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27화
과연 그렇게 마주하게 된 그의 눈은 여태껏 보았던 탐욕스러운 돼지 같은 눈을 지닌 사내들과 차원이 다른 맑고 깊은 호수 같은 눈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참고 있던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마치 풍파에 휩쓸린 작은 새와 같았다. 야안은 그녀의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경악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바로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바로스는 가슴이 뭉클거렸다. 자신의 이 저주 같은 운명에 모든 희망이 꺾일 때 쯤 만난 이 기적이 믿어지지 않았다.
야안은 훌쩍거리는 제인을 진정시키려 마케를 여러 번 펼쳐주었고, 곧 그 훌쩍거림과 함께 아이는 눈물을 거두었다.
그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르샤는 그런 그들을 진정시키며 마차로 데려갔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에야. 헤롤지 장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작 가의 기사단장이 다스리는 곳답게 이곳의 장원은 여타의 남작 가에 비해 규모가 작을지는 몰라도 후작 가의 중심지 못지않게 번성한 곳이었다.
상업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으며, 이곳에서 재배되는 약초와 촘촘히 만들어지는 비단은 큰 시장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헤롤지 단장 측근의 수완이 좋은 듯 예전 마리나 시절의 카르샤가 다스렸을 때보다 배는 더 번성한지라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다소 놀란 모습을 보였다. 장원을 돌아다닌 지 얼마 되지 이게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었다.
“아. 호롤 그 녀석이 이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이 마녀가 되기 이년 전 예전 자신이 거두었던 평민 출신의 인재로 관료로 쓰려 교육을 한 바 있었던 녀석의 작품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예전 그가 건의를 하였던 복지시설이나 시장의 형태가 그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마녀가 되어 버린 뒤 운 좋게 헤롤지 단장이 그를 거두어들인 모양이었다.
야안은 장원에서 근무를 하는 관료에게서부터 이곳의 집터를 사고 싶다고 말을 꺼내었다. 다름 아닌 장원의 외곽 낡은 작은 저택을 원하다 이야기했는데, 그 말에 관료는 반기는 기색을 보였다.
한때는 이곳의 우상이었으나 마녀로 낙락한 마리나의 저택은 그들에게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강력한 힘과 정신을 가진 현자조차 굴복시킨 악마가 그곳에 자리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철거를 하기도 어려운 시점이라 흉물로 놔두어야 한 상황인데, 이 철모르는 외지의 귀족이 그곳을 구입한다고 하자 반기는 기색이 완연했다.
하지만, 워낙 큰 건이라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수 없어 상사를 불렀고, 곧 예전 마리나가 채택하였던 호롤이라는 관료가 모습을 보였다.
눈빛이 맑고 깊어 그 성정이 바른 자임을 짐작하게 한 그는 이내 다가와 그에 대해 소문난 것들을 이야기하였다.
그 상대가 귀족처럼 보이는데다 이 같은 일로 속이는 것은 그가 모시는 헤롤지 자작의 명예를 더럽힌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것이 오해에 불과한 것임을 잘 아는 야안은 서슴없이 괜찮다고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미 알아보고 왔네. 사람들의 시선이 번잡스러운 것이 싫어 그러하니 값이나 치르도록 하세.”
야안의 그 말에 호롤은 그제야 가격을 흥정하기 시작했는데 미리 말한 것이 있어 그런지 생각한 것보다 싼 값에 저택을 팔았다.
그렇게 저택을 구입하는데 쓰인 돈은 2,000골드에 불과했다.
비록 낡고 그 소문이 좋지 않았으나 번화가와 가까운 저택을 구입하는데 쓰인 비용으로는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이는 이곳 좋지 않은 소문이 자리한 저택이 다시 활성화되어 이곳 장원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려고 내린 판단이다.
사람을 구하고 저택을 수리하는 것은 시간이 지난 뒤에 하기로 했다.
