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216화 (216/385)

야안 217화

60. 크로노스

‘저벅, 저벅-’

칠흑 같은 동굴 속으로 작은 발자국 소리와 함께 하얀 빛이 일렁거린다. 빛의 구를 앞세우면 동굴의 어둠 속으로 들어서는 야안과 자이한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신중해졌다.

드래곤의 그 거대한 기운 속에 자리한 그 짙은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많은 경험이 많은 야안조차 느껴본 적이 없는 형태의 살기였다.

만약 야안과 자이한이 그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면 그 살기에 동화되어 미쳐 버리기 좋을 그야말로 악마 같은 살기였다.

절로 예전 악마 파란토를 생각나게 하는 살기였다.

그들은 곧 드래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입구에는 수많은 금속을 정련하였던 야안도 알 수 없는 금속이 그 앞을 막아서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데 유피테르가 모습을 보였다. 그는 금속을 한동안 살펴보더니 이내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인다.

“재미있군. 이것은 드래곤의 봉인마법이다.”

“이것이 마법으로 만든 것이란 말이오.”

자이한의 물음에 유피테르는 긍정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스스로 봉인 하려 했구나. 하기야. 그 고고한 존재의 생각이라면 자신이 어떻게 이용될지 모를 리는 없겠지. 그의 판단은 옳았다.”

야안은 자이한의 말을 듣다 문득 말문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는 이 마법의 영향권만으로도 사이한 기운을 지닌 존재는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러하네. 하기에 그들 오크들도 손을 되지 못했지. 이 봉인마법의 해제 방법은 정심한 기운을 지닌 자만이 풀 수 있네. 야안 그대라면 가능할 걸세.”

유피테르의 말에 야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금속 위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 스스로 기운을 금속을 향해 내뿜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강을 일으킨다 해도 처리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그 금속이 마치 모레처럼 요란하게 흘러내리더니 이내 그 자취를 감춘 것이다.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지라 마치 환상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금속이 사라지기 무섭게 그 동굴의 공간이 수천 배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내 스스로 황금빛을 발하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크기가 족히 80미터는 되어 보이는 그 존재는 두 쌍의 날개와 긴 꼬리를 지니고 있었다. 검강과 같은 거대한 파괴력을 지닌 힘만이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듯한 견고한 비늘에서는 황금빛이 발하였고, 한 쌍의 손은 크고 거칠어 모든 것을 찢어 버릴 듯했다.

그 거대한 머리에 자리한 두 눈에는 절로 무릎을 꿇게 만들 듯한 패왕적인 힘이 자리했고, 수백 개의 이빨에 물리는 순간 형체도 남기지 못할 듯했다.

드래곤. 고대 문헌에서나 보았던 그 드래곤을 이렇게 만나게 되자 야안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드래곤의 존재에 놀라워하는 그에게 유피테르가 소리쳤다.

“조심하시게. 드래곤이 그대들을 인식하였네.”

그가 충고를 하지 않아도 야안 또한 초감각 너머로 드래곤이 자신들을 인식하였음을 알았다. 다만 자이한은 야안이 그랬던 것처럼 드래곤의 그 존재의 위엄에 놀라 있다 유피테르의 그 충고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곧, 무시무시한 살기가 그들을 집어삼켰고, 자이한은 그 거대한 살기의 파도 속에 정신을 모아 무인식의 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가 펼친 무인식의 술법과는 그 질 자체가 달랐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하며, 웬만한 힘으로는 그에 영향을 주기도 어려운 그가 펼칠 수 있는 주술의 극에 달한 정화였다.

순간적으로 드래곤 또한 그들의 존재감을 놓쳤으나 과연 마법의 종주답게 그가 무어라 중얼거리자, 이내 정확히는 아니지만,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거대한 마법이 펼쳐졌다.

가볍게 펼쳐진 듯한 그 마법은 야안이 펼칠 수 있는 신마법조차 무색할 만한 위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야안 또한 불의 정화를 신마법으로 펼쳐 그 마법에 건곤대나이의 묘용을 펼쳐 드래곤의 마법을 흩뜨리고 검강으로 그 남은 잔해를 막아섰다.

