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48화
‘우우웅, 우웅-’
부엉새 울음소리가 요란한 산속의 늦은 밤. 셀리온 공작 가의 사람들은 그 산의 중턱에서 불을 지펴 노숙을 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쿠락 자작 가에 들어섰어야 했을 테지만, 중간에 만난 떠돌이 집단 군락 몬스터인 빠르몽들을 만나 전투를 치르느라 시간을 지체하게 된 것이다.
빠르몽은 중대형의 몬스터들로 둘이면 오우거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보통 대 여섯 마리로 몰려다니는 몬스터인데, 주위의 먹잇감이 떨어지면서 집단으로 이사를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그들은 최소 칠십에서 백 마리 사이로 움직이는데, 이때 그들의 전력은 오천의 강병의 전력과도 같다.
웬만한 기사단이라 해도 반 이상의 사상자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초인인 존 크리스와 대부분 중급 익스퍼트 이상의 실력은 지닌 1기사단은 그들과 맞이하여 완승을 거두었다.
다만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높은 방어력 탓에 모두 처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고, 그것이 지금 이들이 산속에 자리한 이유였다.
1기사단의 막내인 파툰은 36의 나이에 중급 익스퍼트에 오른 기대 받는 실력자였다.
그는 그간 괴물 같은 단장의 가르침을 받으며 힘겨운 수련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한탄을 했었지만, 오늘 오전에 만난 빠르몽과의 전투로 인해 그런 불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전투에서 지난 자신의 수련을 보상받았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들뜬 가운데 스스로 성장하였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던 파툰은 오늘 자신이 전투에서 그린 검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관조에 얼마 되지 않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바스락, 바스락-’
무언가 인기척을 느낀 것인데, 말굽 소리를 듣고는 몬스터가 아님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가만히 놔두기도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그 스스로 지닌 실력에 자부심이 있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잠행을 하는 와중에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상대의 신분을 알고자 한 것이다.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불빛이 있어 온 것뿐입니다.”
낭랑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내는 어둠 속에서도 광채가 자리한 이십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이였다.
그는 베론이라는 성은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그 지닌 복장이 라 대륙의 사람들이 즐기는 호복임을 알아 타 대륙의 귀족임을 알 수 있었다.
실제 그는 야안의 그 귀태가 자리한 모습과 야안이 저도 모르게 흘리는 기세에 결코 보통 사람이 아님을 깨달아 쥐고 있던 검에서 손을 떼 내었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그와 함께 온 다른 일행도 인지할 수 있었는데 이는 야안의 존재감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일반인이었다면 그 정도로 존재감을 강하게 느끼지 않았겠지만, 중급 익스퍼트에 오른 실력자에 낮에 치른 전투로 감각이 예민한 탓이다.
“태양 종족?”
이내 그와 함께 온 이들의 정체를 보고는 놀람을 표했다.
서북쪽에 자리한다는 태양 종족들은 그 폐쇄성이 짙어 인간 세상에서는 보기 대단히 어려운 탓이다.
“파툰 물러서라.”
잠시 그들과 대치를 하던 파툰은 다급하게 모습을 보인 라문드 부단장의 말에 그는 본능적으로 크게 몸을 뒤로 날렸다.
턱까지 내려온 짙은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라문드 부단장은 낮게 침음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곳에 무슨 일이신지 물어도 되겠소?”
경계하는 그의 모습에 마토론산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일이 있어 부족으로 돌아가는 중 우연히 만난 것이니 경계하지 마시오. 원한다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야숙할 테니 말이오.”
그의 말에 라문드 부단장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를 호위하는 태양 종족의 전사들을 보건대 둘 다 자신의 윗길이었다. 눈앞에 있는 자만 해도 자신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점을 본다면 그 신분이 그들 부족에서 상당한 자로 보이는바, 잠행을 위한 살인멸구는 어려움이 컸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데 단장인 존 크로스가 주군을 모시고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하는 바는 아나. 자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네. 물러서게.”
그러며 나타난 존 크로스는 주군의 옆에 자리를 잡았고, 라문드 부단장 또한 그 뒤로 물러서 자리를 잡았다.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드리오. 본인은 셀레온 공작이라 하오.”
야안은 이미 이들이 셀레온 공작 가의 사람임을 공작임을 알고 있어 그에 대한 놀람은 없었지만, 정작 셀레온 공작에게서 제왕의 기질이 있음에 감탄을 흘렸다.
그러다 그가 사과와 함께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그 또한 다시 소개를 보였다.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이분들의 부족에 일이 움직이던 중 실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마토론산이라 하오.”
셀레온 공작은 그들의 관계가 이해되지 않았으나 이내 궁금증을 지웠다.
“괜찮으시다면 같이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늦게 자리를 잡은 터라 이제야 식사를 준비 중입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셀레온 공작은 야안이 자신의 초대에 응하자 내심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그처럼 들뜨는 것은 당연했다. 존 크로스로부터 이 사내가 자신보다 무서운 검호라는 것을 이야기 들었으니 말이다.
외모는 자신과 비슷한 자가 초인에 올라섰다면 오십대 초반에 그 길에 들어섰다니 말이니 앞으로 그의 성장을 생각한다면 필히 친분을 쌓아두어야 했다.
그런 생각의 바탕에는 복잡하게 꼬인 이곳 사람이 아닌 타 대륙의 사람이라는 것이 밑바탕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들떠 있는 그에 반해 존 크로스는 심적의 동요를 감추기 어려웠다.
‘이런 자 일줄 알았다면 주군의 고집을 꺾고 물러서야 했다.’
