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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96화 (196/385)

야안 196화

57. 폰 발론

곧 들어 올린 찻잔을 내려놓은 그는 이내 야안이 내놓은 검을 들어 보았다.

‘스르릉-’

천천히 검집에서 검을 빼놓기 시작하던 그의 눈이 휘둥그레 뜨기 시작했다.

“으흠, 이것은.”

이곳 암시장의 주인답게 수많은 보물을 거래한 그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야안이 내놓은 검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놀랍군요. 이런 검이라니. 이는 고대 드워프들의 유산에서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험 삼아 옆에 자리한 철 등잔을 내려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본래 그런 모습이었다는 듯이 소리 없이 갈라진 것이다. 상급 유저 이상이 아니라면 검으로 철을 끊는다는 것은 어렵다.

한데 검을 다루지 못하는 그의 손에도 이 같은 모습을 보이니 카이엘 제국에서도 몇 되지 않는 명검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검을 숭상하는 제국에서 이 검의 가치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라질 수 있겠지만, 상당한 권력과 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보물도 이 검 앞에서는 빛이 바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말없이 검에 빠져들다 그래도 암시장의 주인이라는 경험 덕분인지 가까스럽게 그 검의 마력에 벗어날 수 있었다.

“손님께서 운이 좋으십니다. 마침 우리 암시장에 손님께서 만족하실 물건이 있군요.”

처음과 달리 약간은 초조함이 자리한 그의 태도에 야안은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건만 확실하다면야. 이 거래는 이루어질 것이오.”

그의 말에 사내는 품에서 붉은 구슬로 만든 팔찌를 야안에게 내 주었다.

“이것을 가지고 있으시면 며칠 내로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좋소. 하면 그때 보도록 하오.”

야안은 그렇게 말하며 사내가 어렵게 내놓은 검을 다시 허리에 차고 방을 나섰다. 곧 문밖에서 기다리는 대장장이의 안내를 받으며 나서기 시작했는데, 그의 태도가 처음과 달리 매우 공손한 것이 이 붉은 구슬의 가치가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야안과 자이한이 대장간을 나서자 대장장이는 서둘러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때보다 이른 시간에 문을 닫는 것으로 이웃의 몇몇은 의문을 보이기도 했다.

* * *

제국의 삼대 후작 중 딘 후작 가는 삼 황자 피르망을 지지하고 있었다.

공작을 제외하고 가장 큰 세력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딘 후작 영지에서 삼 황자 피르망을 위한 대대적인 검술대회가 주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내답고 호쾌한 삼 황자 피르망이었기에 많은 무인이 그들의 초청에 응하여 대회에 접수하기도 했고, 새로운 은거무인들 또한 딘 후작 가에 하나둘씩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른 새벽부터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무리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들이 자리했다. 단출한 복장을 한 두 귀족이었는데, 부자간인 듯 그 모습이 상당히 닮았다.

특히 그들 중 아비로 보이는 이의 기운은 은은하면서 무거운지라 그곳에 수많은 검사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의 아들도 아비보다는 못했지만, 보이는 기도가 대단했는데 오히려 그 수준 차가 가까워서인지 그 자리에 있는 검사들은 아들이 보기 드문 천재임을 알 수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 수군거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밤새 자리한 이슬을 털고 건량과 와인으로 식사를 하던 그들은 말없이 성문을 바라보았다.

곧 저 멀리서 종소리가 들리더니 요란스럽게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다른 때와 달리 사람들은 한눈에 보아도 귀족임을 알 수 있는 그들 부자에게 길을 내준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그런 일을 많이 겪었던지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말을 몰며 성문을 넘어섰다.

성문에서 귀족의 신분패를 보이었고, 계승 귀족이 모습을 알리는 전서구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무뚝뚝한 얼굴을 보이며 말을 몰던 아들의 입가가 일그러지며 중얼거렸다.

“그거참. 익숙해지지 않는군.”

아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던 아버지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나 또한 그들의 태도가 놀랍네. 이것이 지금의 제국을 만들어 낸 여러 이유 중 하나이겠지. 어느 나라에도 귀족을 이처럼 마음 깊이 대하는 곳은 없네.”

야안 아니, 이제 폰 발론이라는 몰락한 자작 가의 후손인 그의 말에 이제 폰 한이라는 신분을 지닌 자이한이 미소를 머금었다.

제국의 귀족 중에서 한 손에 꼽는 권력을 지닌 자의 영지답게 딘 영지는 작은 왕국을 영상케 할 정도로 넓고 화려했다.

실제로 딘 후작가는 그 단일 세력으로도 연합 왕국의 한 곳과도 밀리지 않을 힘과 부를 지니고 있었다.

야안과 자이한은 해가 저물 때가 되어서야 내성과 멀지 않은 작은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화려한 여관에 들어선 야안은 자신을 방에 안내해준 하인에게 돈을 주어 귀족들이 입는 고급 옷들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까지는 여정 중이었으니 옷이 단출해도 큰 사정이 없었지만, 앞으로 귀족들 사이에서 신분을 밝혀야 하는 지금 그 같은 옷은 실례되는 점이 많았다.

하인은 이미 이런 심부름을 많이 받았다는 듯 별다른 말없이 자리를 비웠다.

이틀이 지난 뒤에야 그들은 딘 영지에 자리한 솔론에 들어섰다. 솔론은 제국의 십대 검투장 중 하나인 곳으로 오만의 인파가 들어설 수 있는 거대한 건물이기도 했다.

귀족과 평민이 한 자리에서 호흡하는 곳이기도 했는데, 야안은 이미 인증을 받은 귀족의 신분패로 인해 거추장스러운 자격 검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귀족임을 고려하여 개인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야안은 곧 딘 후작 가의 기사단에게서 그 실력을 검증받게 되었다.

