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14화
야안의 검에서 일어난 검강에는 뇌전이 자리해 그의 거친 부사는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토네와 축지술을 함께 펼치는 야안의 움직임은 붉은 늑대를 크게 상회하였다.
결국 십여초만에 붉은 늑대가 반으로 쪼개지었으며, 다시 이십 초가 넘지 않아 검은 도끼의 목이 허공에 띄어 올랐다.
‘쿠구궁-’
백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곳 일대를 주름잡았던 존재의 마지막으로 생각하기에는 허탈한 점이 적지 않았다.
검은 도끼의 거대한 몸체가 앞으로 요란하게 쓰러지는 것을 보던 야안은 이내 다가가 검으로 그의 심장을 갈랐다.
그리고 다시 검으로 휘저어 밖으로 무언가를 꺼내었는데, 바로 마나석이었다. 전에 그가 가졌던 마나석보다 더 품질이 좋았는데, 상위 현자로 올라서면서 이 같은 마나석과 같은 귀한 자재는 그의 마법을 한층 깊어지는데 도움을 줄 터였다.
야안은 잠시 검은 도끼를 바라보다 이내 격전을 벌이고 있는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쟁 진형은 큰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조금 전 크게 밀리고 있던 인간의 진형은 모론 경과 기사조장이 합류하면서 체계적인 형태로 바뀌었으며, 자이한이 일으킨 열 마리의 야수는 좌측에서 밀어붙이는 오크들을 거침없이 찢어발기며 병사들의 사기에 그 힘을 주고 있었다.
병사들은 그 숫자가 상당히 줄어 이제 3만도 채 되지 않았지만, 워낙 정예군인 터라 배 이상 차이 나는 오크들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야안은 곧 그 또한 야수 2마리를 일으켜 전장에 합류시키었고, 유피테르를 불러들여 오크 종족의 후미를 치기 시작했다.
유피테르의 뇌전이 지나칠 때마다 오크들은 사지가 뒤틀리기 시작했고, 야안의 손에서 터져 나오는 대마법은 그런 오크들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검기가 하염없이 사방을 휩쓸었으며, 검강을 일으킨 검의 구의 영역에 오크들이 들어서기 무섭게 몸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아 본래의 위치까지 복구한 인간들의 진형은 다시 반나절이 지날 때쯤, 이 지독했던 전쟁의 끝을 바라볼 수 있었다.
오크들에게 잃은 전우에 대한 복수심 덕분인지 인간들의 손속은 잔인했고 매우 거칠었다. 목을 베어 비리는 것으로 그 분기가 사라지지 않았던 탓인지 사지가 찢어지지 않은 오크는 그 넓은 전장에서도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워낙 훈련을 잘한 군대인지라 진열이 흐트러지는 경우는 없었다. 기사들은 저마다 마지막 힘을 내며 나아갔으며, 모론 경은 그들의 가장 앞에 서며 오크들을 베어내다 어느 순간 그들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기사 못지않은 힘을 보여주었던 그 괴기한 야수들도 사라진 상태였는데, 그는 놀라 서둘러 병사들을 풀어 그들을 찾았다.
하지만, 전장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새벽이 떠오를 때까지 그들을 보았다는 소식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군대의 모든 이들이 찾고자 했던 야안과 자이한은 이미 산자락 한 곳을 넘어서고 있었다. 인간들이 완전히 승기를 잡자 귀찮은 일들을 배제하기 위해 이 같은 행동을 보인 것이다.
날이 크게 어두워지자 거대한 나무 위에 올라 그곳에서 간단히 노숙 준비를 마친 야안과 자이한은 간단하게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여름이라지만, 야루스 산맥의 특성상 밤에는 겨울 못지않은 추위가 몰려오는 터라 식사와 함께 그들은 도수가 높은 보드카를 나누어 마셨다.
후끈하게 목구멍을 태우듯 들어서는 보드카를 들이켜다 이내 술병을 야안에게 건네던 자이한이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전쟁은 끔찍하군.”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야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드카를 한 모금하곤 이내 그에게 건네었다.
“확실히 제국의 오크들은 다르더군. 그 힘은 물론이고 전술은 인간 못지않을 수준이었네. 왕국보다 더 치열한 전투를 하였던 탓인지 모르겠군.”
말없이 건량을 씹으며 남은 술을 비워낸 자이한은 풀 자락에 띄엄띄엄 보이는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푸른 달이 뜨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
야안은 그의 혼잣말을 듣고 그 또한 달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큰 변수가 없다면 며칠의 여유가 있었다.
드래곤과 가까워질수록 퀘스트와 함께 모습을 보인 지도는 더욱 정밀해졌기에 어쩌면 생각한 시간보다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판단을 했기에 지금처럼 몬스터 토벌을 하여 레벨을 올리고 있었다.
실상 야안의 경지보다 그의 레벨은 많이 낮은 편이라 레벨이 올라가는 속도는 상당히 가팔랐다.
‘그러고 보니 덕분에 레벨이 상당히 올라서게 되었군.’
검은 도끼를 죽이면서 단숨에 3레벨이 올라갔고, 그 전투에 힘을 보태면서 레벨을 상당히 더 올라설 수 있었다.
야안은 그간의 변화를 알기 위해 상태창을 불러들였다.
[레벨 : 264
직업 : 전설의 추종자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용사, 제왕지기(대장인 : 미착용)
생명력 : 6,260
마나량 : 22,860
명성 : 3,800
힘 : 288(+25)
민첩 : 297(+25)
행운 : 240 (+25)
지혜 : 250(+25)
신력 : 13 (+25)
마나 : 1,117(+25)
정령력 : 204 (+25)
분배되지 않은 스탯 : 62]
그간의 전투로 인해 얻은 분배되지 않는 스탯이 62나 되었다.
