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03화
그로서 그는 의념을 검에 부여하는 초기의 단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었으니 실상 켈론 후작이 파악한 대로 그는 차원이 다른 검을 소유하였다 하겠다.
현재 야안은 무의식적으로 경에 변을 담아 검을 펼친 터라 켈론 후작은 점차 밀릴 수밖에 없었다.
가벼움 속에 자리한 변화는 베론 후작처럼 화려하지도 다변하지도 않았지만, 정작 상대하는 켈론 후작은 그보다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편이 있다.
그것은 오직 켈론 후작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미세한 흔들림 속에 자리한 그 무서운 변화는 상대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켈론 후작 또한 검으로 적수를 찾기 힘든 자. 이미 자신의 길에 극에 달한 이이기도 하였기에 그도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았다.
무겁게 내려치는 그의 검에 굴절이 일어나는 환상이 보이기도 했으며 흘러가는 바람이 변형되기도 했다.
극에 달한 무거움은 모든 것을 압도하는 힘을 보이기도 하는데, 켈론 후작의 검이 그러했다.
‘쿠쾅쾅쾅-’
마법처리가 된 비무대가 힘없이 깨어져 파괴되었고, 그가 날린 무거운 검기에 비무대가 가루가 되기도 했다.
또한 그의 검의 구는 작지만 무거워 야안의 검의 구를 조금씩 파고드는 형태를 보였다.
그러나 초인이 아닌 이상 그처럼 무거운 검기를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그 또한 천 초를 넘어서면서 조금씩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야안의 검에 자잘한 상처를 입게 되더니 다시 오십 초를 넘어 그의 검은 꺾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아, 하아.”
입에서 단내가 나올 정도로 검을 휘둘렀던 적이 언제였던가?
켈론 후작은 그 순간만큼은 황제의 후계 자리니 뭐니 하는 여러 중압감을 잊은 채 만족감에 젖어들었다.
‘그거참. 지면 분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렇지 않으니 참 기이하다.
말없이 무뚝뚝한 야안을 바라보던 켈론 후작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복잡한 감정을 이해할 수 없어 하다 이내 야안에게 경례를 보이고 비무대를 내려섰다.
야안 또한 내려선 켈론 후작에게 경례를 보이더니 다시 가볍게 운기행공과 준비된 성수를 마시더니 이내 다시 제비를 뽑기 시작했다.
이제 그 누구도 야안이 제비를 뽑는 것에 대해 의문을 보이지 않았다.
실상 켈론 후작이 꺾이게 되면서 황제의 후계 자리는 3황자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은 무인들은 대부분이 뒷자리에 자리한 이들이었으니 성수와 운기행공으로 본래의 신색을 찾은 야안을 넘어서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점이 많았다.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야안이 남은 제비를 다 소모하게 되는 데는.
정오에 시작된 비무는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서야 끝이 났고, 곧 황제의 후계를 축하하는 불꽃놀이와 음악, 무희들이 모습을 보이며 눈을 즐겁게 하였다.
‘폰 발론. 폰 발론-’
이 대회를 보았던 모두가 이 위대한 기사의 이름을 불렀다.
모두를 각인시킨 압도적인 무위를 지닌 폰 발론 그는 그 혼자의 힘으로 황제의 자리를 가져왔다 해도 무방했다.
아니, 실제로 그가 아니었다면 삼황자가 황제의 후계 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 황자 측과 이 황자 측의 세력의 모든 이들이 설마 단 한 사내에게 막혀 자신들의 오랜 숙원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기에 크게 낙심했다.
하기야 누가 알았을 것인가? 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몰락한 귀족의 검이 그토록 위대하였을 줄이야.
그야말로 영광의 일인이라는 칭호가 그토록 어울릴 수 없다.
실제로 이 대회로 인해 폰 발론은 영광의 검이라는 명예로운 별호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별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었다.
겨울 축제는 드디어 탄생된 카이엘 제국의 황태자로 인해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본격적인 대관식은 겨울 축제가 끝이 난 뒤에야 할 것이라 삼황자 피르망은 약식으로나마 간단히 제국의 황태자의 즉위식에 올라섰다.
황태자는 자신을 따른 신하들에게 그 영광을 함께 하였다.
특히 대단한 공을 세운 야안의 경우 능히 13강의 첫 번째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실력자이기에 대귀족의 반열인 백작의 직위와 기름진 영지를 내어주기로 약속되었다.
또한 그 외에도 그의 가문을 새롭게 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금력을 주도록 한 터라 수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하지만 야안은 그런 거대한 부와 명예에도 혹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중히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것은 세속적인 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한 일이었다.
약식으로 진행한 황태자 즉위식을 끝마친 뒤에야 야안은 기다렸던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
콧수염이 매력적인 기사가 황태자 피르망이 그에게 내 준 수도의 저택에 방문하게 된 것인데, 그는 소문의 주인인 야안을 만나게 된 것에 매우 들떠 있었다.
만약 그가 모시는 주인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검사가 아니었다면 그 또한 여타의 기사들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긴장 탓에 자신의 수염을 어루만지며 진정시키더니 이내 공손한 태도로 야안에게 서신을 건네었다.
서신을 봉한 봉투에는 촛농 위로 야안이 기다렸던 레필 공작 가의 문장이 자리했는데 그 문장의 중심에는 가는 실선 형태의 베인 흔적이 자리했다.
만약 야안이 아닌 다른 자였다면 그저 지나칠 수 있는 흔적이었지만, 야안은 그 흔적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기에 심적인 동요가 적지 않았다.
