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56화
10년 전, 그는 대귀족의 후계자였다.
제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로케하르산 가문의 후계자였지만, 엄연히 위대한 제국의 대귀족의 직계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주술로 일어난 가문이었던 만큼 로케하르산 가문은 대대로 주술을 중시했다.
일부의 방계에서는 검을 익히는 이들이 많았고, 운 좋게 머리가 뛰어난 이는 진리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주술을 중시한 것은 사실이었다.
가문을 일으킨 로케하르산의 힘은 제국의 그 긴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력했으니 이들이 과거의 영화에 취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주술은 어떤 면에서 진리의 길을 걷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점이 많았다. 또한, 타고난 체질에 우선적으로 중요한 탓에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었다.
위대한 로케하르산의 후손이었던 탓인지 직계든 방계이든 주술에 저마다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단한 주술사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든 자나 진리의 길을 간 이들 중에서 위대한 자들이 나타났다. 저마다 초인의 영역에는 들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제국의 중앙에 영향을 줄 경지에 올라선 이들이었다.
이런 이들이 중간 중간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케하르산 가문은 그 긴 암흑의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콤플렉스인 외모는 그들 가문 내의 관계를 끈끈하게 하였기에, 많은 귀족이 협잡질을 했지만 흔들림이 없었던 것도 한몫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로케하르산 가문이 암흑의 시간이 지날 때쯤. 그가 태어났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위대한 주술사가 되고도 남을 재능을 지닌 그가 태어난 것이다. 그 소문에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희열에 들떴다.
본래 그는 방계에서도 가장 떨어진 겨우 한 고을의 유지 정도의 방계 가문의 막내로 태어났었지만, 그 재능을 알아본 그의 아버지가 이를 알렸고 곧 그의 재능을 알아본 그 당시의 로케하르산의 가주는 그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고 후계 수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로케하르산 가문의 후계자도 있었으나, 그 또한 그가 후계가 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대귀족의 후계자는 강력한 힘과 권력을 상징한 것이지만 그는 물러서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면서 수많은 귀족에게 멸시를 받았던 그 울분의 시간이 그에게 그런 선택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후계자의 직위에 오른 그는 기억도 잘 아는 어린 시절부터 가문의 어른들이 대를 이어 연구한 로케하르산의 주술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과연 주술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었던 것이 맞는 듯 그는 겨우 16살에 되지 가문의 어른들을 뛰어넘었고, 이후 그는 로케하르산이 남긴 유산을 물려받았다.
로케하르산이 말년에 가문에 남긴 것은 두 개였다. 하나는 검은 지팡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술에 대한 고찰에 대한 것이었다.
한데 두 개는 실상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주술에 대한 고찰은 너무 고차원적인 것으로 감히 이해하기도 벅찼으며, 검은 지팡이는 무엇에 쓰는 것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것은 천재적인 주술사인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막연하게 직감하는 것이라면 이 검은 지팡이의 비밀을 풀 수만 있다면 놀라운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기에 그는 검은 지팡이에 대한 연구를 밤낮 가리지 않았으나 그의 노력을 무시하는 듯 검은 지팡이는 숨겨진 비밀을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그날이 왔다.
몇 년 전부터 좋지 않은 소문이 들던 제국의 황성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자연히 제국은 분열이 되었고 난세의 시기를 코앞에 두게 되었다.
강력한 법과 질서가 유지되었던 영지들은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고, 그 과정에서 로케하르산 영지 또한 침략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제국의 대 귀족이었고, 끈끈한 가문이 이룩한 병력은 상당했기에 초기에는 막아낼 수 있었지만, 연합의 단계가 되자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씨족을 말리려는 그들에 가문의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그를 탈출시켰다.
또한 당시 그의 주술은 신체를 변하게 할 수 있을 정도라, 외형을 바꿀 수 있었고 이에 그는 로케하르산이 남긴 두 유품을 품에 안은 채 피눈물을 흘리며 영지를 벗어나게 되었다.
멀리서 불타오르는 영지를 바라보던 그는 언젠가 다시 돌아와 그들을 복수하고 다시는 이들에게 짓밟히지 않는 가문을 만들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그렇게 영지를 나선 그는 샤 대륙으로 향했다.
벌써 100년이 넘은 오래된 소식이지만 북방의 부족에서 위대한 주술사가 나타나 웬만한 왕국 못지않은 대부족을 이루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러 차례 어려움을 넘기고 도착한 그였지만 정작 그곳은 자신처럼 과거의 영화에 젖은 작은 부족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주술사가 나타났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기에 그는 큰 재물을 그들에게 내어주고 그 위대한 주술사가 남긴 유물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과연 위대한 주술사의 유물이라 할까? 그는 유물을 연구하던 중 검은 지팡이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직감했듯이 검은 지팡이에는 놀라운 비밀이 자리했다. 검은 지팡이에는 로케하르산이 자신의 과거 주술에 오를 때의 깨달음들을 환영의 형태로 남겨 놓은 것이다.
그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 자신의 경지가 한계에 다가왔음에도 그 한계를 뛰어넘는 깨달음이 없다면 자신의 경지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인데 이러한 힘으로 인해 운이 좋으면 그 경지를 넘을 수도 있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큰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또한 그 비밀을 알아내면서 로케하르산이 남긴 환영을 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오랫동안 그 자신을 막아섰던 벽을 넘어서게 되었다.
위대한 주술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바로 아래인 큰 주술사가 된 것이다. 특히 그가 오른 큰 주술사의 힘은 앞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대단했는데, 이는 두 위대한 주술사가 남긴 유물들을 합치게 되면서였다.
