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78화
그런 점을 알기에 그를 후계로 삼은 유쥴과 그의 아내 유율은 물론 유씨 부족의 대부분이 그 영광의 시대가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하지만 흘러가는 강물이 벽에 부딪혀 줄기가 나뉘어지듯 그 탄탄대로 같은 앞날은 거기에서 멈추게 되었다.
주태에게 크게 불만을 품은 이가 유씨 부족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태가 나타나기 전만 해도 다음 대의 족장을 맡을 것으로 확신했던 유갈이라는 이로, 그는 겉으로 대인처럼 구는 모습과 달리 속이 매우 좁은 인물이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족장을 맡을 수 없음을 알게 되자, 크게 불만을 터뜨리었고 결국 자신이 가지지 못할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는 심정으로 주태에 대한 정보를 융 제국 측에 흘렸다.
융 제국 입장에서는 위대한 주술사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잘 알기에 여러 밀정을 보낸 끝에 그 정보가 사실임을 알게 되자 이내 군사를 일으켰다.
주태의 경지가 대주술사라는 점을 들어 융 제국에서도 몇 되지 않는 고위 현자 비기너가 모습을 보였는데, 그뿐만 아니라 중급 현자가 다섯에 초급 현자 아홉이 이번 토벌대에 포함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들 토벌대로 인해 유씨 부족은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토벌대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이 토벌대를 이끌던 고위 현자가 반신불수가 되었고, 중급 현자 두명이 사망하였으며 초급 현자들은 더 이상 현자의 길을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또한 그들이 데려온 군사들 중 40%가 사살되었다.
그 모든 일은 바로 본래 토벌대가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된 주태 그 혼자 이룬 일이었다. 단순히 대주술사라면 아무리 뛰어난 재질은 지닌 그라 해도 그 같은 일은 벌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유씨 부족의 주술 이외에도 고조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주술을 펼쳐 보였던 탓이다.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그 주술은 대단히 파괴적이면서도 기존의 주술과 그 궤를 달리한 괴기스러움이 자리했다.
그의 주술 한 번에 군사들 일부가 그의 명령을 따라 아군을 치기도 했고, 현자들의 감각 기능을 뒤바꾸어 놓아 마법을 역행으로 펼치게 하기도 했다.
또한 땅에서 듣도 보도 못한 괴물들이 나타나 그들의 진형을 뒤엎기도 했으며, 고위 현자가 펼치는 대마법 못지않은 파괴적인 주술로 그를 상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손으로 열손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라, 그와 함께 싸우던 유씨 부족들의 멸망은 막을 수 없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훗날의 복수를 기약하고 아내와 함께 물러서려 했는데, 당시 토벌대의 책임자인 고위 현자는 그를 이번에 놓치면 큰 재앙으로 돌아올 것임을 알기에 그는 집요하게 그를 따라잡았다.
다른 이도 아닌 고위 현자가 전력으로 그의 도주를 방해하자 주태는 결국 무리한 주술을 펼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그 고위현자는 반신불수가 되는 비극을 가지게 되었다.
주태 또한 그때 입은 상처로 인해 주술로 버티고 버티다 오년 전 쓰러져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야안은 그 같은 비극이 있었음을 알았기에 유율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주술을 펼쳤기에 그 같은 위용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인가?’
그의 주술에 대한 지식은 지난 리트담의 저서를 통해 얻은 것과 예전 야율수에게 얻은 일부 지식이 다였다.
하지만 고위 현자에 대한 힘을 알고 현자들이 군사들과 함께하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보이는지는 잘 알기에 그는 주태라는 이가 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그 자신 또한 모든 힘을 다 발휘한다면 그 정도의 일은 발휘할 수 있겠지만, 그는 오직 주술 하나만으로 그 같은 일을 만들어내었다.
야안은 그것이 놀라운 것이다.
‘유피테르가 말한 것처럼 이 주술은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있구나.’
그는 잠시 감탄해 하다 이내 마음속으로 삭이며 유율에게 자신을 소개하였다. 그는 먼저 마음을 열었다.
“현재 장두준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본명은 야안이라 합니다. 아리의 말처럼 현자이기도 하지만, 주술사이기도 합니다.”
야안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걸어둔 주술을 풀었고, 이내 그의 얼굴과 체형이 변화가 일어나더니 이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유율은 그 모습에 깜짝 놀라 뒤로 걸음을 물리었고, 주소화는 놀라 열린 입은 쉽사리 닫지 못했다.
야안은 그런 모녀의 모습에 볼을 긁적이며 멎적은 모습을 보였다.
총명한 유율은 사정이 있어 주술을 펼쳤음에도 숨기지 않고 내보이는 야안을 보며 그가 무언가 자신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야안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저희에게 주술을 펼치신 지아비께서 쓰러진 지 오래입니다. 원하시는 것을 드릴 수 없을 것 같군요.”
그 말에 야안은 미소를 보이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펼치며 중얼거리듯이 말하였다.
“리젠.”
그 야안의 한 마디에 지난 오 년간 남편의 수발과 어린 딸을 키우느라 몸이 망가지고 있는 그녀의 몸에서 활력이 일어서기 시작하였고, 이내 뒤틀린 장과 굳어진 척추가 제자리를 찾았다.
유율은 그 놀라운 경험에 스스로 살피다 이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강인한 어머니이자 대주술사의 아내로서 부족함이 없는 그녀였지만, 야안이 보인 힘이 무엇인지를 알았기에 그녀는 지난 힘든 세월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그녀의 심장을 꿰뚫게 되었다. 그 때문에 현재의 그녀는 한낱 여린 여인과도 같았다.
“아! 아리스 님이시여.”
