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57화
‘저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벌써 호하스 영지는 저 몬스터들에게 함락되어 인세의 지옥이 영지에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호하스 영지의 주인 호하스 자작은 유약한 인물이지만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사치를 줄이고 영지민들을 설득해 병력을 크게 늘리며, 한편으로 대영주 밑에 들어가는 등 난세에 잘 대처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아끼고 아낀 재물을 풀어 대영주가 원하는 병력을 이리저리 풀어 빼앗기지 않았었는데, 이는 자신의 영지가 몬스터 대이동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나지 않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난세의 그것은 언제나 불길한 쪽으로만 흘러갔다. 그리고 불길한 그의 예감대로 몬스터들이 그 모습을 보였다.
이미 그들을 막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 호하스 영지였지만 생각 이상으로 나타난 몬스터 군단의 덩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백작 성이라면 모를까? 자신 같은 자작 성 규모의 영지 정도는 통째로 날려 버릴 저력이었던 것이다.
즉시 그는 계엄령을 내려 모든 영지민들을 병력으로 전환했지만, 중과부적이라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 비참한 현실에 괴로워할 때 그가 모습을 보였다.
갈색 머리에 갈색 피부를 지닌 검고 짙은 눈동자를 지닌 사내가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한 자루의 검은 지팡이를 든 그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몸놀림으로 사람들을 헤치고 앞서 나아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검도 마법도 아닌 놀라운 이적 같은 힘을 보였다.
그가 검은 지팡이를 휘두르자 성의 벽에서 일순간 날카로운 돌창이 생겨나 수많은 몬스터를 꿰뚫고 사라졌고, 다시 검은 지팡이를 휘두르자 이 더운 여름마저 불태울 불길이 몬스터 사이에 들어서 그들을 갈라놓기 시작했다.
‘크아아앙. 카에에엑.’
불길에 휩싸인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를 않았고, 자연히 성을 부수는데 전력을 다하던 몬스터들은 이전만큼 강력한 위세를 보이지 못했다.
마치 초인을 연상케 하는 그 놀라운 힘에 희망이 생긴 호하스 영지의 기사 단장은 마음속에 일어난 뜨거운 불길을 토해냈다.
“대열을 바꾼다. 총력을 가하라.”
틀림없이 조만간 성이 무너질 것으로 이차적인 몬스터 군단의 진격을 막기 위해 준비하던 군사들은 기사 단장의 명에 뜨거운 함성으로 대답하며 공격을 가했다.
이 이름도 모르는 갑자기 나타난 초인은 자신들이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자, 그것에 맞게 불길을 돌리며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살 수 있다. 살아남을 수 있다.’
성을 지킬 수만 있다면 저 몬스터 군단이라 해도 막을 수 있었다. 아무리 압도적인 힘을 지녔다 해도 제대로 된 머리가 없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 성이 아니던가?
여기서 더 시간이 흐른다면 안정을 찾을 것이고 그렇다면 병력을 돌릴 여유가 생기게 된다. 그 말은 장기전을 노릴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그렇게 호하스 영지는 정체 모를 그 사내에 의해 기사회생하기 시작했다.
야안은 중간 중간 만나게 된 몬스터들로 인해 자신의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지자 초조한 마음을 가지다 성이 아직 함락당하지 않은 것을 보고 안도를 표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호하스 영지가 무너지지 않게 한 저 불길이 마법이나 공성병기로 인한 것이 아닌 주술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는 크게 놀라움을 표했다.
‘이 정도의 주술을 이곳 바 대륙에서 보게 될 줄이야. 놀랍다. 마치 자이한 그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야안은 직감적으로 그 주술을 이루는 원천적인 힘이 자신과 관계가 있음을 알았으나 연유를 몰랐기에 그저 고개를 저어댔다.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지.”
잠시 멈칫했던 야안은 다시금 괴수들을 이끌고 이내 전장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크르르릉-’
낮은 울음소리를 흘리는 괴수들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듯이 죽이기 시작했다.
앞의 불길에 물러나는 몬스터들로 크게 혼란이 일어나다 갑자기 뒤에서 거세게 몰아치는 괴수들의 등장에 그 혼란은 극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야안이 내려섰다.
뽑아든 검에서 일어난 검강은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였고, 어느새 나타난 유피테르는 그런 야안과 함께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의 영역에 닿지 않는 곳에 뇌전을 뿌리다가도 야안이 신마법을 펼칠 때면 그를 도왔다. 야안이 고위 현자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서 그의 신마법 또한 격이 달라진 터라, 파이어 핑거는 오우거의 몸을 뚫고도 그 여력이 남아 그 뒤의 몬스터를 격살했으며, 파이어 피스트 또한 그 지나가는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파이어 팜의 위력은 더 놀라웠다. 야안의 손바닥이 뻗을 때면 15미터 반경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 열기가 식기도 전에 다시금 파이어 팜이 펼쳐졌기에 몬스터들은 놀라운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법도 야안이 본격적으로 발휘하는 검강의 파괴력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소모량에 비해서라면 마법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나 시간에 비한다면 검강의 힘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압도적인 것이었다.
몬스터들의 후미 쪽에서 일어난 공포는 마치 가을날 놓은 산불처럼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 지독한 공포에 밀려 리트담이 만들어 놓은 불길에 몸을 던지는 몬스터가 한둘이 아니었고, 흥분이 고조되어 주위의 몬스터를 공격하거나 잡아먹는 몬스터들 또한 적지 않았다.