초인을 이길 수는 없지만, 최소 버티거나 그 스스로 몸 정도는 어렵지 않게 빠져나가는 주술을 얻게 된 것이다.
상급 익스퍼트의 검객이라면 셋 이상을 감당할 정도였고, 상대가 현자일 경우 고위 익스퍼트 현자는 넷을 상대할 수 있었다.
그는 위대한 주술사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컸지만, 그 경지에 언제 오를지는 지금으로서는 너무도 멀고 먼일이었다.
그래도 지금의 힘과 이 난세를 잘 이용만 한다면 가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고 그는 10년 만에 제국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위스키는 비워졌다. 식은 햄은 말라 비틀어졌고, 켜 놓은 향초는 다 녹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초여름이라지만 밤공기조차 무더웠다.
무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창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는 저 하늘 높이 뜬 달을 보며 스스로 다짐하듯이 중얼거렸다.
“로케하르산 리트담…… 이 이름이 주는 공포를 그대들에게 물들여 주리라.”
나지막한 그의 말에 담긴 증오는 무더운 여름만큼이나 끈적해 쉽게 그 여운은 사라지질 않는다.
‘크르르릉. 키에에엑-’
한 무리의 코볼트들이 그 날카로운 발톱과 누런 이빨을 보이며 먹잇감을 노리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보는 그나마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평소라면 자신들이 입은 큰 피해 때문에 꺼렸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먹지 못했다.
그랬다. 이 난세의 시대는 몬스터들에게조차 큰 영향을 주었다.
무서운 힘을 지닌 인간들의 군대가 나타날 때면 몬스터들은 놀라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이들이 나타날 때면 그곳은 풀 한 포기 보기 어려울 만큼 모든 것을 지워 버렸으니 그들로서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전쟁이 한 곳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괜찮을 것인데, 문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거대한 전쟁이 쉴 틈 없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몬스터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어떤 몬스터들은 인간들의 영역을 벗어나 동으로 서로 대이동을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규모의 수준이 인간의 군대를 넘어서게 된 몬스터들은 인간들의 영지를 공격하였다.
“빌어먹을 몬스터 놈들.”
폴은 자신들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코볼트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달려드는 한 마리의 목을 쳐 냈다.
폴과 자신의 용병단 일곱에 상인이 부리는 일꾼들까지 합치면 서론 다섯에 달한다. 이 정도의 전력이면 소형 몬스터들은 피하는 것이 정상인데, 난세로 인해 이제 이 정도의 전력도 해볼만 하다고 덤벼들고 있었다.
‘그만큼 굶주리고 있다는 것이겠지.’
살기가 날카로워 일반인이라면 크게 위협이 되겠지만 굶주려 제대로 힘도 못 쓰는 오십이 좀 넘는 코볼트를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이 죽어나가겠지만, 크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이 코볼트와 부딪히게 되면서 생기는 대피 시간이 부족이었다.
알라스라는 작은 상회로부터 호하스라는 영지로 가는 의뢰를 받고 움직이게 된 폴 용병단은 도착을 코앞에 두고 후회하게 되었다.
바로 이 호하스 영지가 몬스터 대이동의 희생양이 된 것인데, 성을 보아하니 조만간 뚫릴 듯 보였다.
다급히 마차를 돌리고 뒤로 물러서게 되었지만, 그는 무사할 것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았다. 군대를 이길 정도로 모인 몬스터 숫자였다.
그에 파생되어 흘러나온 몬스터를 생각한다면 갑자기 수풀에서 자신들을 먹어치울 몬스터들이 나타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다행히 만나게 된 몬스터가 코볼트 따위였지만, 피를 흘리게 되면 당연히 이목을 주목받게 될 것이니 폴로서는 짜증이 극에 달할 일이다.
더구나 조금 전 코볼트의 살기에 놀란 젊은 일꾼이 앞으로 나가 설치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불안감에 온몸의 삐쭉삐쭉 서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수풀이 크게 흔들리면서 거대한 돌 괴수가 모습을 보인 것은.
그 신장은 5미터에 달했고, 무게는 그만한 크기의 바위 못지않아 보였다. 과연 저 재질이 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괴수의 움직임은 매우 민첩했다.
“저, 저……저.”
그 위압적인 모습에 폴은 뒷걸음을 치다 주저앉았고, 괴수는 슬쩍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코볼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학살이었다. 몇 번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음에도 코볼트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괴수는 낮게 크르르릉 거리더니 영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보다 저 괴수에 대한 들어본 적도 없는 그 미지에 대한 공포가 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움직여야 한다.’
겨우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일어서는데 저 멀리서 조금 전에 보았던 괴수들이 마치 하늘을 날듯이 산속을 뛰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잘 못 본 것이 아니겠지.”
그 무시무시한 괴수가 한 마리도 아니고 더 있다는 사실에 폴은 소름이 돋았다.
그는 잠시 괴수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이내 머리를 흔들고는 다시금 수하들을 깨우며 도망을 칠 준비를 시작했다.
야안은 자신이 가는 호하스 영지가 몬스터 대이동에 침몰당할 위기에 처했음을 깨닫고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느낀 몬스터의 숫자는 지난 몬스터 군단에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들었던 정도의 영지 정도라면 함락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주술로 괴수들 다섯 마리를 만들어 낸 그는 그중 한 마리를 풀어 이곳 산에 자리한 몬스터들을 지울 것을 명령하고 네 마리를 이끌고 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