딘 후작가가 자랑하는 제 1기사단장인 번 칼리를 상대하게 되었는데, 그의 신분은 백작이라 야안 같은 신분을 지닌 이들을 상대하기에 알맞았다. 비록 단승 귀족이라 하지만, 딘 후작가의 소속 신분이었다.

웬만한 계승 귀족이라 할지라도 그 앞에서는 명예를 논할 수 없었다.

딘 후작가의 제 1기사단장인만큼 그의 실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상급 익스퍼트에 올라선 자인 것이다.

강자가 많은 왕국에서도 많아야 둘, 셋 정도에 불과한 무위를 일개 후작가 소속이라는 것은 그만큼 제국에 실력자가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공을 세워 계승 귀족 자리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사실 그가 그 실력을 가졌음에도 지금껏 계승 귀족을 얻지 못한 것은 다음 대의 황제를 노리는 팽팽한 힘 싸움 때문이기도 했다.

번 칼리는 의외로 많은 귀족의 신청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한 번은 꼭 자신이 나서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초대가 아닌 몰락한 귀족의 후예들의 실력자들은 번번한 실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것은 당연하면서도 아쉬운 일이었다.

몰락한 귀족이 자신의 가문의 비기를 무사히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하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는 문을 열고 들어선 그 날카로운 기도가 자리한 중년의 사내에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리고 말았다.

“하! 정말 놀랍군.”

그랬다.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사내는 자신과도 같은 경지에 자리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같은 상급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볼 수 있는 기도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기도를 숨기고 있다면 중급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자리한 자라 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디에서 이런 괴물이 나타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말없이 사내를 바라보는 그에 중년의 사내가 귀족의 예를 보이며 인사를 올렸다.

“폰 발론이라 합니다. 경과 검을 나누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폰 발론이라 소개하는 그의 말에 번 칼리는 호쾌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번 칼리라 하오. 나 또한 경과 검을 나누어 매우 기쁘오. 따로 보지 않아도 합격이기는 하나, 검사로서 욕심 때문에 어쩔 수 없구려. 이해 부탁하오.”

그러며, 검을 뽑는 그에 야안 또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았다.

지난 암시장의 수장에 판 검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의 명검이었다. 번 칼리의 명검에 못지않은 검인 것이다.

곧 일곱 걸음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던 그들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는 상급 익스퍼트가 일으키는 검의 구가 치열하게 상충하며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번 칼리의 검은 그의 성정처럼 매우 호쾌했다.

빠르고 변화가 많은 것이 그의 검의 특징이었다. 그러면서도 진중하여 조급함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전장에서 갈고 닦은 검이 아닌 옛 고인의 흔적을 따라 그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자문자답하면서 깨달은 검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짙은 살기에 노출되면서 자아를 찾는 검과 이 같은 형태로 경지에 오르는 검의 길은 저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어 무엇이 우월하다 할 수는 없다.

앞서 죽음 속에서 삶을 찾아 스스로 자아를 찾는 검은 그 성장이 빠르기는 하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자칫 잘못된 길에 빠지기 쉽다.

그에 반해 번 칼리처럼 오랫동안 지겹고 힘겨운 수련을 한 검의 형태는 비록 그 성장이 느리나 그 스승과 지침이 올바르다면 잘못된 형태로 가지 않아 상승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그 스스로 무골이 뛰어나야지 가능한 일이고 그에 앞서 성정이 이에 맞아야 했다. 번 칼리는 운이 좋게도 그 두 가지가 맞았고, 그를 알아본 뛰어난 스승이 있었기에 상급 익스퍼트라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여하튼 절정의 경지의 마지막 자락인 상급 익스퍼트에 들어섰다는 것은 사실상 초인 이전 인간이 이룰 수 있는 마지막 도착지라 할 수 있기에 어떤 길을 걸었다는 것은 사실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하여 그는 전장에서 얻은 야안의 검을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도 십 초식이 넘어가고 스무 초식이 넘어섰을 때부터 그의 검의 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극에 달한 이십사수검법 속에 검곤대나이의 힘의 묘용이 은은하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힘 조절을 하려 할지라도 애초 초인의 경지에 들어선 자의 몸과 범인의 몸이 같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근골이 타고난 자라 해도 그 반응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그 상대하는 이는 무언가 이상하다 하면서도 그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카가가강-’

요란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번 칼리가 뒤로 물러섰다.

백 초식을 채 채우지 못한 채 물러선 것인데 그의 눈은 믿어지지 않는 괴물을 본 듯한 눈빛이었다.

이는 눈앞의 사내가 능히 대륙의 13강 중에서도 중상위권에 들어설 자라 여겼기 때문이다. 대륙의 13강의 존재들이 어떤 존재들인가?

같은 상급의 경지에 들어선 자임에도 이미 또 다른 차원의 경지에 있는 자가 아닌가? 능히 홀로 2명의 상급 경지에 들어선 자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이기도 했다. 상위의 3명은 홀로 3명을 상대할 수 있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한데, 그런 실력자가 모습을 보이었으니 그는 이내 같은 검의 길을 걷는 자로서 적잖게 희열에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좋은 비무였습니다.”

잠시 말문을 잇지 못하던 그는 이내 인사를 건네는 야안에 서둘러 검을 집어넣으며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설마 이 정도의 강자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태도는 조금 전과 달리 존경의 표시가 가득했다.

검을 숭상하는 제국의 무인으로서 이는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 직급이나 신분을 떠나 그 놀라운 경지에 개척한 무인은 존경받아 마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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