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38화
6. 하늘 산
“나는 붉은 망치 부족의 검은 망치라 하네. 거인족의 친우라면 나의 친우라 할 수 있겠네. 반갑네.”
아무리 세속적인 예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드워프라지만, 다음대의 황제를 바라보는 자가 먼저 자신을 소개하며 살가운 태도로 대하자 야안은 그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는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청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청하는 바라? 그것이 무엇인가?”
호의를 보이는 검은 망치의 말에 야안은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에 앞서 저를 다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러며 야안은 자신의 칭호를 대장인으로 바꾸었는데, 검은 망치 또한 갑작스럽게 야안이 대가의 기세를 보이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마치 그 짧은 시간에 다른 이로 바뀐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대가에 오른 드워프인 만큼 스스로 베론 야안이라 소개한 그의 본질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었으나, 그런 착각이 들 만큼 야안의 기질의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놀란 그를 위해 붉은 돌이 야안을 대신하여 그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하여 주었고,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검은 망치는 긴 한숨을 내쉬다 이내 야안을 향해 돌아서더니 자신의 심장을 두 번 쳤다.
이 예법은 놀라운 것이다. 이는 드워프들 사이에서 통하는 예로 상대에게 심장을 두 번 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스승만큼이나 존경한다는 의미였다.
제국의 다음 대의 황제가 될 것이라는 그가 자신에게 그 같은 예법을 보이자 야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푸른 바위 일족과 어울려 살면서 어느 정도 드워프들의 예법에 대해들은 바가 있었기에 그의 예법에 대해 알았기 때문이다.
“나 붉은 망치 부족의 검은 망치가 베론 야안에게 존경을 표하오. 부족하나마, 우리 붉은 망치 부족 또한 그대가 하고자 하는 바를 지지할 것이오.”
그의 발언은 야안이 하고자 한 왕국의 건립에 큰 힘이 되는 것으로 야안은 크게 감사를 표했다.
“부족한 저를 이처럼 대우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아니오. 그대는 충분히 이 대우를 받아도 될 자요. 어느 누가 있어 그대의 그 고결한 희생에 마음을 숙이지 않겠소.”
필요하지 않아 하지 않을 뿐, 이 대륙을 통일하고도 남을 저력을 지닌 베론 제국의 다음 대의 황제인 그가 그처럼 지지한다면 야안이 꿈꾸고 있는 왕국의 건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부족의 장로들을 불러들여 붉은 벽 부족이 그런 것처럼 야안을 환영했다.
붉은 망치의 장로들 또한 야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저마다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아 빠진 이 시대의 흔한 인간들과는 다른 야안의 고결한 희생과 정의로운 사명감이 이들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곧 9명에 달하는 장로들은 자신의 족장인 검은 망치의 뜻에 따르기로 맹세했다. 야안은 과연 호쾌한 성정을 지닌 드워프답다 생각하며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후 야안은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거인족을 만나게 되었는지, 왜 그가 거인족의 왕의 인장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이야기를 꺼내었고 그들은 저마다 감탄과 탄식을 함께 내뱉었다.
여타의 드워프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드워프가 걸걸한 목소리로 탄식을 표했다.
“하~ 죽음의 지배자의 힘이 그 정도란 말인가? 예전 내가 보았던 거인족들의 전투 능력은 다른 종족들이 감히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나 그들의 왕 붉은 대지는 초인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달하는 능력자이건만. 한데, 그런 그들이 그처럼 허망하게 당해버리다니. 아니, 그 존재의 유무조차 사라져 버렸다니 그저 탄식만이 나올 뿐이다.”
그 말에 붉은 돌이 공감한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숱한 민간의 전설로만 남은 미지의 종족들 또한 그처럼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네. 하, 어렵군. 어려워.”
야안으로부터 못해도 100년의 세월이 남았다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 신과도 같은 힘을 지닌 죽음의 지배자와 맡 선다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뒤를 이어 야안이 유피테르를 그들에게 소개하며 그로부터 어쩌면 드래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다시 침침한 분위기가 사라지며 활기가 돋아났다.
“드래곤이라? 확실히 위대한 종족이시라면, 그분들이라면 답이 있을 것이네.”
드래곤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지 너무도 오래되어 이제 전설로 남은 종족이었지만, 그렇기에 그들에 대한 믿음은 상당했다.
야안은 그들로부터 나흘 동안 큰 환영을 받으며 이들 대가로부터 숱한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검은 망치에게서 큰 가르침을 받아 완전한 대가로서의 길에 큰 한 걸음을 내밀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 라 대륙에서 거인족들이 자리한 바의 대륙까지의 거리는 끝과 끝이라 멀머던 종족의 도움을 받아도 어려움이 컸다.
그래도 1년에 두 번은 정기적으로 거래를 나누었는데, 넉 달 뒤에 그곳으로 가는 배가 자리한다고 하였다.
검은 망치는 야안과 헤어지며 그에게 명예 장로직을 내렸고, 또한 하나의 소개장을 내어주며 말했다.
“이것이면 베론 제국의 모든 엘프의 수호자이신 하늘 산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것이오. 세상의 수많은 강자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시는 분이시니 그분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보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다음에 뵈었을 때도 건강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하하하. 부디 몸조심하시기를 바라오. 몇 번 이야기하였으나, 라 대륙에는 인간들과 척을 진 종족들이 다수 존재하니 말이오.”
마치 오랫동안 만난 이처럼 끝까지 자신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검은 망치에 야안은 다시금 깊은 감사를 올리며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 * *
베론 제국은 넓었다. 자신의 시대에 있었던 카이엘 제국에 못지않은 넓은 땅은 가도 가도 그 끝이 보이지를 않는 듯했다.