좋지 않은 소문이 도는 저택 수리를 하려는 일꾼들을 구하기가 어려운 이유도 있었고 지금 당장은 그 식구가 적어 필요치 않은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비밀 기지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작업을 시작해야 했기에 남들의 시선에서 멀어져야 했다.
그 유물이 자리한 거처에는 그녀만이 들어갈 수 있는 마법진이 설치되었기 때문인데, 몸이 바뀌면서 그녀는 그곳으로 들어설 수가 없게 되면서 생긴 문제였다.
그렇다고 억지로 들어가려 하면 거처가 사라질 정도의 대단위 공격마법이 펼쳐져 그곳에 자리한 모든 유물이 사라지기에 마법진을 역으로 풀어내는 일을 해야 했다.
마법진을 역으로 풀어내는 것은 그 마법을 설치하는 것보다 배는 힘든 작업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당시 이 마법진을 만들었을 때 그녀의 수준은 중급 현자 마스터인 터라 크게 그 마법진이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 복잡하지 않다는 기준은 야안과 지금의 카르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상급 현자 비기너의 경지에 이른 이가 두 명이나 자리했으니 이 정도의 마법진을 역으로 푸는 과정은 며칠이면 될 터였다.
현재 카르샤는 야안이 그녀에게 건네어 준 마나집약진을 통해 마나를 모으고 있던 터라 그 자신의 뛰어난 심법에 힘입어 무서운 속도로 마나홀의 크기를 늘리고 있었다. 이 추세라면 1년이 채 되지 않아 중급 현자의 문을 넘어설 터였다.
자신의 저택에 돌아온 카르샤는 이틀 동안 예전 자신이 만든 마법진에 대해 상기하고 있을 때, 야안은 이제 자신이 이곳 세상에서 새롭게 받아들인 이 두 명의 제자의 수준에 맞추어 가르치고 있었다.
제인과 바르샤는 이 눈앞에 있는 경이로운 능력을 한 몸에 지니신 스승을 크게 존경하고 있었다.
인품으로는 이미 아리스 님에게 인정을 받은 신관이며 그 지혜는 드높아 현자 중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또한 정령을 다룰 수 있으며, 그 검은 이미 검의 종주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으니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처음 보는 형태인 주술이라는 힘을 다루고 있는지라 그들은 스승인 야안이 과연 인간을 넘어선 어떤 고위의 분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데 그처럼 뛰어난 존재가 자신의 그 절망의 구렁텅이인 인생을 구원하였을 뿐 아니라 손수 자신의 스승이 되어 주신다 하니 이들이 야안에게 가지는 마음은 하나의 신앙과도 같았다.
특히나 제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행각이기도 했다.
야안의 신성 마법으로 인해 그녀의 육체는 회복하였으나, 오랜 세월을 유린당한 그녀의 정신은 여름날의 논바닥과도 같이 피폐해져 있었다.
타고나기를 뛰어난 지혜와 큰 담력이 자리하였으나, 그도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수없이 겪으며 그녀의 담력과 지혜도 갈기갈기 찢어지고 만 것이다.
어머니를 저주했고, 아버지를 원망했으며, 신이라는 존재를 부정했다. 그녀의 삶은 그랬다. 주위의 모든 것이 적이었고, 그녀의 편에 자리한 것은 아무도 없었다.
어둠, 절망이 그녀의 인생이었건만, 내려오는 한줄기의 섬광이 그녀에게 내려왔고, 그 눈부심에 제인은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녀의 야안에 대한 신앙은 맹목적인 것으로, 만약 야안이 그녀에게 죽으라 말을 한다면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스스로 목을 베어낼 정도였다.
