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50화
“칸께서 이곳을 노리실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토록 이른 시기라니.”
조랸의 말에 지킬 단은 걱정 가득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혹시 그간 건강이 안 좋아지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으음. 그렇다면 큰일이네만. 혹시 그때의 상처가 다시 악화되신 게 아닐지.”
“주술사의 말로는 노화가 시작되면 악화된다고는 말은 들었지만 아니기를 바래야겠군.”
그런 그들의 말에 마토론산은 잠시 생각에 빠져 고민하다 이내 말을 꺼냈다.
“아마 건강에는 이상이 없을 것으로 보네. 그저 칸께서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지금이 최선의 시기라 판단한 것일 테지.”
야안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주술로 더 넓힌 토굴의 한쪽 벽에 기대어 있던 등을 펴던 야안은 어느새 날이 저무는 것을 확인하다 누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마코롬이라는 대전사께서 오시는 것 같군요.”
야안의 말에 마토론산들은 짐을 챙기고 장비를 점검했다. 그간 야안의 기감이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본래 이들은 야안의 도움을 받아 은밀하게 부족으로 가고 있었으나, 정찰을 나온 전사를 발견하였고 이후 그 전사로부터 전쟁준비에 대한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개 전사인 그에게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된 터라 마코롬 대전사를 기다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오랫동안 부족을 벗어난 터라 정확한 현 부족의 상황에 대해 알아야 했다. 그때와 지금의 부족의 상황이 다르면 이에 맞게 대처해야 베론 제국의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으니.
곧 마코롬 대전사가 그의 수하와 함께 토굴로 들어섰다.
그는 마토론산들을 발견하고는 대단히 기뻐하다 이내 들어선 토굴이 엄청난 규모로 넓혀진 것을 보고 놀란 눈빛이었다.
그것은 본래 토굴의 주인이었던 전사인 경우 당황스러운 기색이 완연했다.
그런 그들의 궁금증을 눈치챈 지킬 단이 가휘지께서 그러하셨다는 말에 그제야 야안을 발견한 마코롬은 이내 흠칫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무슨 이런 자가.’
그 또한 태양 종족의 대전사인만큼 본능적으로 야안의 강함을 눈치챘는데, 지난 하늘 산의 도움 이후 커다란 벽을 넘어 크게 진보한 야안인지라 그는 도전이 측정이 안 돼는 무위를 지닌 야안에 저도 모르게 기가 질려 버렸다.
아무리 호전적이라 하지만, 마치 하늘의 벼락이나 태풍을 보고 호기를 일으킬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두려워하며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음을 바라는 것이 고작일 일이다.
마코롬에게 있어 야안은 그런 존재였다. 하기에 그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고 만 것이다. 눈앞의 존재가 이해불가의 영역에 있었기에.
그리고 마코롬은 그제야 이해 할 수 있었다. 왜 7왕자께서 위대한 주술사와 같은 가휘지의 칭호를 내리셨는지 말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가휘지시여. 마코롬이라 합니다.”
야안은 자신의 경지를 어느 정도 짐작하는 그의 모습에서 과연 태양 종족답다고 생각했다.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마코롬은 이후 마토론산이 묻는 현재 부족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마토론산은 곰곰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부족의 상황을 이해했다.
“역시 페로톤 그가 욕심을 내어 이렇게 된 거로군.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칸께서 정정하시다는 점인가?”
페로톤은 자신과 후계 싸움을 하는 4왕자였다. 2왕자 또한 유력한 후계 중 하나였으나 아무래도 나이가 너무 많은 탓에 그 세력이 미비했다.
실제로 페로톤과 자신의 두 후계자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인데, 자신이 없는 사이 후계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번 전쟁을 주도한 모양이었다.
자신이 돌아오기 전에 이 전쟁이 성공으로 끝이 나 자리를 잡는다면, 자신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온다 할지라도 후계 싸움을 할 여력이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그 같은 머리는 자신 욕심보다는 부족에 쏟으면 좋으련만.’
하기야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칸의 자리에 앉는 그 영광스러움에 어느 누가 욕심이 동하지 않을 것인가?
칸의 말은 그들에게 있어 법이고 진리의 것이니.
“만약 가휘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뜻대로 되었겠구나.”
안 그래도 좋지 못한 부족의 상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뻔했다.
마토론산은 수고를 하는 마코롬에게 지난 야안에게 받은 파래를 내어주었다.
곡물로 치면 겨우 한 끼 정도의 양이라 그는 처음에는 이것이 무엇인지 몰라 했으나, 이내 마토론산이 한 대접 받아 온 물에 한 줌을 타며 엄청난 양의 식량을 만들어내자 그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 이런 것이 있을 줄이야? 정말 신기하군요.”
맛을 보니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미묘한 풍미가 있던 터라 그는 더욱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우리 부족의 만성적인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줄 식량이네. 이 또한 가휘지께서 내어 주신 거라네.”
그 말에 마코롬은 다시금 야안을 감탄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간 식량의 부재로 죽어간 부족이 몇이던가?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다행일 따름이다.
잠시 담소를 나누던 야안과 마토론산들은 곧 어둠이 완전히 잠기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안이 그들에게 걸어준 축지술과 토네를 펼쳐 몸을 가볍게 해주니, 안 그래도 몹시 몸이 날랜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새처럼 날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느새 점이 되어버린 그들에 마코롬은 그제야 이들이 낮에도 이 초원에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람처럼 빠른 저 같은 움직임이라면 경계를 하는 아둔한 몬스터로서는 파악하기 힘들었을 것이니.
