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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80화 (180/385)

야안 180화

하지만, 그들은 믿고 있다.

언젠가 자이웅의 후손이 다시 모습을 보이어 이 암담한 현실에 새로운 태양을 올릴 것을 말이다.

주태는 원래 소수 부족의 출신으로 대부족에 흡수되던 중 버려진 고아였다.

당시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던 주태는 광활한 사막에 버려져 죽는 날을 기다리는 하루살이와도 같은 신세였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오래전 마지막 자이 황족을 모시던 세 장로 중 거대한 주술로 시간을 멈춘 한 장로라는 이가 나타난 것이다.

주술의 실패로 백 년의 시간을 기다리려 했던 그는 몇천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어나게 된 것인데,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그로서 그는 마지막 자이 씨족의 후손을 구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주술의 부작용으로 그는 5년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고, 이에 제국의 자이 황족에게 내려오는 이기를 이용해 그를 수많은 주술과 더불어 주술에 맞는 체질로 변형시켰다.

그는 이후 유씨 부족의 사위가 되었고, 한 장로에게서 뜻을 이어받아 새로운 제국을 꿈꾸었지만 결국 한 부족원의 배신으로 그 꿈이 접는 위기를 가져야 했다.

하지만 아리스 님께서 버리시지 않았는지 야안을 만나게 되어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되었으니, 주태는 어쩌면 이것이 나의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태는 다시 술잔을 기울이다 이내 내려놓으며 야안에게 인사하였다.

“저의 본명은 자이한이라 합니다. 야안 님께서 아시는 대로 자이웅 님의 마지막 후손이지요.”

아버지라 생각하던 유쥴에게도 부인에게도, 자식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본명을 보인 주태 아니, 자이한은 자신의 본명을 인정했다.

자이라는 성 하나만으로도 이 대륙의 모든 부족을 집결시킬 수 있는 것임을 알기에 야안은 그가 인정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한 쪽은 그의 후손이고 한 쪽은 그의 뜻을 이은 자였다. 범상치 않은 두 영웅의 만남의 자리치고는 조촐했지만 그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다시 다섯 순배를 돌리다 자이한은 허공에 손을 몇 번 휘젓더니 이내 손에서 자색빛이 일렁이는 구슬을 보였다.

그것은 야안이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으로 거대한 힘이 그 자색빛의 구슬 안에 자리했다. 마법 물품과는 궤를 달리하는 비범한 물건이었는데, 자이한은 그 물건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금빛 진주라. 예전 한 장로에게서 전설 속에 자리한 물건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황제의 구슬이라는 것으로 제가 지금의 경지에 오르게 한 이기이기도 하지요.

이 황제의 구슬은 그 전설의 물건을 본떠 만든 것이라 하였는데, 아무래도 야안 님께서 말씀하신 금빛 진주가 그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는 그러며 금빛 진주에 담긴 전설을 이야기하였다.

그것을 주술사가 가지면 모든 주술을 다룰 수 있고 그 의지를 배는 강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한다. 검을 지닌 자가 들으면 검의 마스터에 자리에 오르게 하며, 현자가 그것을 가지면 상위 현자 익스퍼트에 오를 수 있게 한다.

평범한 이가 가지면 본래의 수명을 배 이상 늘리게 하고, 영주가 그것을 가지면 왕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신비성이 없는 전설적인 물건이라 하겠다.

야안은 자이한의 그 말에 그제야 매번 초인을 탄생케 했던 불가해의 가문인 레필 공작 가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다.

물론 전설의 이야기를 다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 반에 반의 효능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야안이 지닌 뇌전의 정화 못지않은 보물이었다.

잠시 야안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던 자이한은 다시 말을 이었다.

“야안 님의 말씀은 초인인 레필 공작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제가 본 야안 님의 힘과 저의 힘이 합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상급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자리한 존재가 최소 열 명은 모여야 초인을 상대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단순히 검사만이 아닌 현자나 정령사 검사가 적절히 조화가 된 경우에 가능한 것인데, 그 정도의 저력에도 그 승률은 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한 왕국에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른 이가 많아야 2~3명 정도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왜 초인들의 행보가 대륙을 좌지우지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단 두 명으로 상대 가능하다는 자이한은 말은 확실히 믿어지지 않는다. 다른 이었다면 헛소리로 치부할 것이지만 야안 또한 그런 생각을 한 터라 그의 말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쪼르르륵-’

도수가 강한 술답게 주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그 도수를 생각할 때, 준비한 술의 양을 본다면 장정 스무 명이 꼬꾸라지고도 남을 양이었다.

하지만, 그 둘은 약간 상기된 얼굴을 보인 것이 다였다. 마지막 술을 비워낸 자이한과 야안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서로 바라보며 미소를 보이더니 이내 집을 나서 저 산 너머로 걸음을 움직였다.

늦은 저녁이라 목책을 넘어서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신형은 대단히 빨랐다. 야안이 토네를 펼쳐 바람 같은 신형을 보였다면, 자이한은 마치 땅을 접어 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야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과연 주술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의 주술이던가?’

마법으로는 상상치 못한 주술의 형태에 그는 감탄을 보였고, 자이한 또한 자신의 축지술에 못지않은 야안의 움직임에 놀라움을 보였다.

어느새 그들은 뒷산의 한 한적한 터에 올라섰다.

근처에 자리한 작은 군락을 이룬 코볼트들을 순식간에 해치우며 서로의 실력을 보였는데, 야안은 검과 파이어 핑거, 파이어 피스트, 파이어 팜을 선보였고 자이한은 주위에 자리한 바위에 손을 올려 그림으로 보았던 호랑이와 같은 맹수를 만들어 그들을 해치웠다.

