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43화
“설마 저의 대에서 위대한 왕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늘 산맥 종족을 이끌고 있는 하늘 산이라 합니다.”
말하지 않았음에도 유피테르가 누구인지를 파악한 하늘 산에 유피테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다였다.
야안은 자신의 눈앞에 자리한 하늘 산이 단번에 유피테르를 아는 것에 별달리 놀라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늘 산이 그를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차원이 다르구나.’
야안은 과거로 넘어오며 성장하면서 생긴 그 자부심이 그를 맞이하면서 무너지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 산은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드래곤 같이 막막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성장한 유피테르와 함께한다 할지라도 그 승률이 반의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야안의 감탄보다 더 놀라워 한 이는 하늘 산이었다. 그는 자신의 오랜 지우인 검은 망치가 보낸 명예 장로가 보낸 야안이라는 인간 귀족이 이처럼 놀라운 존재인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야안이라는 인간은 놀라웠다.
30년의 세월도 지나지 않은 자로 보이건만 초인이 된 것만으로도 놀랐건만 정령술에 대한 재능은 하이 엘프 못지않았고, 마법의 재능도 자신 못지않았다. 더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무언가 숨겨진 힘이 더 있는 것 같았으니 그는 과연 눈앞의 존재가 인간인지를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눈에서 숨길 수 없는지라 그는 이 놀라운 이가 인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처럼 야안에 대해 놀라워했지만, 천 년에 다다르는 긴 세월 속에 쌓은 심력에 외부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평생에 다시없을 귀한 손님을 맞이하였구나. 괜찮다면 같이 차라도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그러며 앞서 가는 그는 주위의 거목 중에서도 유독 큰 거목 안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큰 거목이라 해도 큰 체격을 지닌 그들을 다 들이기에는 부족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공간왜곡의 마법이 펼쳐진 듯 상당히 넓었다.
야안은 다시금 감탄해 하며 그 안에 들어섰고, 마토론산들도 뒤를 따랐다.
거목 안은 신비롭기는 했지만, 베론 제국의 황제가 거주하는 곳 치고는 상당히 조촐한 곳이었다.
하늘 산은 야안 일행들을 중앙의 테이블에 안내하며 손수 차를 끓여 건네주었다.
차 자체는 황제가 건네준 차치고는 볼품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차 끓이는 솜씨가 뛰어난 터라 상당히 고풍스러웠다.
야안과 마토론산들이 따뜻한 차 한잔에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는 듯하자 그제야 하늘 산이 말문을 열었다.
“나를 보러 온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 주시겠소?”
투박한 외모 속에 자리한 그의 깊은 눈을 맞이한 야안은 천천히 자신의 정체와 왜 자신이 하늘 산을 만나러 오게 되었는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방인의 존재, 이제 전설속의 존재가 된 드래곤, 그리고 크로노스라는 신마법과 더불어 죽음의 지배자에 대한 이야기 등. 의 그저 놀랍기만 한 야안의 지난 행적들이 밝혀지면서 아무리 하늘 산이라 할지라도 심정에 변화가 생기지 않기 어려웠다.
어느새 차는 식은 지 오래였고, 푸른 하늘이 자리했던 숲 속은 어느새 어둠 속에 물들어져 있었다.
그 놀라운 이야기들을 다 들은 하늘 산은 한숨을 길게 늘어놓았다.
“하~ 아쉬운 일이오.”
하늘 산의 말이 의외였던지라 야안이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하늘 산이 말을 이었다.
“나의 명은 이제 길어야 7년을 넘기지 못하네. 순리의 맹약을 하였기 때문이지. 오 년, 오 년만 더 일찍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면. 도움이 되었을 것이련만.”
이미 하이 엘프가 이룰 수 있는 마법의 끝자락에 올라선 그였다. 대현자는 오직 인간만이 들어설 수 있는 영역이라 그 경지에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현시대의 초인 중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리 잘해야 세 손가락을 넘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아쉬움을 표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오히려 지금이라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 해야 할 것인가?”
그렇게 말을 한 하늘 산은 마토론산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현재로서는 베론 제국이 바 대륙에 영향력을 끼치기 어렵소. 지금 정국이 바뀌고 있는 탓이오. 하지만, 거인족의 왕에게서 인장을 받은 야안 님이 있으시니 베론 제국이 도움을 주는 데에 필요한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으로 보오.”
하늘 산의 그 말에 마토론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 넓고 깊은 바다를 건너 오랜 시간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아무런 이득 없이 돌아갈지 모른다 생각한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그는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 산은 말을 이었다.
“죽음의 지배자가 그처럼 처참하게 수많은 생명을 무너뜨린 것에는 이 전쟁에서 상당한 전력이 소모되었던 탓이 클 것이오. 만약 이 전쟁이 일찍 끝이 난다면 그 같은 문명의 단절과 이종족의 소멸은 없었을지 모르는 일이오.”
놀랍게 발전된 문명을 이룬 지금이었으니, 하늘 산의 그 말은 일리가 있었다.
전쟁은 수많은 것을 지워버린다.
더구나 그 전쟁이 뛰어난 문명을 기반으로 한다면 그 기간은 예측할 수 없는 난세의 시기일 것이고, 그로 인해 믿기 싫을 정도로 거대한 문명의 상실이 생겨날 것이다.
‘돌아볼 시간의 여유 따위는 없겠구나.’
조용히 과거를 돌아보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던 하늘 산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작은 안도를 보였다. 주신 아리스 님의 축복이자 희망인 이방인인 야안 그가 있다는 것에 그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라 할 것인가? 지금 그대를 이끌 수 있으니 말이네.”