‘이것은 검강으로 남긴 자국이다.’
그랬다. 그 옅은 실선은 레필 공작이 검강으로 펼쳐 보인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더욱 무서운 것이었다. 만약 레필 공작이 검기로 그 같은 변화를 보였다면 야안은 이처럼 동요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한데 검강, 그것으로 그 같은 미세한 자국을 보이었으니 야안은 숨이 막힐 것 같은 충격을 받아야 했다.
검강은 모든 기운 중에서도 강맹함으로만 따진다면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고위 현자가 펼치는 대마법이라 할지라도 검강의 강맹함을 따라가지 못하며 오직 고위 현자중에서도 익스퍼트에 오른 초인이 펼치는 대마법 수준이 되어야 그를 겨우 따라잡을 수 있다.
유피테르의 뇌전 또한 강맹하나 상위 정령사 비기너 수준에 오르지 않고서는 검강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만큼 검강은 강맹한데, 문제는 검강이 너무 강맹하여 시전하는 자 또한 세세하게 다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검강은 오직 의념에 의해서만 그 변화가 보이니, 상당한 경지에 오른 자가 아니라면 감히 따라잡을 수 가 없다.
하니 그 같은 검강으로 이 같은 미세한 실선을 보이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는 자신의 생각보다 그의 경지가 뛰어나다는 말이었으니.
야안이 서신을 뜯지 않고 그 서신 봉투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그 기사는 그것이 기이하다는 듯 고개를 저어 대더니 이내 품에서 또 다른 서신을 건네어 주었다.
“주군께서 말씀하시기를 폰 발론 경께서 앞서의 봉투를 유심히 본다면 이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의 말에 야안은 그가 간단한 방법으로 자신의 경지를 견주어 보았음을 알고 과연 세월이 가져다주는 지혜는 예사로운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고맙구려. 잘 받았다 이야기해주게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영광의 검이시여.”
야안은 그 과한 별호에 작게 한숨을 흘리며 떠나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집무실에 돌아와 제 아들 신분을 연기하는 자이한을 부른 야안은 곧 유피테르 또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 서신의 봉투를 보여 주며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에 대한 설명해 주었고, 자이한과 유피테르는 한동안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시금 눈이 흩날리기 시작할 때서야 유피테르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이 정도라면 승률은 46%, 그것도 잘 쳐 주어야 가능하겠군.”
“나와 유피테르 님께서 기습을 하여 선기를 잡는다면 어쩌면 해 볼 만도 하겠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목적은 그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니 말일세.”
야안은 자이한의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술법이라면 금빛 진주만을 포획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지.”
아무리 레필 공작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축지술과 토네, 그리고 유피테르의 뇌전의 힘에 영향에 의한 육체의 반응속도라면 그의 세력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에게는 이미 암시장에서 얻은 또 다른 신분증이 자리했고, 그는 주술로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인벤토리라는 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신비의 공간이 있으니 금빛 진주를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니 공작 가의 추적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축제로 인해 사람들이 많았으니 아무리 레필 공작 가라 해도 그 속에 자리한다면 자신들을 어찌하기란 어려움이 컸다.
야안은 자신의 계획을 변경하고 살피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은 탁상공론에 불과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서신 봉투를 뜯어 서신을 꺼내었다. 그 서신에는 그의 검에 대한 찬사와 함께 레필 공작 가로의 초대장이 자리했다.
사실 공작 가의 초대장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것이 가주가 내 준 것이라면 그 초대장만으로도 수많은 인맥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레필 공작에게 받은 서신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콧수염이 멋진 기사가 두 번째로 준 그 의미심장한 서신을 야안은 곧 펼쳐 들었고, 그 안에는 놀라운 내용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디 이 서신을 그대가 읽기를 바라네.
그대는 알고 있는가? 그대의 검을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말일세. 신선한 충격이었네. 설마 레필 공작 가가 짐작도 하지 못한 검의 묘용이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 또 다른 초인이 탄생하였다는 것에 나는 나도 모르게 아리스 님을 외치고 말았네.
더구나 그 탄생 된 초인이 검으로서 올라선 자라는 점에서 나는 기쁘고 또 기쁘다네.
그대의 진정한 검을 마주하고 싶네. 대회장에서 억눌렀던 검이 아닌 초인에 올라서게 한 그대의 진정한 검에 대해 말일세.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대는 나의 안목조차 속였네. 그것이 그대가 깨달은 검의 묘용인지 아니면 또 다른 비밀을 안고 있는 자인지 모르겠군.
궁금하군. 그렇기에 나는 더욱 즐겁기도 하네.
그대 부디 나의 검을 받기를 바라네.]
“후우~”
그 서신을 다 읽은 야안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왜 그가 검강으로 그 같은 자국을 남겼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자신은 그 자신도 모르게 시험에 든 것이다. 이제 이 두 번째 서신에 자리한 장소와 시간에 움직여야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히려 일이 더 손쉬워졌다 할 수 있겠구나.’
그랬다. 그가 가르친 장소는 이 왕성에서도 사람이 잘 오지 않는 폐쇄된 작은 경기장이었고, 그 시간도 늦은 새벽이었다.
더구나 그의 세력이 포진된 저택 가보다 그 세력이 적었으니 일이 성공하여 벗어나게 될 때 그 위험도가 크게 낮아질 것이다.
레필 공작이 자신의 저택 가가 아닌 이곳에서 야안을 맞아들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적으로 여타 귀족들의 눈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초인들과의 대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