를 초월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유형의 산물이다.
그 경지에 오르면 더 이상 상급 익스퍼트의 경지에서처럼 검의 구를 한 곳으로 집중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검강 그 자체만의 힘으로도 이미 공간을 베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급 익스퍼트의 검기로도 그 검강을 막아서는 것은 어려움이 컸다.
구존이 있다고 하지만, 다수의 결투가 아닌 일대일의 대결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이들 검의 마스터였다.
물론 이는 초인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것이었다.
다수 대결이 아닌 일대일에서는 취약한 점이 많다는 현자도 야안은 그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그 또한 예전 로뎅의 힘을 통해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파란토의 움직임을 묶은 대마법과 더불어 순식간에 대마법 십여 개를 펼치는 그를 야안이 어떤 수로 상대한다는 말인가?
초인의 경지에 오른 자의 대마법은 범인이 생각하는 마법의 위력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강력하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의 길을 걷고 있는 야안에게도 강력한 장점이 있었다.
이 길들이 서로 보완하여 그 경지를 올려준다는 것도 있지만, 그 외에도 다수의 전투에서 초인들 못지않은 위력을 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마법의 묘용에 힘입어 대마법 급의 마법들을 쉼 없이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뇌전의 정령력을 통해 다수의 병사는 물론 강력한 일격을 통해 장수들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
또한 신력을 통해 강력한 방어력과 회복의 힘을 가지며, 마법과 주술의 힘을 통해 도칸 급의 그의 검의 힘을 펼칠 수 있으니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는 초인이라 할 수 있겠다.
야안은 이번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장담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조언이 있었다.
자이웅의 마지막 후손을 찾으면 그 해결책이 보일 것이라는 말인데, 문제는 그가 사는 곳이 융 제국이라는 점이다.
융 제국은 마일드 왕국에서 배를 타고 떠나도 꼬박 한 달 반이 걸리는 먼 곳이었다. 카이엘 제국에 비해 작다는 것이지 융 제국 또한 왕국 다섯 곳을 합친 것만큼이나 거대한 곳이었으니 그곳을 횡단하려면 빨라도 반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 말은 이 퀘스트를 완수를 위해서 최소 2년은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파란토와는 달리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 마크 영지의 사정상 그 이상의 시간을 비운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안요소가 많았다.
다행히 이번 카람 백작 가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지라 힘을 키우는 시점에 들어설 수 있었지만, 그것은 길어야 3년을 넘지 못할 것이다.
‘떠나려면 빠른 시일에 떠나야 하는 것인가?’
다행히 예전 나프롬 자작 가와의 영지와 합병을 위한 성벽 공사가 끝이 난 지라 급한 불은 끈 상태였다.
중급 현자에 진입한 뒤부터 그 능력이 비범해진 한스와 그가 지닌 능력으로 현재 영지의 대부분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는 그의 제자 앨룬이라면 영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구나 젤로의 그 뛰어난 정치적인 감각이 함께 어우러진다면 영지는 훌륭하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매번 제자들이 고생하는구나.’
그렇게 생각이 든 터라 잠시 고개를 절래 저어되었다. 곧 폐관수련을 끝내며 폐쇄된 던전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