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11화
재작년에 자리를 잡던 도호칸 급 오크 두 마리를 이번 토벌에서 처리하였으니 말이다. 물론 이로 인해 대용병단 하나가 괴멸 직전에 가야 했고, 상급 익스퍼트 기사 한 명이 순직하고 말았지만, 다음 몬스터 토벌에서 얻을 이익을 생각한다면 운이 좋다고 밖에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일대에서는 초인 못지않은 권위를 자랑하는 팔로 후작은 지난 검은 도끼와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를 하고 있었다.
하기에 그를 따르는 자랑스러운 푸른 기사단의 단장 모론 경이 팔로 후작을 대신하여 현재 그 주위를 정리하고 있었다.
검은 도끼 또한 팔로 후작과 마찬가지로 큰 상처를 입은 터라 한동안 움직일 수 없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오만의 병사와 함께 도망치는 오크들을 죽이거나 그와 멀지 않은 오크 족들을 지워버리며 최대한 오크들의 기세를 꺾은 이들은 전쟁이 끝난 지 벌써 열흘이 지난 지금도 계속 주위를 정리하고 있었다.
야안과 자이한이 이곳을 목적지로 둔 것은 바로 이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드래곤을 만나야 하는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투로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퀘스트를 위해 야안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 지도가 있었으나, 문제는 그 드래곤이 어디 쯤에 위치한다는 것만을 알 수 있는 지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야루스 산맥을 뒤덮은 여타의 몬스터들의 세력이나 그 외의 복잡한 투로를 알지 못했는데, 야안은 이를 위해 일부러 이곳 용병들이 머무른 여관에 방을 잡았다.
다른 곳도 아닌 가장 험난한 전쟁이 있는 팔로 후작 가로 온 대용병단이라면 상당히 노련할 것이 분명했고, 그런 이들이라면 야안이 원하는 수준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암시장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번에도 느꼈듯이 그 절차가 상당히 복잡했고 레필 공작 가에서 상당한 현상금을 건 것을 알던 터라 일말의 복잡한 사정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 같은 행동은 취한 것이다.
야안은 이미지 마법으로 여러 용병에게 친숙히 다가가 이야기를 꺼내었는데, 운이 닿은 탓인지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저녁 자신을 얀이라 소개한 용병에게서 그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얀이라는 용병은 이곳 대용병단에서 백인장의 위치에 있는 고위 인물인데, 마침 그는 성수를 구하고 있었다.
바로 같은 백인대장이자 동생인 루피가 이번 몬스터 토벌에서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인데, 그 사실을 진실의 눈으로 알았던 야안은 이에 대해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얀은 생전 처음 보는 인물이 거래를 하고 싶다는 말에 미심쩍은 듯한 태도를 보이다 그가 옷자락에서 성수를 꺼내 들자 이내 경계를 풀고 물었다.
“무엇을 원하는 것이오?”
“다름이 아닌 그대가 소속한 용병단이 파악한 야루스 산맥에 대한 자료를 알고 싶소.”
야안의 그 말에 그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받아들였다. 실상 이 자료는 용병단의 수입과 큰 영향을 주는 것이기도 했지만, 제 동생의 목숨이 더 급했다.
받아들이는 그에 야안은 기뻐하며 이내 오른손을 들어 작은 빛의 구를 형성하다 이내 지워버리며 말했다.
“그 자료 수준이 만족한 수준이라면 치료를 도와주리다.”
얀은 설마 이 둔중해 보이는 사내가 현자인 줄은 몰랐던 터라 놀라다 곧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실망시키지 않겠소.”
그렇게 말을 마친 그는 내일 아침 이곳에 보자고 말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인 곳인데, 야안은 사정이 어려운 자에게 이 같은 행동을 보인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한숨을 흘렸다.
자리로 돌아온 야안의 그 생각을 알았던 자이한은 말없이 그의 잔을 채워 주며 위로해 주었다.
내일 아침이 되어 얀이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의 문서들을 가지고 나왔고, 야안은 성수를 건네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상당한 양이었지만 그 정도의 정보들을 읽고 정리하는 것은 야안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야안은 흘려 보듯이 첫 장부터 끝까지 그 책장을 넘겼는데, 그것만으로도 거의 백 장이 넘는 지도와 그에 부과되는 정보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자료가 풍부하구나. 다른 곳과 더 거래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으로 충분하겠다.’
야안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보이며 자신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얀에게 말했다.
“아주 좋군요. 치료를 도와드리지요.”
그 말에 얀은 안도의 한숨을 보이며 서둘러 야안을 자신의 동생이 누워 있는 여관의 방으로 안내하였다.
솜씨가 좋은 치료사가 좋은 약재를 적재에 썼는지 그 부상이 상당히 위중했음에도 더 이상 악화 되지는 않았다.
하기야 이 정도 수준인 대용병단의 백인대장의 자리를 맡고 있다면 그 지닌 금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니 현상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야안은 곧 다가가 그를 살펴보았고, 다행히 성수와 함께라면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얀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 달라 부탁한 야안은 성수를 그에게 섭취해주고 리젠을 연달아 펼쳐 그의 빠져나가는 성수의 기운을 막고 인도했다.
곧 루피라는 이 용병의 창백한 안색에 활기가 돌아오기 시작했고, 위중한 부상에서는 썩은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힘줄이 이어지다 마지막에 이루러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워낙 부상이 깊어 그 과정은 1시간에 걸쳐 이뤄졌지만, 그 위중한 상태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만약 야안이 리젠으로 성수를 인도하지 않았다면 최소 1년은 자리보존을 해야 기력을 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곧 밖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린 얀에게 치료가 끝났음을 알린 야안은 자신을 마중하러 온 자이한에게 미소를 보이며 그와 함께 여관을 나섰다.