더구나 9달간의 수련으로 그의 여타의 스탯 능력치는 대단히 상승해 있었다. 검강을 일으키면서 지혜가 상승하였으며, 금빛 진주로 인해 행운의 스탯 또한 벌써 260을 넘긴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야안은 불안한 마음을 지워내지 못했다. 대적할 존재가 없는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과 상대를 하는 일이었으니 그런 그의 불안은 당연한 것이다.
잠시간 수면을 취한 야안은 이내 마음에 검을 세워 뇌전검법에 대해 고찰하며 수련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야안은 검강을 일으키게 되면서 제1 초식인 기쁨을 담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제 2초식인 노여움의 의념을 담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1초식인 기쁨은 사실 공격의 형태로 쓰이기보다는 수비적인 검식이다. 하여 어떻게 보면 건곤대나이의 묘용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초식이기도 했다.
하나 2초식인 노여움은 뇌전검법의 진정한 위력을 보여준다.
노여움이라는 의념처럼 세상을 찢어버릴 듯한 분노가 검강에 자리를 잡았다. 그 안에 변화는 매우 도도한 강물과도 같았고, 그에 휩쓸리는 모든 것을 파괴할 힘이 자리했다.
하여 인자한 성정인 야안과는 사실 맞지 않아 초기에는 힘이 들었으나, 야안이 2 초식에 대해 고찰하면서 그것이 편견임을 깨닫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초식은 단순히 노여움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 그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마치 태풍의 핵이 고요한 것처럼 그 자신은 그 같은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그 어떤 때보다 마음이 온건해야 했는데, 다행히 야안의 타고난 성품과 뇌전의 정화의 덕분에 야안은 빠르게 2초식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지금의 속도라면 드래곤과 조우하기 이전에 완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자이한은 대기의 기운이 야안을 중심으로 크게 요동치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며 그 또한 진체의 술을 더욱 갈고 닦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거대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야루스 산맥에서의 하루가 끝을 보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푸른 달이 뜨는 날까지 이제 열흘밖에 남지않게 되었다.
야안과 자이한은 드래곤과의 하루 걸리는 거리에서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이곳을 지키고 있는 오크들 때문이었다.
오크 중에서도 주술에 대한 재능이 뛰어난 자들이 많다는 하얀 오크 부족이 드래곤에게 가는 길목을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 세력이 워낙 강세한지라 진체의 술인 무인식의 주술을 펼쳐 지나가려 했으나, 이곳에 자리한 오크의 주술사로 인해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 수많은 오크 주술사 중에서도 우두머리라 할 오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섯 계급 중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매의 주술사이면서 또한 그 매의 주술사 중에서도 가장 고강한 자였다.
그자 하나라면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지만 도칸급인 오크 장군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으니 야안과 자이한도 함부로 들어설 수 없었다.
야안이 이 같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퀘스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얀 오크들을 넘어서라.
등급 : B
드래곤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들 하얀 오크들을 넘어서야 가능하다. 하얀 오크들의 족장은 매의 주술사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매의 주술사로 오크들의 왕 칸으로부터 ‘란’이라는 칭호를 받은 자이다.
칸은 그에게 8장군 중 한 마리를 건네주었고, 이곳에 파견되는 도칸은 단순히 실력만을 보자면 첫 번째, 두 번째 도칸에 비해서도 크게 부족하지 않다.
검은 창이라는 이 도칸과 ‘란’의 오크 주술사의 합공은 대륙의 어떤 초인도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 자이한의 진체의 술도 죽음의 지배자가 남긴 저주의 파동과 이를 이용한 ‘란’의 주술사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었다.
* 다행히 그대들의 그 조합으로 본다면 상대보다 부족함이 없다. 이번 퀘스트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드래곤의 일전을 앞둔 그대들은 좋은 판단과 경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퀘스트의 보상 중 하나로 그대는 뇌전의 정화의 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의 충고처럼 초인을 넘어서는 이 상대의 합공의 힘은 대단히 무서운 성질의 것이다. 그 어떤 초인도 상대하지 못하는 조합이니 여타의 초인에 비해 부족한 점이 있는 야안으로서는 섣불리 들어설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또 다른 충고처럼 작년 레필 공작을 만나기 전의 그들이라면 모를까? 현재 그들의 저력은 이들을 감당할 수 있었다.
금빛 진주에 힘입어 검강을 일으키게 된 야안의 힘은 본래 사이한 존재들과 처절하게 상극이였고, 지난 진체의 술을 새롭게 깨달은 자이한의 힘은 그 홀로 도칸 들 중에서도 상위의 존재와 다툴만했다.
하니 이들의 조합이 저들에 비해 부족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문제되는 것이라면 다른 오크들의 합류이다.
이곳에 분포한 세력은 상당하다. 더구나 그들을 보조해주는 주술사 중 지난 하얀 주먹에 해당하는 주술사가 2명에 호도칸 오크들이 셋이나 된다.
여타의 오크를 상대하는 것이라면 이처럼 곤란하지 않다. 큰 대전투를 앞두지 않고서는 저마다의 세력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목적은 본래 드래곤의 길목을 막아서는 것이었고, 하기에 그 같은 세력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점에 있다.
더구나 그간 유피테르가 살펴본 이곳 오크들의 세력은 상당하다. 오크 전사들만 해도 일 만에 달했으며. 하급 오크의 경우 삼십 만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