갑자기 몬스터 군단이 어수선해지자 그제야 성에서도 저 몬스터 군단의 후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인지했다.
그것은 주술을 최대의 효율로 보이며 몬스터들을 막아내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던 리트담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름 모르는 돌로 만든 것 같은 괴수가 자신이 만든 불길을 뛰어다니며 움직이는데 그는 단번에 그것이 주술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알고 놀라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도대체 누구인가?’
자신 이외에 바 대륙에 주술사가 나타난 것도 놀랐지만, 이 같은 주술의 형태는 그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리트담의 마음이 뒤흔들렸다.
하기에 그는 이 괴수가 움직이게 하는 주술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고, 곧 그는 저 멀리서 놀라운 힘을 보이고 있는 한 존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존재는 단순히 주술만을 펼치는 것이 아니었다. 손에서는 검강이 일어났고, 간간이 손을 펼칠 때 일어난 불의 마법은 자신의 불로는 감히 상대하기가 벅찰 정도였다. 또한, 그 말고도 다른 형태의 힘이 전장을 뒤흔드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는 그 힘의 형태가 정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존재가 부리는 정령은 지금 그의 그 말도 안 되는 힘만큼이나 이해되지 않는 존재였다. 고차원적인 존재였다.
정령이라는 존재가 놀라운 존재이기는 했지만, 이 존재는 그런 정령 중에서도 상식을 뒤흔드는 고차원적 존재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사대원소 이외에도 가끔 그 모습을 보이는 이 외의 특성을 지닌 정령들도 있었지만, 설마 뇌전의 힘을 지닌 존재라니.
믿을 수도 없는 이 정령은 대단히 효율적인 힘으로 전장을 파괴하고 있었고, 뇌전의 영향에 들어선 몬스터들은 커다란 치명상을 입고 울부짖다 결국 죽음에 들어섰다.
‘세상이 넓다고는 하지만 네 개의 길을 동시에 걷는 자가 있다니. 보고 있음에도 믿어지지 않는구나.’
단순히 네 가지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놀랍건만 그 하나하나가 가지는 힘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초인의 존재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으니. 쉽사리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같은 여러 가지의 힘을 가졌기 때문인지 그로 인한 상승작용으로 다수의 적에게 치명적인 힘을 보였다.
무서운 속도로 줄여가는 사내를 본 리트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경이로움에 빠져들었다.
전투는 장기간을 예상했던 것과는 다음 날 새벽이 되어 끝이 났다.
리트담과 호하스 영지의 군사들이 잘해준 것도 있겠지만, 결국 이 전쟁을 승리하게 한 것은 단 한 명의 인간이었다.
전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무위를 보여준 자.
그들의 반을 홀로 지워버렸고, 리트담과 호하스 영지의 군사들도 적극적으로 이 거대한 전투에 들어섰으나 그 한 사람이 보인 공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결국 몬스터들은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렇게 새벽의 여명이 찾아올 때쯤. 전쟁은 끝이 났다.
“우와아아아아!”
“살았다! 저 망할 몬스터들로부터 성을 지켰어.”
자신들이 승리하였음을 기사단장이 선언하자 호하스 영지의 병사들은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들이었지만 살아남았다는 것에서 오는 희열에 젖어 피곤함을 잊어버렸다.
승리에 젖은 거대한 함성이 대지를 뒤 흔들 때 리트담은 남은 주술력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성으로 다가오고 있는 야안 때문이었다.
전투 내내 그 같은 주술의 형태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고찰을 하였지만, 어느 한 곳에 막혀 계속 뱅뱅 돌뿐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본 주술은 주술 제국에서 황가에게나 내려오던 것으로 고차원적인 주술이었다. 더구나 그 주술에 자신이 말년에 완성한 주술과 합쳐 그 힘을 더한 것이니 아무리 주술에 천재적인 그라고 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기에 그는 야안에게 다가갔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자신들에게 악의를 품지 않았음을 알기에 그는 불가사의한 존재인 야안에게 선뜻 다가설 수 있었다.
야안은 리트담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미소를 보이며 반겼다.
“조금 전 성을 지키셨던 주술사시군요. 저는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리트담은 야안이 자신을 알고 반기자 그는 예를 보이며 인사했다.
“리트담이라고 합니다. 보잘것없는 재주가 귀공의 눈을 어지럽혔는지 모르겠군요.”
우아하게 예를 보이는 그의 모습은 귀족의 그것과도 같았지만, 야안은 그보다 그가 말한 그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리트담! 아~’
그는 그제야 왜 그가 펼친 주술이 그처럼 낯설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자리한 이자가 바로 자신의 주술의 근본이 되었던 리트담의 저서를 만들어 낸 리트담임을 알게 된 것이다.
‘설마, 리트담을 만나게 되었을 줄이야.’
리트담은 야안에게서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인물이었기에 그 놀라움을 컸다.
역사에서도 그를 거론한 적이 없었으며, 그가 언제 적 사람이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가 우연한 기회로 이 저서를 얻지 못했다면 리트담에 대해 그 또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유목민이었던 그가 그들 이름의 형식이 아닌 리트담이라는 이름을 쓸 때부터 무언가 사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당시 그가 바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을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설마 난세의 사람이라니.’
그와 같은 힘을 지닌 자라면 대현자 테무드의 동료가 되어 역사에 남을 만한데 지금으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