야안도 그런 그녀의 문제점을 잘 알았지만, 그라 해도 어떻게 손을 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것을 자신이 부정하고 그녀의 그 생각을 뜯어고치면 그녀는 파도치는 바다 근처에 자리한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검으로 종주의 길을 걷고 있는 야안이기에 그녀의 문제점을 단숨에 잡을 수 있었다. 본래 재질이 뛰어난데다 그 눈썰미가 좋아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훈련을 한 덕분에 기초적인 훈련을 그녀에게 맞추어 수련방식을 바꾸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 이외 그녀의 문제점인 마나 수련법을 다듬어 주었는데, 검의 종주에 올라서 이제 뇌전신공에 달하는 마나 심법을 다루는 야안에게 있어 그녀에게 맞춘 마나 수련법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존 그녀가 지닌 마나 심법의 근본적인 부분을 모태로 두어 새로운 마나의 성질과 충돌하지 않게 하면서 중급 마나 심법서의 수준의 마나 운용능력을 가지는 마나 심법을 만들어 몸에 익히도록 하게 했는데, 그녀를 위한 것이기에 그녀는 불과 하루 만에 그 마나 심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첫날은 야안이 마나 심법을 다루게 하는데 공을 들이게 하였다면, 둘째 날부터 그녀를 위한 검법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이십사수검법이나 그가 그를 추려 만든 십사수검법은 상당한 힘을 기반으로 만든 검법이라 여성에게 맞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근골이 우수한 터라 그것으로도 충분히 대성할 수 있을 테지만, 여러 시행착오로 인해 상당한 시일이 걸릴 터였다.
상급현자 비기너의 지혜에 검의 종주의 경지에 자리한 야안에게 있어 여인을 위한 검법을 만드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한나절 동안 이화접목과 사량발천근 등 힘의 교묘한 묘리들을 부여하면서 고민하던 야안은 최종적으로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검의 형태를 만들어내었다.
[버드나무 검법서.
등급 : C+
뿌리 깊은 거목마저 부서지는 태풍 속에서도 버드나무는 조금의 해를 입지 않는다. 이는 그 거센 힘에 대응하지 않고 순응해 나가 그와 동화를 하기 때문이다. 이 검법서는 그와 같이 부드러움을 무기로 삼아 상대의 강력한 힘을 제압할 수 있다.
* 건곤대나이의 오의가 미약하게 자리해 있다. 대성한다면 능히 자신보다 윗선의 경지에 오른 자에게도 쉽사리 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유연성이 뛰어난 여자에게 맞춰진 검법이었다. 총명하고 눈썰미가 뛰어난 점이 있는 그녀는 이 검법이 예전 푸른 매의 용병단장의 검법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꿈에도 그리워하던 검이었고, 그것을 준 자가 스스로 신처럼 모시는 존재였기에 그녀는 희열에 떨며 이 검법을 수련하였다.
과연 그 마음가짐이 달랐던 탓일까?
그녀는 단 하루 만에 그 검법을 몸의 동작에만 한해서이지만 손 될 부분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제인이 그처럼 검과 검법을 수련할 때 바로스는 예전 야안이 숲의 부족에게서 얻은 고급 정령석을 그에게 내 주어 이를 몸에 지니게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정령어에 대한 공부와 정령술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하프 엘프의 특성 때문인지 머리가 뛰어난 바로스는 그의 가르침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예전 제코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무재도 있던 터라 검의 기초를 잡아주고, 초급 심법을 몸에 익히게 했는데, 이 또한 체질이 마나를 받아들이기 좋은지라 이틀 만에 그 과정을 떼어낼 수 있었다.
앞으로 유피테르가 모습을 보인다면 그의 정령술은 큰 시일을 줄일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낮에는 그들에게 기초적인 수련을 가르치고 수련에서 어긋난 부분들을 지적하여 고치었고 밤에는 카르샤와 함께 마법진을 역으로 풀었는데, 삼 일이 지날 무렵 모든 마법진을 풀어낼 수 있었다.
‘쿠구구궁-’
마법진이 풀어지기 무섭게 저택의 일부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바람의 주술로 일어서는 먼지를 날려버리자 거대한 실험실이 모습을 보였다.
그 안에는 그간의 세월의 흔적을 말하는 듯 적지 않은 먼지가 뽀얗게 자리하고 있었다.
근 5년 만에 들어서는 자신의 실험실에 그녀는 실험실에 자리한 공간의 주머니에 그 유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