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255화 (255/385)

야안 255화

10. 검은 지팡이를 든 사내

그는 자신들과 그나마 오래전 안면이 있던 바람의 종족인 비(飛)족과 예전 마토론산이 도움을 얻었던 물의 종족인 도론 종족, 그리고 손재주가 대단히 뛰어나고 불을 자유롭게 다루는 재능을 타고난 카사 종족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들로서는 이 같은 거대한 초원을 개발하는데 무리가 있었으니, 애초 이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개발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그의 도움은 야안에게 상당한 이점이 되어 돌아왔다. 이 대륙의 드워프와 엘프를 찾아 도움을 얻어야 했고, 강력한 무력을 자랑하는 거인족들을 만나야 했다.

무엇보다 그의 스승이신 하늘 산께서 알려 준 신비의 종족 페어리를 만나야 했다. 그들이 드래곤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그들 말고는 드래곤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이 너무 막막했다.

‘우선은 드워프 족부터 만나야겠지.’

그들을 만나야 거인족의 위치를 알 수 있었고, 또한 이들과 대체로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는 엘프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드워프는 현재의 이 같은 난세에서도 여전히 인간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으니 그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중심지에서 벗어난 이곳에서의 교류는 어려울 터였다.

이곳에서 오기 전 여러 곳에서 정보를 얻은 결과 제국의 중심지 몇 곳에서만 거래를 하였다고 하니 말이다.

오래전 인간들은 이런 드워프의 재주를 탐내어 그들을 가지려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지금은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았다.

인간들과는 그 가치관 자체가 틀린데다 그 관계도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를 지닌 탓이다. 하기에 아무리 대부족의 족장이라도 부탁은 할 수 있을지언정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더구나 정신력이 워낙 강한 터라 약물과 정신마법도 통하지 않는데다 어쩌다 그런 방법이 통한다고 해도 이미 그 존재는 드워프가 아니었다.

장인으로서 긍지를 잃었으니 그 나오는 물건도 인간들이 만드는 것에 비해 차이도 없었다. 이러한 일들이 과거에 벌어진 탓에 드워프들은 인간을 경계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풍부한 물자를 가진 인간들과의 꼭 필요한 거래 이외에는 왕래가 없었다.

결국 인간들은 탐욕에 젖어 악수를 둔 셈이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 마토론산이 먼저 사신을 이끌고 비족을 만나러 움직였다. 야안은 그로부터 보름의 시간을 태양종족에 머물러야 했는데, 이는 이번 전장에서 가휘지인 야안에 흠모하여 그를 따르고자 한 전사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난 전쟁에서 삼 분의 일인 백여 명의 전사들을 잃고, 다시 전사들을 받게 되어 현재 400에 달하는 전사가 야안을 따르게 되었다.

야안은 이번에 새로 들인 전사들의 수련을 봐주어야 했고, 또한 이번 전쟁에서 성장의 시기를 맞은 전사들을 도와주었다.

이번에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기약을 잡을 수 없었던 탓이다.

그가 부족을 떠나게 되는 날 바쁜 개척의 시간을 쪼개어 페로톤이 이끄는 일족과 칸이 모습을 보였고, 그들은 잠시 아쉬움이 담긴 이별을 이야기하며 헤어졌다.

이별의 아쉬움을 남기던 야안은 넓게 펼쳐진 초원의 지평선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 * *

제국에 로케하르산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제국이 대륙 통일이라는 목표를 위해 달려갈 때 나타나 개척의 공을 세워 귀족이 된 자이다.

그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갈색의 피부를 지닌 자로 본래는 샤 대륙의 사람이었다.

그는 뛰어난 지혜를 지닌 이였지만, 진리의 길을 걷는 이는 아니었다. 일부 이종족들이나 사용할 법한 주술을 펼쳤는데, 그 주술에 대한 재능이 워낙 대단한지라 당시 제국의 위대한 검이었던 율리우스조차 그와 손을 섞는 것을 꺼릴 정도였다.

백작의 직위까지 올라선 그는 동부에 영지를 받아 그 위세를 떨쳤으나, 그의 사별 이후 로케하르산 가문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로케하르산의 힘이 워낙 대단하여 그가 살아 있을 적에는 경외하였으나, 본래 제국은 샤 대륙의 갈색 피부를 지닌 자들을 브라운 인이라며 천시하는 성향이 자리했다.

하니 자존심이 강한 귀족들로서는 위대한 제국에 그 같은 귀족이 있다는 것에 대해 불쾌함이 가득했고, 이로 인해 로케하르산 가문은 자연스레 귀족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더구나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들과 현자들도 가문의 가신으로 있기를 꺼렸기에 점차 쇠락의 길을 가게 되었고, 결국 난세가 시작되기 무섭게 로케하르산의 영지는 조각조각 나뉘어져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그들의 공격에 모든 로케하르산 가문의 모든 가솔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도망을 치려고 해도 그 이색적인 특징으로 인해 결국 눈에 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난세로 인해 로케하르산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더운 여름이 다고오고 있음에도 두터운 커다란 후드가 달린 망토를 뒤집어쓴 검은 지팡이가 유독 인상적인 든 한 사내가 산 중의 길 한 자락에 멈춰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뺏뺏한 푸른 나무밖에 보이지 않건만 그는 저 멀리 무언가를 응시하듯이 한참을 보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곳도 전쟁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는 잠시 멈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잠시 궁리를 하다 이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부디 귀찮은 일이 없기를 바라야겠군.’

예전이었다면 그는 걸음을 돌렸을 것이다. 아니, 그전에 귀찮은 일은 만드는 원인을 숨겼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당당했다.