아니, 멀머던 종족으로 인한 그 땅만큼이나 넓은 해상 구역을 가지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카이엘 제국보다 더 거대한 영역을 소유한다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내일부터는 엘프들의 영역에 들어서겠구나.”
부지런히 말을 타고 여덟 개의 성을 지나쳤던 야안은 한 달이 지난 뒤에야 드워프가 자리한 동부지역의 끝자락에 자리한 거대 영지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곳은 하늘 구름이라는 대부족과 두 개의 중소 부족이 어울린 곳으로 지난 야안이 들렀던 붉은 망치 부족 못지않은 거대한 도시를 형성해 있었다.
서부지역에 가까워져서인지 이곳 영지에 들어선 야안은 여행 도중에 보지 못했던 엘프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곳 베론 제국의 엘프들은 야안이 만났었던 마르닌의 깃털 부족 엘프들에 비해 상당히 개방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러 종족과 교류가 활발해지다 보니 사고가 확장되면서 그 시야가 트여 생긴 변화인 듯하다.
‘히이이잉-’
요란한 울음소리를 흘리는 지난 이틀간 고생을 한 말을 쓰다듬어 주던 야안은 인간들이 운영하는 여관 중 번화가에 자리한 큰 여관에 들어섰다.
싹싹한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말의 고삐를 받아들이던 어린 직원에게 50쿠퍼를 건네준 야안은 앞서 온 상인들을 안내하던 직원을 보며 잠시 주위를 살피다 이내 어느 한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특이한 기운을 품고 있군? 이종족인가?’
그 테이블에는 총 세 명의 건장한 체형을 지닌 이들이 자리했는데, 기이한 두건을 쓰고 있어 외부적으로 겉모습을 알기는 어렵지만 야안의 초감각을 가리지는 못했다.
인간이라기에는 그 기운의 성질이 뜨거운 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었다. 마치 그것은 하늘의 태양과도 같은 성질을 지닌 듯했는데, 이미 풍문과 책에서 지식을 쌓았던 야안이었으나 이 종족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무슨 종족인지는 모르지만, 예사로운 자들은 아니로군.’
그 셋 중 그나마 덩치가 작은 쪽의 자는 중급 익스퍼트 정도의 힘을 보일 수 있는 듯했고, 그 옆을 보좌하듯이 자리한 이들은 상급 익스퍼트의 수준에 달했다.
고대 시대에서도 여타의 왕국보다 문명이 앞서 있다는 베론 제국에서 보기 힘든 조합이 분명했다.
잠시 말없이 그들을 살펴보던 야안은 곧 앞서 자리한 상인들이 자리를 빼자 고개를 돌렸다. 그들 중 한 명이 자신의 시선을 느낀 듯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싶은 듯했기에 야안은 그들로부터 관심을 접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혼자이십니까?”
주인은 귀티가 자리한 야안이 귀족이라는 것을 느꼈는지, 그 태도가 상당히 공손했다. 야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정도 묵고 갈 생각이네.”
“마침, 나리의 품위에 맡는 좋은 방이 있습니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좋은 방이란 귀족들의 그 사치를 마음껏 보일 수 있는 방을 의미했다. 이 고대 시대에서의 귀족의 사치란, 야안이 살던 시대에서는 대귀족 정도나 누릴 수 있는 사치의 범위라 어린 시절 검소한 가정에서 자란 야안은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내 수락했다.
자금이 넉넉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베론 제국의 고급정보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야안은 검은 망치의 권유에 따라 베론 제국의 황제이자 하이 엘프들의 최고 권위자인 하늘 산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물론 베론 제국의 최정점에 자리한 황제를 만난다는 것은 웬만한 귀족이라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소수의 대귀족이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검은 망치로부터 명예 장로직을 선사 받은 야안은 간신히 그 기준점에 들어설 수 있었는데, 검은 망치의 소개장을 받은 그였지만 이 고위층의 세계관에서의 변수는 다양해 야안으로서도 미리 준비를 해야 했다.
네 종족이 함께 자리한 베론 제국이었지만 인간이 다른 종족에게서 명예직을 받는다는 것은 귀족이 대귀족의 직위에 올라서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인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 그 명예직을 받느냐에 따라 그 직급이 달라지는 데 야안의 경우 다음 대 황제 자리에 올라설 공작의 권위를 자랑하는 검은 망치로부터 명예직을 받은 터라 그 권위는 백작에 달했다.
야안은 말에게 먹이를 주고 몸을 씻고 들어온 조금 전 입구에서 본 어린 직원으로부터 안내를 받았다.
주근깨가 얼굴에 가득 자리한 어린 직원이 싹싹한 태도로 대하는 것이 기특한지라 1실버를 내어 준 야안은 로얄층에 배속된 집사를 불러달라 부탁했다.
잠시 후, 수많은 마법 물품들이 자리한 호화스러운 방에 짐을 풀고 있을 때쯤, 40대 중반의 단단한 인상을 주는 사내가 예를 보이며 들어섰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예전 파란토가 입었던 복장과 유사한 복장을 한 지라 거부감이 느껴졌던 야안이었지만, 이내 거부감을 접으며 말을 꺼냈다.
“황성으로 가는 중이네. 최근 정세를 알고 싶으니 자료 준비를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혹시 다른 필요한 것이 있으신지요?”
“음~ 식사도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곧 준비를 마치고 뵙겠습니다.”
여타의 귀족들을 위해 고용된 집사인 만큼 그는 우아스러운 예법을 보이고는 이내 정갈한 몸놀림을 보이며 밖을 나섰다.
성인 대여섯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커다란 욕조에서 몸을 씻고 나올 때쯤. 어느새 방 한쪽에 자리한 거대한 테이블에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