그가 야안에게 해 줄 것은 바로 고위 현자 익스퍼트의 경지로 올라서는 데 실마리를 주는 일이었다.
다른 이라면 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인이라 할 수 있는 고위 현자 익스퍼트로 올라서는 진리의 길이란 누군가 가르침을 내린다 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실마리를 얻는데 만 해도 자신의 모든 인생을 뒤돌아보아야 했고, 또한 그 과정에서 흔들림이 없는 심력을 지녀야 했다. 스스로에 대한 조금의 의심이 없는 상태에서만이 그 같은 고차원의 진리의 길을 밟을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방인의 재능을 지닌 야안은 그 재능도 재능이거니와, 이미 검으로 초인의 길에 올라서 있는 상태였다.
이는 그가 이끈다면 실마리를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뜻한다.
야안은 하늘 산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는 이내 제자로서의 예를 보였다.
현재 고위 현자 비기너의 끝자락에 있는 그가 가지고 있는 이에 대한 갈증도 갈증이거니와 점차 고차원적인 진리의 길에 다가갈수록 그 같은 지혜의 베풂이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 것인지를 알아서였다.
하늘 산은 야안이 제자로서의 예를 보이는 것에 대해 막으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오랜 세월 베론 제국 황제의 자리에 있으며 상대에게 보이는 위세가 얼마나 중한지를 잘 알아서였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물질만능주의에서 이 같은 칭호에서 오는 위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하늘 산의 제자 신분을 획득함으로써 위대한 왕국을 세우려는 야안에게 큰 힘이 될 것이리라.
전대 황제의 제자이자, 다음 대의 황제의 비호를 받는 야안에게 아무리 큰 권력을 지닌 이들일지라도 함부로 힘을 쓰기에는 어려움이 클 것이니.
하늘 산은 야안을 제자로 받아들인 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성스러운 장소로 야안을 이끌었다.
그곳은 세계수의 축복의 숨결이 자리한 곳으로 잡념을 지워내는 데 큰 도움을 주어 이와 같은 수련에 큰 진보를 주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야안의 수준에 맞는 강연에 힘을 쓰는가 하면 대외적으로 야안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 것을 공개하고, 바 대륙을 향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수련의 처음 열흘 동안 대부분 시간은 고차원적인 진리에 대한 강연이었다.
하늘 산 그의 가르침은 너무도 고차원적인 것으로, 야안은 그의 가르침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한 단어라도 놓칠까 싶어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를 만난다면 이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아서였다.
하늘 산은 열흘의 시간동 안의 긴 강연을 끝마치고 이후 한 달 동안은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지었다.
대부분 야안이 묻고 하늘 산이 답하는 것이었는데, 야안은 이 한 달의 시간은 꿈을 꾸는 듯 빠르게 지나갔다.
야안이 그간 밟아온 진리의 길은 대부분 책을 통해서 스스로 깨달은 것이었고, 그나마 로뎅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시간도 넉 달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뎅이 남긴 수련일지는 지난 수련에서 큰 도움이 되기는 하였으나, 고위 현자 익스퍼트라는 거대한 벽을 앞둔 지금의 그에게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작 초인에 들어선 이후 수련일지는 하나같이 뜬구름 같은 구절만이 자리한지라, 현재 그가 품고 있는 지식의 갈증을 풀지 못하는 것이다.
한데 그 갈증을 풀 기회가 생기게 되었으니 그 시간이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더구나 하늘 산은 고위 현자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자리한 자인지라, 야안이 필요로 하는 조언을 확실히 파악하여 모호함 없이 자세하게 풀이를 해주었다.
그로서 야안은 놀라울 정도로 변모해갔다. 이 가르침이 있기 전의 야안의 상태는 장님이 더듬으며 그 존재를 알아가는 것과도 같았다면, 지금은 그 장님이 미약하나 그 윤곽을 파악한 것이라 해도 무방한 일이었다.
그 한 달의 시간이 지난 뒤 야안은 로뎅의 수련일지에 자리한 그 알 수 없는 구절의 뜻을 조금씩이나 이해하게 되었다.
이후, 어느 순간부터 야안은 너무도 짧은 시간에 알게 된 가르침을 소화하기 위해 내면의 세계에 잠식하게 되었다.
해가 뜨고 지며, 별이 달과 함께 모습을 보이다 이내 사라지는 수십 일의 시간이 지나갔다. 최소한의 물과 식량으로 생체를 유지하며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가다듬던 야안은 어느 순간 미세한 진동에 의해 가부좌를 풀어야만 했다.
이 진동은 야안이 낸 것이 아니었다.
바로 품속에 품고 있던 공간의 주머니에 자리한 리트담의 저서에서 일어난 기운의 파장이었다. 그 기운의 파장은 거대한 공간을 흔들다 못해 외부로까지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야안은 직감적으로 리트담의 저서에서 일어난 진동임을 알고 서둘러 공간의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내었다.
그리고 리트담의 저서는 야안의 손이 닿기 무섭게 그것은 진동을 멈추었다.
그 모습에서 야안은 시기가 왔음을 알았다.
리트담의 저서의 그 신비로운 묘용이 그 자신을 이끄는 시기가 온 것을 말이다.
야안의 손이 그 저서를 갈라 펼쳤고, 그 저서 안에는 그 형태를 알기 어려운 마치 점같은 작은 존재가 거대하고 복잡한 어둠의 미로에 들어서는 그림이 모습을 보였다.
이내 그 점 같은 것이 부풀어 오르는 착각을 주었고, 야안은 이내 책에서 한줄기 빛이 일어나며 야안의 미간 사이를 뚫고 지나치는 것을 느끼며 그의 의식은 이내 아득한 너머로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