완전히 날이 저물어 이제 달마저 넘어갈 때쯤 야안과 마토론산들은 거대한 돌을 쌓아 지어 올린 엄청난 규모의 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곳이 태양종족이 사는 곳으로 웬만한 제국의 백작 영지령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했다.
야안은 천혜의 성이나 다름없는 절벽을 끼고 지은 엄청난 수준의 돌성에 감탄을 보였다.
‘정말이지 놀라운 힘을 지닌 이들이니 지을 수 있는 성이로구나.’
성의 구조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형식이었지만, 그래도 인간들의 성에 비해 크게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투박하여 미적인 면은 없으나, 대신 워낙 높게 지은 터라 거기서 오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늦은 밤. 성문으로 들어서려는 그들에 경비를 보던 전사들이 막아서려다 곧 마토론산들을 알아보고는 서둘러 성문을 열었다.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나이가 있는 전사는 서둘러 어린 전사 중 한 명을 보내어 이 소식을 알리도록 했다.
늦은 시각이었고, 칸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한나절은 말을 타고 가야 했기에, 경비대장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야안은 돌과 나무를 엮어 만든 독특한 느낌을 주는 양식에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섬세한 작업을 힘들어하는 그들로서는 이를 힘으로 대신하는 건물 양식에 힘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그 재료들이 커서 그런지 웅장한 느낌마저 들어 재미있었다.
살림살이도 되도록 크고 튼튼하며 간단한 형태가 다였다. 다만 특이한 것은 난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들 종족의 특이성을 생각한다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몸에 태양의 기운을 지니는 그들은 주위환경에 큰 영향을 잘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안 또한 초인인지라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라 지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야안일행은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주식으로 먹는 옥수수 밀정으로 배를 채우고, 준비된 말을 타고 움직였다.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인간들과의 교류를 끊었다고 하더니, 몇몇 아이들은 야안을 신기하다는 듯 시선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아이라는 게 종족을 불문하고 귀엽군.’
차돌 같은 단단한 느낌을 주었지만, 곳곳에 어린아이다운 귀여움이 자리했다. 새까만 눈망울로 호기심 가득 담아 보이니 야안도 미소를 보이며 화답해 주었다.
전사가 되는 것이 이곳 사회에서 대단히 명예스러운 일이라 하더니 지나치는 마을마다 기합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쉬는 날 마을의 전사들은 저마다 마을의 기대주들을 가르치기 바빴고, 아낙들은 사냥으로 가져온 부산물들을 다듬기 바빴다.
아직 잘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의 경우 동경 가득한 눈빛으로 마을 형들의 수련 모습을 훔쳐보곤 했다.
‘전체적으로 평화스러운 곳이구나.’
그렇게 마을 12곳과 도시 2곳을 지나서야 야안은 칸이 자리한다는 대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앞서 보낸 전령에 이야기를 들었던 덕분인지 입구에는 자신들을 기다리는 상당수의 전사가 호위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주술사로 보이는 이가 자신들을 안내했다.
도시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거대한 저택에 자신들을 안내한 주술사는 준비한 새로운 호복을 마토론산에게 내어주었다.
인간인 야안은 그들과 체격이 너무나 틀린 터라 그들의 호복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여, 그는 준비해준 물로 몸을 씻고 공간의 주머니에 자리한 여분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이를 대신했다.
그들이 준비해준 전병과 염소고기구이 등으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도수가 낮은 술로 목을 축일 때쯤 자신들을 안내한 주술사가 모습을 보였다.
“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토론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야안과 대전사들과 함께 주술사를 따라 칸이 계신 곳으로 향했다.
칸이 자리한 곳은 들어섰을 때 보았던 성벽높이를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의 성이었다. 나름대로 세심하게 다듬은 터라 이들의 건물양식과는 차이가 나 보였다.
성에 들어가 한참을 걸어서야 칸이 자리한 연회장에 들어설 수 있었는데, 요란한 나팔 소리와 함께 들어선 그 연회장에는 이십여 명의 인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술과 고기 등이 차려져 있어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산만해 보였다.
야안은 그들 중 중심에 자리한 유난히 크고 그 기세가 패도적인 자를 보고는 그가 바로 이들의 칸인 부르케산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야안과 마토론산 일행은 그 부르케산의 정면이 보이는 음식이 자리한 곳에 앉았다.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이곳에 오기 전 술과 고기 등으로 배를 채우는 이유는 칸 앞에서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이곳의 예법이었다.
부르케산은 술을 홀짝이다 연회장의 문이 열리는 순간 술잔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들어서는 야안의 무위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 잘난 제국 인간들의 초인 중 어떤 이와도 일전을 할 만 하다 자신한 오만한 그였지만, 지금 들어오는 야안은 그런 그의 오만함을 뒤흔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말. 세상은 넓군.’
아들이 자신이 준 권한으로 가휘지로 임명하였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으나, 정작 보니 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그를 가휘지로 삼았을 것이니.
그간 더욱 성장해 온 아들과 대전사들에 흡족해하던 부르케산은 자세를 바로하고 걸걸한 목소리로 야안에게 물었다.
“그대가 베론 제국의 답인가?”
“네. 그렇습니다.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부족하나마 베론 제국의 황제이신 하늘 산 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흠. 생각보다 거물이로군.”
그는 야안의 신분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의 힘을 본다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문제는 그런 신분의 이가 왔다는 것은 베론 제국이 이 난세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