그녀는 그 말과 그때까지도 가지고 있었던 야안에 대한 의심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주소화는 그런 엄마를 보며 잠시 영문을 몰라 하다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에게 안겼는데, 유율은 그런 딸아이를 달래며 야안에게 부탁하였다.
“저의 지아비를 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녀는 야안의 그 한마디에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은 표정을 보이며 눈물을 채 닦지도 않은 채 서둘러 주태가 누워 있는 방 안으로 야안을 모셨다.
방 안의 공기는 좋지 못했다. 이는 오랫동안 병을 앓은 사람의 숨이 탁하기 때문이다. 유율이 신경을 쓴지라 그나마 답답할 정도는 아니었다.
주태의 안색은 창백했다. 야안은 그의 상태를 정확히 알기 위해 그의 장심에 손을 올려 기운을 살폈다.
그의 뇌전이 감돈 순수한 기운이 그의 몸을 휘젓기 시작했고, 야안은 그의 몸을 한참이나 살피다 천천히 그의 장심에서 손을 떼어내었다.
야안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유율은 손에 땀을 쥐며 야안에게 물었다.
“신관님 지아비의 상태가 그렇게 안 좋으신가요?”
그녀의 물음에 야안은 그제야 굳은 얼굴을 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야안은 그렇게 그녀를 위로하더니 잠시 주태를 보며 감탄의 기색을 보였다.
‘놀랍다. 이자는 나의 상식을 뛰어넘는 자로구나.’
그가 주태를 보며 그처럼 감탄을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몸 상태는 어떻게 지금 이처럼 숨을 쉬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예전 마크 자작의 몸 상태를 생각게 했는데, 이는 3병의 성수로 인해 몇 년의 시간을 벌었던 그때의 마크 자작이 아닌 위중한 상태에 놓였던 마크 자작을 말함이다.
다른 자였다면 이미 죽어 백골이 진토 되었겠지만, 그는 단순히 한줄기 의식에 의지하여 주술을 펼쳐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과정이 10년.
그 누구도 그의 그 위대한 의지를 상기한다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니 야안이 일순간 안색이 굳어지며 감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그를 치료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태 그에게 다행인 것은 그 치료를 하는 이가 야안이라는 점이다. 그에게는 만약을 위해 준비한 성수 2병이 자리했고, 또한 지난 용사의 칭호 덕에 신력이 올라서게 되며 신성 마법인 ‘리젠’의 상위 마법인 ‘엘린’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 엘린은 성수와 같이 펼치게 되면 성수의 기운을 70% 이상 이용할 수 있게 되는 데 그것이라면 식물인간의 상태에 놓인 주태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신학자의 길 덕에 신력이 오르게 되면서 예전 열흘에 단 한 번 펼칠 수 있었던 엘린은 이제 오 일에 한 번꼴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펼치게 되면서 생기는 제재의 기간이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야안은 먼저 바람의 실이라는 마법을 펼쳐 방 안의 공기를 정화한 뒤, 주태에게 그간 병환에 누워 생긴 잡스러운 부스럼 등을 힐링과 더불어 마케를 펼쳐 그의 상태를 안정화시켰다.
이후 한나절이 지나 어느 정도 잡스러운 질병 따위를 잡게 되자, 야안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유율은 자신의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딸 주소화를 데리고 옆방에 옮겨 놓은 뒤,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야안과 남편이 자리한 방문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부디 치료가 잘 되기를 아리스 님에게 빌고 또 빌었다.
야안은 그런 유율의 기척을 느낀 터라 작게 한숨을 흘리더니 마음을 단단히 잡았다.
엘린을 성수와 함께 펼친 것은 아직 해보지 않은 작업이라 그는 고된 작업임을 예상한 탓이다.
곧 작은 성수 병 하나의 마개를 따 그의 입가에 조심히 부어 준 야안은 기도에 손을 되어 성수가 목구멍에 쉽게 넘어가기를 유도했다.
성수가 몸에 흡수되는 시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터라 야안은 재빨리 그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려 짧게 외쳤다.
“엘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신력의 힘이 주태의 몸에 일어서기 시작했다.
야안은 그 신성 마법 자체만으로도 주태의 몸의 악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정화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야안은 우선적으로 가장 악영향을 미친 사기가 가득한 대혈을 정화하기 위해 기운을 유도하였다.
이것이 가장 먼저 치료가 된다면 다른 부위들은 자연스레 그 힘의 탄력을 받아 그 치료 효과가 20%가 더 상승할 것임을 알아서이다.
하지만 거대한 신력과 더불어 성수의 기운을 유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안과 같은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그조차 가뭄 속의 토양같이 바싹 말라갈 정도였다.
다행히 기운은 잠시 주춤거리다 이내 야안의 의지대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곧 거대한 충격이 그의 몸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몸 밖에서는 바람 한 점 만들 수 없었지만, 주태 그의 몸에서는 천지가 뒤바뀌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삭막한 땅이 비옥한 땅으로 바뀌었고, 땡볕만이 자리하던 하늘은 신성한 비가 흘러내리기 바빴다. 희망이 없는 지옥 같은 현실에 살던 생명체들은 그 신성한 비에 의해 희망을 되찾았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아! 놀랍구나.”
야안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짧게 감탄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 생명이 일어나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도 그처럼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치료가 끝이 났을 때는 어느새 저 산등선 너머 새벽의 기운이 일어서고 있었다.
지독한 냄새가 야안의 코를 찔렀다. 이는 십 년간 그의 몸을 막아선 사기가 치료 중에 몸 밖으로 밀려나면서 생긴 이물질 때문에 생긴 형상인데, 야안은 그의 오물이 묻은 옷을 손수 벗긴 뒤 마법으로 물을 만들어내어 그의 몸을 씻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