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46화
8. 셀리온 공작
야안은 서둘러 스승에게 감사의 예를 취했다.
“스승님이 아니셨다면 생환의 기회도 얻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런 야안의 말에 하늘 산은 그저 손을 내저었다.
“내가 한 것은 없네. 모든 것이 그 이기의 도움이 있었을 뿐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야안이 올라선 경지를 살폈고,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보였다.
‘정말이지 이번에 받아들인 제자는 나의 영향을 넘어서는구나. 좋고 좋은 일이다.’
이 영민한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 그 신물을 보건대 자신의 도움이 없어도 제자는 머지않은 시기에 이 경지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은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길을 가르쳐 주는 고작일 터.
그는 야안이 조금 전 그 변모한 기질을 잘 동화하였음을 안 터라, 잠시 야안을 기특하게 바라보다 말문을 열었다.
“지금의 너를 보니 넘치는 것마저 수습이 된 듯하구나. 정말이지 놀랍기 그지없다. 이것은 말년에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지금의 너라면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며 품속에서 하나의 나뭇가지를 건네었는데, 야안의 그 나뭇가지가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세계수의 가지가 아닙니까?”
이곳으로 오기 위해 현자의 지팡이를 본래의 시간의 세계에 두고 온 터라 지금은 없으나, 오랫동안 보아온 만큼 세계수의 가지는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 사정을 모르는 하늘 산으로는 야안이 한눈에 세계수의 가지임을 알자 감탄하며 긍정을 표했다.
“이에 하나의 마법진을 새겼으니, 너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리라.”
하며 건네자 그것을 받은 야안은 그제야 세계수의 가지에 아주 얇고 가는 형태의 자신의 상식을 벗어나는 마법진이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고위 현자 익스퍼트에 오른 야안이었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마법진이었다.
‘과연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구나.’
드높은 경지에 올라 들뜬 야안의 감정은 단번에 식어 들었다. 이 아득하기까지 한 그의 스승의 경지는 앞으로 자신이 이루어야 목표이고 또한 넘어야 할 산이기도 했다.
막막함마저 오는 가운데 야안은 스승께서 자신에게 내어 주신 그 세계수의 가지를 살펴보았고 곧 그에 대한 정보창이 자신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이에 정보창을 부르자 곧 이 세계수에 자리한 마법진이 왜 그토록 고차원적인지 그는 알 수 있었다.
[아이템 : 위시(wish)
등급 : A
위대한 하이 엘프인 하늘 산이 말년의 깨달음 끝에 얻은 마법을 새긴 마법진이다. 시전자가 원하는 장소로 데려다 주는 마법이 자리한다.
* 그가 바라는 장소는 반드시 시전자가 지나친 곳이어야만 한다.
* 이 마법은 백 일에 한 번 시전이 가능하다.
* 동승하는 이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추가 소비되는 마나는 곱절로 늘어나게 된다.
* 시전자의 경지는 최소 고위 현자 익스퍼트는 되어야 한다.]
까다로운 조건들이 자리하지만, 이것은 공간이동의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마법 물품인 것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쓸모성은 매우 놀라웠다.
자신이 이곳에 올 때에도 이 위시의 마법이 작용했음을 그는 다시금 상기했다.
“아! 이 같은 이기라니.”
감탄을 금치 못하는 야안에 하늘 산은 만족하는 웃음을 지으며, 곧 그에게 이 마법 물품을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확실히 워낙 고차원적인 마법이라 그런지 상위 현자 익스퍼트에 올라서지 않았다면 이 마법 물품을 펼치기도 어려웠을 터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세계수의 가지로 뼈대를 이룬 마법 물품인 덕분에 소모되는 마나의 량이 그 마법에 비해 비교적 낮다는 것에 있다.
소모되는 마나의 양은 5,000정도였으니 현재 야안의 마나양이라면 7인을 동반할 수 있을 터였다.
그 이후 야안은 하늘 산과 함께 황성으로 돌아와 낮에는 하늘 산의 가르침을 받았고, 밤에는 연회장에서 그가 안내해주는 대귀족들과 교류를 텄다. 이름 높은 대공부터 멀머던족의 왕자까지 핵심인물들과 안면을 익힌 것이다.
검은 망치 또한 이 연회장에 모습을 보여 야안의 지지를 다져 주었으니, 베론 제국에서 야안의 존재는 뜨거운 감자와 같았다.
어느새 정신없이 한 달의 시간이 지났고, 야안은 그간 하늘 산에게서 바 대륙의 도움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에 대한 조사를 끝낸 마토론산들과 함께 못다 한 여정을 다시 시작하였다.
야안은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스승에게 큰 대례를 올렸는데, 하늘 산은 이제 먼 길을 떠나가는 야안에게 마지막으로 세 장의 지도와 한 권의 책을 내 주었다.
“그 옛날, 지금은 사라진 수많은 이종족들이 함께 한 그 전설의 시대에 유독 드래곤과 친분이 깊은 종족이 있었다. 페어리라는 불리는 종족이 그들로 어떻게 보면 우리 엘프들과 비슷한 성향이 있으나 무리를 이루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생로병사의 이유를 알고 존재의 완성을 추구하는 종족이라고 한다.
전전대의 하이 엘프께서 바의 대륙에서 그중 한 분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은 바 그 내용을 정리한 책자와 지도를 만들었다.
지금도 그와 같은 페이리 종족이 이곳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들을 만날 수 만 있다면 드래곤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야안은 이 자료를 얻기 위해 고생하셨을 스승에 대한 감사함에 잠시 말문을 잇지 못하다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 이별의 예를 보였다.
“부디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평안하십시오.”
