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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97화 (197/385)

야안 197화

특히나 번 칼리 또한 상급 익스퍼트에 오른 자였기에 그 같은 검의 경지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번 칼리는 천천히 폰 발론의 사내를 살펴보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폭발적인 힘에 의해 자신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데 그는 그런 모습은 물론 한 점 호흡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한 자일지도 모르겠구나.’

지금 같은 시국에 이 같은 강자가 제 3황자 세력에 들어섰다는 것은 진정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랬다. 행운이었다. 초대를 한 은거무인도 아닌 갑자기 나타난 이 놀라운 강자가 직접 이곳을 선택하였으니 말이다.

그는 확실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를 대하며 자신의 일정을 뒤로 한 채 그를 자신의 저택의 객으로 모셨다.

딘 후작가의 가장 강한 검인 번 칼리답게 단승 귀족이라 해도 여타의 백작 못지않은 권세와 부를 누리고 있었다.

그의 저택은 웬만한 성 못지않게 화려하고 웅장했다.

저택의 그 웅장한 철문을 넘어서며 보이는 장미 숲은 마차를 타고 한참을 지나쳐야 했다. 그대로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갈래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의 끝에는 여러 별장이 자리하기도 했고, 또한 딘 백작가의 하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들이 자리하기도 했다.

야안의 장원만큼이나 넓고 화려했는데, 그것은 그의 저택의 크기만이 그러하다는 것이고 실제 그에게 주어진 영지의 크기는 웬만한 제국의 자작 가 못지않았다.

저택은 8층에 달했는데 그 층의 폭이 높아 실제로는 12층의 건물 높이로 보였다. 바닥은 상질의 하얀 대리석이 깔려 있었고, 벽의 곳곳에 거대한 유리가 자리해 건물 안임에도 밖에 있는 것처럼 화사했다.

천장에는 화려한 마법등잔이 예술품같이 조각되어 있었고, 실내는 기온 조절 마법이 자리해 서늘한 바깥 날씨와 달리 봄같이 따스했다.

하인들과 하녀들은 저마다 용모가 단정하고 품위가 있었는데, 야안이 본 숫자만 해도 200명이 넘어섰다.

번 칼리는 마차 내내 야안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아들이라 소개하는 폰 한을 눈여겨보았다.

이제 막 스물이 된 듯한 그는 마치 그의 아버지의 젊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생각보다 다정한 야안과 달리 말수가 없다는 것을 뺀다면 그 무재나 귀족 특유의 고결한 분위기 등이 닮았는데, 매우 탐이 나는 자였다.

만약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직전 제자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번 칼리의 배려로 인해, 야안과 자이한이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딘 후작 가에서는 폰 발론의 등장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이었다.

몇몇 귀족들은 다른 쪽에서 수를 쓴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 거물이었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인데, 확실히 숨겨진 패로 쓰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

딘 후작은 자신의 수하인 번 칼리의 실력을 잘 알기에 폰 발론에 대한 의견에 의심이 없었다.

삼황자 피르망은 딘 후작에게서 그 같은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실상 강자의 실력이 다른 세력에 비해 떨어진 점이 있었다.

한데 그 같은 강자가 모습을 보였으니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

야안과 자이한은 이틀 동안 번 칼리 저택에 자리하다. 삼 일째 되는 날이 되어서야 딘 후작 가에 들어설 수 있었다.

딘 후작 가의 성은 웬만한 왕국의 왕성만큼이나 크고 화려했다.

성에 자리한 무인들 중 강자가 아닌 이들이 없었고, 저 한 쪽에서는 넓은 벌판이 자리해 기마훈련이 한참이었다.

딘 후작은 고위 정령사였기에 그 영향을 받아 이곳 후작 성에는 유난히 정령사가 많았는데, 그들은 저마다 야안의 정령의 기운을 느끼고 의아함을 보이기도 했다.

분명 뛰어난 검사라 모신 자에게 정령의 기운이 느껴지니 그럴 만도 했다.

거대 별관에서 만나게 된 딘 후작 또한 야안의 정령의 기운을 느낀 터라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놀랍군. 상급 익스퍼트의 검사가 정령사라니.”

그는 그러면서도 이내 야안의 정령의 기운이 무엇인지 짐작을 할 수 없다는 점에 고개를 내저어야 했다.

처음 보는 형태의 기운이었다. 딘 후작 그의 정령은 땅의 정령이라 근원에 대해 알아가는 능력이 여타의 정령사보다 뛰어났는데, 그런 그로도 야안의 그 정령의 기운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하나 사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보편적인 4대 정령 이외에도 희귀 정령들이 자리했으니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었다.

정령사의 재능 자체가 희귀하였고, 그 재능을 지닌 이가 검의 재능을 가진 것은 더욱 희귀했다.

오래된 제국의 역사에서도 몇 되지 않았는데, 야안처럼 높은 경지에 올라선 자는 전무했다. 하기에 딘 후작이 그처럼 감탄을 보인 것이다.

말없이 예의를 보이는 야안을 바라보던 그는 어쩌면 야안의 그 강함은 정령사이기에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고 그는 짐작하였다.

“같은 정령사로서 이렇게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쁘네.”

“저 또한 고귀한 정령의 향기를 지닌 이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딘 후작은 야안에게 예의를 거두게 하고 준비한 와인을 가져오게 하였다.

제국의 후작이 마시는 와인인 만큼 그 향과 맛은 매우 뛰어났다. 마크 영지의 와인도 뛰어났지만, 이 와인 앞에서는 퇴색되어 버릴 듯했다.