이제 막대한 영지도 귀족으로서의 명예도 그에게 없었지만, 그는 그때보다 당당했다. 그 스스로 실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세에 수많은 위협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안위만은 충분히 지킬 자신이 있었다. 하니 지금 가려는 곳이 전쟁이 있다 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돌릴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꼬박 한나절을 걸어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변경의 이름 모를 시골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외지의 작은 시골 영지조차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제국의 상황은 나빴다. 자신들이 따르는 대영주로 인해 원치 않은 전쟁을 하게 된 이들은 워낙 그 전쟁이 길어지다 보니 물자를 보충하기 위해 이처럼 늦은 시간에도 성문을 열어 상인을 들였다.

이 때문에 이 시골 영지에는 첩자가 적지 않았고, 그것은 이 영지가 상대하는 시골 영지 또한 그 상황이 같았다.

이 두 영지는 모시는 대영주가 달라 전쟁을 하게 되었지만, 그들이 대영주를 모시게 된 과정은 살아남기 위해서이지 전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기에 소극적인 그야말로 보여주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어 첩자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첩자를 환영하는 바였는데, 이는 자신들이 결코 공멸을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해도 전쟁을 위해 군대를 일으키고 운용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물자를 소비하게 되는 터라 재정은 나빠져만 갔지만, 이는 난세의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무어라 해도 영지를 잃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었으니.

그런 상황으로 인해 이 사내는 성문에서 경비병에게 약간의 돈을 주는 것으로 안전하게 영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

‘확실히 난세로구나.’

사내는 아무리 시골 영지라 해도 한 때 위대한 제국에 소속된 영지가 이처럼 비루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이라는 것 따위는 없어 보였고,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었다. 오물 따위가 거리에 아무렇게나 자리했는데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그 악취는 아찔하게 풍겨 순식간에 후각을 마비 할 정도였다.

이런 모습을 본 그는 조금 전 은화 한 닢에 그처럼 기뻐하는 경비병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상인들이 등장하자 아무 데나 너부러져 있던 건장한 사내들이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일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 상인들도 싼값에 인력을 부려먹을 수 있기에 그들 중 마음에 드는 이들 몇몇을 끌고 갔다.

뽑힌 이들은 간신히 살았다는 모습이 연연했고, 남겨진 이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허름한 여관에 들어섰다.

안에는 상인들을 호위하던 용병들이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 이외에는 손님이라고 없는 듯 여관 주인은 시무룩한 얼굴로 턱을 괴고 있다 그를 발견하고는 크게 반겼다.

“며칠 머물다 갈 거요.”

여관 주인은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후드를 쓴 사내가 수상할 법도 하건만, 그런 것 따위는 사내가 내놓는 은화에 모든 것이 좋게 보였다.

“식사는 방에서 하시겠습니까? 밀주가 좀 있기는 한데.”

잠시 생각하던 그는 품에서 은화 한 닢을 더 내놓았고, 그에 여관 주인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서둘러 방을 안내하는 등 바쁜 모습을 보였다.

여관 주인이 안내해준 방은 좁지만 나름 있을 것 다 있었다. 다만,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그런지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길에서 노숙하기를 밥 먹듯 그에게 그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툭-’

들고 있던 지팡이를 침가 옆에 내려놓은 그는 창가를 열었다.

번화가 쪽이 아니라서 그런지 오물 냄새가 다른 곳보다 옅었다. 이 정도면 견딜 만한 수준이라 생각한 그는 품속의 주머니에서 향초를 꺼내어 켰다.

‘치지지직-’

향초 타는 냄새가 방 안에 들어서는 잡내를 막아주며 목 등잔에도 어두웠던 방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덮고 있던 큰 후드를 넘기고 망토를 벗었다. 불빛 너머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대륙의 사람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샤 대륙에서는 북방인이라고 불리고 이 대륙에서는 브라운 인이라 불리는 모습이었다. 다만, 얼굴 전체적인 윤곽이 이쪽 대륙 사람들과 흡사한 모습이 있어 크게 이질감은 들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입을 달싹 거리며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허공에서 물이 고이더니 그의 몸을 회오리치며 지나가기 시작했다.

곧 그의 몸을 깨끗이 한 물은 다시 방 안 곳곳을 지나치며 청소하기 시작했고, 한참을 방 안을 돌아다니던 물은 사내가 다시금 중얼거리자 불로 환해 방 안에 모은 잔재물을 태우고 사라졌다.

순식간에 방 안이 뽀송뽀송해지며 깨끗해진 것인데 그때쯤에서야 여관 주인의 아이로 보이는 이가 문을 두드리고는 들어섰다.

‘이 방이 이렇게 깨끗했나?’

아이는 너무도 신기하다는 듯 방 안을 보다, 이내 사내의 얼굴을 보고는 흠칫 놀랬다. 다른 피부색을 지닌 이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태어나 처음 본 아이는 그 이질적인 느낌에 흠칫하다 이내 서둘러 음식을 두고 갔다.

음식은 막 만든 뜨거운 감자 수프와 거친 검은 빵 하나, 그리고 오래된 햄 한 조각이었고, 가져온 밀주는 감자 따위로 만든 위스키였다.

오물오물 거리며 천천히 음식을 먹어치우던 그는 햄 한 조각을 안주 삼아 위스키를 마셨다.

위스키치고는 독하지도 않았고 뒷맛이 껄끄러웠지만, 근 10년 만에 먹는 술이라 그런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그는 생각했다.

술이 약해서인지 위스키를 반도 다 마시지 못한 그의 얼굴은 어느새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말없이 다시 위스키를 마시던 그는 그 자신이 켜 놓은 향초를 바라보다 옛 생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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