‘쿠구구궁-’

여타의 동굴이었다면 무너지기에 충분한 힘의 파동이 동굴을 뒤덮었지만, 무슨 마법을 펼친 것인지 동굴은 그 같은 충격에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야안은 내심 감탄하며 바쁘게 다시 드래곤의 그 거대한 채찍과 같은 꼬리를 상대로 검을 펼쳐야 했다.

드래곤의 꼬리는 그 비늘이 돋아나면서 검강만큼이나 매서운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꼬리를 상대로 야안은 극성에 달한 건곤대나이를 펼쳐 이를 막아서야 했다.

그 힘뿐만이 아니라 그 꼬리의 움직임은 매우 빨라 토네와 축지술 여타의 주술들로 보조를 한 야안조차 따라잡기 어려웠다.

만약 자이한이 무인식의 술로 야안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야안은 긴 시간을 버티지 못한 채 무너졌을 것이 분명했다.

거대한 뱀과 같은 드래곤의 꼬리에 부딪힐 때마다 야안은 검강으로 보호하고 있음에도 온몸이 저릿한 충격을 받아야 했다.

이도 건곤대나이로 힘을 흘리고 초인의 육체를 지니었기에 버틸 수 있었지 그중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검을 쥔 그의 손이 부서져 나가고 몸의 오장 또한 균열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았다.

드래곤의 공격이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야안도 해볼 만할 것이지만, 드래곤의 힘은 그 육체보다는 그 마법이 배는 더 무서웠다.

비록 죽음의 지배자에 의해 저주를 받아 그 사기에 정신이 혼탁해지면서 유피테르에게 들은 만큼 수준의 마법이 활용되지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마법 하나하나가 야안이 모든 기량을 보여야 상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지난 그가 본 가장 위대한 현자인 그의 스승 로만조차 이 드래곤의 마법에 비한다면 어른과 아이를 보는 듯했다.

그래도 경험이 많은 유피테르가 보조하고 자이한이 끝없이 피하고 옮기며 주술을 유지하니 야안은 크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스스로 몇 번이고 리젠을 펼치고, 상당한 부상에는 엘린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힘에 스탯을 찍기도 했으며 가파르게 소모되는 마나에 또한 스탯을 찍어 올렸다.

놀라울 정도로 야안을 크게 보조하는 유피테르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정령력에도 지속적으로 스탯을 찍어 올렸는데, 야안이 그간 모은 스탯을 반 이상 소모하였을 때쯤 겨우 한 시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드래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진노하여 더욱 고강한 힘을 보이기 시작했고, 야안은 그로 인해 그의 공격을 막아서다 사지가 부서지고 회복하기를 수십 번이나 겪어야 했다.

그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야안의 그 많은 재주도 힘을 쓸 수 없었다. 산을 가르는 듯한 기세로 내려치는 꼬리에 야안은 원초적인 회피의 모습으로 땅바닥을 크게 뒹굴어야 했고, 전설의 검을 방패로 삼아 가까스럽게 그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신성력도 고갈되면서 신력에도 스탯을 올려야 했던 야안은 그도 모자라 인벤토리에서 성수를 꺼내어 마시고 바르며 그 상처를 복구해야 했다.

스탯이라는 아리스의 축복이 아니었다면 오래전에 무너졌을 것이다. 실제로 레필 공작이라 해도 야안처럼 드래곤의 공격을 이처럼 버틸 수는 없었다.

레필 공작의 검강이라면 드래곤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 그는 드래곤의 마법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마치 생각만으로 마법을 펼치는 듯한 드래곤에게는 그 작은 틈만으로도 그 같은 거대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기량이 자리했으니 말이다.

다시금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야안은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의 신성력은 엘린 한 번과 리젠 5번을 펼치는 게 한계였고, 여유 스탯도 8개만이 남았을 뿐이다.