그가 그처럼 동요하는 것은 당연했다. 야안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지켜본 그는 야안이 자신으로서는 측정이 불가능한 존재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자. 혼자만으로도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 터.’
그 말은 제국의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는 닉 대공과도 견주어 볼 만하다는 말이 된다. 괴물이라는 초인 중에서도 괴물 같은 존재였다.
야안은 그런 존 크로스의 부담을 눈치채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
“그대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저는 그대의 주군에 호감을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야안의 말에도 존 크로스는 경계를 거둘 수 없었다. 몇 마디 말로 경계를 풀기에는 야안의 존재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셀리온 공작이 그들에게 대접해 준 식사는 하나같이 맛이 정갈하고 좋았다. 비록 귀족이 먹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셀리온 공작은 그것에 대해 아무런 꺼림이 없어 보였다.
‘상당히 실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구나.’
그 신분이 높을수록 실리를 찾기란 어려운데 셀리온 공작의 그 털털한 모습이 야안은 맘에 들었다.
그가 내놓은 고급 포도주를 마시며,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가며 친분을 쌓았던 야안은 겪을수록 그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여, 진실의 눈을 펼쳐 그를 살펴보았고 그 결과 야안은 이자야말로 이 난세를 평정할 자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자였던가?’
야안은 지금까지 뛰어난 자를 많이 보아왔었다. 그중에는 마크 자작 같은 뛰어난 전술가도 있었고, 저주받은 숲을 지배하는 붉은 눈의 왕도 있었다. 또한,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야망이 넘치는 황자도 만났으며, 고대 거인족들의 잊혀진 거인의 왕 붉은 노을도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가까이에는 주술 제국의 마지막 후예인 자이한이 있었고, 불굴의 의지를 가졌던 마론 스승도 있었으며 베론 제국의 황제 하늘 산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이는 처음이었다.
셀리온 공작 그는 무력 자체는 뛰어나지 않았다.
마크 자작처럼 무력에는 재능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무를 숭상하는 가문인지라 부단한 노력으로 소드 유저의 중급에는 올라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고, 잘해보아야 상급 소드 유저에 오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하면 머리가 뛰어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수재에 비교할 만하지만, 현자에 비해서는 그 생각의 전환이 현저하게 느렸다.
그러나 그런 그도 야안이 감탄할 만한 재주가 있다.
바로 철혈의 심장을 타고났다는 것과 스스로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련을 통해서가 아닌 타고나기가 그런 것이다.
그것은 군주의 자리에 있을 때 아주 큰 이점으로 다가온다.
적정선을 지킬 줄을 알고, 스스로 욕심을 경계하며 이와 실의 두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또한 생각의 전환은 뛰어나지 않으나 신하의 의견을 이해할 머리는 있었고, 워낙 신중한 성격이라 실수를 잘하지 않았다.
실책이 있었다 해도 철혈의 심장을 지닌 터라 과거에 잡혀 있지 않으니, 오히려 그 같은 실책은 시간이 지나면 큰 이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스스로 수하에게 일을 줄 때는 정도 이상까지 가지 않는다면 결코 손을 대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이 보기에 손해가 볼 듯한 전략임에도 그는 확실하게 힘을 실어 주어 그것에 성공하게끔 하였다.
그러하니, 수하의 입장에서는 그에게 충성을 다할 수 없었다. 능력이 뛰어난 자 일수록 스스로 이렇게 믿어주는 이에게 크게 감동하는 법이니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을 만날 때도 신분에 크게 휘말리지 않았다. 이는 그것은 인재를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하나하나를 두고 본다면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함께하면서 생기는 상승효과는 무시 못했다.
더구나 난세에서 그런 그의 이점은 크게 부각된다.
‘이러한 자이니 난세에도 그가 다스리는 영지는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구나.’
야안은 그간 그의 영향 아래 있는 3개의 영지를 지나면서 여전히 활기찬 영지민들의 모습에 감탄했는데 셀리온 공작을 살펴보니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만나지 않았다면 곤란할 일이 벌어졌겠구나.’
아직 다른 후보자들을 만나보지 않았지만 야안이 보기에 셀리온 공작이야말로 이 난세를 빠르게 끝낼 자라 보았다.
베론 제국의 힘이라면 다른 후보자 중 하나를 제국의 황제로 밀어줄 수 있었겠지만, 셀리온 공작 가의 저력을 보았을 때 결코 난세가 빨리 끝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안 그에게 감탄하며 마음에 들어 할 때쯤. 셀리온 또한 야안을 감탄하며 마음에 들어 하였다.
그 자신 밑에는 많은 현자가 있었지만, 야안 같이 겉은 평범해 보이면서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눈을 가진 자는 처음이었다.
검의 종주 위치에 있다고 생각되지 못할 만큼 그 성격은 매우 온화해 보였고, 그의 말에는 묘한 힘이 있어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음에도 왠지 오랫동안 만난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만약 존 크리스에게서 그가 초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현인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스스로 낮춤으로써 높아진다. 라는 말이 이처럼 와 닿을 줄은 몰랐군.’
그처럼 스스로 돌아보는 겸손한 마음을 지녔기에 이른 나이에 초인의 길에 올라섰을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셀리온 공작은 야안에게 품속에서 작은 금속 패를 꺼내었다. 그것은 셀리온 공작 가를 대표하는 문양이 자리한 미스릴 패였다. 그 강도가 뛰어난 미스릴에 그처럼 정교한 문양을 그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니 비범한 물건이리라.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내기는 아쉬워 이처럼 욕심을 내니 부디 받아 주시겠습니까? 감히 귀공 같은 뛰어난 자를 품에 안는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그저 친분을 유지하고 싶은 증표라 생각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