실상 그 넓은 제국에서도 최상위급에 자리한 와인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딘 후작은 야안의 눈을 바라보다 그의 눈이 웬만한 현자 못지않게 깊고 투명함을 보고는 그의 지혜 또한 매우 뛰어남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제국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과연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주 훌륭하다. 어디서 이런 존재가 나타난 것인가? 무위는 물론이고 견식 또한 이처럼 훌륭하니 앞으로 주군의 앞날을 빛낼 존재라 할 수 있겠구나.’

그는 와인이 바닥을 보일 때쯤에야 야안을 부른 이유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번 칼리 경은 비록 지금은 나의 휘하에 있으나, 훗날 주군께서 거둘 인재이네. 육십도 채 되지 않아 상급 익스퍼트에 들어섰다는 것이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이야기해주니 이는 당연한 일이지.

아쉽게도 주군께 인재는 많이 있으나 다른 세력에 비해 강자의 숫자는 몇 되지 않네. 하여 번 칼리 경 또한 이번 영광의 십 인에 포함되어 있지. 아마, 이에 대해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그대 또한 잘 알 것으로 생각하여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네.”

후작의 말은 야안 또한 그 사실을 알기에 세 세력 중 자신의 세력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아니었다.

뛰어난 힘을 지닌 몰락한 귀족이 복귀하는 데 자신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곳에 소속하는 것은 조금의 정치적인 생각을 가진이라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특히나 그 실력이 13강에 들어설 정도의 강자라면 더욱 그러했다. 어중간한 실력을 가졌다면 오히려 다음 대의 주인이 되기 유력한 곳으로 움직이는 게 옳았다.

야안은 딘 후작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였고, 그 모습에 딘 후작은 더욱 야안에게 믿음이 갔다.

만약 별 볼 일 없는 변명을 늘어놓는 자라면 눈살을 구겼을지 모른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하여, 그대를 영광의 십 인에 들어서길 원하네. 들어주겠는가?”

“물론입니다. 그 영광을 주신다니 감사드립니다.”

야안의 짧은 대답에 딘 후작은 만족해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또한 이것은 부탁이네만 초청한 몇 명의 무인과 대련을 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 아무래도 그 자리가 영광의 자리인지라.”

딘 후작의 그 말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야안은 별 어려움 없이 수락했다.

“당연한 일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제야 딘 후작은 미소를 보이며 안도를 표했다. 계승 귀족이면서 그 같은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에게 이 같은 부탁을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강한 검사라면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던 탓이다.

딘 후작은 야안의 성정이 보기보다 담백하다는 것에 만족해하며 말했다.

“가을 축제가 시작되면 주군께 그대를 소개하도록 하지.”

“황자님께서 저를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속단할 수 없지만, 내가 느끼는 것처럼 주군께서도 그대를 매우 만족할 것으로 믿네.”

야안은 딘 후작의 그 배려에 목례를 보이며 잠시 담소를 나누다 이내 별관을 나섰다.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건만 그 지금 행하는 제 일이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을 걱정한 탓인지 야안의 얼굴을 크게 밝지는 않았다.

가을 축제의 시기가 찾아왔다.

황금 물결을 거두는 일꾼들의 손놀림은 유난히 바빴다. 대풍년까지는 아니어도 풍년이라 할 수 있는 규모라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했고, 밀을 거래하는 상인들의 움직임은 활발했다.

아이들은 철없이 뛰어놀았으며, 노인들은 아들과 손자들의 일을 옆에서 훈수 두며 이를 즐기곤 했다.

이는 땅의 상위 정령사인 딘 후작이 이끄는 딘 영지였기에 매번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가을 축제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셀 수 없는 방문객들에 경비원들은 쉴 틈이 없었고, 수많은 중소 상단들의 움직임으로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특히 제국에서도 유명한 솔론 검투장이 있는 내성의 사정은 특히나 그러했다.

축제의 전야제를 알리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화약 또한 발전이 되어 이곳 축제의 불꽃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성대하고 아름다웠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색색의 불꽃들을 보기 위해 어린아이들이 목마를 하는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폰 발론의 신분을 지닌 야안 또한 그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여타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평지나 건물 위가 아닌 후작성의 별관에 자리한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을 본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생의 마지막을 타오르는 하루살이처럼 사그라지는 불꽃을 말없이 바라보던 야안은 곧 누군가의 기척에 몸을 돌려세웠다.

‘끼이익-’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문이 열리며 세 인영이 모습을 보였다. 한 명은 딘 후작이었고, 다른 한 명은 번 칼리와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지닌 자였으며, 마지막으로 그 중심에 자리한 자는 삼십 대 초반의 기품이 넘치는 사내였다.

타오르는 붉은 머리에 짙은 녹색 눈, 그 지닌 기세는 그 젊은 나이에 이룩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중급 익스퍼트에 들어서 있었다.

황금빛이 감도는 천에 붉은 실을 휘두른 그의 복장은 황가의 자손만이 입을 수 있는 복장이기도 했다.

하여 야안은 그가 바로 다음 대의 이 거대한 제국의 주인을 노리는 삼 황자 피르망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야안은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어 그에게 인사를 올렸고, 오만한 듯한 표정을 짓는 피르망은 작게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는 문에서부터 이어진 바닥의 붉은 천을 지나 준비된 원탁의 중심에 앉았다. 야안 또한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딘 후작이 그를 안내하여 황자와 멀지 않은 자리에 그를 앉혔다.

그를 안내한 뒤에야 딘 후작 또한 야안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고 황자를 따라온 무인은 황자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다.

황자는 잠시 말없이 야안을 바라보다 곧 그의 뒤에 시립하고 있는 무인을 향해 물었다.

“어떤가? 그대가 보기에 이자가 나를 노린다면 그대는 지킬 수 있겠는가?”

다소 충격적인 그의 질문이었지만, 방 안의 누구도 동요한 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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