검강에 부서지고 다시 생성하는 데 쓰이는 마나를 생각한다면 그 모든 스탯을 마나에만 투자한다 해도 20분을 버티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이도 유피테르가 앞서며 야안을 이끌었으니 그 같은 시간을 말할 수 있었다.

야안의 그 생각을 알았던지 유피테르는 야안에게 남은 스탯을 정령력에 투자하라 말하였고, 그에 야안은 유피테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고 있음에도 이내 그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크게 지쳐 있던 유피테르는 야안이 정령력에 8개의 스탯을 올리기 무섭게 한줄기 뇌전으로 변모해 드래곤을 향해 쏟아졌고, 야안 또한 그의 뒤를 따랐다.

한줄기 뇌전으로 변한 유피테르는 드래곤의 마법에 스쳐가며 그 반을 잃었고, 드래곤의 꼬리에 다섯 번을 연달아 부딪히며 그 나머지 반마저 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멸되어 의념만이 남아 야안의 몸속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야안은 그가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강이 형성된 검을 붉은 실의 묘용을 담아 드래곤에게 날리며 일순의 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인벤토리에서 뇌전의 정화와 금빛 진주를 꺼내어 심연의 일검을 응용하여 다시금 몰아치는 드래곤의 공격을 피해 푸른 뇌전을 드래곤에게 펼쳤다.

‘쿠구구궁-’

뇌전에 격중 되기 무섭게 야안은 드래곤의 꼬리에 부딪혀 동굴의 벽을 몇 번이나 부딪히며 뒹굴었다.

극도로 단련된 검으로 초인의 길에 올라선 야안이 아니었다면 즉사하였어도 무방할 힘이었다.

벌써 다섯 차례나 동굴의 벽에 부딪히던 야안은 의식을 잃은 채 대지로 떨어져 내렸다.

머리부터 떨어지는 야안을 자이한이 급히 진체의 술을 지워내고 남은 주술을 모아 바람의 주술을 펼쳐 그를 받아내었는데, 그 거리가 상당히 멀었던 터라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서 자이한 또한 모든 주술이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진체의 술이 풀리며 자이한이 순간적으로 드래곤의 꼬리가 일으키는 풍압에 휩쓸리고 만 것이다.

위대한 주술사를 코앞에 두고 있는 그이기에 그의 신체 또한 웬만한 초급 익스퍼트 기사 못지않았지만, 드래곤이 일으킨 풍압은 그런 그라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그의 몸 또한 요란하게 바람에 휩쓸려 크게 뒹굴다 그 뒤에 자리한 벽에 크게 부딪히고 말았다.

팔이 골절되고 내장이 다쳤던지 피를 토해내던 자이한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크오오오-’

거대한 드래곤의 표호가 동굴 속을 가득 메웠다. 황금빛이 일렁이는 그의 몸에 들어선 그 푸른 뇌전의 줄기는 드래곤을 지배하던 사기를 하나하나 끊어놓기 시작하면서 생긴 고통 탓이다.

그 거대한 드래곤을 사기로 물들였으니, 그 사기의 양이나 질은 평범하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 사기의 양이나 질만으로 본다면 능히 악마 파란토에 육박한 수준이었다.

그런 사기를 끊어버리며 최종적으로 그 불을 꺼버리려 하고 있었으니 그 큰 변화는 아무리 위대한 종족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힘겨울 수밖에 없다.

고통의 마지막 순간 그 절정에 올랐을 때 드래곤의 입에서 불 한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불은 야안의 뇌전처럼 삿된 것을 지워내는 힘이 자리했는데, 그것이 아니어도 그 불에 자리한 힘은 대단하여 검강으로도 쉬이 부서지지 않던 벽의 한 곳이 용암이 되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거대한 불로 남은 사기를 뿜어내어 지워버린 드래곤의 그 거대한 눈은 그전까지 보이던 광폭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도 맑고 깊은 대현자의 눈빛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드래곤은 그 거대한 머리로 자신의 몸을 살피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