“그래, 부디 하고자 하는 일 모두 잘 되기를 바란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야안은 마토론산들과 함께 황성을 빠져나갔다. 하늘 산은 제자가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그 걸음을 쉬이 떼지를 못했다.
황성을 나서며 다시 시작된 여정에 거침은 없었다. 이미 멀머던의 이 왕자로부터 도움을 받기를 약속받았을 뿐 아니라, 실권자들을 알게 되면서 그 여정에 많은 이들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흘을 말을 타고 가던 그들은 멀머던의 영향권이 짙은 곳에 들어서자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야안은 왜 멀머던이 물의 종족이라 하는지 왜 바다를 지배한 자들인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놀랍구나! 고작 이틀 만에 보름의 거리를 잡아내다니.”
물의 종족답게 저마다 그들은 물의 정령사가 많았다. 또한, 굳이 물의 정령사가 아니어도 물과 동화하여 그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타고난 재주가 있어 배는 흔들림도 없이 빠르게 움직여졌다.
멀머던 왕국의 최대 도시인 차로카에 도착한 야안 일행은 그곳에서 이미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일 왕자 소속 후작의 안내에 따라 그곳에서 이틀을 휴식을 취한 뒤 바 대륙으로 가는 배에 올라섰다.
드워프의 힘을 빌려 만들어냈다는 배라 그런지, 야안이 승선한 배는 지금까지 그가 들어선 배와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우선적으로 배의 재료가 되는 것부터가 달랐다.
그들의 배는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닌 금속으로 배를 만들었는데, 그 발상의 전환이 놀라웠다. 설마 부력을 이용하여 이런 금속 배를 만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원리는 간단했다. 배이니만큼 안에는 비워진 공간이 많았고, 이것은 금속밀도가 물의 밀도보다 작아지는 작용을 만든다.
이로 인해 금속 배도 물에 뜰 수 있는 것인데, 그 만드는 과정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불의 마법을 응용하여 만든 마법 물품으로 금속을 이어 접하는 방식을 생각한 것인데, 이론적으로는 여건만 되면 얼마든지 원하는 배수량의 배를 만들 수 있었다.
야안이 올라탄 배 또한 대단한 배수량을 배로 칠만 톤에 달했는지라 야안은 그 문화적인 충격을 받아야 했다.
“하아. 철선의 존재는 들었지만 이처럼 거대한 배가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었네.”
“과연, 왜 멀머던 종족을 두고 바다의 지배자라 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마토론산들 또한 이런 거대한 배는 처음인 탓에 연실 감탄을 하기 바빴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장원을 올려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배는 그 크고 둔중함과 달리 상당히 빨랐는데, 그러면서도 땅에 있는 것처럼 흔들림이 없어 그것이 놀라웠다.
야안이 탄 배는 여러 거상과 많은 귀족이 자리한 영향 탓인지 이른 저녁부터 다음 날 해가 들 때까지 화려한 파티가 매일 밤 계속되었다.
야안 또한 처음 몇 번은 그 파티에 참석하여 친목을 다지다, 로뎅 스승님과 하늘 산 님이 자신에게 내려 준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방에서 수련을 했다.
칠각의 도움과 하늘 산의 가르침으로 고위 현자 익스퍼트의 그 자리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그래도 부족함이 많았다.
자신이 고위 현자 익스퍼트라고 할 만큼의 능력을 보이기 위해서는 그간 깨달은 이 고차원적인 진리를 고된 참오의 길의 끝자락까지 가야 할 것이다.
야안의 수련은 단순히 마법에만 치우쳐지지 않았다. 검은 물론이거니와 지난 깨달음 이후 진전이 있는 주술 또한 참오하였다.
이제 그의 진체의 술은 예전 처음 자이한의 경지를 상당히 많이 따라잡은 상태였는데, 야안이 보기에 계기만 있다면 그 당시의 자이한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마토론산은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드높은 경지에 올랐음에도 풀어짐 없이 오히려 수련에 박차는 가휘지에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큰 감동을 느꼈다.
노력하는 천재의 모습은 그런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데 충분했다.
그것은 그를 호위하던 대전사 지킬 단과 조랸도 같은 지라 누가 말할 것도 없이 그들 또한 기름진 음식과 아름다운 음악을 멀리하며 수련에 힘썼다.
그렇게 열흘간의 여정이 지나 그들이 탄 배는 바 대륙을 발견하였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 * *
배가 정박한 곳은 델몬 제국의 가장 북서쪽에 자리한 셀리온 공작 가의 해안 부두였다.
과연 대륙을 통일한 제국답게 공작 가의 해안 부두의 규모는 이때까지 보았던 수준을 넘어섰다. 야안이 타고 온 대륙의 배만큼은 아니지만, 그 못지않은 거대한 배들이 이 해안 부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중 상당수가 철선으로 만들어진 전선이었는데 이는 셀리온 공작 가가 이 혼란의 시기에서 독립을 꿈꾸고 있던 탓이다.
본래 셀리온 공작 가는 이 황자를 지지하는 세력 중 하나였으나, 이 황자가 일 황자와의 전투에서 너무나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뒤부터 이러한 욕심을 내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전대의 셀리온 공작이 이 황자의 세력 측의 귀족들과 함께 몰살당하면서 그의 아들이 공작의 직위에 오르며 보인 욕심이었다.
지리상으로 북서쪽 끝자락에 있는 셀리온 공작 가는 전쟁의 여파가 한참인 중앙과는 거리가 멀었고, 천혜의 요소 덕분에 지켜야 할 군사적 요충 지역도 많지 않았다.
천하제패를 노리는 것이 아닌 하나의 왕국으로의 독립을 꿈꾸는 것이기에 그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델몬 제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해상무역 거래량을 자랑하기에 물자는 언제나 풍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