무생물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움직임은 매우 정교했는데, 힘 또한 대단해 단 한 번의 발길질에 어른 허리 만한 나무가 무너져 내렸다.

그 홀로도 웬만한 초급 익스퍼트 기사는 상대할 무위를 지닌 것이다.

한 장로가 그에게 건네준 이기로 인해 자이한 또한 마법과 검술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이 안다는 것의 의미는 그가 마법과 검술을 익히는 개념이 아닌 주술로 그것을 어떻게 상대할 것이냐에 대한 것을 말한다.

한데, 검과 마법을 같이 펼치는 이가 있다는 것부터 기이한 일이긴 했지만, 그럼으로써 생기는 상승작용의 형태는 그의 예측을 벗어났다.

마법을 검술의 형태로 바꾸어 펼치자 마치 주술을 보는 듯한 강력한 위력이 모습을 보인 것이다.

손가락에서 검기처럼 불꽃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으며, 그의 주먹이 내지를 때마다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한 불 회오리가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코볼트의 거적들을 한 번에 불태워 버린 그의 일장은 자신의 주술이라 해도 쉽사리 막아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 힘조차 일부에 불과하겠지.’

그렇게 생각이 들자, 자이한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적수를 만나기 힘든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은은한 열기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부을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은 그가 힘들게 닦은 고행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만난 것과 같았다.

벽을 부수고 지난 5년간 성장한 힘을 실험하는 데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것은 야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파란토 이후 자신의 성장을 실험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인가?

야안과 같은 고차원의 경지에 오른 이에게 이같이 스스로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아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는 제 부족함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잠시 서로 바라보며 감탄의 기색을 보이던 그들은 목례를 보이다 이내 그들 사이의 대기가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서로의 목을 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 그들의 신형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너무나 빠른 움직임이 그런 착각을 일으키었다.

야안은 우선 토네를 펼친 뒤 검의 구를 일으켰다.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인간의 육체의 극한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검이 세상에 모습을 보이자 주위에 너부러진 풀들은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해 축 늘어져 내렸다.

자이한의 움직임은 그의 상식을 넘어서는 형태였지만, 야안은 그런 그를 놓치지 않았다. 육안이었다면 놓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초감각의 힘을 통해 기운으로서 그를 구별하는지라 그런 우는 범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습득률을 마스터한 육대검식이 그의 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검기가 대지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육대검식을 마스터하게 되면서 이루어지게 된 예비동작도 조차 없는 그의 중첩된 검기는 끈질기게 자이한을 따라갔다.

‘쿠구구궁-’

그 검기들로 인해 바위가 갈라졌고, 몇백 년 묵은 나무가 무너져 내렸으며 땅의 일부가 깎여져 나갔다.

축지술을 펼쳐 그 검기를 가까스로 피해낸 자이한은 야안의 검이 생각 이상의 것임을 깨닫자, 그 또한 엄지손가락을 뜯어 피를 허공에 뿌리더니 이내 짧게 기합을 터뜨렸다.

그러자, 허공에 뿌린 피가 허공에서 부풀어 오르더니 거대한 붉은 손들이 모습을 보였다. 그 크기만 해도 3미터에 달하는 이 다섯 개의 붉은 손들은 마치 불처럼 야안의 검기에 깎여져 나간 것을 이내 복구했다.

그 손에 자리한 힘 또한 대단해 부딪히는 모든 것을 부숴버렸는데, 마치 진짜 사람의 손처럼 그 움직임도 자연스러웠다.

치고 빠지고 구기고 누르며 찍는 형태를 보이는 손들이었지만, 야안은 그런 위압 앞에서도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검이 손들을 향해 부딪히는 순간, 그 자유롭던 손들은 스스로 의지가 없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놀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의 손에 부딪혀 얽히고설키더니 이내 뭉개져 버렸다. 야안은 그 뭉개진 손을 향해 붉은 실을 펼쳐 갈라내었고, 그로서 주술의 힘을 잃은 듯 핏방울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하지만 야안은 숨을 돌릴 여유는 없었다. 어느새, 그의 몸 뒤에 자리한 자이한이 그를 내려쳤기 때문이다.

그의 주먹은 조금 전과 달리 거대한 강철의 주먹으로 변해 있었는데, 야안은 그 잠깐의 시간 사이 ‘카라’를 펼쳤다.

‘카아아앙-’

거대한 강철 덩어리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인간의 육체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그 소리는 저 산 너머까지 지속되었다.

그 짧은 순간 ‘카라’를 펼쳐 힘을 흘린 덕분에 야안은 별다른 피해 없이 허공에서 남은 힘을 분산시키더니 이내 대지에 내려섰다.

자이한 또한 거대한 강철 주먹이 본래의 손으로 돌아온 상태로 그는 야안에게 미소를 던져 보였다.

탐색전만으로도 야안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비로소 힘을 사용하는 데에 대한 망설임을 끊어놓게 되었고, 그것은 야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양손에서 2개의 주술이 일어났다. 하나는 바람의 주술이었고, 하나는 땅의 주술이었다. 두 개의 주술로 일정 범위 내의 바람과 땅이 그의 것이 되어 정신없이 야안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이 바뀌듯 무거운 것은 위로 올라갔고, 가벼운 것은 아래로 내려갔다. 기운의 성질이 뒤집힌 것이다.

이로써 야안은 쉽사리 중심을 잡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초감각과 함께 한 검의 구로 인해 대마법이나 상급 익스퍼트의 검기 못지않은 힘들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법 없이 검만으로 그를 상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지라 야안은 유피테르를 불러내더니 이내 뇌전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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