놀라울 정도로 회복한 동생에 기뻐한 얀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야안을 찾았지만 더 이상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성벽은 매우 견고하고 두터웠다.
그 높이는 황성 도시에서 보았던 성벽을 보는 듯 매우 높고 넓었으며, 그 성벽의 위에 자리한 병사들은 대단한 훈련을 받은 그 기량이 예사롭지 않았다.
더운 여름의 열기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전방을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만으로도 팔로 후작 가가 얼마나 대단한 정예군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면목이다.
그런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야안과 자이한은 감탄을 보였다.
“멋지군. 하기야. 이 같은 군대를 이루지 못했다면 검은 도끼가 이끄는 오크 군단을 상대로 승리할 수는 없겠지.”
“확실히 배울 점이 많은 군대이네.”
짤막하게 대답 한 야안은 곧 자이한과 함께 그런 철통 같은 경계를 보인 성벽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는데, 기이하게도 수많은 병사가 있었음에도 그들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아니, 바로 코앞에 지나가고 있음에도 병사들은 그들이 보이지 않는 듯 여전히 전방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단순히 보이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듣지도 못하는 것 같았는데 실제 짤막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에도 그들을 전혀 그들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랬다. 이것이 바로 자이한이 지난 몇 달간의 고련 끝에 얻은 진체의 술의 새로운 진면목이었다.
그림자의 술과는 다른 형태인 진체의 술의 주술로 바로 그 주술의 대상자를 주위의 세계와 격리하는 주술이다.
물론 위대한 주술사가 아니기에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 상대가 초인 수준의 기감을 지닌 자이거나 또는 자신이 먼저 상대를 건드리지 않는 인식의 대상에서 제외의 대상이 되는 것이 가능했다.
이 주술은 이번 드래곤의 전투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대부분의 주술력을 이용하여 이 주술에 부여한다면 그 인식을 낮게 하여 위기에서 여러 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야안은 그 같은 일을 해내는 주술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에 감탄을 보였다.
그 같은 무인식의 주술을 펼친 덕에 이들이 성벽을 넘어서는데 아무도 막아서지 않았다. 바람의 술을 이용하여 그 거대한 높이의 성벽을 단숨에 뛰어내린 그들은 곧 토네와 축지술을 펼쳐 야루스 산맥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떤 명마라 할지라도 따라가지 못할 움직임을 보이던 그들이었기에 곧 산맥 너머로 그들의 자취는 사라졌다.
‘두두둑, 두두둑-’
요란한 말굽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소리만큼이나 대기는 피 안개로 인해 어지러웠다.
전투가 막 끝난 현장이었는데, 전투라고 하지만 사실 학살이라 불러도 무방한 현장이었다.
오크들의 시체가 즐비했고, 그들이 타는 회색 늑대들의 시체 또한 사지가 찢어진 채 대지에 널려 퍼져 있었다.
그들이 살았던 주거지에 불이 피어올랐으며, 끌어모았던 오크 시체들 위에도 불이 붙었다.
‘화르르륵-’
거대한 불길이 순식간에 모습을 보이며 늦은 저녁의 노을 속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던 오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그 불길을 이용해 간단히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고고한 기도를 지닌 기사들 또한 그들과 섞여 식사하기 시작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오크 시체 옆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고역스러운 일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불평을 토해 내지 않았다.
마치 여느 일상의 한순간처럼 그들은 말없이 식사를 즐겼다.
“흠~ 이번이 여섯 번째 마을인가?”
풍성한 반백의 수염이 매력적인 중년의 기사 모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속으로 앞으로 일정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오크들의 기세는 사나웠다.
이번 전투에서 잃은 병사들의 숫자만 해도 천이 넘었고, 그중에서도 팔천의 기병 중 오백이나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이번에 그가 지금까지 친 오크 수장의 수준이 호후도칸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런 피해는 좋은 상황은 아니다.
그가 최종적으로 칠 곳이 호도칸이 이끄는 대부족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검은 도끼를 추종하는 10명의 대부족의 수장 중 하나를 이번 기회에 그 세력을 상당히 꺾을 수 있다면 다음 전투에서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터이다.
특히나 이번에 그가 치려는 호도칸은 애송이가 아닌 전장에서 40년째 굴렀던, 그가 처음 전장에 나섰을 때 마주한 자였다.
하얀 주먹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 오크는 호도칸들 중에서도 발군인 자였고, 이자 때문에 수송에 여러 번 큰 피해를 보아야 했다.
전장에서 부딪혀 일전을 겨룬 것만 해도 수백 번에 달하는 호적수이기도 했는데, 모론은 자신이 죽기 전 이 하얀 주먹을 멸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이곳의 호도칸들의 또 다른 스승이라 이 오크를 잡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전장은 지금보다 쉽게 흘러갈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처럼 호후도칸인 족장들이 기세를 잃지 않은 채 이처럼 사납게 자신들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하얀 주먹의 대처 때문이다.
호후도칸 급이라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전략을 꾸미는 오크들의 배경에는 하얀 주먹의 그 체계적인 지시가 있었다.
이 하얀 주먹은 자신들이 칠 것에 대해 방비를 하였을 것이니 모론 경은 그에 대응하기 위해 한참을 지도를 꺼내 살펴보았다.
곧 식사를 마친 기사들과 수장들을 천막에 불러들인 그는 곧 수정된 일정을 알려 주며, 점차 계획을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야루스 산맥에 오른 지 보름이 지난 야안과 자이한이 그간 베어 낸 몬스터는 상당했다.
주력 부대에서 떨어져 나간 오크들부터 시작하여, 오우거와 트롤을 비롯한 대형 몬스터들도 적지 않았다.
‘키에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